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북면 토진2리 김현경씨의 해방정국 경험
김현경(남, 1926년생)
* 2005년 9월 2일 자택에서 인터뷰
김현경씨는 청북면 토진리 고좌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같은 마을에서 살았다. 해방 직전 징병대상자로 입대 대기하다가 해방을 맞았고, 해방 후에는 대동청년단을 거쳐 대한청녀단원으로 활동하였다.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살아남은 뒤 호적위조로 다시 입대하여 10여 년을 군대생활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필자)반갑습니다. 해방 뒤 청북면의 좌우익 갈등에 대해서 말씀을 부탁합니다.
김)일정 때부터 청북면은 사람들이 쎈 편이었어. 사는 것도 변변찮았고. 토진리는 서울 사는 윤승지하고 전태식이 땅이 많았지. 우리마을(토진리 고좌)은 농사지을 땅이 없어서 다랭이논도 많았고 저기 톷나루 가서 농사짓기도 하고 그랬었지. 국길이나 톷나루는 개간혀서 땅이 많았거든. 그래도 농사지으면 남는 것이 없었어. 지주헌티 반절주지, 품삯제하지, 장리쌀 갚아야지 하고 나면 남는 게 있을 턱이 없지.
필자)톷나루나 국길에서 사회주의활동이 활발했던 것도 경제사정하고 관련이 있었겠네요?
김)그렇지. 다 먹고 살기 힘든께 무상으로 땅 준다 뭐다 허니께 홀딱 넘어가버린 거지.
필자)그러면 어르신은 어느 쪽에 속했어요? 혹시 사회주의는 안 했나요.
김)나는 우익이었지. 톷나루 이OO씨가 하던 대동청년단 하다가 나중에 청년단(대한청년단)까지 하였지.
필자)서북청년단에는 관여하지 않았어요?
김)서북청년단? 그건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만 혔지. 우리하고는 틀려.
필자)해방 당시 우익이 쎘어요, 좌익이 쎘어요?
김)좌익이 쎘지. 우익은 얼마 되었나. 저기 톷나루허고 국길 쪽에 좌익활동하던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들 영향이 컸지. 백봉이나 양교리 쪽에서도 많이 했고.
필자)그러면 이쪽(청북면)에서도 좌익집회 같은 것도 하였겠네요.
김)말이라고 혀. 해방되고 얼마 안 있다가 오성, 청북 일대 좌익들이 오봉산에서 해방기념집회를 열었어. 한 삼천 명은 모였을 거여. 톷나루허고 어연리에 좌익이 아주 많았어. 어연리에 어연국민핵교(어연초등학교) 만들었던 박상희 같은 사람이 주동자 아니었나. 그러니께 동조하는 사람이 많았지. 이 근방 좌익들은 죄다 모였다고 헐 수 있지.
필자)어르신도 집회에 참여했어요?
김)내가 대한청년단인디 참여할 수 있나. 집회를 연다니께 동태를 살피고 해산시킬려고 간 거지. 그 때 청년단(대한청년단) 평택단장이 황경수씨였어. 일정 때도 면의원 같은 거 하고, 거 나중에 국회의원까지 혔던 황경수 있잖어. 청북면 단장은 윤후진이었고, 훈련계장은 신대식씨였지. 우리는 윤후진씨 인솔로 30명쯤 산에 올라갔어.
필자)훈련대장 하였다는 신대식씨요, 혹 일제 때 청북면장 하였던 신찬우씨하고는 어떻게 되나요?
김)신찬우씨 아들이여. 일정 때 청북면장혔던 양반 둘째였어. 그쪽(현곡면) 신씨들이 유지들이었어. 그 양반 6.25 때 행방불명되었는디 입대해서 전사했다는 소문이 있어.
필자)아까 오봉산 폭동 이야기 조금 더 해주세요?
김)그려서 오봉산으루 갔는디 잘못해가지고 좌익들헌티 발각되었어. 생각해봐, 좌익놈들이 몸둥이 들고 쫓아오는디 오금이 저려 도망갈 수가 없드만. 흩어져갔고 냅다 논두렁이고 어디고 뛰었는디 잡혔으면 죽었을 꺼여. 나중에 엉뚱한 사람이 잡혀 고문당혔지.
필자)좌익들 집회는 그것으로 끝났나요?
김)끝나기는, 그 뒤에도 여러 번 있었지. 정부수립 발표 나고 한동안 반대투쟁한다고 난리를 피더만 잠잠해졌지. 하여튼 좌익집회만 있으면 쫓아가서 해산시켰어. 경찰이 우리 편이어서 수는 적어도 힘이 있었지. 청북 퇴미산(무성산)에서도 집회를 했어.
필자)이 지역도 좌익마을, 우익마을로 나눠졌을 텐데 어떻게 구분되었어요?
김)토진리에서는 톷나루허고 국길, 어연1리, 어소리 같은디가 좌익이 많었고, 고좌, 설창, 수부는 우익이었지. 대한청년단 윤후진씨가 수부(한산리) 사람 아니었나. 그 사람 경찰출신인디 대단혔어.
필자)실례지만 좌익으로 유명했던 사람은 누가 있었어요?
김)어연리 박상희씨하고, 토진리에서는 최봉하라고 있고, 국길에 김진만이라는 사람이 있었지. 김진만이는 6.25 전에 경찰들헌티 붙들려가서 고문당해 죽었어.
필자)한국전쟁에 대한 기억 중에서 조금 더 말씀할 내용이 없나요?
김)전쟁 때 폭격 맞아서 청북면사무소가 불타버린 거하고, 나이를 속여서(25세) 군속으로 입대혀서 설악산 향로봉에서 싸우다가 죽지 않고 살아나가지고 전쟁 끝나고 제대혔더니, 군속증도 잃어버리고, 호적 위조한 거 들통 나서 군대생활 3개월 모자른 거 채우라고 혀서 다시 입대혀서 3년 근무허고 34살에 제대한 것이 기억나는 일이지. 우리마누라 고생 많았어.
필자)귀중한 증언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