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선법(坐禪法)
개요
앉아서 선(禪)하는 법. 주로 불교에서 수행의 중요한 방법으로 행했으며, 그 연원은 멀리 인도의 고대시대부터 있었던 수행방법이다. 원불교에서는 좌선법을 정기훈련(定期訓練) 과목 중 하나로 정하고 선의 원형을 심신간에 익히도록 하는 공부길이다(《정전》 좌선법).
좌선법을 과거에는 참선법(參禪法)ㆍ참구법(參究法)ㆍ수선법(修禪法)ㆍ벽관법(壁觀法)ㆍ지관법(止觀法) 등 다양하게 불렀다. 서양에서는 명상(Meditation)이라고 번역하여 좌선을 이해한다. 그러나 명상은 생각이 있는(有念) 상태에 중심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좌선은 생각을 내도 안되고 생각이 없어도 안되는 상태이니 명상과 좌선을 그 본질상 상당히 거리가 있는 방법이나 외견상 비슷해 보인다. 원불교의 좌선법에서는 우리의 본래 순연한 정신 즉 적적성성(寂寂惺惺)한 상태를 길러 내자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전》 수행편에 수록되어 있다.
좌선법의 역사적 변천
인도인들이 더위를 견디기 위한 신체적 이유로 선을 하기도 하는가 하면 정신적으로 해탈(解脫)하기 위해서 선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방법적으로 고행(苦行)하려는 고행선(苦行禪)이 있었는가 하면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낙천(樂天)을 하여 온 낙행선(樂行禪)도 있었다. 불교이전의 브라만교에 ‘사무색정(四無色定)’이라는 좌선법이 있었다. ‘사무색정’의 최고의 경지는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다.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다는 그것마저 없는 경지이다. 분별망상이 다 끊어지고 분별망상이 끊어졌다는 그것마저 없는 것이다. 이 경지를 깨치면 몸을 버리고 영으로만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 이것이 브라만교의 궁극적인 선정의 목적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선 선은 다양한 방법으로 또는 극단적인 방법으로만 전해져 왔다. 석가모니도 출가해서 초기에는 두 사람의 브라만교 수행인의 지도에 따라 좌선을 하여 ‘비상비비상처정’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이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선정을 중단했다. 여기에 대하여 석가모니(佛陀) 좌선의 중도적 방법에 의해 대각을 이루고 중도에 의한 좌선만이 정각(正覺)할 수 있는 도리라고 보았다. 석가모니는 6년의 설산고행과정에서 ‘내가 생사를 해탈하려는 것은 이 세상에 살면서 생사를 해탈하려는 것이지 천상세계에 주해서 해탈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보리수 아래에서 좌선을 하여 도를 깨달았다.
비록 석가모니가 기존의 선의 방법을 부정하기는 했지만 먼저 브라만교의 ‘사무색정’의 좌선에서 얻어진 정력(定力)이 깨달음의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브라만교의 좌선법은 우빠니샤드 철학에서 체계를 세웠다. 석가모니 당시를 전후해서 육사외도(六師外道)와 육파철학(六派哲學)의 사상도 대체로 육체적인 단련에 중심을 두었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육체적인 단련보다 정신적인 단련을 중심으로 하는 좌선법을 강조하여 좌선의 목적을 생사해탈에 두었다. 팔정도(八正道)의 정정(正定)은 바른 선정 곧 중도적인 선법이다.
석가모니의 열반 후 100년경에 부파불교가 일어나며, 부파불교는 우빠니샤드 철학의 영향을 받으며, ‘사무색정’과 같은 ‘구차제정(九次弟定)’이라는 좌선법을 발달시킨다. 그의 대승불교로 들어오면서 석가모니 좌선의 정신을 다시 강조하게 된다. 선사상은 중국 양무제 당시 남인도에서 온 보리달마(菩提達摩)에 의해 중국불교의 한 흐름을 이루게 되는데, 그는 숭산 소림사(崇山少林寺)에서 면벽(面壁)좌선을 9년간이나 행하면서 좌선수행을 중심한 선불교의 토대를 마련했다. 선은 본래 모든 사상이 하나인 이치를 알아 하나의 도리에 드는 것이 특징이라 하나 근기(根機)의 차에 따라 선의 방법과 방향이 다양하게 발전했다.
우두(牛頭)선ㆍ북종(北宗)선ㆍ남종(南宗)선ㆍ황벽(黃檗)선ㆍ임제(臨濟)선ㆍ조동(曺洞)선ㆍ운문(雲門)선ㆍ위앙(仰)선 등 여러 종파의 가풍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그중에 특기할 만한 선풍은 송대에 임제종의 간화선(看話禪)과 조동종의 묵조선(照禪)이 대조적으로 크게 부각되었다. 대혜종고(大慧宗챋)에 의해서 성숙된 간화선풍은 화두(話頭)를 잡고 참구하는 것으로, 화두를 통해 깊이 의심하되 의심하는 생각도 놓고 염염상속(念念相續)하여 마침내 한 덩어리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는 본연 소식을 찾는 방법이었다.
굉지정각(宏智正覺)에 의해서 이룩된 묵조선풍은 좌선할 때 화두를 들지 아니하고 오직 묵묵히 관조하여 분별없는 가운데 성성(惺惺)하고 역역(歷歷)한 본연지(本然地)를 깨닫는 것이었다. 이들이 선풍을 이끌며 발전했는데, 서로 독특한 선쿵을 선양하기 위해서 간화선가는 묵조선풍을 무기(無記)의 사선(死禪)이라고 논박하고, 묵조선가는 간화선을 호의(狐疑)의 망선(妄禪)이라고 지적하며 논쟁이 격한 가운데 오늘날에 이르렀다. 간화선에서 일정한 공안(公案)의 화두를 드는 요령은 의식을 화두에 응집시켜 여타의 모든 생각이 조금도 개입되지 않도록 치열하게 지속시켜나가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선하든 악하든 평상시에 자신을 지배했던 내용들을 제거하여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
화두를 드는 방법의 핵심은 화두가 사유분별의 대상이 아니라 의단(疑團) 또는 의정(疑情)으로 뭉치게 해야 하며, 이 의단이 타파되면 할 일을 다 마치게 되는 것이다. 묵조선은 적묵 영조(寂靈照)한 본래의 마음에 사무치는 것으로, 묵()하고 조(照)하는 좌선 가운데 본래적인 마음의 작용이 있다고 본다. 곧 좌선하는 그대로가 비추어보는 작용과 다르지 않은 궁극적인 경지라는 것이다. 묵묵히 말을 잊으면 소소영령하게 앞에 나타난다. 언어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좌선 수행을 한 결과로 모든 것의 진실이 실현된다.
묵조의 도리가 원만하게 되면 연꽃이 피는 것 같고 꿈에서 깨어난 것 같으며, 모든 물줄기는 바다로 흘러가고 온갖 봉우리는 뫼를 향해 뻗어나가는 것과 같은 경지이다. 묵조가 완성됨에 의하여 모든 존재가 작위(作爲)가 없는 자연스러운 본래의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어떤 존재가 대상으로 다가와도 그 성품은 허공과 같으며, 사물의 경계와 접촉하지 않고도 알며 대상을 마주치지 않고도 비추는 것이다. 간화선은 견성(見性)을 목적으로 하며 묵조선은 마음을 비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불교의 흐름에는 신라 후대에 선불교가 전래된 이래 지방호족의 종교로 각광을 받으면서 선법이 발달되었고, 고려에서는 의천의 교관겸수(敎觀兼修), 보조지눌의 정혜쌍수(定慧雙修)가 선풍을 대표하는 성격을 지니며, 고려말 태고보우 이후는 사자상승(師資相承)의 선맥을 계승하고 있다. 조선시대 이후는 선일원화(禪一元化) 가운데 선ㆍ교(禪敎)의 가르침을 두루 수용하고 있는데, 전통불교의 흐름을 대표하는 교단이 조계종(曹溪宗)ㆍ태고종(太古宗)인 것처럼, 임제선풍의 간화선이 한국불교 선풍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원불교 좌선의 원리
좌선의 공통적 성격은 어떠한 방법으로나 마음을 일경(一境)에 집주(集注)하는 길을 제시하여 온 점이다(心一境住:samdhi). 그러므로 좌선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집주했으며, 집주의 방법은 많으나 대략 열거하면 미간(眉間)ㆍ정상(頂上)ㆍ비단(鼻端)ㆍ제간(臍間)ㆍ기식(氣息)ㆍ불상(佛想)ㆍ월륜(月輪)ㆍ아자(阿字)ㆍ부정(不淨)ㆍ화두ㆍ제심(制心)ㆍ묵조ㆍ단전(丹田) 등을 들 수 있다. 이중에 마음을 두부(頭部)나 외경(外境)에 주하면 망념이 동(動)하고 기운 안정이 잘되지 아니하며 심일경주하려는 본연의 뜻이 잘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정전》에 제시했다.
여기에 대하여 단전주(丹田住:아랫배에 주하는 것)는 사념(思念)이 동하지도 아니하고 기운이 잘 내리며 안정을 쉽게 얻는 법이 되며 묵조나 간화의 방법적인 허점을 극복할 수 있는 선이다. 단전주선의 특징은 좌선할 때 화두를 들지 아니하는 점에서 묵조선과 상통하나 좌선을 마치고 정신이 상쾌한 때 화두를 궁굴려 나가는 것이 차이가 있다. 그 뜻은 마음이 화두에 짓눌리지 아니하고 좌선은 좌선대로 전일하여 심신간에 더욱 건전해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원불교에서 좌선은 정기훈련 11과목 중의 하나이다.
“좌선은 기운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지키기 위해 마음과 기운을 단전에 주하되 한 생각이라는 주착도 없이 하여 오직 원적무별(圓寂無別)한 진경에 그쳐 있도록 함이니 이는 사람의 순연한 근본정신을 양성하는 방법이요”(《정전》 정기훈련법)라 했다. 두렷하고 고요해서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원래의 마음을 찾는 것이 좌선인 것이다. 좌선은 정신수양과목에 속한다. 좌선은 수행인에 있어서 기본적인 수행방법이다. 왜냐하면 좌선은 마음을 비우고 키우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1. 좌선의 요지(坐禪-要旨)
대범, 좌선이라 함은 마음에 있어 망념을 쉬고 진성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몸에 있어 화기를 내리게 하고 수기를 오르게 하는 방법이니, 망념이 쉰즉 수기가 오르고 수기가 오른즉 망념이 쉬어서 몸과 마음이 한결 같으며 정신과 기운이 상쾌하리라.
그러나, 만일 망념이 쉬지 아니한즉 불 기운이 항상 위로 올라서 온 몸의 수기를 태우고 정신의 광명을 덮을지니, 사람의 몸 운전하는 것이 마치 저 기계와 같아서 수화의 기운이 아니고는 도저히 한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할 것인 바, 사람의 육근 기관이 모두 머리에 있으므로 볼 때나 들을 때나 생각할 때에 그 육근을 운전해 쓰면 온 몸의 화기가 자연히 머리로 집중되어 온 몸의 수기를 조리고 태우는 것이 마치 저 등불을 켜면 기름이 닳는 것과 같나니라.그러므로, 우리가 노심 초사를 하여 무엇을 오래 생각한다든지, 또는 안력을 써서 무엇을 세밀히 본다든지, 또는 소리를 높여 무슨 말을 힘써 한다든지 하면 반드시 얼굴이 붉어지고 입 속에 침이 마르나니 이것이 곧 화기가 위로 오르는 현상이라, 부득이 당연한 일에 육근의 기관을 운용하는 것도 오히려 존절히 하려든, 하물며 쓸데 없는 망념을 끄리어 두뇌의 등불을 주야로 계속하리요. 그러므로, 좌선은 이 모든 망념을 제거하고 진여(眞如)의 본성을 나타내며, 일체의 화기를 내리게 하고 청정한 수기를 불어내기 위한 공부니라.
2. 좌선의 방법
좌선의 방법은 극히 간단하고 편이하여 아무라도 행할 수 있나니,
1. 좌복을 펴고 반좌(盤坐)로 편안히 앉은 후에 머리와 허리를 곧게 하여 앉은 자세를 바르게 하라.
2. 전신의 힘을 단전에 툭 부리어 일념의 주착도 없이 다만 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것만 대중 잡되, 방심이 되면 그 기운이 풀어지나니 곧 다시 챙겨서 기운 주하기를 잊지 말라.
3. 호흡을 고르게 하되 들이쉬는 숨은 조금 길고 강하게 하며, 내쉬는 숨은 조금 짧고 약하게 하라.
4. 눈은 항상 뜨는 것이 수마(睡魔)를 제거하는 데 필요하나 정신 기운이 상쾌하여 눈을 감아도 수마의 침노를 받을 염려가 없는 때에는 혹 감고도 하여 보라.
5. 입은 항상 다물지며 공부를 오래하여 수승 화강(水昇火降)이 잘 되면 맑고 윤활한 침이 혀 줄기와 이 사이로부터 계속하여 나올지니, 그 침을 입에 가득히 모아 가끔 삼켜 내리라.
6. 정신은 항상 적적(寂寂)한 가운데 성성(惺惺)함을 가지고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을 가질지니, 만일 혼침에 기울어지거든 새로운 정신을 차리고 망상에 흐르거든 정념으로 돌이켜서 무위 자연의 본래 면목 자리에 그쳐 있으라.
7. 처음으로 좌선을 하는 사람은 흔히 다리가 아프고 망상이 침노하는 데에 괴로와하나니, 다리가 아프면 잠깐 바꾸어 놓는 것도 좋으며, 망념이 침노하면 다만 망념인 줄만 알아두면 망념이 스스로 없어지나니 절대로 그것을 성가시게 여기지 말며 낙망하지 말라.
8. 처음으로 좌선을 하면 얼굴과 몸이 개미 기어다니는 것과 같이 가려워지는 수가 혹 있나니, 이것은 혈맥이 관통되는 증거라 삼가 긁고 만지지 말라.
9. 좌선을 하는 가운데 절대로 이상한 기틀과 신기한 자취를 구하지 말며, 혹 그러한 경계가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 요망한 일로 생각하여 조금도 마음에 걸지 말고 심상히 간과하라.
이상과 같이, 오래오래 계속하면 필경 물아(物我)의 구분을 잊고 시간과 처소를 잊고 오직 원적 무별한 진경에 그쳐서 다시 없는 심락을 누리게 되리라.
3. 좌선의 공덕
좌선을 오래 하여 그 힘을 얻고 보면 아래와 같은 열 가지 이익이 있나니,
1. 경거 망동하는 일이 차차 없어지는 것이요,
2. 육근 동작에 순서를 얻는 것이요,
3. 병고가 감소되고 얼굴이 윤활하여지는 것이요,
4. 기억력이 좋아지는 것이요,
5. 인내력이 생겨나는 것이요,
6. 착심이 없어지는 것이요,
7. 사심이 정심으로 변하는 것이요,
8. 자성의 혜광이 나타나는 것이요,
9. 극락을 수용하는 것이요,
10. 생사에 자유를 얻는 것이니라.
4. 단전주(丹田住)의 필요
대범, 좌선이라 함은 마음을 일경(一境)에 주하여 모든 생각을 제거함이 예로부터의 통례이니, 그러므로 각각 그 주장과 방편을 따라 그 주하는 법이 실로 많으나, 마음을 머리나 외경에 주한즉 생각이 동하고 기운이 올라 안정이 잘 되지 아니하고, 마음을 단전에 주한즉 생각이 잘 동하지 아니하고 기운도 잘 내리게 되어 안정을 쉽게 얻나니라.
또한, 이 단전주는 좌선에만 긴요할 뿐 아니라 위생상으로도 극히 긴요한 법이라, 마음을 단전에 주하고 옥지(玉池)에서 나는 물을 많이 삼켜 내리면 수화가 잘 조화되어 몸에 병고가 감소되고 얼굴이 윤활해지며 원기가 충실해지고 심단(心丹)이 되어 능히 수명을 안보하나니, 이 법은 선정(禪定)상으로나 위생상으로나 실로 일거 양득하는 법이니라.
간화선(看話禪)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혹 이 단전주법을 무기(無記)의 사선(死禪)에 빠진다 하여 비난을 하기도 하나 간화선은 사람을 따라 임시의 방편은 될지언정 일반적으로 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니, 만일 화두(話頭)만 오래 계속하면 기운이 올라 병을 얻기가 쉽고 또한 화두에 근본적으로 의심이 걸리지 않는 사람은 선에 취미를 잘 얻지 못하나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좌선하는 시간과 의두 연마하는 시간을 각각 정하고, 선을 할 때에는 선을 하고 연구를 할 때에는 연구를 하여 정과 혜를 쌍전시키나니, 이와 같이 하면 공적(空寂)에 빠지지도 아니하고 분별에 떨어지지도 아니하여 능히 동정 없는 진여성(眞如性)을 체득할 수 있나니라.
1,좌선 공부
*식망현진(息妄現眞) ,수승화강(水昇火降)
대종경(大宗經)제3 수행품(修行品)15
한 제자 수승 화강(水昇火降)되는 이치를 묻자온데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물의 성질은 아래로 내리는 동시에 그 기운이 서늘하고 맑으며, 불의 성질은 위로 오르는 동시에 그 기운이 덥고 탁하나니, 사람이 만일 번거한 생각을 일어내어 기운이 오르면 머리가 덥고 정신이 탁하여 진액(津液)이 마르는 것은 불 기운이 오르고 물 기운이 내리는 연고이요, 만일 생각이 잠자고 기운이 평순(平順)하면 머리가 서늘하고 정신이 명랑하여 맑은 침이 입 속에 도나니 이는 물 기운이 오르고 불 기운이 내리는 연고이니라.]
대종경(大宗經)제3 수행품(修行品)17
양 도신(梁道信)이 여쭙기를 [대종사께옵서 평시에 말씀하시기를, 이 일을 할 때 저 일에 끌리지 아니하며, 저 일을 할 때 이 일에 끌리지 아니하고, 언제든지 하는 그 일에 마음이 편안하고 온전해야 된다 하시므로 저희들도 그와 같이 하기로 노력하옵던 바, 제가 이 즈음에 바느질을 하면서 약을 달이게 되었사온데 온 정신을 바느질 하는 데 두었삽다가 약을 태워버린 일이 있사오니, 바느질을 하면서 약을 살피기로 하오면 이 일을 하면서 저 일에 끌리는 바가 될 것이옵고, 바느질만 하고 약을 불고하오면 약을 또 버리게 될 것이오니,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는 것이 공부의 옳은 길이 되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때 약을 달이고 바느질을 하게 되었으면 그 두 가지 일이 그 때의 네 책임이니 성심 성의를 다하여 그 책임을 잘 지키는 것이 완전한 일심이요 참다운 공부니, 그 한 가지에만 정신이 뽑혀서 실수가 있었다면 그것은 두렷한 일심이 아니라 조각의 마음이며 부주의한 일이라, 그러므로 열 가지 일을 살피나 스무 가지 일을 살피나 자기의 책임 범위에서만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방심이 아니고 온전한 마음이며, 동할 때 공부의 요긴한 방법이니라. 다만, 내가 아니 생각하여도 될 일을 공연히 생각하고, 내가 안 들어도 좋을 일을 공연히 들으려 하고, 내가 안 보아도 좋을 일을 공연히 보려 하고, 내가 안 간섭하여도 좋을 일을 공연히 간섭하여, 이 일을 할 때에는 정신이 저 일로 가고 저 일을 할 때에는 정신이 이 일로 와서 부질없는 망상이 조금도 쉴 사이 없는 것이 비로소 공부인의 크게 꺼릴 바이라, 자기의 책임만 가지고 이 일을 살피고 저 일을 살피는 것은 비록 하루에 백천만 건(件)을 아울러 나간다 할지라도 일심 공부하는 데에는 하등의 방해가 없나니라.]
2.단전주의 필요
. 단전주(丹田住)의 필요
대범, 좌선이라 함은 마음을 일경(一境)에 주하여 모든 생각을 제거함이 예로부터의 통례이니, 그러므로 각각 그 주장과 방편을 따라 그 주하는 법이 실로 많으나, 마음을 머리나 외경에 주한즉 생각이 동하고 기운이 올라 안정이 잘 되지 아니하고, 마음을 단전에 주한즉 생각이 잘 동하지 아니하고 기운도 잘 내리게 되어 안정을 쉽게 얻나니라.
또한, 이 단전주는 좌선에만 긴요할 뿐 아니라 위생상으로도 극히 긴요한 법이라, 마음을 단전에 주하고 옥지(玉池)에서 나는 물을 많이 삼켜 내리면 수화가 잘 조화되어 몸에 병고가 감소되고 얼굴이 윤활해지며 원기가 충실해지고 심단(心丹)이 되어 능히 수명을 안보하나니, 이 법은 선정(禪定)상으로나 위생상으로나 실로 일거 양득하는 법이니라.
간화선(看話禪)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혹 이 단전주법을 무기(無記)의 사선(死禪)에 빠진다 하여 비난을 하기도 하나 간화선은 사람을 따라 임시의 방편은 될지언정 일반적으로 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니, 만일 화두(話頭)만 오래 계속하면 기운이 올라 병을 얻기가 쉽고 또한 화두에 근본적으로 의심이 걸리지 않는 사람은 선에 취미를 잘 얻지 못하나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좌선하는 시간과 의두 연마하는 시간을 각각 정하고, 선을 할 때에는 선을 하고 연구를 할 때에는 연구를 하여 정과 혜를 쌍전시키나니, 이와 같이 하면 공적(空寂)에 빠지지도 아니하고 분별에 떨어지지도 아니하여 능히 동정 없는 진여성(眞如性)을 체득할 수 있나니라.
대종경(大宗經)제3 수행품(修行品)13
대종사 좌선 시간에 선원에 나오시어 대중에게 물으시기를 [그대들이 이와 같이 오는 잠을 참고 좌선을 하고 있으니 장차 무엇을 하려 함인가.] 권 동화(權動華) 사뢰기를 [사람의 정신은 원래 온전하고 밝은 것이오나, 욕심의 경계를 따라 천지 만엽으로 흩어져서 온전한 정신을 잃어 버리는 동시에 지혜의 광명이 또한 매(昧)하게 되므로, 일어나는 번뇌를 가라 앉히고 흩어지는 정신을 통일시키어 수양의 힘과 지혜의 광명을 얻기 위함이옵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진실로 수양에 대한 공덕을 안다면 누가 권장하지 아니할지라도 정성이 스스로 계속될 것이나, 한 가지 주의할 일은 그 방법에 대하여 혹 자상히 알지 못하고 그릇 조급한 마음을 내거나 이상한 자취를 구하여 순일한 선법(禪法)을 바로 행하지 못한다면, 공부하는 가운데 혹 병에 걸리기도 하고 사도(邪道)에 흐르기도 하며, 도리어 번뇌가 더 일어나는 수도 있나니, 우리의 좌선법에 자주 대조하고 또는 선진자에게 매양 그 경로를 물어서 공부에 조금도 그릇됨이 없게 하라. 만일 바른 공부를 부지런히 잘 행한다면 쉽게 심신의 자유를 얻게 되나니, 모든 부처 모든 성인과 일체 위인이 다 이 선법으로써 그만한 심력을 얻었나니라.]
대종경(大宗經)제3 수행품(修行品)14
대종사 선원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근래에 선종 각파에서 선의 방법을 가지고 서로 시비를 말하고 있으나, 나는 그 가운데 단전주(丹田住)법을 취하여 수양하는 시간에는 온전히 수양만 하고 화두 연마는 적당한 기회에 가끔 한 번씩 하라 하노니, 의두 깨치는 방법이 침울한 생각으로 오래 생각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명랑한 정신으로 기틀을 따라 연마하는 것이 그 힘이 도리어 더 우월한 까닭이니라.]
정산종사법어(鼎山宗師法語)제2부 법어(法語) 제7 권도편(勸道編)38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여 화두를 들고 지내는가. 화두를 연마하는 데에는 의리선 여래선 조사선을 차서 있게 병행함이 옳으나, 과거의 선방 공부 같이 온 종일 화두만 계속할 것이 아니요 화두를 마음 가운데 걸어 놓고 지내다가 마음이 맑고 조용할 때에 잠간 잠간 연구해 볼지니라. 그러하면 마치 저 닭이 오래 오래 알을 품고 굴리면 그 속에서 병아리가 생기듯 마음의 혜문(慧門)이 열리리라.]
3.단전주의 정체
4.소태산의 좌선 방법 1
좌선의 방법은 극히 간단하고 편이하여 아무라도 행할 수 있나니,
1. 좌복을 펴고 반좌(盤坐)로 편안히 앉은 후에 머리와 허리를 곧게 하여 앉은 자세를 바르게 하라.
2. 전신의 힘을 단전에 툭 부리어 일념의 주착도 없이 다만 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것만 대중 잡되, 방심이 되면 그 기운이 풀어지나니 곧 다시 챙겨서 기운 주하기를 잊지 말라.
3. 호흡을 고르게 하되 들이쉬는 숨은 조금 길고 강하게 하며, 내쉬는 숨은 조금 짧고 약하게 하라.
4. 눈은 항상 뜨는 것이 수마(睡魔)를 제거하는 데 필요하나 정신 기운이 상쾌하여 눈을 감아도 수마의 침노를 받을 염려가 없는 때에는 혹 감고도 하여 보라.
5. 입은 항상 다물지며 공부를 오래하여 수승 화강(水昇火降)이 잘 되면 맑고 윤활한 침이 혀 줄기와 이 사이로부터 계속하여 나올지니, 그 침을 입에 가득히 모아 가끔 삼켜 내리라.
6. 정신은 항상 적적(寂寂)한 가운데 성성(惺惺)함을 가지고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을 가질지니, 만일 혼침에 기울어지거든 새로운 정신을 차리고 망상에 흐르거든 정념으로 돌이켜서 무위 자연의 본래 면목 자리에 그쳐 있으라.
이상과 같이, 오래오래 계속하면 필경 물아(物我)의 구분을 잊고 시간과 처소를 잊고 오직 원적 무별한 진경에 그쳐서 다시 없는 심락을 누리게 되리라.
대종경(大宗經)제3 수행품(修行品)12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선종(禪宗)의 많은 조사가 선(禪)에 대한 천만 방편과 천만 문로를 열어 놓았으나, 한 말로 통합하여 말하자면 망념을 쉬고 진성을 길러서 오직 공적 영지(空寂靈知)가 앞에 나타나게 하자는 것이 선이니, 그러므로 "적적(寂寂)한 가운데 성성(惺惺)함은 옳고 적적한 가운데 무기(無記)는 그르며, 또는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은 옳고 성성한 가운데 망상은 그르다." 하는 말씀이 선의 강령이 되나니라.]
5.소태산의 좌선 방법 2
7. 처음으로 좌선을 하는 사람은 흔히 다리가 아프고 망상이 침노하는 데에 괴로와하나니, 다리가 아프면 잠깐 바꾸어 놓는 것도 좋으며, 망념이 침노하면 다만 망념인 줄만 알아두면 망념이 스스로 없어지나니 절대로 그것을 성가시게 여기지 말며 낙망하지 말라.
8. 처음으로 좌선을 하면 얼굴과 몸이 개미 기어다니는 것과 같이 가려워지는 수가 혹 있나니, 이것은 혈맥이 관통되는 증거라 삼가 긁고 만지지 말라.
9. 좌선을 하는 가운데 절대로 이상한 기틀과 신기한 자취를 구하지 말며, 혹 그러한 경계가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 요망한 일로 생각하여 조금도 마음에 걸지 말고 심상히 간과하라.
6. 소태산 좌선 공부의 공덕 1
좌선을 오래 하여 그 힘을 얻고 보면 아래와 같은 열 가지 이익이 있나니,
1. 경거 망동하는 일이 차차 없어지는 것이요,
2. 육근 동작에 순서를 얻는 것이요,
3. 병고가 감소되고 얼굴이 윤활하여지는 것이요,
4. 기억력이 좋아지는 것이요,
5. 인내력이 생겨나는 것이요,
6. 착심이 없어지는 것이요,
7. 사심이 정심으로 변하는 것이요,
8. 자성의 혜광이 나타나는 것이요,
9. 극락을 수용하는 것이요,
10. 생사에 자유를 얻는 것이니라.
7.소태산 좌선 공부의 공덕 2
대종경(大宗經)제3 수행품(修行品)39
한 제자 수십 년간 독실한 신을 바치고 특히 좌선 공부에 전력하더니 차차 정신이 맑아져서 손님의 내왕할 것과 비 오고 그칠 것을 미리 아는지라,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는 수행하는 도중에 혹 반딧불 같이 나타나는 허령(虛靈)에 불과하나니 그대는 정신을 차려 그 마음을 제거하라. 만일 그것에 낙을 붙이면 큰 진리를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사도(邪道)에 떨어져서 아수라(阿修羅)의 유가 되기 쉽나니 어찌 정법 문하에 그런 것을 용납하리요.]
정전(正典)
제2 교의편(敎義編) 제4장 삼학(三學)제1절 정신수양(精神修養)
1. 정신 수양의 요지
정신이라 함은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를 이름이요, 수양이라 함은 안으로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이하며 밖으로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함을 이름이니라.
2. 정신 수양의 목적
유정물(有情物)은 배우지 아니하되 근본적으로 알아지는 것과 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데, 최령한 사람은 보고 듣고 배우고 하여 아는 것과 하고자 하는 것이 다른 동물의 몇 배 이상이 되므로 그 아는 것과 하고자 하는 것을 취하자면 예의 염치와 공정한 법칙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자기에게 있는 권리와 기능과 무력을 다하여 욕심만 채우려 하다가 결국은 가패 신망도 하며, 번민 망상과 분심 초려로 자포 자기의 염세증도 나며, 혹은 신경 쇠약자도 되며, 혹은 실진자도 되며, 혹은 극도에 들어가 자살하는 사람까지도 있게 되나니, 그런 고로 천지 만엽으로 벌여가는 이 욕심을 제거하고 온전한 정신을 얻어 자주력(自主力)을 양성하기 위하여 수양을 하자는 것이니라.
3. 정신 수양의 결과
우리가 정신 수양 공부를 오래오래 계속하면 정신이 철석 같이 견고하여, 천만 경계를 응용할 때에 마음에 자주(自主)의 힘이 생겨 결국 수양력(修養力)을 얻을 것이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