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으러 먼길 떠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책으로는 나오지 않았지만(사실 나올지 안 나올지 미지수인 상태이지만)
그 동화 속에 '거꾸로 나이 먹는 나라'라는 챕터가 있었어요.
사람이 죽으면 가는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의 이름은 '주글주글나라'
그곳에 가면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설정이었어요.
예를 들어 87세에 돌아가시면, 일 년 지나면 86세, 85세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주인공 여자아이는 어찌어찌해서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강아지 앵두를 찾으러 그 나라까지 가게 됩니다.
그런데....
2009년.....'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가 나왔다길래,
이 영화는 도대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했을까, 궁금하여 얼른 가 보았답니다.
때는 1918년 1차 대전이 끝나던 날.....
아끼던 자식을 1차 세계대전 중에 잃은 맹인 시계공은 돌아올 수 없는 자식을 그리며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듭니다. 그 시계는 시청광장에 걸리게 되고, 바로 그 날 단추공장 사장 사모님은 한 아이를 출산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이하게 생긴, 말하자면 80세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었어요.
게다가 부인은 출산 후유증으로 그 자리에서 사망하게 되지요.
아들을 잘 키워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하지만 단추공장 사장 버튼씨는 괴물 같은 아이를 부둥켜 안고 온 거리를 헤매다 양로원 앞에 버립니다.

죽음을 앞둔 노인들만 사는 양로원에 버려진 괴물 같은 아이에게는 벤자민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노인들을 돌보는 흑인 하녀는 이 아이도 축복이라며 자식으로 잘 키웁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완전 감동했어요.
어떻게 괴물 처럼 생긴 아이를, 그것도 누가 갖다 버린 아이를 저렇게 키울 수가 있을까?

그리고 벤자민은 행동은 아이이면서, 겉모습은 노인인 채 그곳에서 자랍니다.
하루 하루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러다 양로원에 할머니를 뵈러 놀러온 데이지를 만나게 되고 첫눈에 반하지요.
하지만 마음은 통하지만, 외모는 전혀 딴판이 두 사람...
데이지는 발레학교를 나와 발레리나가 되고
벤자민은 17살이 되자 예인선을 타고 떠나고
20대에는 러시아에서 만난 영국 여인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2차 대전 속에서도 살아 남아 고향 뉴올리언스로 돌아와 첫사랑 데이지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벤자민은 그러는 사이, 자신을 버렸던 생부를 만나게 되고 단추공장을 유산으로 받게 됩니다.
나날이 젊어져가는 벤자민...
드디어 데이지와 꿈같은 나날을 보내지요.
벤자민이 49살, 데이지가 43살이 되었을 때,
벤자민의 정신적 나이와 육체적 나이가 일치하는 그 때 그들은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어요.

와, 브래드 피트.....
왜 사람들이 그를 보러 영화관에 몰려오는지 알게 되었다니까요.
그 사람 하나가 나타났는데도 온 영화관이 숨막힐 듯 조용해지는 지독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배우.....
그런데다 80노인 역할까지 망가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진정한 배우라고 할 수 밖에...
시간이 거꾸로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나는 끝까지 지켜봐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끝까지 만나지 못하고 평행선처럼 가야 하고,
결국은 한 사람은 아이가 되어 죽어가고
또 한 사람은 주글주글 노인이 되어 죽어가는 비극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점점 젊어져 드디어 갓난아기가 된 벤자민은
사랑하는 데이지의 품에 안겨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요.'하는 표정으로 데이지를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시간 앞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지독하게 슬펐던 기억도, 쓰라렸던 상처의 기억도, 못견디게 힘들었던 기억도
시간 앞에서는 스르르 사라질 뿐이다...
이 영화를 보며 늙어가는 것을 서러워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늙어가기는 하되, 멋지게 늙어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그게 참 어렵겠지요?
첫댓글 남들은 늙어가는데 혼자만 젊어진다는 것, 견딜 수 없는 형벌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