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지유순
어릴 때 어머니 따라 간 교회당
동생과 나는 헌 옷으로 만든 걸레를 하나씩 들고
엎드려 달려가며 바닥을 닦았다
서로 먼저 달리려다
넘어지면 까르르 까르르
어머니 까맣게 그으른 호야를 닦으시고
우리는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달렸다
어머니 일손 멈추시고
그윽한 눈길로 우릴 보고 빙그레 웃으셨다
교회당 작은 창문으로 햇빛 길게 드리울 때
언뜻 그 빛 따라간 내 눈길에
어린 내 동생과 젊은 어머니의 미소가
행복으로 출렁거린다
검둥이의 맨발
지유순
오늘은 꽃 진 자리 정리했다
다리는 아프고
해는 벌써 서산에 걸렸는데
마당가에 있는 검둥이
산책가야 한다고 조른다
집에 들어가려다
낙엽이 수북한 길을
검둥이와 걷는다
사그락 사그락 소리를 내며 걷는
검둥이의 맨발을 본다
궁금해진 나는
슬며시 신발을 벗고 걷고 싶어졌다
사랑나무
지유순
거례리엔 사랑나무가 있습니다
늙어서 얼굴은 쭈글쭈글 합니다
손가락도 구부러졌습니다
그러나 의자하나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하루종일 철썩이며 말 걸어오는
북한강이 있습니다
저녁이면 강물에 긴 그림자로 누워
아픈 허리 두드립니다
의자는 그럴때면
오래 서 있어야하는 늙은 나무의 비애를
온 몸으로 받아줍니다
아무말 없이 받아줍니다
모성의 강
지유순
호주에 산불이 났다
휘몰아 치는 불길 속은 아득하다
산에 깃든 나무도 동물들도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렵다
코알라 한 마리
나무에 매달려 움직이지 않는다
손 발 꼬리도 타고 있다
온 몸이 다 타 버린대도
새끼 코알라를 버릴 수 없다
아침마다 인사를 나누는 모녀가 있다
아파트 주차장 승용차 뒷창에
“위급한 상황이 온다면 제 아이를 먼저 구해 주세요”
맑은 하늘에 갑자기 소나기 오듯
훅 눈 앞이 흐려졌다
오늘도 모성의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고 있다
폭우
지유순
폭우가 밤새 내렸다
잠들지 못하던 밤이 지나
아침이 오기전 서둘러 티비를 켰다
장면이 바뀌고
시뻘건 강물에 가슴까지 잠긴 소방대원의 등 뒤에서
구조되어 나오는 하얀 강아지
사력을 다해 등을 움켜 잡았다
공포에 질린 눈은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삼켜 버릴 듯 했다
하늘도 땅도 숨을 멈췄다
세차게 흐르는 벌건 강물을
소방대원과 강아지는 같은 무게로 밀면서
줄 하나에 매달려 구조되었다
지금도 내 속에서 살고 있는
오래전 그 눈 하나
사랑의 연못
지유순
터미널, 아침 햇살이 은가루처럼 퍼질 때
귀가하는 장병을 마중 나온
상사쯤 되는 군인이
뜨겁게 안아주며
등 두드려 준다
사람은 누구나
찰랑거리는 따뜻한 연못 하나
안고 있나 보다
내 코끝이 찡해지거나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 보면
내 마음에도
따뜻한 연못 하나 들이고 싶다
저들의 따뜻한 가슴처럼.
한 식구
지유순
한낮입니다
햇빛 쨍쨍 내리 쬡니다
동구레 마을 작은 계곡물
돌마다 감아 돌며 내려옵니다
높은 나무 위에서 그 물소리 가만히 듣던 매미가
맴맴-쓰르르 맴-쓰르르
물소리 흉내 냅니다
물방울처럼 떨어지는 계곡물 뒤쪽으로
엉금엉금 기어드는 고추 개구리
계곡물에 발 담그고 책 읽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 맞춤 합니다
우리는 한 식구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나도 낮게 허리를 굽히고
개구리처럼 오래 눈동자를 굴립니다.
희망버스
지유순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더 내려갈 곳 없는 버스 안
아침 햇살 유리알처럼 부서져 내리고
사창리에서 화천 넘어가는 푸른 시내버스
요양사로 일하러 가는 언니가 준 아삭이 고추 몇 개
계성리 할머니가 건네준 하얀 도라지 몇 뿌리
여학생의 차비를 대신 내 주는 한의원 간호사
올챙이 국수 팔러 가는 노부부의 힘겨운 함지를 내려주는
코스모스 같은 버스 기사의 웃음
파란 하늘을 닮은 버스 안 풍경이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곳
사람의 풍경 한가득 싣고 달리는 버스 안 풍경
아침 햇살이 유리알처럼 사랑을 싣고 구름 속을 달려간다.
장마
지유순
강물의
눈앞까지
하늘이
내려왔다
산도
물에 잠겼다
강물 위를
나는 새도
집에
앉아
있는 나도
물 속에 잠겼다
산책
지유순
북한강변 자전거길
강아지와 걷는다
코스모스 핀 길지나
강변으로 들어서면
강 건너 산 위 하늘에
희고 고운 저녁달
되돌아오는 길
강아지 먼저 뛰고
어스름 강물 위엔
산 그림자 드리워져
발걸음 재촉하는데
달님 함께 걷자네
풍경
지유순
라일락 꽃나무에
봄부터 참새소리
짹짹짹 날개짓에
향기가 묻어 있네
보랏빛 바람 불어오면
검둥개는 잠이 들고.
뻐꾸기 울거들랑
지유순
뻐꾸기 울거들랑
깻모를 부어라
어머니 살아생전
성화를 하셨었지
뻐꾸기 뻑뻑꾹 뻐꾹
애간장을 녹이네
어머니 못 오시고
뻐꾸기 보내셨네
해마다 이맘 때면
뻐꾸기 채근한다
내일은 열일 젖히고
깨 심으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