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공동체를 창조하기 (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25. 06.22 - 29, 호명환 번역)
1. 우리의 참된 정체성을 인식하며 살아갑시다! - 우리는 현상 유지의 정신구조에서 벗어나 정말로 중요한 것을 위해 일어설 것입니까?
2. 공유하고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기! - 그리스도교 초기 신자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3. 살아있고, 가시적인 모범들! - 여러분은 여러분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압니까? 4. 보살핌의 공동체! - 서로간에 배려하는 관계성은 사랑과 신뢰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 5. 공동체가 함께 내는 영향력! - 우리가 더 나은 함께함에 이르지 못하는 한 우리 세상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6. 개인과 공동체를 함께 책임지는 정신! -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도자가 이야기하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서로를 도울 수 있습니다.
7. 소속감의 문화를 창출해 내기! - 우리는 우리가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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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참된 정체성을 인식하며 살아갑시다!
하느님의 숨 2025.06.22. 21:09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22일 일요일 - 스물다섯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변화의 공동체를 창조하기
우리는 현상 유지의 정신구조에서 벗어나 정말로 중요한 것을 위해 일어설 것입니까?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마태오 복음 5,1-16에 대해 성찰하면서 브라이언 맥라렌(Brian McLaren)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정의와 연대의 공동체적 가치를 살아가라는 예수님의 초대에 대해 살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연대와 민감함, 비폭력이 특징을 이루는 정체성을 옹호하십니다. 그분은 정의를 갈망하고, 동정심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통합과 이중적이지 않은 정신을 드러내는 이들을 찬양하십니다. 그분은 새로운 형태의 영웅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전사들도 아니고 큰 기업의 경영자들도 아니며 정치가들도 아닙니다. 그들은 어떤 문제나 갈등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평화를 옹호하며 주님과 더불이 기꺼이 정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자 하는 용감하고 단호한 활동가들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선택은 그 시작부터 분명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 사회의 규범에 타성에 젖어 살아가며 안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종류의 안녕의 정의와 다른 종류의 성공 모델, 가치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택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서 제안하시는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복됨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 위로의 따스함이 참으로 살아 있음을 경험할 것이고, 이 땅이 선사해 주는 선물과 하느님의 회복해 주시는 정의가 더욱 충만하게 실현되는 것을 보며 만족하게 될 것이고, 자비를 입고 하느님 현존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것이며, 하느님은 물론이고 과거의 예언자들과 함께하는 영예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지라고 초대해 주시는 정체성입니다. 이 정체성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해 줄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는 자들로서 뭔가 다른 것을 창조해 내는 사람들이요 생명을 창조해 주는 활동가들이며 변화의 촉매자들이 될 것입니다. 음식에 맛을 더해 주는 소금처럼 우리는 우리 공동체와 사회에 최선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또한 소금처럼 우리는 부패와 부식을 막아주고 보존해 주는 기능을 발휘할 것입니다.... 단순히 우리인 바가 됨으로써, 즉 세상의 소금과 빛인 우리의 정체성을 용감하고 자유롭게 살아냄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짠맛"을 잃지 않고 우리의 빛을 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한 뭔가 다른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이 세상의 관행을 무의식적으로 따르면서 불의에 대해 입을 다물고 얼버무리려는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현상 유지의 정신 구조에서 벗어나 문제의 한 부분이 되기보다는 해결책의 한 부분으로 일어서라고 우리에게 촉구해 주십니다. 그분은 선의 소금과 빛으로 악의 무덤덤함과 어둠을 이겨내라고 우리에게 촉구해 주십니다. 우리의 선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자신에게 주의를 끌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이 하느님을 가리키게끔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와, 당신의 삶에서 선과 자애를 볼 때 나는 선하시고 자애로우신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이 기념비적인 말씀, 즉 "너희는 이 땅의 소금이다. 너희는 이 세상의 빛이다." 하신 말씀에는 당신에 관한 뭔가 중요한 것이 들어 있습니다. 다른 모든 지도자들처럼 그분은 당신 자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다른 이들 - 그리고 우리 - 에 더 초점을 맞추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누구이신지에 대해 선언하실 때도 있지만 그분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선언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아일랜드의 벽지에 살고 있습니다. 이곳은 1845년부터 1849년까지 이어진 기근으로 인해 인구가 급감했습니다. 제 집 근처에는 기근이 가장 심했던 해에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기근 길이라는 작은 길이 있습니다. 저는 종종 이곳 산들과 야생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도 슬픔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평화 중에 있는 영혼들을 느끼고 이 거룩한 땅 안에서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고통을 받았던 영혼들은 이제 안전하고 새로운 곳에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될 때 저는 그곳에서 어떤 영적인 에너지가 부드러운 빛으로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이곳이 바로 제가 영적인 가정을 발견한 곳이고, 또 서로를 돌보아 주는 공동체를 발견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제 영은 이 땅과 저 하늘, 그리고 저 바다와 아주 가까이 일치되어 새로워지고, 저는 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받습니다. —Barbara H. References Brian D. McLaren, We Make the Road by Walking: A Year-Long Quest for Spiritual Formation, Reorientation, and Activation (Jericho Books, 2014), 128–129.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Joel Muniz, untitled (detail), 2020,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코로나 팬데믹 시가에 푸드 뱅크에 음식을 전달해 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연대라는 단순한 행위 안에는 우리가 서로를 위해 나설 때 참된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조용하게 상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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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하고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기!
하느님의 숨 2025.06.23. 16:12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23일 월요일 - 스물다섯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변화의 공동체를 창조하기
그리스도교 초기 신자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 사도 4,32 시인이자 CAC 운영진 중 하나인 드류 잭슨(Drew Jackson)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서로를 돌보아 주었는지에 대해 성찰합니다: 사도행전은 전부 예수님의 승천 이후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로 형성된 초기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의 공동체 - 처음에 그들은 그렇게 불렸음 - 들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이 공동체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사도행전 4장이 상세히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변모를 체험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이 함께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지를 잘 알려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들의 한마음 한뜻이 되어 있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서로와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식을 가지기 시작한 것인데, 이는 분리가 아니라 하나 됨에 기초한 것이며, 그 자체로 의식의 급진적인 전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전체에 걸쳐 계속 이어지는 실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다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이 이 새로운 공동체들 안에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부의 격차가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동류 의식이 재정의되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우리와 저들"이라는 개념이 없게 됩니다. 오직 "우리"만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서로에게 속해 있게 되는 겁니다. 하나 됨을 통해 관계를 맺는 방식은 돈과 재산, 그리고 소유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도 새로운 방식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합니다. 본문이 이렇게 전합니다.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이것은 새로운 경제구조 - 공유하는 경제구조입니다.... 우리는 모두 소비주의와 축적의 논리에 익숙해져 살아가고 있고 이런 조건이 오랫동안 우리 삶을 규정해 왔기에 우리가 다른 가능성들을 상상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공동체들에서 일어난 일은 성령에 의해 영감을 받은 새로운 상상력이 만들어낸 업적입니다. 여기에는 소득의 재-분배라는 급진적인 의식 있었는데, 신자들로 하여금 이렇게 하게 한 것은 어떤 특별한 형태의 이데올로기(이념)가 아니라 - 또한 그것은 강압에 의한 것도 아니었음 - 한 가지 단순한 사실에 있었습니다. 그 사실이란 사람들이 성령에 의해 변모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공동체 내의 어떤 사람도 궁핍하게 만들고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누구라도 부나 지위, 혹은 계급으로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지위에 있게 하면서 공동체를 운영할 수 없었습니다. 이 새로운 관계성과 부의 재분배는 사람들이 성령의 소용돌이 안으로 이끌려 들어감으로써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변화였습니다. 여기에는 강화된 내어줌, 강화된 소속감, 그리고 강화된 사랑 나눔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롭게 형성되었고 또 계속 새롭게 형성되어 가는 이 새로운 공동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부의 격차가 날로 늘어만 가는 이 세상의 상황 안에서 - 권력을 지닌 이들이 이렇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 우리는 서로에게 속하는 데 있어 급진적으로 새로운 방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불의와 착취, 불평등의 경제구조의 상태에 안주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 안에 숨겨진 권력과 특권, 그리고 소유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급진적인 소속감과 급진적인 사랑으로 옮겨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아일랜드의 벽지에 살고 있습니다. 이곳은 1845년부터 1849년까지 이어진 기근으로 인해 인구가 급감했습니다. 제 집 근처에는 기근이 가장 심했던 해에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기근 길이라는 작은 길이 있습니다. 저는 종종 이곳 산들과 야생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도 슬픔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평화 중에 있는 영혼들을 느끼고 이 거룩한 땅 안에서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고통을 받았던 영혼들은 이제 안전하고 새로운 곳에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될 때 저는 그곳에서 어떤 영적인 에너지가 부드러운 빛으로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이곳이 바로 제가 영적인 가정을 발견한 곳이고, 또 서로를 돌보아 주는 공동체를 발견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제 영은 이 땅과 저 하늘, 그리고 저 바다와 아주 가까이 일치되어 새로워지고, 저는 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받습니다. —Barbara H. References Adapted from Drew Jackson, CAC Morning Sit, April 29, 2025. Unavailable. Used with permission.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Joel Muniz, untitled (detail), 2020,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코로나 팬데믹 시가에 푸드 뱅크에 음식을 전달해 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연대라는 단순한 행위 안에는 우리가 서로를 위해 나설 때 참된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조용하게 상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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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고, 가시적인 모범들!
하느님의 숨 2025.06.24. 20:47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24일 화요일 - 스물다섯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변화의 공동체를 창조하기
여러분은 여러분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압니까?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리처드 신부는 우리가 우리 주변의 체제들에 어느 정도까지 집착하지 않고자 한다면 이 세상에 새로운 방식의 실천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사신 올바른 사회를 구성하는 프로그램의 토대는 제 용어를 쓰자면 우상숭배를 반대하는 것(non-idolatory), 혹은 하느님 나라 이외에 다른 모든 나라에 노예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문제를 직접 해결할 필요성을 느끼기보다는 훨씬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힘을 실어 줍니다. 집착하지 않음(nonattachment: 인간이 만든 지배 체제에 대한 충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제가 알기에, 광신적인 종교심 혹은 적대적인 사고나 행위로부터 사람들을 지켜 주는 가장 훌륭한 길입니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겠지만, 우리는 거기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온 마음으로 찬성하는 것에 끊임없이 집중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런 중대한 메시지에 일종의 "시청각 교재"를 만들고자 하는데, 그게 바로 그가 말하는 "교회"(이 용어는 예수님께서 마태오 복음 16,18과 18,17에서 단 두 번 사용하는 용어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집단 의식과는 다른 길을 참으로 따르고 있음에 대한 증거를 보여줄 새로운 종류의 삶의 모범, 즉 살아있고 가시적인 삶의 모범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은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는"(필리 2,15) 이들입니다. "우리가 왜 새롭고 더 나은 삶이 가능한지를 믿어야 합니까?" 하고 묻는 사람들에게, 바오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사람들을 보십시오. 이들은 다릅니다. 이것은 새로운 사회 질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드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28). 바오로의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거의 유토피아에 가까운 대안적인 사회 안에서 살면서 그러한 충만함으로부터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지향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의 전적으로 세상 안에서 돈과 전쟁과 권력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거기에 모든 것을 투자하며, 가끔씩 "교회에 나가는" 모델을 창출해 내었습니다. 이런 모델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아미시(amish)나 브루더호프(bruderhof), 흑인 교회들, 몇몇 가톨릭 수도회들의 회원들이 이끄는 모임 같은 단체들은 아마도 실질적으로 대안적인 의식(consciousness)을 살아내는 데 더 나은 환경을 지니는 것 같습니다. 나머지 우리 대부분은 결국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의 영향 아래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제 많은 사람은 싱크탱크(think tanks)나 지원 단체, 기도 단체, 연구 단체, 가정 건설 프로젝, 치유 모임, 공동체 중심의 기관 등을 통해서 이런 연대를 찾고자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런 단체나 모임을 완전하게 결성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렇게 하고자 노력한다면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할 겁니다. 어떤 새로운 연구들에 의하면, 몇몇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교를 떠나기보다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살아가는 단체나 모임들의 모습으로 구조를 바꾸어가고자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저 주일에 교회에 나가 성경 말씀을 듣고 신앙고백을 외우며 성가를 부르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추고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성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공동체로서 연대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적인 그리스도인들의 행동 방식이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더 많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행위는 단순한 회원 자격과는 아주 다른 강조점을 지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상표명이 아니란 것을.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마음이 이 땅 어디에서나 스며들어 있게 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최근에 흑인 모세와 테오도라와 같은 사막의 많은 교부들과 교모들이 아프리카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저는 제가 보고 자라왔던 많은 영성 공동체와 종교 공동체와는 달리 피부색이 결정적인 요소가 아닌 공동체들에 사는 신비주의자를 다시 상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계 어린이였던 저는 이와 같이 사막의 금욕주의자들, 즉 예수님께 함께 예배를 드리는 저와 닮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공동체를 희망했었습니다. 만일 제가 금발 머리에 푸른 눈을 한 예수님과 같은 비현실적인 이미지에 예배를 드리라는 가르침을 받지 않았더라면 저는 그리스도교를 얼마나 다르게 경험했었을까요? 저는 이 전설적인 개인들과 공동체들에 관한 이야기 전체를 들려 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치유를 가져다줄 것이며, 편협한 미국의 종교 이야기들을 지적해 주는 의미심장한 반대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Roberta T. References Adapted from Richard Rohr, The Universal Christ: How a Forgotten Reality Can Change Everything We See, Hope for, and Believe (Convergent, 2021), 197, 200–201.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Joel Muniz, untitled (detail), 2020,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코로나 팬데믹 시가에 푸드 뱅크에 음식을 전달해 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연대라는 단순한 행위 안에는 우리가 서로를 위해 나설 때 참된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조용하게 상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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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핌의 공동체!
하느님의 숨 2025.06.25. 20:12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23일 수요일 - 스물다섯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변화의 공동체를 창조하기
서로간에 배려하는 관계성은 사랑과 신뢰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랍비 샤론 브로스(Sharon Brous)는 의미가 충만한 공동체의 중심에는 개개인에 대한 보살핌과 서로에 대한 배려의 관계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상호 배려의 관계성은 사랑과 신뢰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배려심을 갖고 우리 마음에 소중히 간직할 사람들이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그들이 잘못해도 그들을 용서하고자 하고, 그들도 우리를 똑같이 대해 줄 것이라고 희망합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책임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힘든 순간들은 물론이고 기쁨의 중대한 순간들을 그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함께할 때 우리는 번창하며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공동의 목적을 향해 이루어진 관계성은 서로에 대해서뿐 아니라 같은 꿈을 나누고자 하는 상호간의 약속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만일 최선의 장소가 상호 배려와 공동 목적의 교차점이라면, 저는 그 교차점에 자리 잡은 공동체에 뿌리내리고 싶습니다. 그러한 공동체는 모든 예식과 모든 봉사, 모든 함께함을 서로간의 연결됨을 심화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그런 공동체는 사람들을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는 개개인이기도 하고, 또 상처가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개개인이라고 여기며,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위대한 전체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들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종류의 공동체는 "당신은 어디에서 일합니까?"라는 질문보다는 "당신은 누구이며, 어떻게 해서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에 의해 추진력을 받습니다... 이런 종류의 공동체는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고 노래하고 슬픔을 나누고 배우고 성찰할 정기적인 기회를 자기들의 영적인 닻으로 삼습니다. 이런 공동체는 더 넓은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선의의 사람들의 집단적 힘을 인식하고 거룩한 일을 위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닦는 것을 우선시합니다. 이런 공동체는 단순히 사람들을 자기들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히려 서로간의 소속감과 친밀감, 진실함, 사랑, 그리고 책임감을 키워주는 신성한 공간을 창출하여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입니다. [1] 우리 문화에서 수많은 사람이 겪는 집단적 외로움과 절망을 인식하면서 브로스의 공동체는 사람들을 그들이 있는 곳에서 만나는 데 더 심오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사랑과 소속됨의 신학을 설교하는 일뿐 아니라 우리 공동체들이 그 계명을 반드시 끌어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해온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멘' 효과입니다. 특히 힘든 날에에는 서로의 말을 듣고, 서로를 포용하며, 서로 사랑하라는 신성한 계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서로에게 "아멘"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의 신성한 수치와 상처를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게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단절과 외로움, 암울함, 불안과 중독 등에 대해 진솔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과 소속감이 있는 공동체는 우리가 가장 연약할 때에도 우리가 기꺼이 자신을 드러내며 우리 공동체가 우리를 감싸주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며 함께 걸어가기 시작하는 공간입니다. 여기서 과학적 데이터와 영적인 통찰력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단절은 우리 사회를 갉아먹은 어둠의 전염병입니다. 이에 대한 해독제는 풍요롭고 의미 깊은 연결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에제르케네그도(ezer k'negdo: 하느님께서 창조해 주신 최초의 조력자 여성에 대한 히브리어) [2] - 즉 관심과 배려로 우리의 연약함을 채워주는 사람, 밤새 우리와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사람, 참호 속에서 우리와 함께 몸을 숙여 머물러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우리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사랑으로 열심히 일해 줄 사람입니다. [3]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최근에 흑인 모세와 테오도라와 같은 사막의 많은 교부들과 교모들이 아프리카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저는 제가 보고 자라왔던 많은 영성 공동체와 종교 공동체와는 달리 피부색이 결정적인 요소가 아닌 공동체들에 사는 신비주의자를 다시 상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계 어린이였던 저는 이와 같이 사막의 금욕주의자들, 즉 예수님께 함께 예배를 드리는 저와 닮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공동체를 희망했었습니다. 만일 제가 금발 머리에 푸른 눈을 한 예수님과 같은 비현실적인 이미지에 예배를 드리라는 가르침을 받지 않았더라면 저는 그리스도교를 얼마나 다르게 경험했었을까요? 저는 이 전설적인 개인들과 공동체들에 관한 이야기 전체를 들려 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치유를 가져다줄 것이며, 편협한 미국의 종교 이야기들을 지적해 주는 의미심장한 반대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Roberta T. References [1] Sharon Brous, The Amen Effect: Ancient Wisdom to Mend Our Broken Hearts and World (Avery, 2024), 39, 41–42. [2] Ezer k’negdo is the Hebrew word found in Genesis 2:18. 이 말은 주로 조력해 주는 협력자로 번역되지만, 본래 의미하는 바는 다른 모든 사람이 여러분을 외면하는 때에도 여러분 건너편에 서 있으면서(k’neged lo) 여러분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an ezer)입니다(Brous, 35–36). [3] Brous, Amen, 44–45.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Joel Muniz, untitled (detail), 2020,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코로나 팬데믹 시가에 푸드 뱅크에 음식을 전달해 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연대라는 단순한 행위 안에는 우리가 서로를 위해 나설 때 참된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조용하게 상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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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함께 내는 영향력!
하느님의 숨 2025.06.26. 17:24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26일 목요일 - 스물다섯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변화의 공동체를 창조하기
우리가 더 나은 함께함에 이르지 못하는 한 우리 세상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재키 루이스 박사(Rev. Dr. Jaqui Lewis)는 어떻게 해서 개인의 결정들이 집단의 변화를 만들어 주는지에 대해 성찰합니다: 우리는 모두 사회의 전면적인 변화가 참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끌어안아야 합니다. 그 변화란 내부에서부터 시작해서 연못의 물결처럼 퍼져나가 마침내 사랑으로 영감을 받은 변화의 쓰나미가 되는 변화를 말합니다. 여러분의 나이나 인종, 종교, 성별, 혹은 성향(sexuality)과는 상관없이, 저는 여러분이 선해지게 하고 또 선을 고수하게 해 주는 어떤 새로운 활력을 여러분에게 주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모두 더 나아지지 않으면 이 세상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 말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될 때까지 구원받지 못할 겁니다; 우리의 존엄성과 해방은 함께 엮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의 마을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마을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가 되고, 우리 아이들과 함께 우리는 계속 아이들의 교실에서 총기 난사를 피하기 위해 숨는 일만 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 어른들의 안전망도 위협을 받을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산더미 같은 빚을 지고도 자기 부모들보다 돈을 덜 벌게 될 것입니다. 두려움, 외국인 혐오증, 인종차별주의, 극심한 편견 - 이런 문제들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기에, 우리가 더 나아진다면 이런 문제들도 나아질 것입니다! 리처드 신부는 우리가 공동선에 충실하다면 그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줍니다: 가톨릭 윤리 신학의 커다란 원칙이 무엇일까요? 공동선입니다. 그저 '내' 개인의 선이 아닌 공동선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일까요? 서구인들에게는 이 질문이 상당히 난해한 질문일지 모릅니다. 사실상, 서구의 많은 사람은 이것이 질문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탈근대적이고 세속적인 문화 안에서 무언가에 충실하다는 것은 구태의연한 것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저에게 공동체 안에 머무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최고의 칭찬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요 몇 년간 제가 완벽하게 그 일을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 저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충실함은 하느님께 충실한 것이고, 그리스도께 충실한 것이며, 우리 모두에게 자신을 넘어서라고 초대하는 복음에 충실한 것입니다. 그러니 충실하십시오! 가장자리로 가서 사랑의 공동체를 찾아 작은 공동체들 안에서 평등이 존중되는 대안적 문화를 건설해 보십시오. 체코 공화국의 대통령이자 시인인 바클라프 하벨(Vaclav Havel)은 이런 대안적 문화를 건설하는 데 있어 아주 훌륭한 표양입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에 이미 대안적 문화를 건설했던 사람입니다. 문학과 연구, 시, 예식, 그리고 교육을 통해 그는 더 커다란 비전을 견지한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창출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체제가 무너지게 되었을 때 그들은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반대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뿐 아니라 자기들이 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1] 루이스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저는 인류의 신성한 선과 이 땅의 풍부한 자원에 대한 긍정적 비전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 주는 담대하고도 새로운 길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우리 자신과 우리 공동체들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창출해 내고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기다려왔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그런 삶과 세상을 상상할 용기를 가지는 것이고, 또 그런 삶과 세상을 만들어 내려는 의지를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결혼한 여성 동성애자입니다. 제 파트너와 저는 사랑과 자애를 지닌 여성들로서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여하며 죄책감을 갖지 않고 영성체를 하고 있고, 또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아이들을 둔 참 많은 부모들이 우리에게서 긍정적인 전망과 용기를 얻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들의 자녀들도 신앙 공동체에서 환영받을 가능성이 많다는 실질적이고 살아있는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Linda L. References [1] Adapted from Richard Rohr, Creating a Church for the 21st Century, conference talk, August 6, 1993. Unavailable. Jacqui Lewis, Fierce Love: A Bold Path to Ferocious Courage and Rule-Breaking Kindness That Can Heal the World (Harmony Books, 2021), 14, 15.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Joel Muniz, untitled (detail), 2020,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코로나 팬데믹 시가에 푸드 뱅크에 음식을 전달해 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연대라는 단순한 행위 안에는 우리가 서로를 위해 나설 때 참된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조용하게 상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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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공동체를 함께 책임지는 정신!
하느님의 숨 2025.06.27. 17:02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27일 금요일 - 스물다섯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변화의 공동체를 창조하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도자가 이야기하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서로를 도울 수 있습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작가 오리 브라프만(Ori Brafman)과 로드 벡스트롬(Rod Beckstrom)은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공동체와 우리가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강력한 교훈에 대해 성찰합니다: 불가사리에게는 우리가 믿기 어려울 정도의 특성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들의 팔을 자르면 대개는 그들에게서 새 팔이 자라납니다. 그리고 린키아나 긴팔 불가사리와 같은 몇몇 종은 단 하나의 팔로도 다른 팔들을 모두 복제해 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마법을 부리듯 재생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불가사리는 실제로 전체가 신경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본적으로 세포들의 네트워크이기 때문입니다. 불가사리는 거미처럼 머리를 가지고 있는 대신 분산된 네트워크로 기능을 합니다.... 이 모든 종 가운데서 가장 잘 알려진 불가사리 종 하나를 살펴봅시다. 그것은 특별한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이라는 불가사리 종입니다. 1935년에 빌 윌슨(Bill Willson)은 맥주 캔을 꼭 쥐고 있었습니다; 그는 20년간 거의 내내 맥주나 다양한 종류의 술을 손에 들고 살았습니다. 마침내 그의 주치의가 술을 끊지 않으면 6개월 이상 살 수 없다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 말이 빌을 흔들리게 했지만, 그가 술을 끊게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중독은 극복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빌은 엄청난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자신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알코올 중독과 싸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전문가들도 그를 도울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와 다른 중독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 만큼 똑똑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하면 곧바로 빌은 그 충고를 자기 합리화로 무시해 버리고 또 술을 마셨습니다. 돌파구가 생겨난 것은 바로 이 때였습니다. 빌은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같은 문제를 안고 있던 다른 사람들은 그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충고하는 사람]에 반기를 드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무시하기는 훨씬 더 어렵습니다. 이것이 바로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이 태동하게 된 계기입니다. 이 모임은 자신과 타인에 대해 책임을 지는 불가사리의 생리를 본보기로 삼습니다: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는 책임자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이 책임자 역할을 합니다.... 이 모임은 마치 불가사리와 똑같은 기능을 합니다. 이 모임에 들어가면 여러분은 자동적으로 지도부의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하고자만 하면 여러분은 불가사리의 팔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알코올 중독자 모임은 새로운 회원이 들어오고 또 이전 회원들이 떠나고 하는 사이에 계속해서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이 모임에서 다른 것은 다 바뀌어도 한결같이 유지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중독에서 회복되는 원리, 즉 열두 단계 프로그램입니다. 여기에는 책임자가 없기 때문에, 회복의 과정에서 모든 이가 자기 자신과 다른 모든 이를 지켜 주는 데 책임을 집니다.... 이 조직에는 신청서도 없고, 아무도 이 모임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이 모임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빌은 이 그룹이 엄청난 성공을 이루고 온 세상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들 삶의 전환점을 얻기를 원했을 때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빌은 매우 중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는 거미의 생리를 닮은 모임을 만들어 그 모임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시나리오에서는 그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선택해서 신청자들이 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불가사리 생리를 닮은 모임을 만들 수 있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빌은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모두가 자기 자신과 다른 모든 이를 책임지는 그런 생리 말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결혼한 여성 동성애자입니다. 제 파트너와 저는 사랑과 자애를 지닌 여성들로서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여하며 죄책감을 갖지 않고 영성체를 하고 있고, 또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아이들을 둔 참 많은 부모들이 우리에게서 긍정적인 전망과 용기를 얻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들의 자녀들도 신앙 공동체에서 환영받을 가능성이 많다는 실질적이고 살아있는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Linda L. References Ori Brafman and Rod A. Beckstrom, The Starfish and the Spider: The Unstoppable Power of Leaderless Organizations (Portfolio, 2006), 35, 36–37.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Joel Muniz, untitled (detail), 2020,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코로나 팬데믹 시가에 푸드 뱅크에 음식을 전달해 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연대라는 단순한 행위 안에는 우리가 서로를 위해 나설 때 참된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조용하게 상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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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감의 문화를 창출해 내기!
하느님의 숨 2025.06.29. 04:22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28일 토요일 - 스물다섯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변화의 공동체를 창조하기
우리는 우리가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소중히 여겨지는 소속감으로 이루어진 문화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 싶습니다. - 그레고리 보일(Gregory Boyle), 소중하게 여겨지는 소속감 그렉 보일 신부(Father Greg Boyle)은 갱단-재활 단체인 홈보이 인더스트리스(Homeboy Industries)의 창설자입니다. 이곳은 우리가 모두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것, 즉 우리가 모두 하느님 안에 친족이라는 원칙에 따라 운영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누구도 아무에게 대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고히 해 주는 공동체와 그런 분위기를 창출해 낼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모두 하느님 안에서 친족임]의 아름다운 정의입니다.... 우리와 그들은 없고, 그저 우리만 있는 그런 관계성 말입니다. 이건 정말로 하느님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방송 프로그램의 패널로 출연하여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홈보이 인더스트리스가 따르고 있는 흔들리지 않는 두 가지 중대한 원칙에 대해 청중에게 말했습니다: 1) 모든 사람은 확고부동하게 선하다(아무도 예외 없이). 2) 우리는 서로에게 속해 있다(아무도 예외 없이). 그런 다음 저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두 가지 원칙을 끌어안는다면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복잡한 사회적 딜레마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잠깐 멈추었다가 계속 이어서 말했스니다. "예,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청중이 모두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폭소가 잦아들자, 저는 다시 조용하게 말했습니다. "예,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 생각(원칙)은 우리로 하여금 소매를 걷어붙이고 노력하게 하여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게 해 줍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정말로 후하게, 그리고 후회 없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새롭게 보는 법을 구축해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침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정말로 동정심(compassion)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방법 말고 분명한 위험에 처한 이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 엄청난 양극화 현상을 어떻게 해서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홈보이는 우리가 가장 빠른 치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요소들, 즉 좋은 진단, 관계적 온전함, 소중이 여겨지는 소속감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 우리가 관계적 온전함을 끌어안을 때 우리의 분열은 힘을 잃을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안에 있는 비밀스러운 온전함을 주의 깊게 찾아내기를 열망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이 소중한 얼에 조준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보시는 대로 봅니다. 우리 모임의 부회장인 벗(homie: 이 단체에서는 서로를 이런 호칭으로 부릅니다.) 스티브 아발로스(Steve Avalos)는 말합니다. "이런 얼로 구축된 곳은 안전한 곳입니다. 이곳이 바로 그들이 자기들의 마음을 볼 때까지 우리가 우리 벗들의 마음을 보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곳을 떠날 때 그들도 다른 이들의 마음을 봅니니다." 우리 벗들(homies)은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치유가 필요합니다. 저는 제가 치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이 홈보이에서 치유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References Gregory Boyle, Cherished Belonging: The Healing Power of Love in Divided Times (Avid Reader Press, 2024), 1, 2–3, 7.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Joel Muniz, untitled (detail), 2020,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코로나 팬데믹 시가에 푸드 뱅크에 음식을 전달해 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연대라는 단순한 행위 안에는 우리가 서로를 위해 나설 때 참된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조용하게 상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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