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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면서
송수권宋秀權 시인의 호는 평전平田이며, 1940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했다. 고흥중학교와 순천사범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했으며, 1975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수상작 「山門에 기대어」 등). 시집으로는 제1시집 『산문에 기대어』(문학사상사), 제2시집 『꿈꾸는 섬』(문학과지성사), 제3시집 『아도』(창작과비평사), 제12시집 장편서사시집 『달궁아리랑』(종려나무, 2010), 제13시집 『남도의 밤식탁』(작가, 2012), 제14시집 『빨치산』(고요아침, 2012), 제15시집 『퉁』(서정시학, 2013), 제16시집
『사구시의 노래』(고요아침, 2013) 제17시집 허공에 거적을 펴다(지혜, 2014) 등이 있고, 시선집으로는 『시골길 또는 술통』(종려나무, 2007)과, 그밖에 50여 권의 저서를 출간한 바가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영랑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했고, 한민족문화예술대상, 만해님시인상(2011), 김삿갓문학상(2012), 구상문학상(2013) 등을 수상했다. 전 순천대학교 교수이며, 현재 한국풍류문화연구소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송수권은 1975년 우리 시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데뷔작의 하나로 꼽히는 시 「산문에 기대어」가 『문학사상』에 당선되면서 등단한 이래 지금까지 거의 40년에 육박하는 기간 동안 조금도 쉼 없는 시적 열정을 드러내며 우리 서정시의 진경을 펼쳐 보인 시인이다. 그가 시를 써나간 기간 동안 우리 사회는 유례없는 산업화를 겪어 왔고, 우리 시단 역시 그에 대응하는 현실주의 시와 여러 실험 시들을 쏟아냈지만, 송수권 시인은 예부터 우리 선조들이 부리던 손때 묻은 전통시의 연장을 들고 우직하게 전통시의 우물을 파고들어가 마침내 가장 깊고 맑은 전통 서정시의 물을 길어 올렸다. 그의 시는 좁게는 소월, 영랑, 백석, 미당으로 이어지는 전통 서정시의 미학과 형식을 잇고 있지만, 넓게는 정지용과 이용악 시의 언어와 심상까지 품고 있어 우리 전통시의 그릇을 크게 확장해 놓은 시인으로 평가된다.
시인은 40년에 가까운 오랫동안 여러 시세계를 탐색해 나갔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시종일관 놓지 않고 응시했던 하나의 시선은 우리 겨레의 심성이다. 그의 시는 남도의 미학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는 이 지역에 머물지 않고 우리 강산의 이곳저곳을 샅샅이 유람하면서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보편적으로 심어져 있는 진정한 정신세계를 통찰해 내었다. 한과 이별의 미학에 머물렀던 우리 전통시의 미학을 넘어 그것을 묵묵히 껴안으며 형성된 넉넉한 품새의 넓은 도량과 형언할 수 없이 깊은 아름다움을 절절한 언어로 그려내어 우리 겨레의 진정한 혼을 일깨운 것은 송수권 시인이 얻은 득의의 시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는 또한 우리 토착어의 보고를 이루고 있다. 사전에서 잠자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들, 또 지역에서만 맴돌고 있는 정감 넘치고 감칠맛 나는 우리말들이 그의 시 안에서 더욱 빛나는 언어로 거듭나고 있다.
― 고형진, 고려대학교 교수·문학평론가
송수권 시인은 그동안 서정성과 현실성을 고루 갖춘 작품을 창작해온 남도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서정성에 치우치는 시는 대책 없는 순정이 되기 쉽고, 현실성에 치우친 시는 메마른 이념에 불과할 터, 송수권 시인은 둘 사이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서정적 현실, 혹은 현실적 서정의 시학을 구축해왔다. 달궁 아리랑도 그러한 조화의 시학이 도달한 큰 봉우리이다. 이 대작의 연재를 시작하면서 송수권 시인이 사석에서 했던 말씀이 떠오른다. “깜냥엔 한국문학 통일시대를 내다보면서 지리산 서사를 써 보았다네. 태백산맥도 비껴간 지리산을 정면으로 도전해 본 것이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이 작품과 관련된 대가급 시인의 건강한 문학관과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다. 하여 달궁 아리랑은 한국시가 잃어버렸던 가열찬 역사성, 혹은 오롯한 문학성의 귀환을 의미한다.
― 이형권, 충남대학교 교수·문학평론가
제주 4·3 사건이란 무엇인가? 제주 4·3 사건이란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사건을 말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을 하고 미군정 시대에 재등장한 친일세력들이 그들만의 남한 단독정부를 세우고자 했을 때, 남조선노동당은 그것을 격렬하게 반대를 했던 것이다. 친미, 또는 친일 잔존세력들과 공산주의자들의 그 격렬했던 사상과 이념 투쟁 사이에서, 그 어느 노선도 아니며, 아무것도 모르는 제주도민 3만여 명이 무자비하게 대량학살되었던 것이다.
송수권 시인의 『흑룡만리黑龍萬里』는 달궁 아리랑과 빨치산에 이은 세 번째 장편 대서사시집이며, 일제식민시대를 거쳐서, 남북분단과 좌우 이념투쟁에 희생된 제주도민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가라고 할 수가 있다. 하루바삐 우리 한국인들의 역사적 상처와 그 아픔을 치유하고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노老 시인의 정신이 『흑룡만리黑龍萬里』라는 기념비적인 대서사시로 나타난 것이다. 영국의 셰익스피어, 독일의 괴테, 이탈리아의 단테가 있듯이, 우리 한국문학사도 이제는 송수권 시인이라는 대서사시인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송수권 시인의 『흑룡만리黑龍萬里』를 연재하게 된 것을 우리 애지 편집위원들은 대단히 영광스럽고 기쁘게 생각한다.
(애지 편집위원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 이승희, 안서현 일동)
시인의 말
기록이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되고 햇빛에 바래어 지면 역사가 된다고 한다. 한반도의 남국에서 유일하게 창조된 한라 여신들이 빚어낸 신화의 땅에서 벌어진 4·3은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 제주에 와서 신화와 역사가 혼돈되어 현실의 캄캄한 동굴 속에서 분리되고 깨어나는 것을 보면 나는 두려워진다.
2014년 6월 6일 화북 포구에서
송 수권
서시
바람타는 섬
산 살림 갯 살림 먹을 것은 늘지 않고
오백 명이나 되는 아들딸은 배고파 징징거렸다
옷은 헤지고 다래 넝쿨로 엮은 정당빌립 쓰고
말테우리로 산밭 고갯길 그 삼대 숲에
말 울음소리 들릴 때
하루 해 저물고
설문대 어멍은 한 발은 관탈섬에 걸고
한 발은 범섬에 고근산을 깔자리로 걸고 주저 않아
먹감물빛 오늘도 빨래를 하고 갈옷을 깁는다
아우야 너는 이 설움 아느냐
우리가 누구의 아들이고 딸이라는 것을
그러니 외지에서 공부를 하고 온
네 형도 믿을 건 못 된단다
우리들 어멍이 빨랫돌을 두드리는 동안
바람 부는 날 저 영실에 올라보아라
그 아이들 헐벗고 서서 밥 달라 칭얼거리는
울음소리
네 귀가 있다면 듣고 두 눈이 있다면
똑똑히 보아라
이 아이들 몸에 어떤 잡신이 묻어오고
이 아이들 몸에 어떤 문신이 새겨지는가를
백록담에 흰 사슴이 뛰어놀고
노루목에서 암노루 수노루 캥캥거릴 때
올레길 담 구멍으로
제주 바다는 한밤 내 소리쳐 울었다
소리쳐 울지 않는 날은 바람 불지 않는 날
바람 불지 않으면 영등 할미도
딸을 앞세우고 온다.
바람 불면 며눌아기 앞세우고
사나운 물길 거슬러 온다.
그래서 사시장철 바다는 설레었고
사람들은 그 바람 속에서 아기 구덕을 메고
몽생이 떼 몰며
흙을 다졌다
흙속에 씨감자를 넣고
설문대 어멍 잠시 허리 펴고 숨 고를 때
그 숨비 소리 오름 오름을 새어 나와
저 바다의 물 이랑에도 숨이 차서
그 소리 가득했다
오늘도 마파람이 우리들의 지붕을 더 튼튼히 얽는다.
하루의 휴식까지도 노동에 바치며
파도가 부풀며 높아진 때도 젖 빨리는 아이들은
구덕 안에서 자기 몫의 햇빛을 깔고 누워
빨리빨리 잠이 든다.
바다 밑 용문잠 같은 전복을 더 많이 따라고
지금 죽어가는 노인들도 더 빨리 죽는다.
아우야 너는 이 뜻 알겠느냐
네 자랐던 산남山南땅 토산 마을
4·3 사건 때는 어린이와 여자들만의 마을로
국민반 반장도 우리는 그 윗마을에서
돌하르방 하나를 꾸어 왔더란다.
아우야 오늘도 마약 같은 안개가 다시 부풀고
흐린 바다는 수평선을 놓아주지 않는구나
아우야 너는 이 뜻 알겠느냐
저 유도화와 마주수馬珠樹 떼의 여름을 지나
이제 또 겨울이 오면
우리들의 무서운 잠과 하루를 최저로 살아
쌓아온 목숨들 그중의 몇 낱은
저 관목지대에까지 나가 묘지를 깔고 누워 잠들리라
결코 묘지 안에서조차 잠들 수 없는 눈썹
썩으세요 빨리 썩으세요 어머니
그 뻣세디 뻣센 말끝으로
갈옷에 뚝뚝 지는 핏물자국
아우야 너는 이 뜻 알겠느냐
아우야 오랜 슬픔으로 짝짝거리며 오는
저 뭍의 껌 씹는 계집애들 앞에서
만 원짜리 관광으로 우리는 쉽게 길들여지는
조랑말이 아니란다.
그 보다는 우리들의 들먹숨 저 노란
유채꽃밭들의 대군단大軍團이 막을 내리고
어느 날 수평선은 느닷없이 메밀밭 고랑을 달려나와
우리를 놀라게 했을 때
마라도 끝 이어도를 넘어가던
네 삼촌 뱃머리를 찾는 일이란다
사시장철 소금밭이 쓰러져서 우는 갈매기
그 갈매기를 따라가는 일이란다
아우야 사랑하는 아우야
그 어느 곳에도 길은 바다로 이어지고
우리는 바다 쪽에 귀를 묻는 일이란다.
죽을 때도 만조 때
바다에서 구덕을 메고 오는 어머니가 당도하기 전에
빨리빨리 죽어가는 일이란다
비탈길에 말똥이 피듯이
다공질多孔質의 돌담에
빗물이 빨리빨리 날아가 버리듯이
그 구멍 속에서 바람과 함께 솟아난 삼을나와
거센 파도를 헤쳐 온 벽랑국의 세 처녀와 짝을 이루는
한 피붙이로 해안 곳곳 마을 올레 길을 만들고
이모가 되고 고모가 되고 누이와 함께 모커리에 살며
빙떡에 혼을 말아
천왕 닭이 울고 지왕 닭이 운 이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아우야 사랑하는 나의 아우야
너는 이 뜻 알겠느냐
네 형이 버리고 떠난 산남 땅 토산* 마을
빈집 정낭엔
아직도 세 개의 걸대가 걸려 있구나
* 토산리(마을) : 4·3 당시 18~40살 청장년들이 한꺼번에 희생되어 ‘무남촌’으로 불리는 마을이다. 1948년 12월 18-19일 이틀 동안 군인들에 의해 표선 백사장으로 끌려가 학살된 토산리 주민은 125명(남자 101명, 여자 24명)에 이른다.
흑룡만리黑龍萬里*
우리항공에서 전세 낸 헬리콥터는 5천5백리
흑룡만리
한라산 중산간 마을들의 밭 다믈을 따라 돌고 있다
K 화백의 말에 따르면 불타버린 마을들의 돌담이 보이고
밭담을 두른 초원 지대의 조랑말 떼도 한가롭다
무장대를 따라 죽창을 들고 번을 선 새시방*도
산으로 주먹밥을 날랐던 가시어멍*도
지금은 모두 저 밭 다믈 안에 돌아와 한 가족으로 누웠다
더러는 살아남은 늙은 아낙들 그 돌담 안에서
가을 씨앗을 들이는지 수눌음*이 한창이다
추석 무렵의 소분*이 잘 된 어느 날 나도 머리 깎고 돌아와
저 무덤들 사이
一家를 이루고 싶다
헬리콥터는 산간 마을들을 돌아 해안으로 내려간다
공장 굴뚝 대신 해안 마을 부두 곳곳에 서 있는
붉은 등대들이 가을 바람에 깃발처럼 펄럭인다
멀리 우도와 가파도가 물파랑 속에 뒤집혔다 일어선다
천제연 폭포와 정방폭포를 보는 것이 탐라 천 년
제주의 속살을 보는 듯하고
구럼비 마을 불도저의 흙먼지가 들썩이는 풍경이
지나 온 길 어느 밭담 안에서 본
납골당 무덤을 짓는 모습 같아 나는 잠시 외면한다
흑룡만리
바람타는 섬
물나라의 가을이 깊어 간다
* 흑룡만리黑龍萬里 : 고 김영돈 교수는 중국의 만리장성을 황룡만리장성, 제주의 중산간, 상잣, 중잣, 하잣, 밭담과 골목골목 돌담들의 5천5백리를 환해장성環海長成 흑룡만리黑龍萬里로 표현했다(잣:성城, 돌담).
* 새시방 : 새 서방.
* 가시어멍 : 장모.
* 수눌음 : 품앗이(두레, 수놀음이라고도 한다).
* 소분 : 벌초.
수눌음*
잠녀들이 바닷속으로 들어간 까닭은
설문대가 바닷속에서 솟았듯이
수직의 깊이로만 그들은 바닥을 긁는다
한라산이 그녀의 치마 속에서 솟았고
4백여 오름오름이 그 헤진 치마폭 구멍 속에서
쏟아져 쌓인 흙이었듯이
수직으로만 오름을 오르고
수직으로만 한라산을 오른다
용천수가 땅 속에서 솟아나듯이
제주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모두 삶의 길이
그 바닥을 처음부터 보고 있었던 것이다
걸대를 정낭에 걸어 안을 비워 놓고
애기 구덕 하나는 밭가에 부려 놓고
허리에 멱서리를 차고서
바닥을 긁어 씨감자를 묻듯이
외롭고 높고 쓸쓸한 섬을
바다가 늘 수평선으로 빨랫줄을 치듯이
안보다는 밖을 더 튼튼히 얽어
올레길을 만들고 돌담을 쌓는다
유채꽃이 아름다운 빌레밭
오늘은 저녁 노을의 양파밭을 깔고 앉은
그 밭담 안의 수놀음 풍경이 물까마귀들 같이 정겹다
* 수눌음 : 품앗이(두레), 수놀음.
정낭
― 닫힘과 열림
헌저* 옵서.
여피* 갔수다.
늴* 다시 오라봅서.
* 헌저 : 어서.
* 여피 : 이웃.
* 늴 : 내일.
김굴산金窟山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다랑쉬
다랑쉬에 달이 오르면
물항아리에 달이 잠긴 듯
놋요강을 깔고 앉은 처녀의 궁둥이를 보듯
말랑말랑한 사랑을 나누고 싶은 밤이 있다
그런 시각에만 애월엔 또 애터진 달이 떠오른다
이런 관음증만으로는
시가 되지 못한다
내 친구 김굴산은
그런 밤
다랑쉬 깊은 굴 속에서 태어났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무장대가 무너지던 날 아침
산에서 내려온 가족들이 면 호적계에 들러서
면서기가 어물쩡 지어준 이름이다
1948년 11월에서 이듬해 봄까지
솥덕을 걸어놓고 차조와 메밀 미음도 동나고
할머니는 생미역 한 두름 걷어 오겠다며
해안 마을 4km, 야간 통행 저지선을 넘다가
서북청년단 토벌대들의 총구멍에 숨졌다
그 김굴산이 오늘은 한라병원 영안실에 누워
다랑쉬에 뜬 달을 바라보며
밤 깊어 찾아 오는 문상객들을
배웅하고 있다
성읍 민속촌에서 일박
전깃불이 없으므로
촛불을 켜야 하리
‘제주바다는 소리쳐 울 때가 아름답다’는
어느 시인의 시집을 펼쳐 읽는다.
밖에서는 봄비가 오는지
바래선이 아름다운 초가지붕 추녀 끝
지신물* 내리는 소리가
천금 같은 밤이다.
읽던 책을 도로 덮고
측간으로 내려가 뒷물하다 본다.
모슬포에서 먹고 온 자리물회
친구네 집 굅시*에서 먹은 홀아방떡
노오란 차조밥 한 그릇 같은 그것을
씨돼지 한 마리가 킁킁 잘도 받아먹는다.
이것을 귀엽다고 해야 하나 안쓰럽다고 해야 하나
한라산 빗질 바비큐 작전에도 댕댕이 넝쿨을 타고
살아 남은 토종 씨도야지
코가 연밤송이처럼 벌쭉인다
꼬리가 고사리 새순처럼 도르르 말린다
비 맞고 슈퍼까지 뛰어가서
바나나 한쿨 사다가 나누어 먹는다.
* 지신물 : 중산간 지방은 물이 귀하므로 처마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저장해서 쓴다.
* 굅시 : 제사.
산 노을
아직도 한라의 눈은 녹을 기척도 없는데
저무는 산간 놀이 떠서 꿈만 같다.
빌레밭 양파 움으로만 모이는 저녁 햇살들
꽈, 다, 꽝 말 끝마다 사투리를 한밭 널어놓고
지심을 매어나가는 돌 할망들 곁에
잠시 가던 길 멈추고 서서 적막한 슬픔에 젖는다.
밭머리에 놓인 두 개의 아기 구덕이
말매미처럼 쌍을 지어 운다.
무슨 구덕 혼사*라도 있었더냐?
할망들 속에서 두 새댁이 엉금엉금 빠져나와
돌담 밑에서 젖을 빨린다.
제주 여성사女姓史는
바로 이것이었구나
봅서 어디 감수광……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 한마디
싱그러운 양파 밭의 저녁 햇살과
호미 끝에 잘려 나가는 서러운 서러운 풀내음들과
해안 마을들에 벌써 켜지는 저녁 불빛들
나는 갈매기처럼 양 손을 저어 흙 위에서
나는 시늉을 했다.
* 구덕혼사 : 구덕 속에 있는 아이를 두고 양가에서 혼사를 맺음.
바람이 현무암에 새기고 간 말
역사는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기록되는 것이라고
그 기억되는 것이 어물쩡 종이에 물들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되는 것이라고
제주에 와서 4·3은 묻지마라
모두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고
그것은 침묵의 또 다른 굴레
바람이 현무암에 새기고 간 말
살암시면 살아진다라고 말한다
동족이 동족에게 저지른 만행
3만 명이 사라졌다는 붉은 섬
아홉 명 중 한 명이 수장되었다는 기억
결코 그 기억은 기억만으로 상처가 될 수 없다
제주에 와서 4·3을 묻지마라
4·3은 비밀스러운 암호로
모두가 동굴 속의 통로에만 숨어 있는
마음과 마음 속으로만 건너가는 통로
어둠 속에서만 살아서 빛나는 눈
빙떡
메밀가루 부침에 팥무채 또는 콩나물
소를 박고
둘둘 말아서 만든 떡
개떡도 아니고 참떡도 아닌
올레 담 구멍을 집집마다 타고 도는 빙떡
어쩌다 소고기를 만나면 숭당숭당 썰어 넣어서
칼국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숨겨 놓고 먹는 떡이 아니라
동네방네 입소문을 내고 먹는 잔치떡
곤떡보다는 친근하고
이웃 사돈을 불러서 배 불리 먹는 떡
4·3사건 때는 산으로 간 사람들
동굴 속에 숨어 솥뚜껑 뒤집어 놓고
비사리와 망개나무 연기 나지 않도록 꺾어다
한 국자씩 빙빙 돌려가며 참취, 고사리나물 소를 박아
조금씩 나누어 먹었던 떡
세경할미 자청비가 산중을 떠돌며
서천꽃밭 속에 숨어 입덧하며 먹었던 떡
세경본풀이에 메밀꽃 피면
눈물 나는 빙떡
* 3떡5편 : 3떡은 백사리(백설기), 둥근 흰떡, 빙떡이며, 5편은 참떡, 곤떡, 절편, 새미떡, 인절미를 말한다(명절 때 중류이상의 가정).
불타는 섬
계엄령이 내리고 길은 끊겼다
바닷새들은 줄을 이어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LST 군함 꿈에도 본 적 없는
저 함포 사격의 불빛
더는 탈출할 수 없는 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빌레못 동굴 밖에 서서 보는 빗개*
그 눈시울 밑으로 하염없는 별똥별만 쌓인다
고독한 영혼들은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절벽에 조각달이 서서 칼을 가는 밤
동굴 안에서 더는 갈 수 없어 불 피우고
쇠갈고리 몽둥이를 쌓아놓고 마을 사람들과
무장대들이 모여 죽창을 깎는 밤
통곡소리 울음소리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아, 이 두려움과 낯설음
삼다 6백리 8할이 빨갱이다
모두 불사르고 모두 죽이고 모두 굶겨 죽여라!
물 건너 온 저 잡귀신들의 외침
9연대와 11연대가 저지른 3광3진 작전
온 마을들이 불탄다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굴 밖에 나와 울부짖는 물할망들
16년 전 여름 잠녀들 1천 명이
관덕정 총독부 앞에서 시위할 때도
마을은 불타지 않았다
머리에 흰 수건 쓰고 물안경 쓰고
호미와 빗창 궐기할 때도
마을은 불타지 않았다
불탄다 불탄다 불탄다
외양간이 불타고 마방이 불타고
봄에 뿌릴 씨감자 오쟁이까지
불탄다
불탄다
물 건너온 저 잡귀신들을 그냥
어쩐다냐
아가야, 네가 입어야 할 봇뒤창옷*까지 다 불탄다
우리는 어쩐다냐
* 빗개 : 보초.
* 봇뒤창옷 : 배냇저고리.
마당개들
제주 바다는 소리쳐 올 때가 아름답다고 한다
그맘때가 오면 폭낭*을 잘 오르는 아이가 있었다
퐁*을 한 주먹씩 따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
어느 날 스리쿼터와 군용트럭이 들이닥쳐
마을 전체가 불쏘시개로 가라앉았다
어디론가 끌려가는 사람들
아이는 뒤곁의 폭낭으로 올라가 이 모습 지켜보았다
십 년 후에야 어른이 되었을 때
마당개*라고 불렀던 서애청단원의 고백에 따라
사람들의 흔적을 찾게 되었다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 모슬포의 공동묘지가
그곳이다
왜놈들 탄약고로 쓰던 콘크리트 땅굴 속에서
고리고리한 자리젓처럼 삭은 육탈된 해골들만
오글오글 쌓여 있었다
우리가 언제 온코시 반코시* 찾고 살았더냐?
그냥 대충 살가운 뼈만 추려서 뗏장을 얹었다
그때 자란 아이는 식개食皆* 들면 곤밥지어 고사리 비빔밥을 만들고
일가친척 생령들을 불러내어 삼십여 개의 숟가락만 놋양푼에 꽂는단다
이집저집 한밤중 소지 다발을 태우는 귀신불이
지금도 이 마을에선 떠돈다고 한다
* 폭낭 : 팽나무(마을공동체의 상징인 나무).
* 퐁 : 폭(팽)의 귀여운 말.
* 마당개 : 백정이란 뜻, 어른 백정은 ‘마당개’, 자식은 ‘소근개’라고 불렸다.
*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 : 여러 조상 아래 한 자손의 땅이란 뜻(공동묘지).
* 온코시 반코시 : 벼슬아치(급제)가 있는 집은 곤떡(횐쌀떡)을 빚을 때 조상의 체형體形을 그대로 빚고 없는 집안은 반코시로 빚는다.
* 식개食皆 : 제삿날 또는 그 음식.
* 4·3 때 해안선이 녹색지도로 이루어진 반면 4km 전방의 중산간 마을은 군사작전 지도에서 붉은색red island으로 표시되어 120여 마을이 불탔다.
죽음의 트라우마
죽음의 트라우마로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산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란 말
수용의 원리가 아니라 배제의 원리
우리는 그렇게 살아 남았다
항몽 삼별초 100여 년
우리는 조랑말 소리에도 기가 죽었다
일제 강점기 해안 곳곳 절벽 파놓은 동굴 속
흙바람 부는 날 모슬포비행장에 나와 보아라
움막같은 저 격납고 허허벌판
그 언저리 감자꽃 피어 눈부시구나
태평양 전쟁 막바지
20만 도민을 끌어내어 병참기지화로
우리는 총알받이 우리 소년병들은 토코타이
신풍돌격대로
오키나와를 점령하고 제주를 상륙하려는
미 함대에 나무 비행기에 프로펠라를 달고
폭탄을 싣고 함상에 내리는 그 육탄전의 음모
그 침략자의 말발굽 아래서도 살아남았다
반탁이 찬탁으로 돌아서고 건준위(건국준비위원회)가 들어서고
우리는 무엇이 무엇인 줄도 모르면서 민보단 활동을 하고
5·10 단선 투쟁을 벌였다
빨갱이가 무엇인 줄도 모르면서 계엄령이 선포되고
소개령이 내려져 마을들은 불타고
우리는 산으로 들어와 살아남았다
500년간 출륙이 금지된 섬
유배지의 섬
우리만의 독특한 말씨로 소통이 막힌다면
바다 건너 침탈해 온 너희들의 죄.
천만 관광 시대에도 우리는 연기 나는
굴뚝 하나 세우지 않았고
외래 자본으로 물들어 잘려나가는 땅
남해안 시대의 J프로젝트에도 우리는
손들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주 자치도민보다는
독자성이 강한 탐라 시민이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심방길
매인 심방*으로 이곳저곳 떠돌다 보면 괴이쩍은 일이 어디 한두가지 아니깝주 1만8천 신의 신궁神宮을 차린 섬 나라에서 몸주*를 한 분씩 찾아 떠돌다가 화북리의 광넙궤팽나무 그늘을 찾아들어깝주 그곳에서 몸주 한 분을 뵈어깝주 꼭 그것같이 털고삐를 두르고 서 있는 모습에 한참을 낄낄거렸구먼요, 수산벌 초등학교 성담 밖 일곱 살바기 인신공양으로 희생된 진안 애기할망당, 열 살 때 업저지*로 버려진 마라도의 할망당도 한 바꾸 뺑 둘러왔는데 하기사 뱀 신앙까지 토속신으로 받들어 있는 판에 아무리 여자들의 천국이라지만 슬쩍 홀아방 하나 끼워 넣은들 그것을 어찌 금도禁度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타박하리요
그날도 윤 노인은 배를 타고 은갈치 낚질을 나갔구먼요 왠일인지 갈치는 올라오지 않고 돌미륵 하나가 낚시바늘을 물고 올라왔구먼요 꼭 머시기가 거시기만 같아 낄낄 슬쩍 바다 밑으로 쳐넣어 버린거야
그런데 두 번째도 올라오는 것이 돌미륵인지라 참 괴변이로고! 자리를 몇 마장쯤 비껴 낚질을 하는데 또 그놈인 거라. 전생에 무슨 인연이 이리도 질긴가 마씀 배의 뒷고물에다 쳐박아 놓고 낚질인데 갈치가 쌍쌍구리로 줄줄 물고 올라와 한 배 가득 실었구먼요, 이놈을 어쩐다 싶어 생각 끝에 마침 부엌 아궁이의 이맛돌* 벗겨진 것이 생각나 집에 돌아와 그놈을 이맛돌로 박고 불을 지폈어요
그날부터였구먼요, 노인이 등창을 되게 앓은 것은,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육환장으로 방바닥을 찍으며 이놈아, 은혜를 원수로 갚은 놈도 있다더냐, 나는 본시 경상도에서 제주도의 관음사가 좋다하여 나를 따라 구경삼아 관탈도와 소관탈도를 지나오다 풍랑에 휩쓸려 바닷속을 헤메던 터로 너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갑주
노인은 깜짝 놀라 이맛돌을 빼어 유한 락스 세제로 박박 문질러 때깔 좋은 물색으로 여기 좌정하시는 게 좋겠구먼요 하고, 마을 앞 광넙궤팽나무 그늘 밑에 울타리를 치고 금줄을 둘러 당구덕에 제물을 드리고 치성을 드렸더니 둥창이 씻은 듯이 나았겝주
윤 노인은 그날부터 떼돈을 벌어서 먹물든 하우장 각시*로 동지同知 벼슬까지 얻고 죽어서도 미륵 할망과 함께 한 살림을 차렸구먼요, 초이렛날과 여드렛날 어스름 상현달이 뜨면 가는대구덕*을 멘 아낙들이 모여들어 정성껏 제물을 드리고 어이, 윤첨지 영감, 나도 먹물 든 아들 하나 점지하여 주깝, 하멍 어멍 지금도 비손질이 그치지 않는다는군요.
* 매인심방 : 신들의 이야기를 본풀이로 풀어내는 심방.
* 몸주 : 신당神堂의 주인.
* 업저지 : 아이보개(아이 보는 어린 계집, 담살이).
* 이맛돌 : 아궁지의 받침돌.
* 하우장 각시 : 글공부하는 선비.
* 가는대구덕 : 당구덕.
* 지금 화북포구의 해신사海神祠가 그곳이다.
당할미들
무슨 할망당이 지붕도 기둥도 천정도 없이
오글오글 모여 누대를 이렇게 살고 있나
느티나무나 팽나무 고목 둥치에
너슬너슬 붙어 이렇게도 수명이 기나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와흘리 본향당
나뭇가지 하나 건드려서도 안 된다는
이 금기
어떤 할망당은 나무와 바위가 한몸되어
살고 있다
무명실이나 물색 옷감 지전紙錢이
나뭇가지에 붙어 펄럭이며 아스스하다
열 살 난 아이로 바닷가를 떠돌다 죽었다는
마라도 업저지* 애기할망당
일곱 살에 희생물로 바쳐졌다는
수산水山벌 울타리 밖 애기할망당
제주 할망당은 모두가 닭소리 개소리가
들리지 않은 호젓하고 외진 곳을 좋아한다
해안 마을 바닷가나 마을 밖에 산다
앉아 기다리고 서서 기다리고 천년을 기다린다
이렛당 여드렛당 할멍은
한 달에 삼세 번 누워서도 기다린다
* 업저지 : 아이보개(아이 보는 담살이).
도둑맞은 인장
다시 지삿개의 주상절리대에 섰다
바닷물이 나가는 것을 보고 주상절리대가
통째로 드러난 인장印章들을 보고 싶어서였다
바닷물이 나가자 인장통의 인장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설문대 할망 당신의 인장통에 인장 하나가 왜 없어졌어요?
하고 물었다
파도 소리인 듯 바람소리인 듯 계시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렇구나, 어느 간 큰 시러비 아들놈이 도둑질 해다가
구럼비 마을로 가져 갔다는구나!
내 손을 벗어난 인장이니 크게 탓할 건 없지만
때가 좋지 않구나
평화의 섬 자연의 섬 신화를 삼킨 섬
바람타는 섬, 불타는 섬
파도가 와서 다시 인장통을 흔든다
구럼비 마을
한밤중 폭약 심지를 물고 구럼비 낭 절벽들이 소리친다
이지스함 20척 크루즈호 2척이 정박할 수 있는
해군기지를 건설 중이란다
‘안보 없는 평화는 없다’고 위정자들의 프래카드가
돌먼지 속에서 펄럭거린다
탐라왕국에 가뭄이 들자
하늘 나라 옥황상제님께 올라가 메밀 씨앗을
가지고 온 자청비*도
구럼비 절벽을 타고 왔을 거라는 전설 깊은
강정江汀 마을
강정천 소낭밭 맑은 냇물 가에 앉아
이 마을에서 봇뒤창옷(배냇저고리)을 입고 자랐다는
현 시인과 함께 은어회를 먹은 적이 있었다
4·3때 많은 양민이 학살당하고 불타버린
‘잃어버린 마을’ 영남리가 이웃에 있고
구럼비 마을은 바야흐로 지금 때늦게
물 속으로 가라앉는 중이었다
구럼비야 보고 싶구나, 정의구현 사제단의 깃발이
큰 길가 어디서나 펄럭거린다
이름도 고약한 ‘썩은 섬’이 있어 피서와 낚시를 즐겼던 곳
엉또폭포가 흘러내리는 해안 절벽 밑에선
벌써부터 기름 띠를 두른 석유 냄새가 진동한다
‘좋은 시절은 다 갔다’
한밤중 까마귀쪽나무들이 뿌리째 넘어지면서
울부짖는 소리가 설문대 할망* 신음 소리보다 크다.
* 구럼비 마을 : 구럼비는 까마귀쪽나무 숲을 말하며 강정마을을 그렇게 부른다.
* 자청비 : 세경본풀이에 나오는 제주 농경신화의 할머니, 세경 할미라고도 한다.
* 설문대 할망 : 제주(탐라)도를 창조한 여신. 한반도에는 강림신화(단군신화)만 있는데 창조신화는 오직 제주도밖에 없다.
신화를 삼킨 섬
천왕 닭이 세 홰를 치고
지왕 닭이 울어 날이 새자
바람 찬 날 어디서 온 것일까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거대한 모습으로
설문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빛 바다와 어울리는 섬들을
만들기로 작심이라도 한 듯
치마폭에다 가득 흙을 퍼날라다
산을 쌓았다
치마는 낡고 헤어져 여기저기 구멍이 났지만
설문대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 구멍들 사이로 흙부스러기가 떨어져
오름오름을 이루어나갔다
흙을 너무 많이 집어 놓았다 싶은 곳은
주먹으로 봉우리를 탁 쳐서
균형을 잡아나갔다
봉우리가 꺾인 곳은 백록담
솥뚜껑 같은 봉우리가 날아가 앉은 곳은
산방산
솔밭 두 개가 떨어져 나앉은 곳은
가파도와 마라도가 되었다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곳은 영실이었다
영실은 수려하고 아름다워 감탄을 자아냈다
깎아지른 절벽
병풍처럼 둘러싸인 암벽들 사이로
설문대는 아들들을 불러 모아
그날부터 5백 장군들을 놓아 멱여 길렀다
솥덕을 걸고 죽을 쑤었다.
그제서야 한라산을 베개로 허리가 쑤시면
잠자리 펴고 잠이 오지 않으면
저 멀리 관탈섬에 한 발을 걸고
고근산에 앉아 가장 따뜻한 곳
서귀포 바다에서 물장구를 쳤다
그녀는 산으로 바다로 바장이며
박지에 있는 커다란 박을 솥덕 삼아
밥을 짓고
우도와 가파도를 빨랫돌로
성산 일출봉 분화구를 빨래바구니로
등잔바위를 등불 삼아
밤늦도록 새끼들의 헤진 옷을 기웠다
빨래와 바느질
그녀의 손끝 발끝 하나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바람과 돌과 척박한 땅
먹거리가 항상 부족해
봄비가 부슬거리는 날은 한라산에 올라
고사리 한 줄 꺾어 죽을 쑤었고
바닷가 몰을 뜯어다 몸국을 끓여냈다
그녀는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태어나
을축년 을축월 을축일 을축시에
국자로 죽을 푸다가 헛발 딛어
그만 죽솥에 빠져죽고 말았다
막내 아들이 솥바닥에서 죽은 어멍
흰 뼈들의 흔적을 보고 통곡하며
차귀섬까지 달려나가
선바위로 굳어졌다
늦봄이 오면 그때서야
오백 장군 흘린 피눈물은 한라산을 온통
철쭉꽃밭으로 물들여 놓았다
그녀는 왜 오백이나 되는 아들들을
낳아 길러야 했을까
바람 부는 날은 영실봉에
올라 보아라
아직도 좁쌀 죽粥 냄새가 끈하다
탐라 개국을 엿보다
영평 8년* 을축 3월 열사흗날 자시에는 고을나, 축시에는 양을나 인시에는 부을나, 고,량,부 삼성친이 모흥굴(삼성혈)로 솟아나서 도읍한국이외다.
─ 제주 심방굿 사설중에서
활쏜디왓(三射石)에서 활을 쏘아 화살이 가는 방향의 땅을 가늠해 본다
고을나의 땅 일도동, 양을나의 땅 이도동 부을나의 땅 삼도동을 지나
그들이 결혼했다는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 황루알 혼인지婚姻池의
연못을 보았다.
‘흰죽’굴에서 벽랑국의 세 공주를 하나씩 맞이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하며 살았다
일설에는 벽랑국 세 처녀는 강진군 남쪽 벽랑도(현 소랑도)에서 왔을거라는 주장이 강하다. 옛 탐진耽津은 탐라국의 탐耽과 그 음이 같고 고대 항로로서 물물교환이 가장 왕성했던 곳이다.
벽랑도와 가까운 마량馬良은 말배가 닿았던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또한 세 사냥꾼이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농경문화가 이식된 것을 뜻한다.
설문대 할망의 창조신화와 세 신인의 개국신화는 신화시대와 역사시대의 분기점이 아닐까
파도에 쏠리고 바람에 날리고 돌로 다져진 한라의 신화는 여신들과 평화로운 탐라인들의 삶속에서 용출된 이야기들,
한반도의 강림 개벽신화는 제주에 와서 분출된 창조신화와 역사로 뒤바뀌는 것을 본다
자청비의 풀어흘린 치맛자락 같은 사라봉의 능선이 또 노을속에 여울지는 것을 본다.
어둠이 와서 별도원을 덮고 내일 아침은 저 성산 일출봉에서
불수레바퀴 같은 해가 바다위로 굴러 오리라.
* 영평 8년 : 영평은 중국 연호로 후한 시대, 서기 58~75년에 해당. 8년은 서기 65년이 된다. 한무제가 처음 사용한 이래 중화민국이 대만으로 쫓겨날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꽃놀이 패
줄줄이 유배 길을 나서는 선비들을 꽃놀이 간다고 했다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길을 돌아와서는 꽃놀이 한번
잘했다고 말한다
죽어서 돌아올지도 모르는 그 길을 가면서도
거드름을 피며 위풍당당했다
시쳇말로 화전花煎놀이
속말로 사당패 놀이라고도 했다
조천항 포구에 바닷물이 썰물로 바뀌었다.
배가 들어오지는 못할 것 같다
조선조엔 2백여 유배객들이 드나들던 나들목
연북정戀北亭에 올라 큰절 한번 올리고
운이 좋은 사람은 보수주인保授主人*도 잘 만났다
고. 을. 나의 땅에서 봇뒤창옷*은 입지 않았어도
말뚝을 박고 슬쩍 끼어들어
뻔뻔한 입도조入道祖가 되기도 한다
광해군의 어머니 인목대비 폐위를 반대한
상소를 올렸다가 역적으로 몰린
간옹艮翁 이익李瀷은 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의 딸을 맞아
경주 李씨 국당공파 파조派祖가 되었고
이성계 정권을 거부한 고려 유신
김만희金萬希는 김해 金씨 좌정승공파
입도조가 되기도 했다
추사 김정희는 4만 평의 땅을 가진
강도순姜道淳의 집에 부처했다
딸은 없어도 안거리 밧거리 쇠막 말방앗간까지 딸린 집
제자를 기르고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를 쳤다
이만큼이면 화북 포구로 들어오든 조천 포구로 들어오든
쓰라린 세월 꽃놀이 패 한번
잘 놀아 볼만하지 않은가
* 보수주인保授主人 : 유배인의 보증인이 되어 관리하며 시식을 제공했던 사람.
* 봇뒤창옷 : 배냇저고리
* 화북포구와 조천포구는 제주에 파견된 관리와 유배객들이 드나들던 2대 관문이었다.
사란결寫蘭訣*
― 대정골 추사관에서
비껴 서지 마라
빈 겨울 하늘만 남은 절벽이다
알 오름을 뒤덮는 까마귀 울음만이 남은 절벽이다
이곳에 와서 더 비껴 설 곳은 없다
절벽을 타고 오르는 불꽃 같은 정신을 보고 서 있으면
붓대신 입에 칼을 물고 싶어진다
얼음을 딛고 서서 언 겨울 하늘에다
청죽靑竹을 치는 사내
등뼈 같은 두 그루의 잣나무와 벼락맞아
한 가지가 비틀어진 두 그루의 소나무 앞에서
얼 빠진 사내처럼 나는 주먹을 휘두르고 싶어진다
더는 비껴 서지말자
변명도 하지말라
변명만으로는 시詩가 되지 않는다
하얀 백지에 흐르는 8년 3개월의 위리안치된 시간들
열 개의 벼루 밑구멍이 뚫리며
천 개의 붓이 닳아
이렇게 제주 수선화는 피었구나
이렇게 난초잎은 둥글게 휘어졌구나
이 밤은 선화지에 듣는 검은 먹물만이 진실이다
물러서지 마라
적적성성寂寂惺惺한 밤이다
너에게도 절복切腹의 시대는 오리라
99푼을 완성하고도 1푼이 모자라
폐기처분 하는 날이 곧 오리라
용서하지 말자
더는 갈 곳이 없다
서릿발 치는 겨울 하늘
울타리 밖은 파도 소리만 높다
* 사란결寫蘭訣 : 추사 김정희(金正喜,1788-1856)는 사란결寫蘭訣 즉 난초를 그리는 비결에서 99를 얻고도 1푼이 부족해 버리는 그림이 된다고 말한다. 1푼은 시인의 정신(정체성)을 말한 것인데 이는 죽란도나 묵란도보다 세한도(59세 때 그린 그림, 64세 해배)에서 유감 없이 밖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 적적성성한 기운은 올곧은 선비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아호를 33개 이상 지었고, 그의 제자(제주) 박계첨이 정리한 완당인보에 의하면 180개의 인장을 사용했다.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 추사체요 세한도였다. 세한도는 고도의 압축과 감정의 억제, 자기 성찰을 추구한 작품이다.
송수권 1940년 전남 고흥 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75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산문山門에 기대어』, 『꿈꾸는 섬』,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 노을』, 『허공에 거적을 펴다』 등 ―‘소월시문학상’, 서라벌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정지용문학상’, ‘구상문학상’ 등 수상.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