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미로
서울은 언제나 거대한 미로처럼 느껴졌다. 끊임없이 얽히고 설킨 골목길과 빌딩 사이로 사람들은 쉼 없이 움직였고, 그 사이에서 지나는 하루는 어딘가 휘몰아쳐 갔다. 지하철에서 내려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 섞여 있다 보면, 나는 때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잊곤 했다.
지민은 서울에 온 지 이제 2년이 되었다. 그가 처음 이 도시로 발을 들였을 때, 서울은 그에게 한없이 거대하고 복잡해 보였다. 그리고 그 복잡함 속에 자주 길을 잃곤 했다.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지나가고, 도시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변화하는 듯 보였다.
"서울에 오면 달라질 거야." 지민은 고향에서 서울로 이사할 때, 스스로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현실로 다가왔다. 서울은 그에게 무한한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해주었지만, 동시에 깊은 외로움과 고독도 선사했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지민은 늘 같은 풍경을 본다. 고개를 숙인 사람들, 스마트폰 화면에 몰두한 이들, 피곤한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 그들 모두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지만, 마치 한 덩어리처럼 움직이는 군중 속에 묻혀 있었다. 지민도 그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겠지." 그는 습관처럼 중얼거리며 지하철 문이 열리자 인파 속으로 몸을 맡겼다. 회사는 을지로에 위치한 작은 스타트업이었다. 늘 바쁜 일정에 시달렸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끝없이 이어졌다. 업무는 쉴 틈 없이 몰아쳤지만, 정작 그의 마음속에는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점심시간, 회사 동료들과 함께 나간 식당에서 지민은 무심코 창밖을 내다봤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지민의 시선이 한 여자에게 멈췄다. 그녀는 창밖 건너편에서 서성이며,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긴 머리가 바람에 흩날렸고, 그녀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서려 있었다.
"저 사람도 나처럼 서울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걸까?" 지민은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지민 씨, 무슨 생각해요?” 동료의 물음에 그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아, 아니에요. 그냥… 잠깐 멍 때렸어요.” 지민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다시 음식에 집중하려 했지만,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저녁, 퇴근 후 지민은 혼자 강변을 걷고 있었다. 서울의 밤은 화려했지만, 그 화려함 속에서 그는 더 큰 외로움을 느꼈다. 한강은 언제나 그에게 위안이 되었지만, 오늘따라 그 강마저도 차갑게 느껴졌다. 강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치며 지나갔고, 도시의 불빛들이 어두운 물 위에 반사되어 깜빡였다.
"서울은 왜 이렇게 복잡할까?" 그는 혼잣말을 하며 강변에 앉아 있었다. 이 도시는 그에게 끝없는 선택과 가능성을 제공했지만, 정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미로 속에서 헤매는 기분이었다.
그때, 누군가 그의 옆에 조용히 앉았다. 지민이 고개를 돌리자, 낮에 봤던 그 여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여기도 자주 오시나 봐요?"
지민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끔 와요. 여기가 좀 마음이 편해져서요."
그녀는 한강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저도 그래요. 이 도시가 너무 복잡해서 가끔 숨이 막힐 때가 있거든요."
지민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말이 너무나도 자신의 마음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서울에 오신 지 오래되셨나요?" 지민이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도 얼마 안 됐어요. 한 1년 정도? 아직도 적응 중이에요. 처음엔 이 도시가 너무 차갑게 느껴졌거든요."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이 도시는 너무 커서, 가끔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게 되죠."
그녀는 미소 지었다. "하지만 가끔 이런 곳에서 쉬어가면 괜찮아지더라고요."
둘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강물을 바라봤다. 도시는 여전히 번쩍였고,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왔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그들이 느끼는 고독이 조금씩 사라지는 듯했다. 지민은 그녀와 함께 이 도시에서 길을 잃었지만, 그 미로 속에서 서로의 존재가 작은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느꼈다.
서울의 밤하늘은 여전히 흐리고, 빌딩 숲 사이로 이어진 복잡한 길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그 미로 속에서 지민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