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라디아서 4장 12~20절) - 부모의 마음으로 권하노니
사도바울은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갈라디아 교회에게
자유를 얻게 하려고 복음을 전했는데
다른복음의 유혹에 넘어가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으려 한다고 책망합니다.
율법은 복음을 믿게 하기 위한
초등학문에 불과하며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마치 이 모습은 광야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 속해있는
모습과 같아서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하고
복음을 상징하는 여호수아에게 속해야만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는 모습과 같습니다.
이렇게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자유를 주려고 복음을 전해 주었는데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려 하니
바울의 수고가 헛될까 두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죄의 종으로 살던 바울이
복음을 믿어 자유롭게 된 것처럼
갈라디아 교회도 자신과 같이 되길 원한다고 말하는데 ....
본문 12절을 보면 ....
갈4: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먼저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와 같이 되었다는 것은
사도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택함을 받아
이방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도바울을 이방인의 사도 삼았다고
갈라디아 2장 8절은 말합니다.
갈2: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이렇게 이방인의 사도로 택함을 받은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러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18~22절을 보면 ....
고전9: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다른 사도들은 사례비를 받고 복음을 전했는데
사도바울은 사례비를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하자
고린도 교회가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도 이와 동일하게 말씀 전도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진리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외적인 모습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모습을 보고
진리와 비진리를 판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모습이 고린도 교회의 모습이었는데 사도바울이
사도의 권리를 쓰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해 많은 영혼의 생명을
구원하려고 스스로 자신을 성도을 섬기는
종으로 생각하며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종으로 생각하며
복음을 전한 모습을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9: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은 유대인을 말하는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복음 안에 있지만 율법 아래에 있는
유대인의 모습으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고전9: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율법 없는 자는 이방인을 말하는데 이방인을 구원하려고
이방인의 모습으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고전9: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전9: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사도바울은 한 영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많은 사람의 종의 모습이 되어 복음을 전한 것은
몇 사람이라도 전한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복음을 전한 사도바울의 모습이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며
너희들도 나와 같이 되길 원한다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알지 못할 때는 예수교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옥에 가두는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알고 난 후에는
생명처럼 여기던 율법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빌립보서 3장 6~9절은 말합니다.
빌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복음을 알기 전 바울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율법을 온전히 지키고 있으므로
당연히 구원받은 자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난 후에는
생명처럼 여기던 율법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빌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복음을 알고 난 후에는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복음을) 믿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율법을 버리고 십자가만 꼭 붙잡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과 같이 초등학문에 불과한
율법으로 돌아가려 하지 말고
십자가만 꼭 붙잡고 살아가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게
복음을 전할 때의 모습을 이렇게 말합니다.
갈4: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갈4: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진리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외모나 자신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말씀만 듣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병든 몸으로 어렵게 복음을 전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병든 몸을 추정할 수 있는 곳이
고린도후서 10장 10절의 말씀입니다.
고후10:10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사도바울은 글을 잘 쓰는데 말이 시원하지 않다는 것으로
어떠한 장애로 말을 더듬었던 것 같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10절은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12: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사도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다는 것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장애가 되는 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데 장애가 되는 병을 치료해 달라고
여호와께 세 번 즉 기도할 만큼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의 병을 치료해 주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 이유를 바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후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입에서 나오는 복음의 말씀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외모나 언변이
생명을 살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의 육체의 약함을 기뻐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이어지는 10절은 말합니다.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강한 상태에서
좋은 언변으로 복음을 전하면 듣는 사람은
복음 전도자를 바라보게 되지만
약한 상태에서 복음을 전하면 듣는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만 바라보게 되어
생명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으로 사도바울은
오히려 육체의 약함을 기뻐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갈라디아 교회가
병든 바울의 모습을 바라보지 않고 그 입에서 나오는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때에 갈라디아 교회의 모습이 이러했다고 말합니다.
갈4: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갈4: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갈라디아 교회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정말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으로 자신들의 눈이라도 빼서
주려는 것처럼 열심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열심을 어디 가고 다른복음에 유혹되어
바울을(복음을) 원수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이 그렇게 열심을 내어
다른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것이라고
이어지는 본문 17절은 말합니다.
갈4:17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다른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열심으로 다른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신들의(사탄의) 종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잠언서 5장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데
3~9절을 봅니다.
잠5:3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다른복음을 전하는 음녀는 듣기 좋은
달콤한 말로 유혹하여 빠져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말합니다.
잠5:4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잠5:5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
잠5:6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하지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다른 복음은 우리를 돌이킬 수 없는
지옥불로 끌고 간다는 것으로 달콤한 유혹 때문에
지옥불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녀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잠5:7 그런즉 아들들아 나에게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잠5:8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 하라
그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잠5:9 두렵건대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
네 수한이 잔인한 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
진리를 따르고 있는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오늘 본문에서 복음을 듣고 받아들였던 갈라디아 교회에게
바울이 말하고 있는 모습과 같습니다.
다른복음의 유혹에 넘어가면 하나님 아들이 되는
영광을 잃게 되고 얻었던 생명도 잃게 된다는 것으로
복음을 버리고 다른복음을 따르지 말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본문 18~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4: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좋은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은 언제든지 좋으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일에 열심은 내지 말고
배척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나의 자녀라 말하는 것은
복음으로 낳았다는 뜻으로 바울이 전한 복음을
갈라디아 교회가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는 것은
어린 아이가 잘 자라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부모가 양육하는 것처럼
다른 복음에 빠지지 않고 장성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부모의 마음으로 진리를 떠나지 말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다는 것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것을 말하는데
사도바울은 자신도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하여
달려가고 있다고 빌립보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2~14절을 보면 ....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사도바울 자신은 이미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오직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달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빌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사도바울은 다 잊고 오직 생명으로
부활하기 위하여 달려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 사람들은 이 땅의 삶을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고 있지만
복음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영광의 몸으로 변하게 해주실 예수님만 기다리며 살고 있다고
빌립보서 3장 20~21절은 말합니다.
빌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3: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저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을 따르고 있지만
우리의 구원자는 오직 예수님이라는 것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 날만 기다리며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은
가죽옷인 예수님의 의에 옷을 입는 것을 말하는데
예수님의 의에 옷을 입음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로 여겨 주셔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에게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가져오면 아버지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축복을 받게 해준다는 말씀과 같은 의미인데
야곱이 한 일은 복음의 말씀을 상징하는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주는 일만 한 것으로
누룩이 없는 복음의 말씀만 듣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성령을 상징하는 어머니 리브가가 에서의 옷과 염소 털로
형 에서처럼 꾸며주어 아버지 축복을 받게 해준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도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하게 해주실 그 날을 소망하며
누룩이 없는 복음의 말씀만 붙잡고 살아간다는 것이며
또 갈라디아 교회도 오직 누룩이 없는 복음의 말씀만
붙잡고 살아가 구원받게 하려고
사도바울은 해산하는 수고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도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구원받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성을 높이고 있다고 본문 20절은 말합니다.
갈4: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다른복음을 따르면 구원받지 못한다며
오직 누룩이 없는 복음의 말씀만 붙잡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누룩이 없는 복음의 말씀만 듣고 먹음으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하여
믿음의 용사로 거듭나게 하심으로 구원해 주심을 잊지 마시고
오직 생명으로 부활케 해주실
그 날을 향해 달려가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