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7503]泰齋태재,유방선-卽事즉사 三首중 3수
卽事 즉사- 대하고 느낀 바가 있어 창작하다
泰齋태재,柳方善유방선
門巷年來草不除。문항년래초부제
片雲孤木似僧居。편운고목사승거
多生結習消磨盡。다생결습소마진
只有胸中萬卷書。지유흉중만권서
여러해 문전 골목 풀조차 안 베었더니
조각구름 나무 하나 절간과 비슷하여라
오랜 세월 맺힌 마음 다 녹아 사라지고
가슴 속엔 만권의 서책만이 남았노라
해설 (한국고전번역원 김종태) ; 작가 유방선 (1388 ~ 1443 )선생은
이씨조선 정종 ~ 세종시대 학자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태학에서 공부하던중
家禍를 당하여 주로 경상도 영천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는데,
권람, 한명회, 강효문, 서거정등이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한다.
이 시는 마흔 으름의 어느 늦은 봄날, 유배지에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그간의 회포를 드러낸 작품으로 담담한 필치 가운데 저간의 사정을 은은히 비치고 있다.
첫 구의 '풀을 베지않았다' 는 것은 은자로서 바깥세상과 교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둘째 구절의 '片雲이나 孤木은 작가 자신의 투영으로,
多生과 結習은 불교 문자인데, 다생은 선악의 業을 지으며
六道를 윤회하는 것을 뜻하고, 結習은 어떤 사물에 집착하여
생기는 번뇌와 습관을 아울러 이르는 말,
마지막 두구는 특히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성취한 자의 자부심과 함께 회한이 서려있는데,
다만 지(只)자에 봄날의 무상함도 언뜻 묻어있는구절이라 여러번 되뇌게 된다.
卽事 즉사
대하고 느낀 바가 있어 창작하다
- 泰齋태재,柳方善유방선
門巷年來草不除
문문 거리항 해년 이후래 풀초 아니불 없앨제
문(과) 거리(에) 연래(에) 풀(도) 없애지 않아
年來: 지나간 몇 해. 또는 여러 해 전부터 지금까지 이르는 동안.
片雲孤木似僧居
조각편 구름운 외로울고 나무목 같을사 스님승 집거
조각 구름(에) 외로운 나무(까지) 스님 집 같네.
多生結習消磨盡
많을다 태어날생 맺을결 습관습 사라질소 갈마 다할진
많은 태어남(에) 맺은 습관 닳아 없어져 다하고
◆結習결습: 《유마경(維摩經)》 〈관중생품(觀衆生品)〉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천녀(天女)가 천화(天花)를 여러 보살에게 뿌리니, 바로 다 떨어지고
대제자(大弟子)에 이르러서는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천녀는 “오랜 습관이 다 없어지지 않은 자는 몸에 꽃이 달라붙게 되고,
오랜 습관이 완전히 제거된 자는 몸에 꽃이 붙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消磨소마: 닳아서 없어지거나 또는 닳아서 없어지게 함.
只有胸中萬卷書
다만지. 있을유. 가슴흉. 속.중 일만만. 책권. 글서.
다만 가슴 속(에) 있는 건, 만 권(의) 책.
○ 泰齋태재,柳方善 유방선(1388~1443)
1. 당대 최고 지식인들에게 발탁된 ‘엘리트 영재’ (만 10~11세 무렵)
유방선은 1388년에 태어나, 전통 나이 12세(만 10~11세 무렵)부터
당대 최고의 학자인 권근과 변계량 등에게 학문을 배우며 일찍부터
천재성을 널리 인정받았다.
1405년(만 17세)에는 사마시에 합격하고 국가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에서
수학하며 탄탄대로의 엘리트 코스를 밟기 시작했다.
2. 가문의 몰락과 청춘을 앗아간 ‘무한 유배 루프’ (만 21세~39세)
하지만 1409년(만 21세), 아버지가 민무구의 옥사에 연루되면서
그 역시 연좌되어 청주로 유배를 떠나고 이듬해 영천으로 이배되는 큰 시련을 겪었다.
1415년(만 27세) 잠시 유배에서 풀려나 원주에서 지냈으나,
누군가의 참소(거짓 고발)를 당해 또다시 영천으로 유배되었다.
결국 그의 유배 생활은 1427년(만 39세)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20대와 30대의 찬란한 황금기를 몽땅 유배지에서 보낸 셈이다.
3. 유배지를 학문의 성지로 만든 긍정의 아이콘
그는 긴 유배 생활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학문에 더욱 매진했다.
유배지인 영천의 명승지에 자신의 호를 딴 ‘태재(泰齋)’라는 서재를 짓고
조상치, 이안유 등 은둔하던 여러 지식인들과 학문적으로 교류했다.
또한 주변 자제들에게 학문을 전수하며
정몽주-권근-변계량으로 이어지는 영남 성리학의 뼈대를 후대에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엄청난 역할을 해냈다.
4. 한명회, 서거정, 권람을 키워낸 조선 최고의 ‘일타 강사’
그의 생애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화려한 제자 라인업이다.
원주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는 훗날 조선 전기의 정치와 문화를 쥐락펴락하게 되는
서거정, 한명회, 권람 등을 훌륭한 문하생으로 길러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꾼 거물들의 스승으로서 진정한 막후의 멘토 역할을 한 것이다.
5. 벼슬을 걷어차고 낭만을 즐긴 ‘참된 선비’ (만 39세 이후)
유배에서 풀려난 후, 그의 뛰어난 학식과 덕망이 널리 알려지면서
과거를 거치지 않고도 벼슬에 오를 수 있는 ‘유일(遺逸)’ 제도를 통해
주부 벼슬에 적극 추천되었다. 하지만 그는 벼슬자리를 쿨하게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특히 시학(詩學)에 뛰어났던 그는 문집인 『태재집』을 남겼으며,
1443년(만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는 그의 업적을 기려
경현원과 영천 송곡서원에 모셔졌다. 그는 권력에 연연하지 않고
지조를 지키며 후학 양성에 평생을 바친 진정한 스승이다.
조선 초기, 당대 최고의 천재로 불렸으나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던
비운의 지식인이 있었다.
바로 한명회와 서거정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태재(泰齋) 유방선(1388~1443)이다.
그의 시 는 화려한 엘리트 코스를 걷다
가문의 몰락으로 청춘을 잃어버린 한 선비가 고독의 끝에서 길어 올린 깨달음의 기록이다.
먼저 시의 전반부를 보면, 유방선이 처한 적막한 처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문 앞과 거리에는 해가 바뀌어도 베어내지 않은 풀들이 무성하고,
하늘에 떠 있는 조각구름과 홀로 서 있는 나무만이 그의 집을 지키고 있다.
이러한 풍경은 마치 속세를 떠난 스님이 거처하는 깊은 산중의 절간처럼 고요하고 쓸쓸하다.
20대와 30대라는 찬란한 시절을 유배지에서 보낸 그에게, 관리되지 않은 무성한 잡초는
세상으로부터 잊힌 채 홀로 견뎌온 고단한 시간의 흔적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 고독을 비탄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는 대승경전 《유마경》에 나오는 ‘결습(結習)’이라는 표현을 빌려
자신의 내면을 고백한다. 결습이란 여러 생을 거치며 마음속에 쌓인
뿌리 깊은 습관이나 번뇌를 의미한다.
유방선은 유배라는 모진 시련을 겪으며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세속적인 욕망이나 원망,
그리고 과거의 집착들을 모두 닳아 없어지게(消磨)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이지만,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그는 반전을 선사한다. 모든 것이 사라진 줄 알았던 그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만 권의 책(萬卷書)’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허균은 “그가 안고 있었던 궁핍함과 근심을 생각해 보니 시가
저절로 좋게 느껴진다”라고 평했다. 이는 단순히 글솜씨가 뛰어나다는 찬사가 아니다.
억울한 참소와 긴 유배 생활이라는 극한의 결핍 속에서도,
원망에 함몰되지 않고 성현의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후학 양성에 매진했던
유방선의 ‘선비 정신’이 시 구절 사이에 스며 있음을 꿰뚫어 본 것이다.
결국 이 시는 유방선의 삶 그 자체를 상징한다. 벼슬길이 막히고 육신은
유배지에 갇혔을지라도, 정신만큼은 만 권의 책과 함께 드넓은 학문의 세계를
유영했던 진정한 스승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유배지를 학문의 성지로 일구어냈고,
그곳에서 길러낸 제자들은 훗날 조선의 기틀을 세웠다. 내버려둔 풀들과 가득 찬 가슴,
이 대비야말로 유방선이 우리에게 전하는 ‘참된 선비의 미학’이다.
원문=泰齋先生文集卷之二 / 詩○
卽事 三首
獨臥村家欲暮春。地偏無客可相親。
多情唯有前年燕。又傍疏簾喚主人。
三月江村事事奇。杏花飛雪柳垂絲。
興來寫出新詩句。偶得方知勝苦思。
門巷年來草不除。片雲孤木似僧居。
多生結習消磨盡。只有胸中萬卷書。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