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의 정의 1
溥根 / 최기복
형언할 수 없는 감정
그 절정의 절벽 위에서 노래를 부른다
손바닥 뒤집듯 뒤집히는 언어의 유희
침묵만 못 한 언어의 한계에
통증은 눈물이 되고
눈물은 또 하나의 자해가 된다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하늘은 자애로워도
돌아서
내려갈 길은 보이지 않는다
선택을 강요하는
파도의 유혹
내 청춘의 무덤이 여기는 아닌데
눈곱 낀 동공에 어른거리는 그림자
눈을 감아도
머리를 흔들어도
귀를 막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예정된 이별의 여정
사랑은
절절한 그리움 속에
겪어내야 할 증오다
2. 사랑의 정의 2
溥根 / 최기복
만신창이 짓이겨진
생애를 반추한다
도화지의 여백에 눈이 부시어
떨어뜨린 눈물방울의 삶이
전부인 사연
화려한 부활의 날갯짓은
그리움에 절여진 깻잎 같은 것
날개는 애초에도 없었다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이
나를 살게 했나
맺지 못하는 인연이
나를 울게 했나
인생 여정(旅情)의 그루터기에 앉아
붉게 타는 저녁노을을 향해
내뿜어 보는 긴 한숨
사랑은
긴 한숨의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혼자 웃는 미소
3. 사랑의 정의 3
溥根 / 최기복
아버지의 바람기에
게거품을 문다
다붙은 입술에 낀 백태
증오의 눈빛에 살기가 돈다
한평생을 사랑하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天壽를 다하지 못한 삶의
마지막 유언
애들아 너의 아버지 불쌍한 사람이다
4. 사랑의 정의 5
溥根 / 최기복
이별할 거면
사랑은 왜 해
이별은 동녘의 해가 되어
예언자의 주술이 되고
사랑은 잡기장의 낙서가 된다
구겨진 포도원의 파지가 된 희미한 기억
놓지 않으려는 처절
성경 위에 두 손을 모았던 약속의 잔재도
소멸의 윤회 속에 덧칠한 것이었나
가시면류관 속의 고통
벗어던지면 더 그악한 아픔
어찌할거나
세월 앞에 떳떳하지 못한 내 사랑을
창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별
사랑이 이별은 아닌데
5. 사랑의 정의 6 (이별)
溥根 / 최기복
야속하기만 한 결별
이유를 묻는 것은 사랑이 아니란다.
곡해도 사랑이고
오해도 사랑이란다.
진저리치는 시공의 굴레
알몸의 슬픔을
벗어 보려는 몸부림
그 한켠에 서서
우두망찰 지는 해를 본다
누구도 가야 할 길은
절연의 절규가 된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사랑 초의 노래
늦깎이 사랑의 미로에
꽃잎이 진다
그만하면 되었다
망각은 神의 소중한 선물이다.
6. 사랑의 정의 7
溥根 / 최기복
산다는 것은
쓰레기를 버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버리고 나면
유료비닐봉지에는
눈물 젖은 손수건과
피에 젖은 거즈 뭉치가 떠나기를 기다린다
새 살이 돋아도
상처의 흔적은
잔잔한 문학이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에게
질병을 묻지 말고
이별을 모르는 사람에게
사랑을 말하지 마라
덤으로 사는 세월의 뒤켠에 서서
버려진 손수건과
피 묻은 거즈 뭉치의 연민에
흐느끼는 유치
사랑한다는 것은
쓰레기를 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7. 사랑의 정의 8
溥根 / 최기복
꽃 잔디 붉게 깔린 하늘에 누워
익사 직전의 이카루스를 본다
가없는 욕망의 화신이 되어
태양을 향해 달려든 철없는 질주
녹색 본능의 파멸인가
자책의 이성인가
무표정한 파도는
여전히 거품을 입에 물고 있다
거룩한 침몰을 꿈꾸던 절제
절정의 순간에도 꿈을 꾼다.
종말을 향한 익사의 순간에도
접지 못한 꿈
사랑은
당신을 향한
당신의 꿈이다
8. 사랑의 정의 9
溥根 / 최기복
뜨락에 져 있는 산동백의
붉은 꽃잎을 밟는다
침묵하기에 더 붉은 전율
밟히는 매조키즘
짓밟는 새디스트의 표정에는
체념의 철학이 처절하다
흔적은 나약한 슬픔인가
먼 데를 돌아
고향 집 사립문에 들어선
탕아
어머니는 아무 데도 없다
먼지 자욱한 뜰마루에 앉아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고드름의 눈물을 본다
사랑은
상행 열차를 타러
새벽을 나서는
외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눈물이다
사랑은 홀로 선 산동백의
붉은 꽃잎처럼 붉은 것인가
처마 끝에서 떨어지고 있는
고드름의 눈물인가
9. 사랑의 정의 10
溥根 / 최기복
인생의 좌표가 되어버린
잡기장의 낙서
인생이라는 이름의 지평선에는
까마득하기만 했던 전설이
획정 지워지지 않은 채
점과 선은 모호하다
미로를 돌아 찾아온 시공의 헛간에
쌓인 잔해들
사랑은
앙상한 뼈마디의 구석구석에
고여 있는 눈물이다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밤을 새우는 속앓이다
청진기가 오진하는 동안
오작동의 이유를 묻기보다
잊기를 기다리다
깊은 골병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후회의 늪에서 통한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사랑은
마약이다
아니다 묘약이다
10. 사랑의 정의 11
溥根/ 최기복
상심한 별이 유성이 되어
밤하늘에 획을 긋는다
추락의 불꽃에 담긴 최후
짧은 유랑의 생애
사랑은
불꽃을 닮아야 한다
못다 한 사연이기에
더 애달픈 그리움
하여
그 불꽃은 더 처절하다
억겁의 시간 속에 유린되었든
위선과 오만을 태우고
강보에 싸인 순수의 원형을 찾아
밤하늘에 던지는 메시지
사랑은
일순의 정열로 삶을 마쳐야 한다
침묵은 언어의 화려한 종장이다
카페 게시글
덕향문학 통권 12호방
덕향문학 12호 최기복 시인 원고
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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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04 15:1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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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끄럽습니다
처절 이라는 단어가 나를 더 처절 하게 만드는 군요
사랑은 사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