우암동의 역사와 발전사를 살펴보면 남구의 다른 지역과 다른 점을 찾을 수가 있다. 우암동의 발전을 이야기 할 때 천주교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밀가루 배급으로 살아야 했던 너무나 힘들었던 시절에 미국 선교 단체 등에서 지원해 준 배급 밀가루가 성당을 통해 사람들에게 분배되었고, 천주교를 중심으로 시민 구제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으로 독일인 신부인 하안토니오(독일명: 안톤트라우네르, Anton Trauner) 신부를 들 수 있다. 그는 1956년 북한 강제 수용소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독일로 귀환 당한 지배르트 신부를 통해 한국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부산에 신부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한국으로 왔다. 1년간 천주교 구교관인 중앙 성당에서 한국말을 배우고 근무하다가 적기 성당으로 파견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1년 천막 교회에서 출발한 현재의 동항성당은 1958년 7월 우암2동 125번지에 동항 천주교회로 설립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9년 10월7일에 하안토니오 신부가 본당 신부로 부임하게 되었다. 또한 일본을 거쳐 들어온 많은 외국인 수녀들로 구성된 프란치스코회 수녀들이 가난과 질병을 구제하고 선교하는데 앞장섰다. 하안토니오 신부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가난하였던 지난 날, 마을의 주민들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가난하고 병약한 사람들과 임산부를 돌보고 구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여 그들에게 재생의 희망을 안겨 주었다. 하안토니오 신부는 지체 장애아를 포함한 일곱 명의 고아들을 사제관에서 키우며 자식처럼 돌보았다. 또한 1977년 봉생신경외과 김시묵 목사와 함께 가난한 산모들을 위한 조산원을 열었으며 집도 가족도 없는 노인들을 위해 모금 운동을 벌여 이들을 보살펴 주기도 하였다. 1964년 11월15일에는 우암2동에 2천 평 대지 위에 5백 평의 〈사랑의 집〉을 완공하였다. 이 〈사랑의 집〉은 가난한 이웃을 도우며 학습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1964년에는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회인 푸른 군대의 한국 본부를 창설하였으며 1974년부터 매년 2회씩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 평화통일 염원 기도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하안토니오 신부에 대한 감사와 존경은 우암동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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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맞습니다,맞고요,대단하신,분이죠....
성직자로서,가난한,적기,감만동을,,,,,
일으켜,세웠죠....하신부님,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