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한반도엔 칼 바람이 몰아쳤다.
1950년 11월 29일. 프랑스 보병 1,119명이 한반도의 남쪽에 당도했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5개월.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반도에선 맵싸한 포연이 그치질 않았다.
그 전투 행렬에 프랑스 청년 레몽 베나르(raymond benard)가 있었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 파리에서 약혼식을 치른 지 두 달 만에 한국전 파병 길에 올랐다.
그는 동방의 낯선 나라에서 굵직한 전투를 치러냈다.
낙동강·포천·연천 등에서 북한군에 총부리를 겨눴다.
공포스러운 전장에서 그를 달래주던 노래가 있었다.
한국의 꼬마 아이들이 일러준 ‘아리랑’이었다.
그는 “처음 ‘아리랑’을 들었을 때 구슬픈 멜로디 때문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고 했다.
그리고 반세기가 흘렀다.
레몽이 61년 만에 ‘아리랑’을 들으며 눈물을 쏟았다.
28일 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이승철 언플러그드 라이브 콘서트’에서다.
이날 공연장엔 그를 비롯해 프랑스 노병(老兵) 28명이 참석했다.
가수 이승철(45)과 레몽(81)이 맺은 특별한 인연 덕분이다.
둘의 인연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레몽은 당시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방한했다.
그 소식을 들은 이승철이 자신의 공연 DVD에 사인을 해 방한한 참전 용사 40여 명에게 선물했다.
그는 “대전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아버지도 6·25와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이셨다.
참전 용사들에게 각별한 고마움이 느껴졌다”고 했다.
며칠 뒤 레몽이 이승철에게 감사의 e-메일을 보내왔다.
이승철은 “파리에 갈 때 뵙고 싶다”며 답장을 썼고, 올 4월 실제 만남이 이뤄졌다.
아프리카 차드에 학교·보건소 등을 짓는 기부 사업을 하고 있는 이승철이 차드에 가는 도중
파리에 들른 것이다.
▶레몽 : 한국의 유명가수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를 돕고 있다고 하니 원조받던 나라에서
세계인을 돕는 나라로 성장한 것 같아 감격스럽습니다.
5월 말에 한국에 다시 갈 예정이에요.
▶이승철 : 5월 말에 서울에서 제 콘서트가 있으니 초대하고 싶습니다.
레몽이 문득 ‘아리랑’ 이야기를 꺼낸 건 그때였다.
“한국에서 전투를 치를 때 ‘아리랑’이란 노래를 배웠는데 콘서트에서 우리 노병들을 위해
불러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이승철은 “그렇게 하겠다”며 오케스트라 편곡을 한 ‘아리랑’을 별도 순서로 준비했다.
28일 밤 서울은 포근했다.
“전 세계의 참전 용사들께 이 노래를 바칩니다. 레몽 할아버지와의 약속입니다.”
현악기에 실려 흐르는 멜로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4,000여 객석이 순식간에 ‘아리랑’ 물결로 뒤덮였다.
이승철은 무대에서 내려가 레몽을 비롯한 노병들과 일일이 포옹했다.
레몽은 공연이 끝난 뒤 이승철의 손을 꼭 붙잡고
“내 몸 바쳐 지킨 나라가 이토록 눈부시게 발전해서 감사하다. 당신의 아리랑을 들으며
내내 울먹였다”고 말했다.
이승철은 “데뷔 26년 만에 가장 감동적이었던 무대였다. 나를 위해 노래하지 않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노래하는 삶을 살겠다”고 했다.
- 중앙일보 정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