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0일, 국회에서 ‘공적 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의 마지막 회의가 진행되었다. 올해 5월 초 여야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후 최근에서야 활동을 시작한 이 기구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안 및 청년 근로자 지원 대책 등에 대한 보고를 끝으로 활동을 종료했다. 이로서 국민연금 문제는 여야(與野)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는데, 올해 초 사회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연금 투쟁을 돌이켜 본다면 정말 허무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교롭게도 사회적 기구의 마지막 회의가 있기 3일 전(前), 이러한 연금투쟁에 대한 평가와 투쟁의 원칙을 점검하는 토론회가 노동해방실천연대(준)의 주최로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열렸다. 발제 및 토론자로는 해방연대(준) 회원과 전교조 및 공공운수노조 등의 활동가 등이 참여했으며. “사회보장요구 투쟁은 계급투쟁”이라는 이태하 해방연대(준) 회원의 기조발제를 시작으로 약 20여명의 청중들과 함께 두 시간 반가량 진행되었다.
이태하 동지는 공무원연금투쟁에 대하여 자본주의의 핵심을 공격하지 않고 기존 프레임에 갇히는 바람에 정부가 조장한 재정안정화 논리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즉 자본주의 하에서 사회보장의 핵심이 계급모순에 있음을 말하지 못하고 노동자계급에게 있어 사회보장의 필요성을 설득하지 못하는 등 대전제를 세우지 못한 게 주된 원인이었단 것이다. 이에 대해 이민숙 전교조 교육선전실장은 이태하 지도위원의 기조발제에 공감하며 최소한의 목표를 합의하지 못한 상태에서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의 선택으로 투쟁이 후퇴하였음을 지적했다.
한편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사회보장요구 투쟁의 원칙이 맑스주의에 있다는 것에 동의하나 사회보장의 계획 및 통제를 누가 어떻게 하는 가에 보다 무게를 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소득대체율 인상합의를 발제자가 허구적이라 비판했지만 공무원노조가 처한 현실적 상황과 저출산 및 고령화 문제가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니기에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차원에서 방안을 찾아야 함을 첨언했다. 마지막으로 이근행 해방연대 회원은 공무원연금투쟁이 자유주의적 노사정 협조주의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평가하면서 자본가 및 국가의 비용 전담이 제시되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계급모순에 대한 학습과 의식적 자각이 선행되어야 하며 자본주의 문제를 인식하는 차원의 투쟁계획을 강조했다.
뒤이은 토론에서는 사회보장요구 투쟁에서 주로 언급되는 ‘사회공공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는데, 이태하 지도위원은 ‘사회공공성’이란 개념 자체가 “자본주의의 흥망성쇠에 노동자 노후가 달려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이라 비판했다. 또한 투쟁의 기본원칙과 관련하여 한 청중은 착취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이 이미 사상투쟁에서 지고 있는 것이며 절충보다는 원칙을 세워야 어려운 현실에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체적으로 발제자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차원에서 개별 주체들이 처해 있는 현실과 접근 방식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으며 무엇보다 앞으로의 사회보장요구 투쟁이 이전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데 모두 공감했다.
사회보장의 문제는 자본주의 모순과 땔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 생산수단을 둘러싼 소유관계 속에 자기 스스로의 삶을 유지하는 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처지는 개별의 특수한 상황이 아닌 계급모순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유럽의 복지국가를 가능케 한 것은 자본가의 선의와 시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격렬한 투쟁과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존재였으며 복지국가의 후퇴는 자본주의 위기의 고도화와 노동자계급의 후퇴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위기의 한복판에서 한국 사회의 사회보장요구 투쟁은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원칙을 재정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내고 덜 받기’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국가와 자본가들에 맞서 ‘그 모든 것이 노동자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강조하는 대의와 원칙이 바로 설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사회보장은 현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