乾止山城의 역사
- 백제 동성왕 우두성 축성, 의장왕때 마산성수리, 삼국사기 주류성, 조선시대 건지산성으로 변천

건지산성은 사적 제60호로 지정된 국가문화재이다 성곽은 흙과 잡석을 이용하여 쌓았고 건지산의 남쪽봉오리와 북쪽봉오리 계곡을 포함하였다하여 포곡식 산성이라고 부른다. 한산면의 鎭山이며 백제의 역사적 숨결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서천군을 소개하려면 한산지역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서천은 곧 한산이요 한산은 곧 서천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한산지역은 문화,역사, 인물 등이 많은 지역으로 문화와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한산은 백제때 馬山縣,또는 馬邑. 고려때는 韓州,또는 鵝州, 鵝城 조선태종13년(1413년)부터 韓山郡 이였다가 1914년 일제 강점기부터 서천군에 통합되면서 한산면으로 전락하였다.
건지산성은 백제,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군사적으로 요충지역임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다. 건지산성은 관문인 금강을 통해 백제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수문장 역할을 하는 산성이다 건지산성은 백제 동성왕 시대에는 牛頭城(우두성), 의자왕때에는 馬山城,또는 周留城(주류성)이라고도 불렀다. 산성의 평면도상을 보면 소머리를 닮았다 그래서 아마 우두성이라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18세기 조선시대 편찬된 한산군지 事例篇(사례편) 典古(전고-옛문헌)에 따르면 우두산성은 백제 동성왕 8년(483년)에 쌓았고 우두성은 건지산성의 古城(고성-오래된성)이라고 한 것을 보면 건지산성은 백제시대 쌓은 산성임을 알 수 있다.
백제 동성왕은 사냥을 즐겼다고 한다. 삼국사기를 기록을 보면 동성왕 22년(500년)4월에 우두성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우박을 만나 사냥을 그만 두었고, 다음해(501년) 11월에 사비(지금의 부여) 서쪽 벌판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큰 눈이 많이와 길이 막혀 돌아가지 못하고 馬浦村(마포촌-지금의 마산면지역)에서 묵었다고 기록하였다.
이때 부여 임천 加林城(가림성- 지금 임천성흥산성)의 城主(성주-책임자)로 임명된 위사좌평 苩加(백가)가 인사 불만을 품고 마포촌에 유숙하고 있던 동성왕을 자객을 보내 살해를 하였다. 그 다음해(502년) 동성왕의 뒤를 이은 무령왕은 군사를 이끌고 건지산성인 우두성에 진을 치고 解明(해명)을 보내 백가를 잡아오도록 하였다.무령왕은 잡아온 백가의 목을 베어 白江(백강- 지금의 금강)에 던져 버렸다 한다.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멸망하였지만 모든 산성까지 함락되지는 않았다. 한산건지산성인 주류성은 일본에 있던 풍왕자를 모셔다가 왕으로 추대하고 3년간 백제의 부흥운동을 주도하였던 거점성이였으나 끝내는 함락되고 부흥의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토록 건지산성은 백제의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요즘 일부 학자들이 건지산성은 주류성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전북 부안설, 연기 운주산성설, 홍성의 학성설을 주장하지만 건지산성이 주류성이라는 학설은 대다수의 학자가 주장하는 통설로 자라하고 있다. 학설은 분분하지만 고대 백제산성임과 백제의 동성왕과 무령왕. 풍왕자가 마지막 까지 백제의 부흥을 꿈꾸었던 군사적 중요한 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산지역 주민들은 매일 건지산성을 찾아 등산을 한다. 건지산성은 이러한 백제의 역사적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유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서로가 보호를 해야 하겠다.
첫댓글 좋은글과 자료 감사드리고, 한가지 의문점이 있어 방문합니다
본 글에서 우두성을 한산 건지성이라 했는데 조금 다른것 같아 몇자 적어 봅니다.
동성왕이 우두성은 8년 7월에 가림성은 23년 8월에 쌓고,사비원 인근에서 사냥을 하다가 백가에게 피습당해 서거 후 무령왕이 인근에 주둔하고 해명이 토벌하여 참수 시킨 역사적인 장소인데, 그 진짜 인근은 가림성에서 약 6km 떨어진 부여군 장암면 합곡리 역말이란 마을과 남면 마정리 우평이란 마을의 뒸산에 있씁니다. 다시한번 확인 바랍니다.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건지산성을 주류성으로 주장하면서 산성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고 있어 "건지산성 주류성설"의 표본 글로 공유해 놓은 것입니다.
동성왕을 살해한 가림성의 백가를 응징하기 위하여 사비성을 출발한 진압군은 사비성과 가림성 사이에 주둔하는 것은 필연입니다.
그런데 건지산성은 반대쪽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우두성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백제말~통일신라 전기 특징이 나타나지만, 발굴조사에서 고려시대로 보기도 하여 주류성에서 멀어진 산성입니다.
주류성 관련 글 댓글에서 모순되는 주장을 찿아 지적해주시고 주류성에 대한 다른 견해가 있으시면 카페에 소개해주시길 요청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위 글 뿐만 아니라 다음백과에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삼국시대에 백제의 우두성 또는 마산현으로, 통일신라시대에도 마산현이 설치되었다. 고려초에 한산현으로 이름이 바뀌고, 1018년(현종 9)에 가림현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5년(명종 5)에 감무를 설치함으로써 독립되고 뒤에 한주로 승격되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3년(태종 13)에 한산군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한산의 별호는 마읍·아주였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홍주부 한산군, 1896년에 충청남도 한산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폐합 때 한산군이 폐지되고 북부면 동상면이 한산면으로 서천군에 포함됐다.
위 설명에서 우두성은 별개의 산성을 의미하지 않고 지역(고을)을 의미한다. 건지산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데도 옛 문헌 기록을 따라 한산지역을 대표하는 건지산성을 옛 우두성으로 추측 고증없이 쓰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