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이동하(소설가)
소설을 써야겠다고 작심한 것은 아마도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지 싶다. 직접적인 동기는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밀고 올라온다.
1950년대 중반, 낯선 도시의 빈민촌, 가장(家長) 부재(不在)의 극한상황 속에서 당신은 마흔의 수(壽)도 미처 채우지 못한 나이셨다. 훗날 나는 이 무렵의 궁핍한 삶을 중편 3부작 [장난감 도시]에 썼다. 지금 읽어보면, 내가 왜 중2의 나이에 ‘소설을 쓰겠다’는 결심을 그처럼 독하게 품었는지 실감된다. 문학을 알아서가 아니었다. 소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그랬다. 나는 단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비정한 세계에서,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성장기에, 나와 내 가족들이 겪어야만 했던 그 가혹한 체험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고, 이야기하면서 가슴속에 고여 있는 울음을 퍼내고 싶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위로받고 상처를 치유 받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은 다른 동년배 작가들에게도 공통적인 게 아닐까 생각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 동기와, 소박하지만 강렬한 이 욕망은, 두말할 것 없이 6.25전쟁의 소산이다. 어머니의 죽음 뒤에는 전쟁이 있었고, 전쟁의 배후에는 폭력적인 이 세계가 있음을, 골방에서 오직 소설쓰기에만 코를 박고 사는 동안 조금씩 깨쳐 갔던 것 같다. 대학재학중에 쓴 단편소설 <전쟁과 다람쥐]가 등단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 가능했다고 믿는다. 이 난폭한 세계에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하찮게 망가지고 있는가를, 다람쥐 한 마리의 운명을 빌려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전쟁처럼 엄청난 폭력은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전쟁은 한결같이 절대적인 명분을 치켜들기 때문에 더 지독하다. 대량살상도, 무자비한 인종청소도 그래서 정당화된다. 지난 7~80년대에 이르러 연작소설 [폭력연구]를 쓰면서 나는, 인간집단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이 이제는 인류 최대의 재앙이란 생각을 했다. 마침 폭압적 권력이 우리 사회를 숨 막히게 지배하던 시기였다. 폭력은 폭력을 확대 재생산하고, 마침내는 인간성 자체를 황폐하게 만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말하자면,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항 이데올로기나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회의와 전율을 어쩌지 못했다.
문학의 언어가 꼭 사랑을 담아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떡 먹듯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증오나 원한의 언어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구호와 시는 어떻게 다른가? 편을 가르고 담을 쌓고 완전무장을 요구하는 언어가 구호라면, 시는 서로 어깨를 겯고 담을 허물고 무장해제를 호소하는 언어이다. 왜 문학을 하는가? ‘오직 사랑을 위해서’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대신, 오늘 우리들이 일용할 양식처럼 너무나 흔하게 중독되곤 하는 그 증오와 원한의 수렁으로부터 헤쳐 나오기 위해 나는 소설을 쓰고 있노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본즉,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너무 거창한 소리들을 늘어놓은 듯싶다. 굳이 의미를 붙여 말하라면 그렇다는 얘기일 뿐이다. 내친 김에 고백하자면, 내가 굳이 소설에 매달리게 된 데에는 아주 단순하고 분명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소설을 쓰는 일은 이 세상에서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작업이라는 자각이 그것이다.
저 50년대의 극한적 가난 속에서 어머니를 잃은 다음부터 나는 삶의 근원적인 허무의식 못지않게 생존의 위기의식에 심하게 내몰렸었다. 어쩌면 나와 내 가족들이 졸지에 엄동설한의 길바닥으로 나앉게 될지도 모른다는 식의 강박증에 늘 시달렸던 것이다. 손이 어설퍼서 어릴 적부터 딱지 한 장 제대로 접지 못했고, 팽이 한 개 깎을 줄 모르던 얼뜨기였다. 평소 못 한 개 야무지게 박지 못하는 내 손을 가지고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내기가 도무지 가당찮아 보였다. 세상 사람들과 다부지게 맞서지 못하는 심약한 마음이 나를 책 속으로 숨게 했고, 망치 따위 일상적 도구조차 제대로 부리지 못하는 무력한 손이 원고지를 붙잡게 만들었다고도 생각된다. 어쨌거나 그것들 속에 코를 박고 있는 동안만은 저 도저한 허무의식으로부터도, 그리고 저 생존의 불안감으로부터도 조금은 놓여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을 써낼 수 있는 재주란 어쩌면 결핍에서부터 얻어지는 게 아닌가 하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남들은 흔히 가지고 있는 생활능력 같은 것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등을 떠밀려 세상에 나왔거나, 아니면 천방지축 어설프게 굴다가 일찌감치 엎어먹었거나, 그래서 결국은 달리 대책 없는 그런 사람들 처지 말이다. 이런 이들에게 소설은 대리만족과 함께 약간의 보상을 얻기도 한다. 나는 중2 이래 단 한 번도 진로를 두고 고민해본 적이 없다. 문학에 대한 신념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탓이었다. 그나마 내가 매달려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일이 소설쓰기였던 것이다. 나라고 왜 다른 길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겠는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보면 소설쓰는 일이란 것도 생업을 위한 다른 일들, 일테면 농사를 짓거나 운전을 하는 일들과 그다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한 번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30년 넘게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오는 동안 나는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감정에 늘 부대껴온 듯싶다. 열등감과 자부심이 그것이다. “나는 왜 남들처럼 삐까번쩍하게 살지 못할까?”라는 열등감과, “그래도 덜 속물 아니냐”라는 자부심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해 왔던 셈이다. 그런 중에도 오늘까지 나를 지탱해준 것은 후자이다. 소설을 쓰고 문학을 한다는 행위가 별나게 의미심장한 것은 아니라고 치자. 그래도 정신적 가치를 소중히 하는 사람 아니냐, 순수를 추구하는 사람들 아니냐 하는, 그런 자부심을 껴안고 살아온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믿음도 잃어버린 듯싶다. 남은 것은 뿌리 깊은 열등감뿐! 내 안에서 한사코 껄떡거리고 있는 속악한 욕망들을 더 이상 숨기거나 다스리기가 어렵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누구보다 더 속물적이고 몰염치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면서도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면, 어느새 저 젊은 날의 문학적 열정도 순수도 다 잃어버린 채 빈 껍데기만 남아있는 기분이다.
이순(耳順)의 나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요즘 들어 종종 자신에게 던져보곤 하는 물음 중 하나다. 불혹(不惑)과 지천명(知天命)을 지나온 나이가 그것이라면, 이순이란 어떤 말에도 감정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뜻이지 않는가. 하지만, 이순의 문턱을 넘어서고 본즉 거기 가려져 있던 다른 의미가 알밤처럼 또렷이 만져진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라는, 다시 말해 당위를 가르치고 있다는 깨달음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시야가 좁아지고 고집이 세지며, 분별력은 떨어지고 낯가죽은 두꺼워지는 것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곧잘 벌컥벌컥 화를 터뜨리곤 한다. 자신을 돌아볼 줄도, 적절히 제어할 줄도 모르게 되는 것, 그것이 늙음이라면 ‘이순’의 교훈은 바로 “순해지고 또 순해지라!”는 죽비소리가 아니겠는가 싶다. 돌아보면 나의 소설은 전쟁의 상처였고, 이 폭력적 세계에서 내가 탄 추위였다. 그것은 또, 생존의 불안과 강박증의 산물이었고, 한심하고 초라한 자화상그리기였다.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예나 지금이나 문학은 자기 삶을 돌아보는 작업이다. 특히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곰곰 되새김질함으로써 자아와 세계를 성찰하고자 소망하는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세계는 여전히 난폭하고 비정하며, 나는 또 너무나 자주 그리고 깊이 상처받고 전율한다. 문학에 대한 열정도 순수도 거덜난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도 한사코 소설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