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인문학 이야기] 에피쿠로스(Epicurus)의 '쾌락(Epicureanism)'
"인기·명예 원할수록 초조하고 불안해져… 식욕·수면욕 등 기본 욕구에 만족해야"
에피쿠로스(Epicurus)의 '쾌락(Epicureanism)'
에피쿠로스(영어: Epicurus, 그리스어: Έπίκουρος, 기원전 341년 ~ 기원전 271년)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에피쿠로스 학파(Epicurianism)라 불리는 학파의 창시자다. 에피쿠로스는 300여 권 저술 활동을 했는데, 그 가운데 몇 권만 전해진다. 알려진 에피쿠로스 학파 철학 대부분은 후대 추종자나 해설자에서 유래한다.
에피쿠로스에게서 철학 목적은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얻는데 있었다. 그가 말하는 행복하고 평온한 삶은 평정(ataraxia), 평화, 공포로부터의 자유, 무통(無痛, aponia)의 특징이 있다. 그는 쾌락과 고통은 무엇이 좋고 악한지에 대한 척도가 되고, 죽음은 몸과 영혼의 종말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신은 인간을 벌주거나 보상하지 않고, 우주는 무한하고 영원하며, 세상의 모든 현상들은 궁극적으로는 빈 공간을 움직이는 원자들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으로부터 나온다고 가르쳤다.
https://youtu.be/Kg_47J6sy3A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 입력 2024.05.07. 03:00 조선일보
에피쿠로스 얼굴 조각상.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영국의 왕 조지 4세는 대식가로 유명했습니다. 아침 식사로만 비둘기 두 마리, 스테이크 세 덩어리를 먹었다고 해요. 조지 4세는 매우 뚱뚱해서 잠을 잘 때 자기 가슴 무게에 짓눌려 숨쉬기조차 힘들었다고 합니다. 원하는 대로 먹고 마시는 쾌락을 추구하며 산 거예요. 그런데 이런 삶이 과연 행복할까요?
돈이 많고, 높은 자리에 있으면 행복할까요? 부자여도 찌푸린 표정으로 지내는 사람이 많아요. 지위가 높아도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되물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에 대해 답을 주는 ‘전문가’의 얘기를 들어보면서 말이지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행복이 무엇인지 평생 고민하고 생각한 ‘행복 전문가’입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쾌락주의자’라는 소개가 따라붙곤 해요. 그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 교외에 정원을 만들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바람직한 쾌락’을 좇으며 살았습니다.
에피쿠로스(Epicurus)는 쾌락(Epicureanism)을 세 가지로 나눠요.
먼저 ‘필수적인 쾌락’이 있는데요. 식욕, 수면욕 같은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쾌락입니다.
둘째는 ‘꼭 필요하지는 않은 쾌락’입니다. 소박한 밥상보다 진수성찬에 더 끌리는 것에는 이런 즐거움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지요.
마지막으로 ‘공허한 쾌락’이 있어요. 이는 자기 이름을 드높이고 싶은 야망처럼 좋은 평판과 명성에 대한 바람을 뜻해요.
에피쿠로스는 ‘꼭 필요하지 않은 쾌락’과 ‘공허한 쾌락’을 멀리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더 맛있는 음식을 찾고, 더 좋은 집에서 자며, 더 멋진 옷을 입고 싶은 마음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죠. 무엇이건 더 나은 것을 즐기는 이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꼭 필요하지 않은 쾌락’을 추구하다 보면 언제나 마음이 헛헛해져요. ‘공허한 쾌락’은 어떨까요? 많은 인기와 높은 명예를 차지할수록 되레 초조와 불안이 찾아와요. 내가 가진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함께 생기기 때문이지요.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진짜 행복해지려면 ‘필수적인 쾌락’에만 머물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해요. “부자를 만들고 싶다면, 더 많은 돈을 주지 말고 욕망을 줄여 줘라.” “검소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값싸고 소박한 음식만 먹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탐식(貪食)에서 벗어나려면 가장 소박한 음식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행복을 찾는 방법에는 보통 두 가지가 있어요. 더 많이 차지하고 더 많이 누리도록 욕망을 키우는 길과,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도록 욕심을 줄여가는 길이지요. 첫째 길을 따르는 사람들은 많아요. 반면, 욕망을 다스리려는 이들은 적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인생은 훈련”이라고 강조해요. 마음을 추스르며 ‘진짜 행복’을 만드는 쾌락을 좇으라는 뜻이지요. 여러분들은 어느 쪽 길을 가고 싶으신가요? 에피쿠로스의 ‘쾌락’을 읽으며 생각을 다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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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Epicurus)
최근 수정 시각: 2024-05-19 12:06:35
에피쿠로스 - 나무위키 (namu.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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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curus (/ˌɛpɪˈkjʊərəs/, EH-pih-KURE-əs; Greek: Ἐπίκουρος Epikouros; 341–270 BC) was an ancient Greek philosopher and sage who founded Epicureanism, a highly influential school of philosophy. He was born on the Greek island of Samos to Athenian parents. Influenced by Democritus, Aristippus, Pyrrho, and possibly the Cynics, he turned against the Platonism of his day and established his own school, known as "the Garden", in Athens. Epicurus and his followers were known for eating simple meals and discussing a wide range of philosophical subjects. He openly allowed women and slaves to join the school as a matter of policy. Of the over 300 works said to have been written by Epicurus about various subjects, the vast majority have been destroyed. Only three letters written by him—the letters to Menoeceus, Pythocles, and Herodotus—and two collections of quotes—the Principal Doctrines and the Vatican Sayings—have survived intact, along with a few fragments of his other writings. As a result of his work's destruction, most knowledge about his philosophy is due to later authors, particularly the biographer Diogenes Laërtius, the Epicurean Roman poet Lucretius and the Epicurean philosopher Philodemus, as well as the hostile but largely accurate accounts by the Pyrrhonist philosopher Sextus Empiricus, and the Academic Skeptic and statesman Cicero.
Epicurus asserted that philosophy's purpose is to attain as well as to help others attain happy (eudaimonic), tranquil lives characterized by ataraxia (peace and freedom from fear) and aponia (the absence of pain). He advocated that people were best able to pursue philosophy by living a self-sufficient life surrounded by friends. He taught that the root of all human neuroses is denial of death and the tendency for human beings to assume that death will be horrific and painful, which he claimed causes unnecessary anxiety, selfish self-protective behaviors, and hypocrisy. According to Epicurus, death is the end of both the body and the soul and therefore should not be feared. Epicurus taught that although the gods exist, they have no involvement in human affairs. He taught that people should act ethically not because the gods punish or reward them for their actions but because, due to the power of guilt, amoral behavior would inevitably lead to remorse weighing on their consciences and as a result, they would be prevented from attaining ataraxia.
Epicurus derived much of his physics and cosmology from the earlier philosopher Democritus (c. 460–c. 370 BC). Like Democritus, Epicurus taught that the universe is infinite and eternal and that all matter is made up of extremely tiny, invisible particles known as atoms. All occurrences in the natural world are ultimately the result of atoms moving and interacting in empty space. Epicurus deviated from Democritus by proposing the idea of atomic "swerve", which holds that atoms may deviate from their expected course, thus permitting humans to possess free will in an otherwise deterministic universe.
Though popular, Epicurean teachings were controversial from the beginning. Epicureanism reached the height of its popularity during the late years of the Roman Republic. It died out in late antiquity, subject to hostility from early Christianity. Throughout the Middle Ages, Epicurus was popularly, though inaccurately, remembered as a patron of drunkards, whoremongers, and gluttons. His teachings gradually became more widely known in the fifteenth century with the rediscovery of important texts, but his ideas did not become acceptable until the seventeenth century, when the French Catholic priest Pierre Gassendi revived a modified version of them, which was promoted by other writers, including Walter Charleton and Robert Boyle. His influence grew considerably during and after the Enlightenment, profoundly impacting the ideas of major thinkers, including John Locke, Thomas Jefferson, Jeremy Bentham, and Karl Marx.
1. 개요
헬레니즘 시대, 에피쿠로스 학파의 창시자. 쾌락주의 철학을 펼쳤다.
2. 생애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 당시 아테네의 식민지였던 사모스 섬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14세에 학교 선생들이 헤시오도스의 책에 나오는 혼돈 개념을 그에게 설명해 주지 못하자 선생을 얕잡아 보게 되어 철학을 접했다. 18세에 아테네로 넘어가 2년간 군복무를 했고, 학교 교사로 잠시 활동하다가 데모크리토스의 책을 만나고 본격적으로 철학을 하기 시작했다.[2]
32세에는 레스보스 섬의 뮈틸레네와 람사코스에서 학파를 세우고 5년을 지냈다. 그 후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서 철학 공동체인 '정원'을 세우고 35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정원'의 구성원에는 여자와 노예는 물론 심지어 창녀도 속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에피쿠로스를 비웃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를 비웃던 사람들도 에피쿠로스와 제자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제자와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72세까지 살다가 요로 결석과 이질로 14일간 앓다가 죽었다. 그때 그는 따뜻한 물로 데워진 청동 욕조에 들어가 물을 섞지 않은 포도주를 가져오게 해 한 번에 들이켰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기억하라고 지시하고서 숨을 거두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동상을 세워 그의 명예를 기렸다. 그의 친구들은 하나의 도시 국가를 넘어설 정도로 그 수가 많았으며, 그의 모든 제자들은 그의 학문적인 매력에 단단히 붙들렸다. 평소에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인간애가 있어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친구들이 도처에서 그에게로 와서 그의 정원에서 그와 함께 살았던 덕분인지, 다른 학파들은 계보가 거의 끊어졌지만 그의 학파는 계보가 언제나 계속 이어지면서 무수히 많은 제자들을 차례로 배출하였다.
3. 사상
https://youtu.be/Kg_47J6sy3A
당대에 에피쿠로스가 남긴 저서는 300편이 넘으나[3]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지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 나오는 핵심 교설과 3편의 편지뿐이다.[4] 그 밖에는 파편들이거나 그가 살았던 때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기에 에피쿠로스를 비판한 학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특히, 로마 시대의 철학자 키케로의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에피쿠로스학파를 비판하면서 언급한 부분이 제일 많이 언급된다. 파편 중에는 18세기 베수비오산 근처의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굴된 『자연에 관하여』의 파피루스 일부 단편들이 전해진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데모크리토스를 계승하여 이를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인식론에서의 감각과 자연학에서의 원자론적 관점이 유사하며, 윤리학적 면에 있어서도 데모크리토스의 '쾌활함'과 에피쿠로스의 '쾌락'이 정적으로 절제된 쾌락(쾌활함)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1) 쾌락주의(Epicureanism)
우리는 쾌락을 선천적으로 좋은 것이라 인식하고, 쾌락을 기준으로 모든 선택과 기피를 행한다. 하지만, 모든 쾌락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어떤 쾌락은 종종 지나쳐서 불쾌감을 더 많이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괴로움은 참고 견딜 때 후에 더 큰 쾌락으로 돌아올 때도 있다. 에피쿠로스는 이러한 쾌락과 괴로움을 상호 비교 측정하여 무엇이 이익이고 무엇이 불이익인지를 판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술을 먹거나 성관계를 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 방탕한 생활은 지나치면 불쾌감을 유발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불이익이다. 그리고 이렇게 방탕한 쾌락을 제거하다 보면 인간에게 이익이 되는 진정한 쾌락은, '몸의 건강과 영혼의 평정'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에피쿠로스는 '몸에 괴로움이 없고 영혼에 동요도 없는 상태'를 추구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가는데 있어서 고통이 제거될 만큼의 꼭 필요한 쾌락만 충족되면 되는 것이다.[5]
그 필요한 쾌락의 충족은, 몸에 필요한 쾌락과 영혼에 필요한 쾌락의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다. 몸에 대해서는 생존에 필요한 만큼의 욕망을 충족하여 몸에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될 것을 추구하는데, 이를 아포니아(ἀπονία)라고 부른다. 영혼에 대해서는 망상과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이 인간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주기 때문에 우주와 죽음, 욕망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영혼이 동요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을 추구하는데, 이를 아타락시아(ἀταραξία)라고 한다.[6] 그리고 이를 통해 '고통이 부재'하게 되면 인간은 행복한 삶을 즐기고 있는 것이라고 에피쿠로스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은 최소한의 필요한 쾌락이 충족되는 것을 말한다. 단, 지속적으로 최소한의 필요한 쾌락이 충족되고 그 삶에 익숙해져서 그것에 만족할 수 있다면, 간혹 찾아오는 '사치스런 쾌락'을 즐기는 것을 에피쿠로스는 막지 않는다.[7] 따라서 쾌락에 절제를 요구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금욕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없어도 행복하고 있으면 더 좋고!
(2) 죽음에 대하여
에피쿠로스는 육신의 쾌락보다 사유의 쾌락을 더 높게 평가한다. 육신의 쾌락은 결핍에 따른 괴로움이 제거되면 증가하지 않고 단지 다양화될 따름이지만, 사유의 쾌락은 '사유에 가장 큰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에 대한 이성적인 헤아림에 의해 그 끝까지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유에 가장 큰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따라서 사유를 통해 육신의 목적과 한계를 깊이 헤아려서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죽음이 우리 삶에 아무것도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에피쿠로스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 있을 때는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우리의 삶을 굳이 괴로움에 빠뜨릴 필요는 없다.[9]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은 이제 자신의 한정된 삶을 나름대로 괴로움 없이 행복하게 살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에피쿠로스는, 우리의 한정된 삶의 행복[10]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정이라고 말한다.[11] 외부 상황들에서 주어지는 불안거리를 잘 다스리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자신과 친숙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은 그렇게 했고,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들은 그것이 설사 득이 된다고 하더라도 피했다. 이렇게 우정을 쌓음으로써 불안에서 안전을 보장받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이들은 모두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이웃들이 서로 가장 즐거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12]
(3) 에피쿠로스의 신학
고대 서양 무신론의 대표 주자인 양 알려져 있으나, 엄밀히 말해서 에피쿠로스는 신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은 불멸하며 살아 있는 지복[13]의 존재이기에 행복하기 위해서 믿어야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신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말하듯 나쁜 사람에게 벌을 주고 착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그런 신은 아니다. 그 신은 우주의 운행에 관여하지 않는다.[14] 그리고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영혼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어 죽은 이후에 영혼은 단지 흩어질 뿐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다.[15] 게다가 예언을 믿지 않았고, 설사 예언이 맞아떨어진다고 할지라도 예언에 따라 일어난 일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다.[16]
즉 에피쿠로스는 무신론자라기보다는 이신론자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에피쿠로스의 이러한 신 개념은, 세상을 주무르는 초월적인 인격신의 개념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에서는 에피쿠로스를 '유신론자를 가장한 무신론자'라고 보았고, 그 때문에 중세에 이르러선 그의 책들은 대부분 다 불에 태워졌다.
(3-1) 에피쿠로스의 역설
Epicurean paradox, riddle of Epicurus, Epicurus' trilemma
악의 문제 중 대표적인 예로 항상 언급되는 역설이다. 3세기 초 그리스도교 신학자 락탄티우스의 기록에서 처음 등장하며, 그에 따르면 에피쿠로스가 말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 주장이 실제로 에피쿠로스가 한 말인지에 대해서는 의심하고 있다. 왜냐하면 에피쿠로스가 이해했던 신은 기독교 유일신이 아니라 그리스의 신들을 말하는 것이었고, 그리스의 신들은 '선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당시 3세기경에 에피쿠로스는 무신론자로 알려졌었고 위의 역설 역시 무신론자의 대표적인 논리로 알려져 있었다.
데이비드 흄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인격적인 신은 없다[19]고 보는 것이 더 개연성이 있다'는 논지의 주장을 하기 위해 위의 역설을 인용한다.
4. 평가
5. 한국어 번역
현재까지 전해지는 에피쿠로스의 글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책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 나오는 것이 전부다. 이 책은 학문적이나 철학적으로 엄밀한 책은 아니나,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를 언급한 부분에 한정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그 중요성이 인정되고 있다.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살았던 당 시대에도 성행했던 학파였기 때문에 그가 비교적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는 점과, 그 학파들에 관련해서 남아있는 온전한 자료가 이 책이 거의 유일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핵심 텍스트로 취급된다. 이 책의 10편에서 에피쿠로스 얘기가 나오며, 그중 에피쿠로스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3편의 편지는 그의 실제 생각과 문체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한국에서는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서 에피쿠로스에 해당하는 부분만 따로 때내서 1998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쾌락》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서가 출간되었다. 근데 절판되어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다. 따라서 차라리 책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번역본을 보는 것이 낫다. 다행히 그리스어와 라틴어 번역으로 유명한 정암학당에서 2021년에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제목으로 원전번역을 해놨다.# 이와 똑같은 책이 2008년에 이미 동서문화사의 《그리스철학자열전》으로 먼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 번역본은 작가가 말은 안했지만 일본어 중역으로 의심된다. 따라서 그냥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빌려서 마지막 챕터 에피쿠로스 파트만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20]
2022년에는 현대지성 클래식에서 《에피쿠로스 쾌락》이 출간되었다. 원전 번역을 표방하고 있지만 의역이 많고 번역의 질은 나쁜 편이다.
6. 여담
[1] 로마 시대의 수집상들은 고대 그리스 조각상의 복제품을 가지길 원했는데, 그걸 로만 카피(Roman copy)라고 한다. 위 작품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있는 에피쿠로스 흉상으로서, 기원후 2세기경에 만들어진 로만 카피다.#
[2]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데모크리토스와 많이 비슷하다. 원자론은 물론이거니와, 윤리학에서도 데모크리토스는 '쾌활함'을 강조했는데, 에피쿠로스도 쾌락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많이 있다. 그래서인지 동시대 작가 티몬도 에피쿠로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또 여기 자연학자들 가운데 가장 나중이며 가장 염치없는 자, 사모스에서 온 학교 선생의 아들, 살아 있는 것들 중에 가장 못 배운 자가 있다."
[3] 물론 종이도 존재하지 않아서 출판을 상상도 못하던 당시의 책이니만큼 양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4] 그리스도교(동서 대분열 이전의 교회) 신도들에 의해 무신론으로 여겨졌던 에피쿠로스학파의 사상이 심한 공격을 받아 저서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5] 흔히들 그가 '쾌락주의'의 대표자였다는 것 때문에 방탕하고 문란한 사상가였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고 스토아학파에서도 이를 빌미로 에피쿠로스를 공격했지만 이는 전혀 잘못된 이해이다. 키레네 학파가 추구했던 방탕한 삶 등은 오히려 에피쿠로스가 비판했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6] '평정심'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에피쿠로스의 아타락시아는 '무감정'을 뜻하는 스토아 학파의 아파테이아와 상당히 비슷하다.
[7] "일단 결핍에 따른 괴로움이 제거될 경우에는 간소한 식사가 사치스러운 식사와 똑같은 쾌락을 가져다준다. (중략) 그러므로 단순하고 사치스럽지 않은 식사에 익숙해지는 것은 건강을 충분히 제공해 줄 수 있고,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필수 요건에 주저 없이 대응할 수 있게 해주며, 우리가 오랜만에 사치스러운 성찬에 접했을 때 우리를 더 나은 상태에서 그것을 즐기게 하고, 운명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로 만들어 준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391)
[8]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388
[9] 물론 그렇다고 죽음을 두려할 필요가 없으니 '빨리 죽는 게 낫다'는 식의 비관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에피쿠로스는 "삶을 회피하지도 않고 삶의 중단을 두려워하지도 않아야 한다"면서, "가장 나쁜 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태어난 이상 최대한 빨리 하데스의 문을 통과하도록 할 것.(자살을 의미한다.)"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살아 있을 때 죽음의 공포 없이 삶을 누리라는 것이며, 죽음을 두려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빨리 죽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10] 에피쿠로스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우정은,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괴로움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11] "전 생애에 걸친 지복을 위해 지혜가 요구하는 것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애의 획득이다. 어떤 두려움도 영구적이지 않으며 장시간 계속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동일한 인식이, 한정된 삶의 조건들 속에서의 안전은 우애의 의해 가장 확실하게 형성된다는 것도 알게 해준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400)
[12] "외부 상황들에서 주어지는 불안거리를 가장 잘 다스렸던 이 사람은 자신과 친숙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은 그렇게 했고, 친숙하게 할 수 없는 것들은 적어도 낯설게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도 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서는 어울리는 것을 피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득이 되는 것들은 모두 자신의 삶에서 몰아냈다. 이웃들로부터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힘을 가장 확실하게 가진 자들은 모두 그렇게 함으로써 가장 확고한 안전의 보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가장 즐거운 삶을 산다."(《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402)
[13]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 최상의 행복.
[14] "더욱이, 천체들의 운행과 회귀, 식(蝕)과 뜨고 짐, 그리고 이런 것들에 이어지는 일련의 현상들이, 불멸과 동시에 만복을 누리는 어떤 존재가 그것들을 보살피고, 현재나 미래에 지시함으로써, 일어난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 p.364
[15] "나아가, 집합체 전체가 와해되면 영혼은 흩어지며 더 이상 이전과 동일한 능력들을 갖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않게 되어 결국에는 감각을 소유하지도 못하게 된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 p.358
[16] "예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예언이 존재하더라도, 예언에 따라 일어난 일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쾌락》 1998. 문학과지성사. p.37)
[17] 라틴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Vides ergo, magis propter mala opus nobis esse sapientia: quae nisi fuissent proposita, rationale animal non essemus. Quod si haec ratio vera est, quam stoici nullo modo videre potuerunt, dissolvitur etiam argumentum illud Epicuri. Deus, inquit, aut vult tollere mala et non potest; aut potest et non vult; aut neque vult, neque potest; aut et vult et potest. Si vult et non potest, imbecillis est; quod in Deum non cadit. Si potest et non vult, invidus; quod aeque alienum a Deo. Si neque vult, neque potest, et invidus et imbecillis est; ideoque neque Deus. Si vult et potest, quod solum Deo convenit, unde ergo sunt mala? aut cur illa non tollit? Scio plerosque philosophorum, qui providentiam defendunt, hoc argumento perturbari solere et invitos pene adigi, ut Deum nihil curare fateantur, quod maxime quaerit Epicurus. Sed nos ratione perspecta, formidolosum hoc argumentum facile dissolvimus. Deus enim potest quidquid velit, et imbecillitas, vel invidia in Deo nulla est; potest igitur mala tollere: sed non vult; nec ideo tamen invidus est. Idcirco enim non tollit, quia sapientiam (sicut edocui) simul tribuit, et plus est boni ac iucunditatis in sapientia, quam in malis molestiae. Sapientia enim facit, ut etiam Deum cognoscamus et per eam cognitionem immortalitatem assequamur; quod est summum bonum. Itaque nisi prius malum agnoverimus, nec bonum poterimus agnoscere. Sed hoc non vidit Epicurus, nec alius quisquam; si tollantur mala, tolli pariter sapientiam, nec ulla in homine virtutis remanere vestigia, cuius ratio in sustinenda et superanda malorum acerbitate consistit. Itaque propter exiguum compendium sublatorum malorum maximo et vero et proprio nobis bono careremus. Constat igitur omnia propter hominem proposita, tam mala, quam etiam bona. #
[18] 라틴어 원문을 영어로 번역한 글은 다음과 같다. You see, therefore, that we have greater need of wisdom on account of evils; and unless these things had been proposed to us, we should not be a rational animal. But if this account is true, which the Stoics were in no manner able to see, that argument also of Epicurus is done away. God, he says, either wishes to take away evils, and is unable; or He is able, and is unwilling; or He is neither willing nor able, or He is both willing and able. If He is willing and is unable, He is feeble, which is not in accordance with the character of God; if He is able and unwilling, He is envious, which is equally at variance with God; if He is neither willing nor able, He is both envious and feeble, and therefore not God; if He is both willing and able, which alone is suitable to God, from what source then are evils? Or why does He not remove them? I know that many of the philosophers, who defend providence, are accustomed to be disturbed by this argument, and are almost driven against their will to admit that God takes no interest in anything, which Epicurus especially aims at; but having examined the matter, we easily do away with this formidable argument. For God is able to do whatever He wishes, and there is no weakness or envy in God. He is able, therefore, to take away evils; but He does not wish to do so, and yet He is not on that account envious. For on this account He does not take them away, because He at the same time gives wisdom, as I have shown; and there is more of goodness and pleasure in wisdom than of annoyance in evils. For wisdom causes us even to know God, and by that knowledge to attain to immortality, which is the chief good. Therefore, unless we first know evil, we shall be unable to know good. But Epicurus did not see this, nor did any other, that if evils are taken away, wisdom is in like manner taken away; and that no traces of virtue remain in man, the nature of which consists in enduring and overcoming the bitterness of evils. And thus, for the sake of a slight gain in the taking away of evils, we should be deprived of a good, which is very great, and true, and peculiar to us. It is plain, therefore, that all things are proposed for the sake of man, as well evils as also goods. #
[19] 사랑과 증오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고 기도나 제물에 의해 마음을 바꾸는, 변덕스럽고 탐욕스러운, 마치 인간 같은 신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흄이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흄은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학문적인 논의는 불가능하다고 여겼고, 우리는 철학적으로는 이를 판단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겼으며, 신에 대한 우리의 사고는 이성에 기반해서는 불가능하고 신앙적 태도 하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신론 참조.
[20] 사실 동서문화사 자체가 일본어 중역이 많다고 평가받는 출판사이기도 하다.
[21] 당시 단위로 1 코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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