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에세이 17)
생명력 강한 파초
심영희
파초는 얼른 보기에도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식물이다. 열대식물을 연상케 하는 파초는 당나라의 “회소”란 학자가 종이 살 돈이 없어 파초를 심어 그 잎을 따서 그 위에다 시를 적었다 하여 선비의 고결한 정신을 나타낸다.
또 파초의 다른 의미는 모든 식물이 불에 타서 다시 살아나지 못해도 죽은 줄 알았던 파초는 뿌리에서 다시 새순이 돋아나 자란다 하여 기사회생(起死回生)의 상징으로 여긴다. 생각해보라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질긴 생명력이 있는지 짐작이 간다. 뿌리가 죽지 않고 봄에 새싹이 돋아나다니 모든 동식물들은 그런 파초를 동경하지 않을까,
파초는 옛 선비들이 무고하게 당쟁에 연루되어 사라지는 젊은 선비들을 아깝게 여겨 스승이 후학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그려주는 그림으로 모란과 바위를 함께 하여 학업에 정진한 후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에도 굴하지 말고 일어나 부귀를 누리다 천수하라는 뜻으로 그렸다고 한다.
파초는 다년생 식물로 잎이 넓어 시원해 보이며 바람에 찢긴듯한 잎이 매력이 있다. 중국이 원산지라는 파초, 60년대 우리 집 화단에 파초가 심어져 있었는데 여름이면 잘 자라서 내 키를 훌쩍 넘기곤 했다. 흔하지 않던 식물이라 키우는 집이 거의 없어 경험이 없던 우리 가족도 겨울이면 얼어 죽을까 봐 다알리아, 글라디올러스, 칸나와 같이 잎과 줄기는 잘라내고 뿌리만 화분에 담아 실내에서 월동을 시킨 뒤 다음해 봄에 다시 꽃밭에 내다 심는 일을 여러 해 했다.
내 학창시절이던 60년대 우리는 선생님의 지시로 한 달에 한두 번 파월장병 아저씨한테 위문편지를 써 보내면 편지를 받아본 군인오빠들이 보내준 월남엽서에는 아오자이 입고 자전거 타는 월남아가씨 사진이나 아니면 파초를 닮은 야자수 나무 사진이 있는 엽서였다.
그래서인지 파초는 늘 내게 이국적인 인상으로 다가왔다. 집 화단에 파초가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이면 마치 열대지방에 온듯한 느낌으로 살았다. 5m까지 자란다는 파초는 생명력만 강한 게 아니라 번식력도 강해 뿌리에서는 곁가지를 쳐서 새끼 파초가 몇 가닥씩 올라오곤 했다.
중고등학교가 함께 있던 여고 온실에서도 사시사철 파초를 볼 수 있었는데 2m이상을 자라지는 않았다. 여고생들이 파초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꽃을 좋아하는 나는 결혼하여 춘천으로 오면서 파초 한 포기도 덤으로 가지고 왔다. 집에서 하던 대로 봄에는 밖에다 심고 가을이면 실내로 들여놓고 하였는데 어느 해 물 많이 먹고 잘 자라라고 시댁 수돗가에 심어놓고 실험 삼아 겨울에 실내로 들여놓지 않았더니 다음해 새봄에 파초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뜨거운 불보다 차디찬 겨울이 더 견디기 힘들었던 파초는 얼어 죽은 것이다. 아무리 생명력이 강한 식물도 그 식물에 맞는 적정한 온도와 환경이 되어야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러나 그림의 의미는 보편화된 상징이므로 파초를 그려 오래 살 수 있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을까,
강릉에서 1901년에 태어나 1968년에 타계한 김동명 시인의 대표작 파초를 소개한다. 1938년 “개벽”지를 통해 등단했다는 김동명 시인의 문학관은 강릉에 있다.
파초
김동명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
너의 넋은 수녀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드리운 치마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