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민 - 아름다운 사랑
아무 것도 몸에 닿고 싶지 않은 한 여름의 날씨.
"아..."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던져버리고 단추를 풀어제꼈다. 베란다를 통해 들이치는 땡볕 탓에, 집도 달구어져 있었다. 허물 벗 듯 교복을 바닥에 팽겨치고, 냉장고 앞으로 걸어갔다. 엄마가 그 모습을 보셨다면 등짝을 후려맞을 일이지만, 그날은 대낮에 아무도 없던 귀한 날이었다.
별 내용물도 없는 냉동실을 괜시리 뒤적거린 뒤, 아이스크림을 꺼내들어 거실로 유유히 걸어갔다. 가는 와중에도 양말을 한짝씩 벗어가며 나의 자취를 있는 그대로 남겨갔다. 커튼을 대충치고 앉아, 선풍기를 켜고 자리에 그대로 주저 앉았다. 연두색 포장지를 벗겨서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고 나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 중3 다운 지저분함이군. 그리곤 자연스럽게 리모콘을 찾아 손을 뻗었다. 전원을 누르자마자, 누군가 떼인 돈 받으러온 듯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저 색기 왜 또 왔대.
벌떡 일어나서 현관으로 나가 문 앞에서 입술이 닿을 듯이한채, 저음으로 말했다.
"누구세요."
"나야."
"왜."
"아, 뭔 왜야 빨리 열어."
"싫은데."
"...너 난 줄 알았지."
문을 쿵하고 발로 차며 말했다. 아직은 조금 더 놀고 싶어서 안전고리를 걸고 빼꼼히 문을 열었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손에 무언갈 들고 있었다.
"야, 엄마가 느네집 갖다주래."
"올ㅋ"
"아, 더워 죽겠는데 귀찮게...."
난 테두리가 꽃으로 수 놓아진 접시를 향해 코를 들이밀며 킁킁 거렸다. 고소한 떡냄새. 역시 아줌마 솜씨는 알아드려야 한다니까.
"야, 그거 또 있냐?"
나를 향해 꽂혀있는 시선을 정확히 따라가보니, 내 손에 들려있는 연두색 아이스크림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갤 도리도리 저으면서도 받은 게 있으니, 말없이 문을 닫고 고리를 풀었다. 알아서 열고 들어오라 두고는 휙 돌아서서 냉장고로 향했다. 냉동고를 열어 연두색 포장지를 꺼내려다가 보라색 포장지를 꺼내들었다. 뒤를 돌자 바로 따라 들어온 듯, 바로 뒤에 서있었다.
"너는 이거지?"
"......"
뭐야, 얘 왜 이래.
"..옷 좀 입어. 넌 남자 앞에서 속옷차림으로 다니냐?"
"이게 뭔 속옷차림이냐. 그리고 가릴 건 다 가렸구만."
난 퉁명스레 말하며 아이스크림을 건네었다. 뭔가 찜찜한 듯한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건네받고는 이어서 잔소리를 했다.
"그거 바지냐?"
"속바지야."
"...넌 이러고 아무렇지도 않냐?"
"지저분한 게 싫으면 니가 걸던가."
"옷 말고, 너 말야."
"나? 나 뭐."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나를 갸우뚱하게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너 야하다고 지금."
"뭐, 뭐라는 거야...!"
날 놀린 건지, 뭐하는 건지 뚱한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들고서, 유유히 선풍기 앞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원래부터 그랬지만, 제집 마냥 편안한 모습으로 다리를 뻗고 있었다. 나는 눈치를 봤다. 좀 그런가. 그러고 보니 땀에 쩔어서 위에가 약간 비치는 것 같기도 하고.
난 바닥에 널부러진 교복을 슬며시 주워들었다. 살금 내 방으로 들어가려던 나를 보고 삐딱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이제 좀 의식하는 거냐?"
"..뭐, 뭐가."
"나 말이야."
그건 중3의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