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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이혼사유종합선물세트>의 줄거리:
이혼사유종합선물세트
(고전7:8~16)
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이혼사유종합선물세트>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주님께서 산상수훈 중에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마음으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
그리고 이혼에 관한 교훈을 주시면서 ‘여자를 버리면 이는 간음하게 함이다’라고 하는 말씀도 주셨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실제로 법정에 가서 이혼은 하지 않지만, 우리가 부부로서 살아가는 동안에 순간순간이라도 나쁠 때는 이미 마음에서 이혼을 한 사람이 아마 부지기수일 겁니다.
한 사람이 부부생활을 하는 동안에 이혼을 아마 벌써 수십 번, 수백 번 했는지도 모릅니다.
마음으로 이혼 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실제로 이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 실제로 간음한 것으로 하나님께 여겨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이혼은 아마 수백 번 수천 번 했을지 몰라요, 그렇죠?
이렇게 마음에 ‘뭐 저런 게 다 있어’라는 생각이 배우자에 대해서 들 때, 그 배우자는 사사건건 그의 생김새부터 하는 짓, 말 모든 게 다 내 마음 속에서 이혼의 사유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혼사유의 종합선물세트가 되는 거예요.
지난 9월 3일부터 6일간 인구 보건복지협회에서 전국의 기혼남녀 95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956명 중에120명이 남자이고, 836명이 여자였는데, 설문조사의 주제가 뭐였냐 하면, 3차 저출산 인식이었습니다, 3차 저출산 인식.
저출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라고 하는 설문조사였는데, 그 가운데 이런 설문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많이 접하는 설문인데,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 여러분 기대하세요.
남자는 45%가 다시 결혼하겠다, 꼭 다시 결혼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 여자는 어떨 것 같습니까 여러분?
여자는 19.4%만이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아! 놀랍지 않아요?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절대 지금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지 않겠다, 절대로 안 한다고 대답한 여성이 18.9%로 여성이 훨씬 많아요.
그러니까 다시 결혼하겠다는 게 남자가 45%, 여자는 19.4%에 지나지 않았잖아요?
죽어도 다시 결혼하지 않겠다, 그게 여자가 18.9% 남자는 7.5%.
확실히 남자들이 다시 결혼하겠다고 하는 경향이 강한 거예요.
그리고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여성이 52.8%, 남성이 50.8% 그렇게 조사됐습니다.
남자들은 왜 45%가 다시 결혼하겠다 그러고, 여자는 왜 19.4% 밖에 결혼을 안 하겠다고 할까요?
남자들이 여자를 훨씬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에요.
이 설문의 결과를 이렇게 해석하시면, 이 인구 보건복지협회에서 어떻게 해석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거꾸로 여자가 남자들을 훨씬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행복의존도가, 그러니까 내가 행복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 그 행복의존도가, 남자가 여자에 기대는 의존도보다 여자가 남자에게 기대는 의존도가 훨씬 크기 때문에, 지금 남자와 다시 결혼 안하겠다고 하는 여자가 많은 겁니다.
훨씬 더 남편에 대한 기대가 크고, 남편을 많이 사랑하고, 내 행복을 위해서 남편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남편하고 결혼 안하겠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남편이라는 존재가 뭐기에 도대체 한 여자의 일생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여자들이 남자에게 행복을 기대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남자들은 반면에, 밖에 자기 일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자보다 남자들이 배우자에 대해서 행복을 위해 기대는 의존도가 작은 거예요.
그러니까 다시 태어나도 결혼하겠다는 거예요.
결혼한 뒤에 여자가 내 인생에 차지하는 비중이 많지 않기 때문에, 쉽게 말하면 이 방원의 시조를 빌려 말하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는 겁니다.
밖에 나가서 직장에서 일하고, 자기 일하고 사업하고, 친구들과 만나서 술 마시고, 그러다가 뭐 이런저런 사회적인 취미생활이다 뭐다 해 가면서, 여자로 인해서 행복이 주어지는 그 의존도가 낮기 때문에, 남자들은 아휴~ 뭐 여자 그저 찻집에 가서 여자 앉혀놓고 차 한잔 마셔보고 그래봐야 조금 지나면 다 똑같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여자하고 결혼하겠다.
요런 건 줄은 몰랐지요?
여자들이 19.4%라고 해서 여자가 남자를 안 사랑하는 게 아니라, 훨씬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얘기입니다.
훨씬 더 행복의 의존도가 높다 보니까, 가만히 남편을 들여다보면 나를 행복하게 해 주기에는 너무나 모자라는 게 많은 거예요.
남자들은 이 아내가 아니라도 밖에서 이것저것으로 채워지는 게 많아요.
그러니까 여자를 많이 안 봐요.
그래서 그냥 그 여자하고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이 그 당시 고린도 교회의 배경 하에서, 고린도 교회가 처한 사회적인 분위기 안에서, 교인들이 안고 있는 이혼에 관한 문제를 지금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처했던 그 당시 문화배경과 너무나 다른 배경 속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지만,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결혼문제와 이혼문제를 바라보는 사도바울의 마음상태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마음의 상태에서 결혼이라는 문제와 이혼이라는 문제를 바라보느냐?
결혼이라는 산이 놓여 진 배경은 지금과 고린도교회가 다르지만, 그걸 바라보는 마음가짐은, 2000년 전에 사도바울 선생님이나 우리가 똑같아야 된다 이거에요.
왜냐하면 똑같은 주님의 십자가를 복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오늘의 본문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1절부터 7절까지의 내용을 간단하게 반복합니다.
우리가 읽지 않은 부분인데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앞부분에서는 결혼 일반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 그러니까 홀아비도 있을 수도 있고, 이렇게 구체적이 되는 겁니다.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입장을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독신으로 지내는 게 좋다,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앞에서 한 얘기를 반복하는 거예요.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얘기했습니까?
독신으로 사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어떻게 독신으로 살까 걱정했더니, 사도 바울이 마지막에 결론을 내린 게 뭐에요? 7절에서 ‘은사다’ 내가 독신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은사다’
그러니까 너희가 독신으로 살 수 없는 이유가 뭐냐 하면, 정욕이 불타기 때문인데, 정욕이 불탄다는 것은 그것이 결혼 전체의 의미를 다 커버한다는 뜻이 아니라, 독신으로 사는 은사를 주시지 않은 거라는 표식이다, 이렇게 우리가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이 상태에서 끝나느냐, 독신이 은사라면 결혼도 은사가 돼야 된다고 하는 말을, 행간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이미 결혼한 사람의 입장에서 결혼이 은사가 된다는 건 무슨 말이냐?
정욕이 불타기 때문에 해야 되는 그런 결혼은, 다시 말해 독신의 은사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결혼은 섭리 차원의 결혼입니다, 섭리.
그러니까 믿지 않는 사람 믿는 사람 모두를 다 포함해서 모든 결혼이 다 하나님의 섭리에요.
참새 한 마리, 두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결혼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 모든 문화, 모든 민족 상관없이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근데 이 섭리적 차원의 결혼은 죄에 지배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섭리하시지만, 인간의 본성이 죄 속에서 있으면서 결혼이 이루어진 겁니다.
이것이 참 결혼이 되려면, 은사적 결혼으로 바뀌어야 된다는 거예요.
어떻게 은사적 결혼으로 바뀐다고 말했습니까?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주어지는 구원, 그 구원 안에서 누리는 은총이 충만해 질수록, 섭리적 결혼은 은사적 결혼으로 바뀌어 갑니다.
자! 그러면, 이 구원에 의한 은총이 충만해지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
말씀과 기도를 통해 십자가의 주님과의 연합의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실질적으로 은총은 충만해 집니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 이 십자가복음을 통한 은총이 충만해 지면서 나타나는 일이, 섭리적으로 결혼한 사실이 은사의 결혼의 사건으로 바뀐다는 거예요.
그러면, 결혼이 은사적 결혼으로 바뀐다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하는 이 얘기가 오늘 이혼에 관한 가르침 속에서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결국 사도 바울의 요지를 말하면, 이혼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혼하지 말라는 말씀인데 정말 숨이 콱 막히는 말씀이 있어요.
보세요, 여러분.
우리가 읽은 부분 10절에서 주님의 명령을 기억하면서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지지 말고, 즉 이혼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갈라섰으면, 하여간 이 주님의 명령과는 다르게 어쨌든 갈라선 게 현실이 되었다면, 이제 또 다시 사도 바울이 얘기합니다.
갈라선 김에 독신의 영적 혜택을 한 번 누려봐라, 그대로 지내든지 또 안 되겠어서 다시 화합을 해야 되겠다면 그 남편과 화합해라.
그리고 남편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고, 이왕 버렸으면 독신으로 지내든지, 도저히 안 되겠으면 다른 여자, 새 여자 찾지 말고 이혼했던 그 여자에게로 돌아가라. 이게 숨이 꽉 막히는 겁니다.
오죽 했으면 이혼 했겠습니까? 근데 사도바울이 뭐라 그러냐 하면, 다시 돌아가라는 겁니다.
이혼한 뒤에 다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이혼했던 그 남자와 그 여자에게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이건 뭐 죽기보다도 싫은 일이지요.
얼마나 싫었으면 이혼했겠는데, 그 이혼한 여자에게 다시 가고, 이혼한 남자에게 다시 가라는 얘기입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독신으로 살겠다, 이런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자, 이렇게 사도바울이 말씀하고 계시는 이유가 뭘까요?
그 다음에 이혼의 사유들은, 믿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이, 믿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고린도 교회가 처한 그 도시의 분위기상, 믿지 않는 남자와 믿지 않는 여자가 얼마나 지저분했겠습니까? 그 문화에 젖어서 살았으니까.
그럴 때 이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 나를 부정하게 하지 않을까 염려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 두 가지 문제가 다, 이혼하지 말 것이며 이혼한 상태에서 결혼하고 싶으면 다시 돌아가라, 그리고 믿지 않는 배우자와 살 때, 헤어지지 말라고 하는 게 요지에요.
이게 바로 은사적 결혼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는 얘기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내게 은혜가 충만하게 주어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그랬죠?
살아계신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관계가 충만해집니다.
하늘에 계시지만,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이시지만, 내 마음에 볼 수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먼저 우선적인 현실이 됩니다.
마치 내 손으로 지금 돈이 두둑한 지갑을 만지면서 기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그런 존재로 내 마음에 가득하게 될 때에 나타나는 일이 뭐냐 하면, 아내와 남편을 바라보는, 쉽게 비유적으로 말하면 관전 포인트가 바뀌어 버립니다.
어떨 때 남편이 보기 싫고, 아내가 보기 싫을 때, 이혼사유 종합선물세트에요?
마음속에 이혼이 벌써 몇 번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말씀과 기도를 날마다 듣고 기도하고 함으로써, 하나님이 마음속에 충만하게 되는 은총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나 하면, 갑자기 아내를 바라보는데, 아내에게서 보였던 모든 이혼사유의 맹점과 단점들이 다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아내는 여전히 내가 이혼사유가 될 만하다고 생각했던 그 말과 그 행동과 그 삶의 패턴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가득 찰 때, 이상하게 아내에게서 단점이 사라져 버립니다.
아내에게서 그 전에 기분 좋을 때 봤던 장점도 사라져 버립니다.
인간적인 평가기준에서 보는 단점과 장점 모두가 다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이루어지고, 천국이 현찰처럼 내 마음속에 느껴질 때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여러분 다이아몬드가 무엇으로 이루어졌습니까? 탄소의 결정체입니다 다이아몬드가.
눈의 결정체가 반짝반짝 빛나고, 다이아몬드가 탄소로 결정되어 있으면서 반짝반짝 빛나듯이, 남편이 아내를 볼 때, 아내가 남편을 볼 때 갑자기 남편이 반짝반짝 빛나고, 아내가 반짝반짝 빛이 나기 시작합니다, 다이아몬드처럼.
저 여자와 저 남자가 나의 배우자가 됐다는 이 사실이, 갑자기 부각되면서 저 여자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 저 남자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의 뜻의 결정체라는 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결혼의 은사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나의 기호나, 나의 성격이나, 나의 호불호의 기준을 따라서 장점과 단점으로 구성되어 있던 배우자가, 갑자기 나를 사랑하시는 내 안에 충만하게 임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게 느껴지고, 십자가를 통해 느껴지면서 그 사랑의 뜻의 결정체로, 다이아몬드가 탄소 결정체인 것처럼, 하나님의 뜻의 결정체로 내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게 결혼의 은사를 받은 상태라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사랑의 뜻 때문에 지금 저 여자가 내 앞에 있고, 저 남자가 내 앞에 있다는 것이 보일 때,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이 경험 해 보셨습니까?
지금, 이혼사유 종합선물세트 덩어리인데, 그냥 마지못해 사회적 체면도 있고, 부모님 보기도 좀 민망하고, 자식들 보기에도 좀 그러니까 마지못해 지금 결혼생활 계시는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계십니까? 혹시 목사님도 그런 분 계실지 모르지요?
아직 결혼의 은사를, 섭리적인 결혼에 머물면서 결혼의 은사적 차원까지 이르지 못한 겁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십자가 복음으로 인해 주어지는 은총의 내용인, 영이신 하나님께서 충만하지 못하다는 얘기이고, 천국이 내 마음속에 충만하지 못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충만해지고, 천국이 충만한 상태에서 지금 사도 바울은, 결혼과 이혼의 문제를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독신이 은사일 수 있고, 그리고 행간의 의미로 박아둔 것이 뭐냐 하면, 결혼도 은사가 돼야 된다고 하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고, 결혼이 은사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얘기하시냐 하면, 이혼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해주고 계시는 겁니다.
이런 신비한 결혼의 은사거든요.
남편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의 결정체입니다.
탄소의 결정체인 다이아몬드가 빛나듯이, 하나님의 뜻의 결정체인 남편이 빛나게 보이고, 아내가 빛나게 보이는 이것이 바로, 다 은사로서의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다음에 말씀하시는 게 뭐냐 하면, 안 믿는 자와 헤어지지 말라, 불신자와 헤어지지 말라.
그들이 원해서 나간다면 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지 말라.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너로 인해서 거룩하게 됨이라.
왜 ‘거룩’이라는 단어나 나오는가 하면, 믿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고린도 도시문화에 젖은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이 생활 할 때, 내가 영적으로 부정해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하는데, 잘못된 생각이라 이겁니다.
왜 아직도 너는 그 사람으로부터 내가 무엇을 받을까를 생각하고 있고, 내 행복이 왜 상대방에 의존되어 있느냐 이겁니다.
너의 행복은 배우자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십자가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고,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으로 충만하고, 천국으로 충만해지면, 천국이 정말 손에 쥔 현찰처럼 느껴져서, 내가 천국을 내 기업으로 갖고 있고, 내 소유로 갖고 있다고 하는 충만함과, 천국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게 될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믿지 않는 너의 배우자에게, 그 천국을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충만한 가운데, 천국의 기운이 그에게로 들어가는 것이지, 그래서 그에게도 천국의 행복이 주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수 있는데, 왜 그를 내보내려고 그러느냐, 그러지 말아라.
그러니까, 그에게 의존하지 말고, 너는 하늘에 의존해서 행복하고, 네가 의존한 그 하늘의 기운이 그에게도 들어갈 수 있도록 하라.
그래서 자녀들도 거룩하여 진다는 말씀이 그 말씀인 겁니다.
부부가 천국으로 가득할 때에, 자녀들에게도 그 천국의 기운이 내려갈 것이므로, 자녀가 거룩해진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핵심은 뭡니까?
결혼과 이혼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2000년 전의 사도바울의 마음가짐이나 지금 우리의 마음가짐이 똑같아야 된다는 거예요.
사도바울의 마음이 우리가 똑같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뭡니까?
십자가에서 죽은 주님과 연합해서 세상에 대해 죽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을 향해서 삽니다.
산다는 것은, 하늘만을 소망하고 마음을 연다는 거예요.
이때, 성령님이 오셔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어떤 것보다도 더 현실적인 분으로 느끼게 해 주시고, 보이지 않는 천국을 내 손에 쥔 돈 보다도 더 현실적인 것으로, 내 기업으로 느끼게 해 주십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이혼을 바라볼 때, 이혼은 해야 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결혼의 은사가 주어지니까.
결혼에 은사가 주어질 때에, ‘다시 태어나도 이 여자와 결혼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이런 질문이 의미가 없는 거예요.
결혼의 은사가 주어지면, 어떤 여자랑 살고 있더라도, 어떤 남자가 지금 같이 살고 있더라도, 그 여자의 장점과 단점, 남자의 장점이나 아무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그 여자를 결정하고 있고, 그 남자를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보석과 함께 산다는 것을 느끼게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인 자의 생애 속에는, 이혼이라는 단어가 존재할 수가 없다는 얘기에요.
결혼의 은사를 십자가 복음을 통한 은총을 충만하게 받으시므로, 그 결혼의 은사를 통하여 결혼생활을 다이아몬드보다 더 반짝거리는 보석과 함께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십자가복음, 이 하나를 통하여 결혼생활 전체가 은사적 차원의 축복이 될 수 있음을 우리가 깨닫고, 오늘부터라도 내 마음에 십자가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천국을 충만케 할 수 있기 위해 기도하고, 말씀에 집중하게 하시며, 그럼으로써 이제까지 이혼사유 종합선물세트처럼 보였던 아내와 남편이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뜻의 결정체로서 다이아몬드보다 더 반짝거림을 발견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