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오려면 여러 가지 길이 있겠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건 열차일 것이다.
1910년에 준공한 부산역은 1층에 각 대합실과 매표실, 전산실, 역원실, 화물취급실, 식당, 욕실, 화장실을 두었고, 2층 이상은 호텔로 사용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승강장 상옥의 철골조는 한국철도의 효시라고 알려져 있다.
필자의 어린시절(5~8세)기억으로, 현재 부산역사 앞 넓은 공터에 당시에는 야시장이 열렸으며, 야시장의 최대 이슈는 서커스단일 것이다.
입구 앞에서 호객행위 하는 직원의 모습, 군데군데 야바위 꾼, 지금도 생생한 기억에는 넓은 원형 대형 대야 같은 곳에 물을 채우고, 약 60여 개의 칸막이를 만들어 대야 상단에는 각종 상품들이 올려져 있었으며, 대야 중앙에는 물방개 한 마리를 투입하는 설치를 하여 야시장을 찾은 사람들을 현혹 시키는 장사치들이 많았다.
즉, 당시 돈으로 100원을 내면 국자로 물방개를 떠서 대야 중앙에 설치된 원형 기둥에 넣으면, 물방개가 헤엄쳐 가는 곳에 놓인 상품을 가져가는 형식이었다.
값비싼 상품에 현혹되어 계속해서 돈을 지불하고 시도를 해보지만 큰 상품이 놓인 곳에는 물방개가 가지 않고 값어치 없는(눈깔 사탕 한 개, 건빵 등)곳으로 만 이동했다.
약이 올라 계속해보지만 결국 돈만 잃게 된 꼴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주인이 물방개가 좋아하는 냄새를 값어치 없는 칸막이에 발라두었던 것이었다.
서커스단은 현재는 동춘 서커스만 존재하는 걸로 알고 있다.
당시 서커스단 구경은 어린 필자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외 줄타기와 공중에서 이쪽저쪽을 오가며 날아다니는 모습은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쳐다봐야 했기에 아슬아슬한 광경과, 조련사들의 채찍 소리에 사나운 사자나 호랑이가 말을 듣는 모습, 외바퀴로 타는 자전거, 접시돌리기, 등을 맞대고 누운 채 항아리를 돌리는 모습 등등..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또 당시에 누구나 한 개씩 가져 봄 직한 장남감은 조그마한 말에 중앙에는 주름 잡힌 펌프 호수가 있어 길고 가느다란 호수 끝에 달린 손잡이에 힘을 가하면 공기가 전달되어 말이 움직이는 장남감이었다.
또한 여자아이들은 종이 인형이 유행했고, 남자아이들은 동그란 딱지가 유행했다.
아무튼, 당시 아이들의 놀이문화는 차차 설명하기로 하고 부산역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하고 넘어가야겠다.
필자가 5살 때로 기억된다.
음력 정월 대보름 전날쯤 되었을 것 같다.
엄마 손을 잡고 난생 처음 타보는 기차가 너무 신기했으며, 지금이나 그때나 부산에서 눈 구경은 힘든 시절이었으나, 당시에는 함박눈이 정말 많이 내린 것 같다.
소복소복 쌓인 눈이 밟으며, 저녁 6시 어둑할 무렵 기차에 올라 탔지만 서울역에 내릴 때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약 12시간이 걸렸다는 걸 알았다.
어머니께서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기차는 12시간 걸린다며, 그래서 십이 열차라고 부른다고 설명해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십이 열차는 서울↔부산을 오가는 노선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밝혀졌다.
어쨌던 시간은 약 11시간 ~12시간 소요되었으니, 오해의 소지도 있다고 본다.
가요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듣거나 부르면, 당시 어머니께서 가르쳐준 십이 열차가 떠오른다. 이 절 가사에 “서울 가는 십이 열차에 기대앉은 젊은 나그네...”라고 시작되는 부분이다.
1.4 후퇴 때 피난 내려와 부산이라는 낯선 곳에서 애환과, 경상도 사람들과 생활 속에서 쌓인 정을 뒤로 한 채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별의 부산정거장이라는 노랫말을 들으며 지금도 심금을 울린다.
부산역은 주로 경부선을 운행했으며, 다음역은 부산진역으로 경전선(마산방향) 완행이나, 동해쪽으로가는 동해남부선 열차의 출발지였다.
경전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김해(삼랑진역)를 거쳐 마산방향으로 향했으며, 삼랑진역은서 마산방향과 밀양역을 통과하는 경부선 방향으로 갈라지는 지점이다.
또한 동해 남부선은 해운대역을 거쳐 동해쪽으로 울산역까지 가는 기차가 주로 운행 되었다.
물론 더 나아가 태백이나, 동해쪽으로가는 열차도 있었다.
필자의 청소년 시기에는 주로 열차 맨 뒤쪽의 한량 전체를 독점 하다시피하는 이이들로 진을 치고는 통기타 소리와 야전(야외전축)이나, 대형 카세트를 틀어놓고, 친구들과 합창하면서 이용했던 시절이 있었다.
주로 일요일에나 공휴일에 남녀학생들이 모여, 삼랑진역 근처의 딸기밭으로 놀러 가곤 했다.
동해남부선을 이용하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광경에,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는 하얀 포말과, 갈매기들이 떼지어 바위 위에서 먹이를 찾는 모습들은 머릿속까지 시원하게 전달된다.
특히 마산이나 울산 쪽에서 부산 방향으로 돌아오는 열차 칸에는 아낙네들의 생선 바구니가 즐비하다.
부산에도 해산물이 많이 있지만, 주로 울산에서만 구할 수 있는 고래고기라든지, 마산의 대표음식인 아귀찜 재료인 아구를 주로 구입한 아낙네들과 산나물이나 야채(포항초로 유명한 시금치, 언양 미나리 등)들이 담긴 바구니가 진을 치고 있었다.
이렇듯 부산역은 수많은 사연과 애환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필자가 성인이 된 후에는 주로 서울로 출장이 잦아 토요일 막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침대열차가 큰 인기를 얻었다.
즉, 밤 11시 30분 전후로 출발하는 침대열차(주로 통일호)는 한, 두 객차가 전부 침대차로 객차에 오르면 승무원이 객차 통로 입구에 앉아 있다.
표를 보고 자리를 안내해 준 다음 표를 회수해간다.
이는 침대차를 이용하는 승객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내릴 역을 지나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역무원이 10분 전에 해당 승객을 깨워주기 위해서다.
침대는 상하(1~2층)로 되어있었으며, 하층보다 상층요금이 조금 더 싸다.
이유는 상층이 흔들림이 더하기에 그러했지만 필자는 약간 흔들림이 있는 상층이 좋아 주로 상층만 이용했다.
밤 11시 30분에 출발하면, 서울역에는 새벽 5시 전후에 도착한다.
서울역광장에는 없지만 부산역 광장에는 새벽열차가 도착하는 시각에 맞춰 나타나는 장사꾼이 있다.
주로 리어카에 따끈한 콩국(콩물)을 준비하여, 새벽의 쓰린 속을 달래주는 음식으로 인기 만점이었다.
따끈한 콩물에 가위로 먹기 좋게 자른 쫄깃한 인절미와 소금, 설탕을 넣어주면, 숟가락으로 먹다가 어느새 사발 채 마셔버린다.
필자는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침대차를 타기 전에 꼭 준비했던 것이 소주 한 병과 오징어, 그리고 ‘주간 경향’ 이나 ‘선데이 서울’ 같은 가십 기사나, 여성들의 야한 사진 등이 도배 되어 있는 잡지는 필수였다.
침대칸에서 몰래 마시는 소주 한잔과 잡지 속의 야한 인물사진을 보면서 어느새 잠이 들면 금방 부산역에 도착한다.
따끈한 콩물과 이어지는 사우나로 피로가 물러가고 오전 8시 출근하고 출장 보고하면 하루가 어느새 지나간다.
부산 갈매기 6부 다음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