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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시조문학』 1976~1980년 등단작품
1980.
*겨울호(25호)
*눈오는 밤/ 김일연
떠돌던 눈물 방울 작은 풀씨같은 것들
하늘로 불러가다 구름도 묻혀 오더니
젖은 밤
목관을 불며
잠 속으로 내린다.
물 어는 머리밭엔 세월을 감는 바람
청동의 바퀴 굴러
어린 날을 불러내고
생각의 깊은 우물 속에
별 하나
눈 뜨고 있다.
꿈꾸던 머리칼들 우르르 일어서며
키 넘는 갈숲 헤쳐
꽃배암을 훔치고
희디 흰
어둠을 돌아
바다를 만나러 간다.
80 *산국화/ 이승돈
절교된 세상살이
잔월이 기우는 영역
쓴 연서 소곡이 모아
까치 둥지 않는 말문을
다독이는 이 지순(至純)
숨차 우는 풀벌레가
선잠 깨운 시린 배벽
담뱃대 길게 물고
아아라이 곧추 앉아
큰기침 벼루에 담아
필묵으로 여는가.
깊은 밤 논두렁 헤쳐 온
쪽빛 바람 한 자락
조으는 고향 산천
아프게 저려들고
저무는 이승을 밝혀
무덤으로 나든다.
80 *열대어/ 전탁
1
계절도 유배당한
어항 속 영어(囹圄)에는
따사론 그 햇살도
먼 먼 이역인 채
물레만 虛日을 돌려
물거픔을 냅니다.
2
가도 가도 가 없는 길
고작 돌아 울 안인데
너와 나 수인이기
물과 물이 다를 건가
고운 꿈 지느러미에
선하품이 섧구나.
3
우레로 떨어져도 孤寂이야 꽃인 것을
허울에 목숨 주어 너와 내가 다를 뿐
내 생각 너를 좇아 먼 水天에 머문다.
80 *청산 별곡/ 최덕원
1
청산이 상기 좋아
청청 하늘 별빛 총총
귀촉도 여울네라
청아한 그 정한에
그믐달 숙연한 상념으로
감겨오는 산자락
2
청산에 살리라
첩첩 만고강산
하마 암사슴
즈려 밟은 금잔디에
사항의 도타운 햇살
눈시울이 부시다.
80. *가을호(24호)
*風蘭韻/ 김옥중
실바람 한 줌이
즈문 산을 받치우면
열두폭 등솔기로
남해 섬 가뭇하고
이십리
젖은 그늘 속
차 오른다 상향(雙香)만.
가녀린 애모하나
가슴녘 달로 뜨면
한 세월 가로질러
푸른 정적 나앉고
밤마다
그 봇물 소리
이승 뜨락 적신다.
80 *어머니 외1편/ 최도규
펼쳐 든 생활 자락 옷깃 여며 다둑이고
주름살 번져 가도 치맛폭에 감춘사랑
이 아침 숭늉 그릇에 출렁이는 깊은 정.
수저를 들었어도 먹말고 물린 상
아들 딸 키운 뒤에 여인은 손자 손녀
그러나 뜨거운 눈길 당겨 보는 먼 훗날
자식 걱정 남편 걱정 살림 걱정 고달 퍼도
종일 가쁜 숨소리에 가난도 길이 들고
우러러 은은한 향기 오는 세월 밝힐 터.
장독대
박넝쿨 엉킨 틈에
한 줌 볕살 서성이면
돌방석 깔고 앉아
달콤히 삭혀가던
소박한 초가 뒤란에
맛의 고향 장독재
싸리울 넘나들며
해종일 어우르다
고추장 된장 내음
붉게 타는 고추짱아
어머니 마음까지도
함께 삭던 항아리
흙 묻은 세월 함께
이어진 숨결 소리
크게는 못 살아도
감볕 빌려 웃던 아낙
장독대 돌아선 옷자락
물신 배는 우리 맛.
80 *乙淑島 갈대밭/ 정대훈
칠백 리 지친 걸음
낙동강 몽오리 철새 촌
거센 바람 짠 물 먹고
길길이 서걱이는
갈대밭 눈이 모자라
햇빛조차 조는구나!
竹田에 드는 바람이
거문고 소리라면
갈밭에 이는 자람은
비파 소리 같다면서
노 시인 노을 길 밟으니
흰 머리도 서걱이고
겨울 새 여름 새
철새들의 갈림길에
갈소리 물결소리
바람 소리 노젓는 소리
연인들 쌍쌍을 지어
서ㅔ월도 설레인다.
독딱선 보채는 시름
수평선 넘어 가고
죽지에 海天을 싣고
떠나가는 갈매기들
생각이 갈밭에 닿으면
바람조차 잠이 드나?
고니 떼 끓는 長聲이
노을 속에 가라앉고
보리죽 팟챗국에도
배불렀던 인정이야
남루로 일생을 깁던
옛 조상의 먼 먼 노래.
80 *가로수 곁에서/ 홍진기
철따라 입던 옷
세상 박에 벗어 두고
찬 바람 매운 입김
알몸으로 씹으며
오늘은
무슨짓으로 나를 비웃나, 인간을.
게절의 성난 매질
태풍에도 이긴 의지
다소곳 한 자리에
한 생을 살아온 마음
변하는
무리들 앞에서 속살 열어 보이나.
가난한 저녘이면
때로는 통곡함은
날(刀) 세운 인정들이
흩언 논 낱말들을
속으로
타는 가슴에 담는 응혈지는 한이던가.
쌓일수록 걸신 들어
허갈 매는 속셈들이
눈보ㄹ다 더 시려서
때때로 몸서리 치며
새는 날
손 끝에 맺을 꿈도 시나부로 삭는다.
80 *박꽃/ 민홍우
석새 삼베 치마
올 굵은 어머니 시름
내 心田 긴 이랑에
뿌려 놓은 종소리가
내도록
지붕에 올라
박꽃으로 핍니다.
한 밤을 뒤척이다
돌아 눕는 베갯머리
손시린 일상 위에
목매이던 목숨인데
등 하나
하얀 등 하나
어스름에 탑니다.
80. *여름호(23호)
*매미소리/ 남진원
솔숲에 숨어 있던
젖은 산이 내려온다.
산줄기 퍼렇게
동심이 따라온다.
그 속에
하이얗게 뜬
내 어린 유년의 꽃.
태양에 듸워보는
생의 진한 목젗인가
음양이 인광처럼
엇갈리는 계절앞에
예쉰날 네 혼을 담아
내가 우는 소리여.
80 *비구니(比丘尼)/ 정석주
늘봄의 꽃가슴을
無念으로 다독이고
산그늘 내리는 뜨락
눈빛 맑은 숨결 돌아
아슴한
향롸(香華) 감돌면
손금에서 지는 불꽃.
눈빛을 삭혀내는
어둠곷이 만산(滿山)이면
귀소(歸巢)의 속연(俗緣)털어
파르랗게 다문 입술
총명의
불빛을 일궈
장명등(長明燈)에 혀는 목숨.
80 *무심천/ 정운화
1
물루늬 그므러져 간
놀 비낀 강심을 핥듯
내 어린 날 꿈을 쪼아
백로 깃 사린 둥지 위로
뉘 모를
무심한 날을
품고 앉은 여울목.....
2
빛 사린 어저리로
가슴 앓는 세월 그 쪽
한가람 외론 길손
굽어도는 목쉰 들녘
먼 빛길
가슴을 돌아
시려오는 물구비여.
3
깊은 산악 무량한 뜻도
바람 재워 잠든 사념
해와 달 밀물진 녘을
향 사르는 외줄기 넋
아린 빛
노을을 타고
홀로 뜯는 거문고여.
80 *동경/ 룡진호
빛 질러 전혀 없는 내 마음 내재율로
성좌를 찾던 능선 기쁨 타고 앉아
무지개 다리 건너다 웃고 서는 발걸음.
만년을 깁던 설계 지름길로 목마 타고
운회의 네 계절을 동화 속에 노닐다가
사랑이 유산할 때에 다시 줍는 상사화.
80. *봄 호(22호)
*학/ 라병순
황혼 길 고샅 가득 세월자락 퍼럭이며
菊香도 잦아지는 초가 삼칸 내려앉아
흰구름 서역 삼만리 돌아 못 올 나들이.
숲 사이 웃음으로 두리기둥 얹어두고
살아온 시공(時空)이사 한번 뜨면 그만인 걸.
날자야 내 혼과 더불어 꽃가지를 꺾어 들고.
환한 빛을 쏟아다 老松에 앉은 신라
날개가 주져앉아 염불에 숨진 고려
천성(天城)에 받은 수계(受戒)로 끝 모르며 산다오.
*훍/ 심성찬
흙을 물고 일어서는
잠자던 생명이여
꽃 피고 잎이 지는
밤과 낮의 가락으로
그날의 뜨거운 그리움
영원히 쉴 자리여.
오르는 말간 정
내리는 깊은 뿌리
한 잎새 가지마다
잠시 걸린 착각으로
태양을 닮아 가는가
한나절의 꽃 열매.
흙으로 빚은 모습
노을에 구워 본들
어둠에 묻혀가는
피와 살 그 호흡과
엄청난 무서운 알맹이
굳어가는 바위여.
80 *물무늬/ 이도현
한 오라기 부펴 올라
동백으로 피던 꿈을
長江에 흘러 보낸
지워진 한 폭 세월
슬어진 포말로 남아
빈 하늘만 감아 돈다.
劫(겁)으로 밀리는 파도
이어지는 숨결소리
물자락 그 여운이
심현(心絃)을 두드린다
회귀의 하이얀 음률
나의 문을 여는가.
80 *추석날 밤 외1편/ 김영수
달빛 담긴 추석 술잔
할아버지 드시고
별빛 묻은 솔편은
할머니 드시면서
정다운
얘기 도란도란
밤 깊은 줄 무르시네.
.발자국 만이
돌이와 순돌이가
땅 뺏기 하고 안 뒤
굽어진 휴전선은
간데온데 없어지고
다정한 발자국만이
꽃이 핀듯 남았네.
80 *환한 교실에 서면/ 이금용
유향(油香)번진 요람엔
곽 찬 달이 넘치데나
염주를 주워 담는
쫑긋귀를 모으면
꽃밭은 머리카락 속을
너울져 스미는가.
길을 찾아 날린 분가루
마음 오간 長江을 보네
칠판에 뿌린 하얀 사연
안경 속에 김 서리고.
사랑은 앙금져 괴어
나날을 여미는 옷깃
벽에 걸린 말씀으로
수반(水盤)에 꽃을 열고
혀 끝에 달린 말씀
무릎 끓고 한길로 트니
도가니 속 쇠붙이가
가슴마다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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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
*겨울호(21호)
*燈臺(등대)/ 최일환
뫼 끝에 매양 올라
조는 듯 조을린 듯
가슴 뿌닷 보듬은
넓다란 밤하늘과
바다와 살어리랏다
어허 둥둥 내 사랑.
먼지만 플석 이는
뭍어 일 접어 둔채
캄캄한 가슴이지만
포는한 숨결이다.
타고난 외로움이거든
타 올라라 새도록.
비바람거센 눈발
먹그름 천둥 달래는
자거라 자장 자장
들여오는 물결소리.
빨갛게 피는 놀밭을
도파 여는 마음벌.
79 *임진강 가에서/ 石佳亭(석가정)
남 북 산하에 날개를 접은
새들 종종 길 묻는 강.
폭 삭은 뼈 피리 음색
자잘 하게 섞이더니.
길고 긴
휘파람 불어도
메아리 삼키는 저 굴헝,
79 *집으로 가는 길/ 이영자
남북 산하에 날개를 접은
새들 종종 길 묻는 강.
폭 삭은 뼈 피리 音色
자잘하게 걲이더니
길고 긴
휘파람 불어도
메아리 삼키는 저 굴형.
제頭辯髮 흩날리던
몽고풍의 어둔 분별
햇볕 속 권木의 숲
산발 빗긴 노을일 때.
임진강
이승의 뜨락에서
神壇樹를 생각한다
나라꽃 벙근 가슴
섶 풀어 보이고저
돌로 굳은 눈썹을 뽑아
다리 놓고 다시 바라
꿈에도
들메끈 졸라 닫는
강 너머.가.산아......
79. *가을호(20호)
*탑/ 김옥선
적멸(寂滅)로 산을 다스려 願을 모아 다가서면
그 숨결 불을 당겨 타고 있은 등불이듯
고이고 물린 선따라 彼岸으로 열린 마음.
그날 깨진 자리 살보다 더 고운 결로 남아
피는 針(침)으로 살아 물결보댜 넉넉하고
나목들 불심이 되어 제자리를 굳혀 있다.
수박등 팔모등도 줄달리면 구른 햇불.
역사도 범치 못해 종 소리로 퍼진 울음
신라의 쪼개진 분신 눈부시게 살아 있다.
79. *여름호(19호)
*공범대(公犯帶)/ 김영수
수염 한 가닥으로 대들보를 세울일이
눈이란 눈을 붉혀 새벽 문을 부수고
흔한 孫 어느 살붙이는 河口에서 건져졌다.
劫(겁)과 빛의 한 뜸으로 이승에 내렸다가
보이지 않는 살의에 몰려 겨울 강에 묻어버린 몸
어디로 죄업을 옮겨 허물 풀까 애비여.
네 입었던 하늘마저 우리는 잡아먹고
한 줌의 재를 안고 눈물도 캐보는가
千萬 겹 먹장에 가려 구러가는 囚人들.
79. *묵화를 옆에두고/ 이재창
화선지에 스며오는 깊은 달을 가늠하면
한결같이 꽃이 피는 은하 속에 앉은 강물
살어름 허울 풀어간
비늘 벗긴 동양화.
구름장은 불면증에 헛기침만 주어먹고
서린 살결 아름 채운 계절 돌린 바람결
저 들녘 홀로 지닌 삶
먹물 젖어 흩는다,
종일 바랜 무상을 묻고 떠난 가지 끝
눈빛 속에 한꺼풀의 사군자를 다독이면
하늘 곁 파문을 건너 온
몇마리의 학이 난다.
79 *비무장지대/ 제갈태
길목을 두드리다
江心은 멎어있고
무심한 봉우리도
합장하는 눈빛인가
素服한
억새풀들은
학이 되어 숨을 쉰다.
천길 늪이 되어
멎어 있는 이 아픔
그름은 내 하늘을
넘나들고 있어도
누 멀은
장승이 되어
허위 잡는 손길들!
살아있는 포신은
누구의 함성인가
맴돌아 구천을 넘는
잎새들을 헤아리며
산야는
이리도 뜨겁게
丹楓9단풍)으로 타는데.....
79 *園丁의 노래/ 하영필
저 건너 한길에는 금빛 수레 부시던 날
나는 오직 너 보듬고 봄볕 마중 서둘렀다.
묵정밭 갈고 일구며 목도 터질 노래로
한줄기 가는 봄비 못자리로 물꼬트면
뿌린 씨 알알마다 눈이 트고 꿈이 익고
樂樂히 솟구쳐 올라 종달새로 살어리
한 세상 쫓는 부리 호木鳥로 사는 뜻은
四時로 이울잖는 하늘 동산 보렴이니
이 밖에 生압의 누리 또 어데서 맞으리.
79. *봄 호(18호)
*바람 앞에서/ 錢泰圭
새하얀 배곷마다
눈부신 하늘 열면
뒷동산 뻐구기도
꽃 속에서 돋아난다.
흐르는 저 물살 가르며
다가서는 솔바람.
말 없이 가는대로
저 강이 가는대로
떠나도 돌아오는
열두굽이 사랑길.
그 슬픔 딛고 일어 서
출렁이는 이 마음.
산다락 펄럭이고
능금곷 이우는 밤
오천년, 거센 바람
사뤄 피운 이야기
끓는 피 토해 내어
능선마다 꽃 피운다.
79 *月外里에서/ 권오신
하늘 땅 맞닿은 사이
숨구멍을 터 놓고
해발 일천미터 호구의 줄을 매면
부르튼 손 마디마디
핏금지는 세월이여!
삶이란 기나긴 강
굽이마다 소용돌지만
목숨의 크나 큰 불씨 신앙 처럼 밝혀 들고
오늘도 천 길 벼랑을
헤쳐보는 이 耕作
때대로 懷疑(회의)의 숲에.
불면의 달이 뜨면
승냥이 울음 위에 내 魂曲을 얹어 놓고
생각에 생각을 포개며
구름 밖을 오간다.
여기는 하늘 밑 일번지
태백준령이 부리 쳐들어
달빛도 영을 못 넘고 고개 밖에 머무는 곳
내 젊음 사루는 소리만
메아리로 흐른다.
79 *밀레의 만종/ 이준섭
1
노을 타는 이랑 사이
낭자한 기도 소리
鐘塔을 맴돌다가
고요를 흔들다가
아늑한 꿈여울로 가는
내 영혼의 발자국여.
2
억만 겁 침묵 속에
思용을 베푸시며
어둠의 너울 쓰고
종소리로 가는 田園
신앙을 잉태하는 搖籃(요람)
하늘도 눈을 감네.
79 *돌절구/ 권진희
처마 위 성긴 풀잎
애처러이 손 흔들는
뜰마다 바람만이
뒤지고 지나간 자리
돌절구 큰 입 벌린 채
장승되어 서 있다.
눈부신 정(釘) 소리에
미소 로 태어난 후
떡 방아 찧어내어
흥청한 뜰로 가꾸다가
물바다 하늘로 넘치며
담아보낸 세월아.
뜸해진 사람 자취
우물가에 기대 서서
꽃구름 번져오는
생각에 가슴 뛰면
맴돌아 귀 울려 오는
절구 소리, 소리여.
.......................................................................................................................
1978.
78. *겨울호(17호)
*불길/ 이지형
갈갈이 찢어진 꽃잎을 깁고 기워
하늘 높이 치솟아 타오르는 목숨
빛 바랜
오후를 피워 하루를 엮어간다.
삶의 끄나풀을
한 올 한 올 태우울 때마다
싸늘한 세월 위로 쌓이는 바람의 무게
실핏줄
틈서리 속에 마지막 남아 탄다
78 *바다/ 전원범
1
빈 조개껍질에
파도소리가 쌓인다
지워도 지워도
가슴에 내리는 비
눈 가득 파아란 물살
그리움이 젖는다.
2
만나야할 사람들을
서ㅔ월의 저쪽에 두고
색 짙은 뉘우침의
뜨락으로 내려 서면
아픔의 기억 끝에서
날아가는 갈메기 하나
3
여인의 두 손이
흰 건반에 닿으면
물소리는 밤마다
심발에 와서 고이고
생각이 미치는 곳마다
살아나던 바다여.
78 *不眠歌/ 이정환
진한 커피 한잔이면
촛불 켜는 늦저녁
만상엔 잠의 신이
눈의 빛을 걷고 있고
쓸쓸한 혼들 을 위해
밤 별빛을 돋는다.
전언이듯 그대 유성이
은하 멀리 떠나와서
일상의 늪에 빠진
잠으로 떨어져 박혀
깊은 굼 어느 언저리쯤
갈빗뼈 한나 울고 있다.
회상으로 디뎌 밟는
돌계단 먼 층층마다.
옥색 불꽃 솟던 밤
사춘의 꽃술이 타오른 후
은회빛 잿더미 한움큼
불면의 강에 퍼진다.
78 *귀뚜라미 우는 밤에/ 이채란
울 뒤 돌담 틈에
이슬에 젖어 떨며
뀌뚜리 너 왜 울어
霜菊 마저 물들이나
그 시름 돋운 하늘에
저 별빛도 다 익는다
무슨 해답 기다려서
밤새도록 푸는 넋에
다함 없는 정을 담은
둥근 달을 띄워 놓고
뀌뚜루 짝을 찾는가
지새우는 이 한 밤./
78. *여름. 가을호(15. 6호)
*薔薇園에서 (장미원)/ 신현필
慧超(혜초)스님
띄운 편지
그간 어디 가 있다가
밤 새워
피워 낸 꽃에
이슬로 젖어 누워서
이 저승
산모롱일 돌아
장미꽃 가시로 돋나.
마디 마디
아린 사연
눈에 선한 어머님 얼굴
봄바람
넋을 틔운
밝은 눈빛 타고
무지개
다리를 놓아
내 하늘을 붉힌다.
78 *망향기/ 허 일
먼 발치 강을 끼고
천년 하늘 잠긴 자락
타는 목숨 그 불티로
놀빛 속에 묻혀 가면
안경도 목이 메어라
애만 끓어 웁니다.
歷程(역정)의 그 정수리를 딛고
꽃혀 있는 푯말 위로
빈 들을 가로 지은 채
포효 (咆哮)하는 동곡의 넋
해 묵은 얼레를 풀면
고향 벌에 닿습니다.
고가의 삼경 뜰에
정형곡 단잠을 깬다
묵향인양 배는 情話
어머님 기척 같아
적적한 가슴을 흝고
핏망울 든 枯葉(고엽) 소리.
78 *가을 散調/ 김세환
이마 땐 나무들은
수런수런 옷을 벗는다.
荒凉(황양) 거리에선
홀로 바람을 재우고
후일에 높게 매달아질
그네들의 뒷 얘기
숨가쁜 하늘 저 켠
나비되어 앓던 꿈길
아낙의 접은 情火
오을처럼 물이 드네
새월이 버리고 간 傷 ?
이 가을을 적신다.
모든 것 다 잃는대로
불씨 같은 情理로 해
가녀린 목숨으로
도 하루를 비켜 서면
? ?도 영겁(永劫)이런가
스려지는 차운 바람.
78 *강변에서/ 김명재
감빛 놀 젖어 타는
갈대 하얀 그리움에
물새 그 자욱마다
回憶(회억)을 받가면
내 유년
흥건히 베어
갯내음에 밀려 온다.
깃으로 불꽃으로
어디까지 차오르다
나래 소리 아득한
하늘 한 폭 다사르고
저무는
배경 밖으로
귀를 열고 설레나.
돌아오지 않는 계절 끝에
바람 소리 거칠수록
비 둥지 부등켜 안고
깊숙이 뺨을 부비며
그 푸른
시앙을 다져
말목으로 서 있다.
78 *저무는 서울 거리/ 조병희
마첨루(摩天樓) 비둘기 창
직사전(直射箭) 쏟는 차량
두 어깨 스쳐가며
대숲의 각선(脚線) 누벼
몹시도 그리워선가
사방으로 치닫는다.
칠백만 가쁜 숨결
자욱히 처진 매연
내일을 굳혀 보려는
악수의 정은 깊어
쏟치는 눈물을 참고
이겨 내는 군상들!
78 *개펄 얘기/ 박노경
들면 바다 나면 뭍의 두 갈래 너른 벌판
한많은 사람들이 한숨으로 삶을 엮는
여기는 피로 물드는 투쟁의 적색 지대.
밀려 왔단 밀려가고, 또 밀려 가고 옴이
긴 세월 오랜 시공을 황페지 그 속에서
푸념만 밀물 따르다 오늘 해도 저문다.
78. *봄호(14호)
*세월/ 최재열
비바람에
흘러 쌓인
버림받은 일월들
달빛 부신
여울인양
달빌물고
종아린다.
砲花
뜷린 구멍으론
피구름도
짖는다.
높푸르던
그 하늘은
먹구름에
흐려 있고
치욕으로 아린 자욱
燐(린)이 피어
광(光)도난다.
진 세월
뜨는 일월이
하나같은 逆理(역리)런가
어둠을 불사르다
분사한 부나미들
여한에 부푼 가슴
봉분으로 솟았는가
외가닥 휘굽은 황토길
가마귀만 짖는다.
78 *復活字考/ 박성현
바람 속 간직된 불씨
시원에 촉매 되어
反耕(반경)의 이랑을 갈고
핏줄 세워 등을 켠 매듭
한줄기 光芒(광망) 을 누비는
슬기론 과녁의 相자이여
고운 숨결 무늬지는
한오리 마음살 쥐고
눈썹 끝 흔들리는 갈피
기지개로 哀歎(애탄) 달래면
원 그려 향피운 절정
산 허리에 노을로 탄다
물굽이 솟구치는 여울에
순백의 아침을 부리듯이
갈구의 명암 거두어
망상의 일역을 넘기면
잠 깨운 문맥을 짚고
엉어의 성은 쌓인다
황토길얼비친 무게
점점이 수를 놓고
꽃잎 하나 흔들림에도
만적의 풍경을 따라
제 바탕 빗장이 열리어
환한 뜨락을 깁는다.
78 *山情/ 원수연
노루야!
너도 새로
눈을 씻어 두었다가
태고한 숨은 정을
산객으로 가려 내어
여 저기
어디메
비웠던 가슴
고이 사려 담으렴.
지심(地心)에 몸을 실어
오롯이 섰는 청솔.
회오(회오)로 우는 까막
허물 어루 매만지다
해돋이 어둠을 털고
그 마음에 젖는가.
1977.
77. *겨울호(13호)
*大玉巖/ 조주환
한.천년
다스려 안고
세월 끝에 떠는 꽃등.
사모침 연잎에 적셔
노을 밖을 이우는데
하 그리
피끓는 사랑
바윗돌로 굳었네,
서라벌 한 점 먹물을
물보라로 씻으면서
영혼의 燭心(촉심)속을
다독여 온 인동뿌리.
더 心田
바닥에 잠겨
해돋이를 여 닫는가.
원 푸른
비늘깃 틀다
못 다한 玉전로 풀면
한 가락 붉은 숨결로
저며드는 물굽인데
내 산하
맥을 빗기며
타오르는 성화여.
77 *가을호(12호)
*청색유정/ 김종안
그 님이 숨을 쉬며 꿈틀거린 저 언덕에
굽이굽이 펼치는 사랑의 메아리가
휘파람 동화 먹음고 짓푸르게 누비리
세소의 저린 땀 맑게 씨어 바래고자
넘치는 意志속에 音階의 다리를 놓고
오늘도 永劫(영겁)을 타고 어데쯤서 꿈을 짤까
발걸음 대지마다 香薰(향훈)을 헤쳐 딛고
햇빛 속 싱거러 내 가락 익히울 때
끝없이 삶의 기쁨 畵幅(화폭)으로 繡(수) 놓이네.
77 *江流에서/ 김한석 (金翰奭)
오늘도 너의 얼굴
하늘빛 그대로를
가을숲 널러내어
단풍도 비춰 띄고
둑 안을 다만 흘러서
천년 푸른 삶이냐.
어지 너 하나던가
흙탕물에 피뿌림이
背理(배리)로 크게 무너진
반역의 그날들을
핏줄로 돌려야 할 땅
저기 그져 어렸다.
77 *대성산(臺城山)/ 길미자
동해위 돌무덤은
흰 띠 두른 행주산성
청솔 밑 시린 애환
눈 밭 녹는 실핏줄
내달아 압록강 기슭
궤고 싶은 실마리.
산 마당 비탈 갈아
재어 보는 하늘 한폭
눈 아래 한치 그늘
차마 쓸어 안은 가슴
대성산 마파람 실어
넘나드는 숨결아.
곧추 선 선잠 너머
눈망울로 이울다가
빈 가슴 북을 울려
서릿발로 꽃는 깃발
천지는 손금을 뚫어
봄 강물로 풀리라.
77. *여름호(11호)
*國立墓地에서/ 김환식
명주실 머리. 흰 옷자락
방패 삼아 지킨 국토
못 다한 목숨들이
休火山으로 누웠는가
그날 그
피 맺힌 絶叫(절규)
청솔빛으로 되삽니다.
나들이 간 영웅들
돌아와 서릿발 증언
펼쳐 논 역사의 장은
어찌 새겨 가는지
진혼곡(鎭魂曲)
타는 노을에
여겨보는 얼굴들.
일상이 시들한 날엔
산과 마주 앉으면
바위도 앓는 소리
돌 이끼로 번지는데
日月을
구슬로 꿰며
말문이 좁아집니다.
77 *달팽이/ 차이섭
앓아 누운 별빛 한 줌
수수문 한 산막 찾아
조랑말 귀를 열고
입을 혀든 시린 입김
새벽 녘 골 길이 솔아
물에 뽕당 뒹군다.
劫(위험할 겁)을 뜷는 정 소리가
바늘 귀로 반짝인 틈
산새들 깃을 털고
눈 든 이슬 잎셀 따네
모국어 뜨거움을 이고
가도 가도 황토 ㅅ 길
가시 긑의여린시절
아직 못 연(開) 서리 탑 눈
가슴 복판 불어오는
? ? 만큼 부푼 날을
골 깊은 자위(靜)로 앉아
구도(構圖)하나 영(靈)이 선다.
돌이듯 굳은 회한(悔恨)
이끼 피어 때운 세월
달빛 뜷는 피리 소리
밤을 뀌여 달아난다
이 복숨 닳도록 여는 하늘
그름 사뭇 비켜라.
77. *봄 호(10호)
*꽃불/ 정시운
섣달그믐 언 별빛이 창밖에 몰려와서
서로 몸 부딧는 소리. 더러는 깨어지고
더러는 꽃불 위에 앉아 남은 어둠을 사르고 있다.
지금 여기는 잃어버린 땅 어느 페허의 궁전
뜨락에 피어나는 모란,입김보댜 따슨 손길
눈 감고 만리 벼랑을 짚어 어진 뜻을 심으시다.
어느새 삼십 무성한 나무는 그늘을 드리우고
하늘을 우러러도 더욱 먼 당신의 얼굴
아직도 가슴에 타는 불은 어지러운 꽃밭일 뿐.
77 *선/ 이건선
바다는 한 금 대하로
입 맞춰 눕는 비늘에
금줄 위로 돋는 아침
樂譜로 내래 펴온
한타래
사랑을 여꺼
포말(泡沫)끝에 띄워 본다.
산울림 뛰쳐나와
바람 한 칼 금져 가도
눈그늘 품으로 돌라
곷잎 솔기 여민 씨방
입술은
가여린 눈짓
펼쳐드는 수평선.
77 *어떤 환상/ 박희성
1976.
76. *겨울호(9호)
*달빛/ 조규영
산 그림자 환하게
빛으로 도려내고.
메림꽃 하얗게 핀
골짜기 밭을 지나
보오얀 그물을 던져
초가 마을 나궜다.
대문도 잠갔는데
방문도 걸었는데.
달빛은 문구멍으로
방안에 들어가서.
잠자는 아이 가슴에
은화 한닢 얹어놨다.
76 *步月장날/ 이정룡
찌린 자락 땀 내음새
가녀린 목줄기 달고.
가가스로 한숨 흩다
하늘 밖 뱉는소리
아리이
嶺의 그리메
흰 구름 고향을 돈다,
가파른 고갤 넘는
할딱이는 지친 군상
시린 성에 서린 차창
하루살이......
하루살이......
하修羅
숨이 막힌다.
머릴 푸는 삶이여.
눈길 너머 호젓한 마루
긴긴 새벽에의 장정
탁수염 늘어뜨린
매달려 선 보름달.
모닥불
으스름 장터를
하늘하늘 타오른다.
76 *單章數題/ 경 철
1.갈래
희다 못
바랜 비질
하늘 쓸다 지쳤는가!
유리로 맑은 蒼穹(창궁)
철새 깃도 멎었는데
嶺마루 그름 한 점.
갈대꽃에
머문다.
2.戀曲
마알간
가을 빛이
무늬져 아롱지네
해바퀴(年輪) 새겨 도는
가쁜 숨 소릴레라
그리움 가슴 안은 채
나그네로
살온 길.
3.冬茶
밤 이숙
끓인 차향
모락모락 피는 김에.
찻잔에 넘쳐 이는
아내 정 고인 사랑
고달픈 하루살이가
이슬 녹듯
감치네.
4.殘影(잔영)
허허론
가슴 위로
기어가는 허기진 空漠(공막)
가꿔온 마음이야
시름 쌓여 여위는데
반 이운 남은 불길이
할활 타단
사윈다.
5.疼恨(동한)
겸친 한
쌓인 시름
소나기로 씻어보랴!
쩌린 누더기도
훨훨훨 벗은 채로
삶의 뜻 되오 찾으려
한나절을
맞는다.
76 *向日花/ 정순량
-잃었던 아들이 돌아 오다(누가복음 15장 32)-
흐린 여러 날 동안 당신을 못 뵈온 채
주룩 주룩 비가 내리고온 몸이 젖었는데도.
마음은 떠돌이 구름 돌아올 줄 모릅니다.
나는 당신을 잊어도 당신께선 나를 못잊어
하늘 밖 땅끝까지도 지켜보고 계시면서
언젠가 돌아올 날의 그 기약에 목맵니다.
천둥 치고 벼락 때려도 놀랄 줄 모르던 내가
문득 어느날 밤 밝혀으는 말씀으로
오늘은 당신을 따라 지친 발길 옮깁니다.
밞 따라 긂 보내고 새 하늘 맑은 후에
당신은 그 옛처럼 미소지어 반기오니
향일화 한 판 꽃으로 해를 쫓아 돌립니다.
76 *華燭臺(화촉대)/ 유준호
연연 붉은 꽃잎으로
파란 새 파닥이네
지느러미 젖는 이슬
대낮같이 환한 가슴
마을도 둥둥 떠 돌아
접는 것도 어지러워.
꽃술에 앉은 나비
가늠타 취한 자락
먼 날의 꿈을 새겨
발로 엮어 드리우면
세월도
망을이 터져
송이송이 피러나리.
76. *가을.여름호(7.8 합병본)
*移民史/ 김종
1.緖詞(서사)
2'
A.始原歌(시원가)
B.歸去來 歸去來(귀거래)
C.翠雨圖(취우도)
D.異俗(이곡)
E.勝戰舞(승전무)
F.목화 피는 市街(시가)
3.別曲(별곡)
76 *허수아비/ 김효경
1
할말 다
제켰으면
아예 죽은 시체이게
갓 태어난
아기 몸에
꿈 맑힌 넋을 기워
그 누덕
땀 밴 옷자락
온 누리에 펼치다.
2
어머니
사랑 읊는
다사오운 저 햇살로
백자 큰
항아리에
소망을 길어 붓고
맘 굳혀
예 서 있는 뜻
반겨 맞는 바람이여.
3
황금빛 계절을
온몸 가득 불 지피고
헤어진 옷자락 끝에
놀란 가슴 팔락이며
돌아서 돌아서 오는
즐거운 삶의 친구.
76. *봄 호(6호)
*해바라기 敍情/ 장 청
도란또란 울려 나는 그 말씀 곱게 익어
씨로 꼭꼭 다져 넣은 이승의 울 안에서
한 타래 타는 목마름 발돋움 해 섰거니.
헝큰 머리 찌던 시름 바람에 흩날리며
가려잡은 그 외줄기 진한 맘 한 때깔에
저승의 침침한 恨도 도로 비쳐 밝으라.
76 *山蘭/ 윤선효
*
불 사른 넋을 짚고
영롱한 목숨을 빚듯
한 시절 山谷을 비껴
천길 벼랑 휘어들면
메아리 손 저어 부르는
쪽및 기슭 흝는가.
**
어느녘 물고 간 불씨로
첩박힌 심지를 돋아
다소곳 스즙은 맵씨
한 하늘을 섬겨 앉아
티끝 속 비릿한 하늬를
외오곰 사린 너울.
***
역풍도 꿰어 차는
三界 고운 품을 열고
累代로 가꾼 정성
해돋이를 받아 인 채
옷자락 추스려 안고
바라보는 영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