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르도시스(διόρθωσις) 개혁하다의 성경적 올바른 이해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9:10)
개혁으로 번역된 헬라어 디오르도시스(διόρθωσις)는 통하여, 때문에, …으로부터, …를 위해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디아(διά)와 똑바른, 수직으로 선, 곧장 위로, 정직한, 비뚤어지지 않은 단어의 뜻을 가진 오르도스(ὀρθός)의 파생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본래 물리적인 의미에서 똑 바르게 하는 것, 부러지거나 기형이 된 손발과 같이 어떤 식으로 빼어져 나오거나 일치되지 않는 기형적인 뼈를 본래의 정상적인 상태로 곧게 하거나 회복시키는 것, 그리고 또한 법률과 규칙, 개혁, 메시아적 회복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신약 히브리서 9:10절에서 유일하게 1회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또한 오르도스(ὀρθός)는 일어나다, 세우다 라는 뜻을 가진 오로(oro)를 어원으로 하고 있는 산, 평지위에 돌출한 작은 산이라는 뜻의 오로스(ὄρος)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그리고 또한 디오르도시스(διόρθωσις)는 디오르도어( diorqovw) 바르게 하다 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들어올리다, 높이다, 운반하다, 죄를 속하다, 없이 하다의 뜻을 가진 요15:2절에서의 헬라어 아이로(αἴρω)와 유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디오르도시스(διόρθωσις)가 말하는 개혁은 단순히 국어사전의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침이라는 개념과 차원이 다른 위로의 회복인 허물과 죄로 죽었던(엡2:1) 어둠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참 생명인 빛으로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개혁(διόρθωσις)의 결과가 사망을 통과하여 생명 안으로(에크 투 다나투 에이스 텐 조엔 : ἐκ τοῦ θανάτου εἰς τὴν ζωήν) 들어가는 것(요5:24)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전 언약의 성취를 위한 참된 개혁(διόρθωσις)을 위해서 육체의 예법인 성막, 율법을 미리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메시야인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으며(요5:46)그것은 곧 앞으로 새언약으로 오실 예수님을 상징적으로 예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으로 하나님 자신이 이 땅에 말씀 육신으로 오시었고 결국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요19:30).
그러나 하나님처럼 된 인간은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창조된 피조물로써의 객체의 자리, 처음자리를 깨닫기 보다는 선악판단의 주체자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여 지켜보겠다고 하므로써, 스스로 영적인 소경이며 앉은뱅이임을 폭로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진정한 개혁(διόρθωσις)이란 이러한 소경의 자리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네! 맞습니다! 내가 바로 소경입니다! 라고 고백하므로써 그리스도를 바라보는(호라오) 것이요,
맞습니다! 내가 바로 뼈가 위골되어 걷지 못한 자처럼 올바로 걷지 못하는 자입니다! 라고 고백하므로써, 그리스도를 향하여 똑바로 걷는 것(행14:10/ 히12:13)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인본주의(율법주의) 체계속에서 신본주의(새 언약) 체계속으로 들어오는 것, 즉 인본주의 사상에서 신본주의 사상으로의 전환, 바뀌어가는 작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개혁주의(Reformed Theology) 또한 원래 있던 곳에서, 변질되어버린 그곳에서 다시 원래의 폼(form)으로, 원래의 본 줄기로, 원점으로 되돌아가자는 구호아래, 즉 말씀을 그 중심에 두는 지향점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위골 된 뼈를 본래대로 다시 돌려놓은 작업을 하는 것처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개혁 또한 원점으로, 본래의 제자리에 있어야할 곳, 피조물의 본래의 자리로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의 삶을 지향하며 창조된 피조물로서의 본연의 자리인 객체의 자리에 서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 자리에 올라타고선 자기가 자기인생의 주체자로써의 역할을 스스로 행하는 그것이 곧 교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창조물인 죽은 흙의 자리, 티끌의 자리, 전적인 무능한 자라는 자기부인의 자리에 서는 것이 올바른 개혁의 의미입니다.
그러하기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뜻도 본질에서 한참 이탈되었기 때문에 원래의 참 교회의 상태를 회복시키는 것이 개혁입니다. 즉 처음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본질을 회복시키자는 것도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은 것을 말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 자격, 내 능력, 내 조건, 내 배경, 내 열심, 내 노력, 내 자랑, 내 공로 등등의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부인 당하는 것입니다. 내 뜻, 내 의지를 부인 당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 따라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관계, 하나님의 은혜만 오롯이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존재가치와 내 위상과 내 명예와 내 영광챙기기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진정한 개혁입니다.
거기에서 내려와서 죽은 흙의 자리, 티끌의 자리, 무능력한 자리, 없음의 자리(nothing)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그게 자기부정이고, 그게 자기부인의 자리입니다.
그걸 가리켜 개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혁은 이러한 근본 원리와 정신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어느 시대이건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시대 마다 하나님의 남은 자를 두고 계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단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남은 자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교회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청함을 받는 자와 택함을 받는 자가 함께 공존하며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늘날 현대교회 교인들은 교회만 오기만 하면 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하기에 개혁된 바른 교회관과 바른 신앙관을 재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모든 것을 표피적으로 보지 아니하고, 그 속에 담겨진 진리의 말씀을 보고 옳게 분별하며 깨달아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 된 자로서(딤후2:15), 그 생명의 말씀을 이제 내가 올바로 품고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리에 서는 자가 진정한 개혁된 성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그 진리에 따라, 그 생명의 말씀을 품고, 믿음로 격발되고, 발휘된 삶의 실질로 사는 그 사람이 성경이 요구하는 개혁자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