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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1. 새 봄의 단짝 친구
새 봄이예요. 나뭇가지에 새 움 트는 3월이 온 거예요.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조르미와 잠자미는 3학년 3반에서 짝꿍이 되었어요. 세 번만 손뼉을 마주치면 마음이 하나 되는 삼삼학교에 다녀요.
"너 이름 뭐니? 내 이름은 졸음이야. 이름이 졸음이라서 그런지 꼬박꼬박 잘 졸려."
잠자미는 눈이 쪼그만 여자 얘가 졸음 이야기를 하니 우스웠어요. 그렇잖아도 고 조그만 눈을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졸음이 쏟아질 것 같아요.
"조르미라꼬? 히히, 내 이름은 잠잠이데이."
"풉, 잠자미라고? 너도 잠잠하며 잠 타령하는구나?"
조르미도 눈이 쪼그만 남자 얘가 잠 이야기를 하니 웃음이 쏟아졌어요. 그렇잖아도 고 조그만 눈을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잠이 쏟아질 것 같아요. 그래서 서로 마주보고 웃다가 조르미가 대단한 발견을 해 말했어요.
"야, 우리 이름말이야. 뭔가 통하는 게 있어. 그렇지?"
조르미 말에 잠자미도 대단한 발견을 해 말했어요.
"맞다 맞다. 우린 둘 다 잠자는 눈이다. 잠자면서 꿈꾸는 눈!"
잠자미의 대단한 발견에 조르미가 맞장구를 쳤어요.
"맞아, 난 잠 안 자도 꿈은 잘 꿔!"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며 지내는 동안 그럭저럭 서먹서먹함이 적어졌어요.
내일은 학부모님이 학교에 오시는 날이에요.
"내일 어머니, 아버지 안 모셔 오는 사람은 다들 집으로 돌려보낼 거예요. 알았죠?"
선생님은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며 말했어요. 처녀 선생님은 교문 앞까지 데려다 주며 한 번 더 확인시키며 말했어요. 무엇이든 분명하고 빈틈없이 하고 싶었거든요.
"돌려보낸다고? 나는 아예 내일 학교 안 갈끼다."
교문을 나서며 잠자미가 볼멘 목소리로 말했어요. 조르미는 깜짝 놀랐어요. 조르미가 마음속으로 한 말을 잠자미가 뱉아 놓았거든요. 그래서 잠자미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어요. 그러자 잠자미는 인상를 찌푸리며 설명을 해대었어요.
"우리 아버지는 학교 같은 데는 안 온다. 공부도 잘못하는 아들을 한 시간 내내 지켜보자면 얼마나 시시하겠노? 히히!"
잠자미는 아주 아주 시시하다는 듯이 말했어요.
그 말에 조르미도 용기를 내어 말했어요.
"우리 어머니도 학교 같은 데는 안 오셔. 딸이 곱하기 못해 헤매는 걸 한 시간 내내 지켜보자면 얼마나 따분하겠어? 그래도 넌 생각이 창의적이라고 과학 시간에 칭찬 들었잖아?"
조르미가 잠자미를 칭찬해주었어요.
"칭찬은 한 마디 듣고 엉뚱하다고 벌서기는 날마다 하고. 히히!"
그 말에 조르미는 목젖을 뒤로 젖혔다 고개를 앞으로 끄덕이며 크게 웃었어요. 조르미는 늘 엉뚱한 짓을 하는 잠자미가 나쁜 아이로 보이지 않았어요. 과학 실험할 때, 다들 알코올 램프에 불 켜기를 무서워 뒤로 물러설 때도 잠자미는
"그냥 해 보면 되지. 히히!"
하며 라이트를 들고 다가서서 불을 착 켰어요. 그때, 잠자미가 불 붙인 알코올 램프의 파란 불꽃이 멋져 보였어요. 잠자미 심장처럼 보였거든요.
"너, 라이트 불 잘 켜더라. 과학 시간에 말야. 그리고, 너 낙서장에 그리던 배, 그거 멋지던데. 혹시 너희 아버지 선장이니?"
조르미 말에 잠자미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어요.
"맞아, 우째 알았노? 우리 아버진 배 타고 세계를 다 돌아다니다. 가는 나라마다 좋은 선물은 다 사오지만 학교에는 못 온다. 히히!"
조르미도 어머니 자랑을 하고 싶었어요.
"우리 어머니는 돌아다니는 건 딱 질색이래. 숲속에서...... ."
한참 생각하다 다시 말했어요.
"그러니까 숲 속에서 나무 그림 그리고 나무 조각만 해. 나무를 무지무지 좋아하거든. 나보다 몇 배로. 그래서 학교에 못 오셔."
"히히! 어른들은 다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해. 그치?"
조르미는 잠자미 말이 그럴싸했어요.
"맞아, 맞아!"
맞장구를 치자 잠자미는 어른스럽게 말했어요.
"그러이께 우리가 이해해야 된다. 우짜겠노. 히히!"
이 번에도 잠자미 말이 맞다고 조르미는 고개를 크게 끄덕여주었어요. 호호 웃으며. 잠자미는 그런 조르미랑 더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요. 학교 앞 신호등을 건너고 공원길도 지났어요.
"너거 집 어디고. 놀러 가까? 히히!"
그 말에 조르미가 화들짝 놀랐어요.
"안 돼. 난 할머니가 힘들까봐 내가 어머니처럼 살아. 귀신 집 같다. 오지 마."
잠자미는 단 번에 알아차렸어요. 조르미 어머니는 숲 속에서 그림만 그리고, 조르미는 할머니랑 산다는 걸. 조르미는 어머니 대신 어머니처럼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까지 하는데 늘 할머니가 칭찬한다는 말까지 했어요.
'틀림없다. 할머니랑 사는 갑네. 어머니가 억수로 바쁜갑따.'
그래서 잠자미도 조르미에게 용기를 내어 말했어요.
"나두야. 내가 아버지처럼 살아. 귀신 집 같데이. 히히!"
잠자미도 할아버지가 힘들까봐 지붕에 비 셀 때 사다리 타고 올라가 비닐과 돌멩이로 지붕 덮은 이야기도 했어요.
'틀림없어. 잠자미도 아빠처럼 일하는구나. 내가 엄마처럼 일하듯이...... .''
조르미는 그런 잠자미가 믿음직해 보였어요. 그리고 스스로도 더 믿음직한 생각이 들어 어깨를 으쓱 올려보았어요.
"역시 우린 단짝이야!"
조르미와 잠자미는 손뼉을 탁, 마주쳤어요. 서로 어른처럼 씩씩하게 사는 걸 알았으니 더 친해진 느낌이었어요. 손뼉치기 딱 한 번 했는데도......
2. 신발 끈을 이긴 단짝
단풍잎이 온 산을 가득 메운 가을이 되었어요. 사랑의 손잡기 날인 토요일예요. 학반에서 선생님 마음에 드는 두 사람만 뽑아서 선생님과 놀러가는 날이지요. 조르미와 잠자미가 나란히 뽑혔어요. 선생님은 치마 대신 청바지를 입고 오셨어요. 오늘 따라 선생님이 아주 편해보여요. 선생님이 조르미 손을 잡아끌며 물었어요. 어디 가보고 싶으냐고.
"바다요. 잠자미 아버지 배 타고 다니는 바다요."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자미에게 물었어요.
"잠자미는 어디 가보고 싶어?"
"숲 속에요. 조르미 어머니 나무 조각하는 데요."
조르미와 잠자미는 서로 가보고 싶은 곳을 양보했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이상했어요. 두 아이의 말 뜻을 통 알아들을 수 없었거든요.
"그럼, 오늘은 조르미 어머니한테 가볼까?"
그 말에 조르미가 펄쩍 뛰었어요.
"안 돼요. 우리 어머닌 사람들 오는 걸 너무 너무 싫어해요. 그림 그리기에 바빠서...... . "
"그럼, 잠자미 아버지 배 타는 데 가볼까? 거기가 어디야?"
그 말에 잠자미가 펄쩍 뛰었어요.
"안 돼요. 우리 아버지는 지금쯤 미국, 영국까지 가 있을 끼라요."
선생님은 두 아이에 대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조르미와 잠자미에게 어머니, 아버지가 없다고 특별히 신경 써주려고 데리고 나왔거든요. 하지만 아이들한테 그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둘이 의견이 다르니 선생님이 결정한다며 천수봉으로 데려 갔어요. 두 아이는 선생님보다 먼저 산을 올라갔어요.
"얘들아, 너희들 다람쥐 같네. 같이 가자."
선생님이 숨을 할딱거리며 아이들을 쫓아왔어요. 그 말에 조르미와 잠자미가 기다려 주기로 했어요. 멈춰서니 발 밑에 온통 밤송이가 널려 있었어요. 조르미가 밤송이를 발로 밟아 벌리며 말했어요.
"이건 이렇게 까는 거야."
"야, 역시 대단한데. 숲에 사는 어머니 따라 다니며 배운 실력이제?"
잠자미가 짐작해서 말했어요.
'뭐? 조르미가 어머니 따라 다닌 걸 잠자미는 본 모양인데?"
선생님은 조르미에 대해 많이 모르고 있은 게 미안해서 잠자코 있었어요.
"뭘, 이까짓 것 가지고. 넌 아버지 계시는 바다에 가면 바닷가재 잘 잡을 거잖아."
"하몬(당연하지)."
잠자미가 씩씩하게 말했어요. 선생님은 잠자미에 대해서도 많이 모르고 있은 게 미안해서 잠자코 있었어요.
'조르미 어머니는 조각가라서 숲속에 살고, 잠자미 아버지는 선장이라서 배 타고 여행을 다닌다 말이지?'
선생님은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어요. 조르미는 어머니를 닮아서 연필을 잘 깎고, 잠자미는 아버지를 닮아서 공부 시간에도 잘 돌아다니는 것 같았어요. 두 아이를 찬찬히 살펴보던 선생님이 드디어 자신 있게 잠자미에게 가르쳐 줄 일을 찾아내었어요.
"잠자미 너, 신발 끈 풀렸어. 내가 묶어줄게. 이게 풀려 있어 밟고 다니다간 다치기 마련이라구."
선생님이 잠자미 신발 끈을 꼭 조이게 졸라매어 주었어요. 조르미 신발 끈도 졸라매어 주었어요. 그러고는 신나게 앞장서 산을 오르셨어요. 선생님이 모롱이를 돌아가자 잠자미가 뒤쳐지며 신발 끈을 느슨하게 다시 풀었어요.
"왜?"
조르미가 이상해서 물었어요.
"너무 쫄려. 내발이 좀 느슨한 게 좋다카네."
조르미도 따라 하고 싶었어요. 신발끈을 느슨하게 풀며 말했어요.
"맞아. 나도 느슨한 게 편해. 어른들은 우리가 신발끈도 못 이길 까봐 걱정이야."
"우짜노? 니가 그 무서운 신발끈을 이긴다니 멋져 보인데이. 히히!"
"나도 내가 기특해. 공주병인가봐. 이 병에 걸리면 약도 없다는데."
"까르르~ 팍 팍!"
조르미와 잠자미의 두 번째 손뼉치기였어요. 신발끈 하나 느슨하게 푸는 것, 고 작은 것에도 둘이 마음이 딱 맞았거든요.
3. 나무 나라 조르미
겨울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학교 교무실 현관 구석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와서 살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소원나무라는 걸 단번에 알아보았어요. 그래서 제마다의 카드에 소원을 써서 나무에 달았어요.
'우리 어머니께 쓰리 디 안경 선물 좀 해주세요. 하늘에서도 저를 잘 볼 수 있게. -조르미 올림 -'
조르미가 소원 카드를 나무에 달자마자 미술학원 선생님과 꼭 닮은 아줌마가 조르미 앞에 나타났어요. 조르미가 부탁한 그 쓰리 디 안경을 쓰고 말예요. 거기다, 조르미에게도 쓰리 디 안경을 코 위에 걸쳐 주었어요.
'혹시 우리 어머니?'
조르미가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는데 아줌마가 말을 걸었어요.
"아가, 내가 사는 숲속이 궁금했지? 자 여기 타렴."
파레트(그림 물감을 섞을 때 사용하는 물건)를 내미는 데 자세히 보니 조르미 어머니임에 틀림없어요. 어머니 손을 잡자마자 파레트가 양쪽으로 날개를 펴더니 현관에 서있는 조르미를 안아올렸어요. 어느 새 조르미는 숲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어요.
"어, 파레트가 비행기보다 더 빠르네."
"응, 난 파레트 날개야."
파레트 날개가 말까지 했어요. 순식간에 조르미 어머니의 숲 속 화실로 왔어요. 나무 그림이 가득 그려져 있는 캔버스가 한 가득 널부러져 있어요. 어쩌면 조르미가 다니는 미술 학원 선생님 화실이랑 꼭 닮았을까요?
‘우리 어머니가 화가야!’
조르미는 새삼 어머니가 자랑스러웠어요. 그리고 나무 그림을 이렇게 아름답게 그리자면 조르미를 챙겨줄 시간이 없었겠어요. 그래서 조르미가 어머니처럼 부엌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이해했어요. 잠시 멈춰 생각하는 사이 어머니가 사라졌어요.
"어머니이!"
부르자 마자 어머니가 손에 잡혔어요. 어머니랑 손을 잡으니 멋진 숲길이 보였어요. 쓰리 디 안경을 써서인지 갈수록 곧게 쓴 나무들이 점점 조르미 앞으로 다가왔어요. 그 뿐만 아니에요. 나무들이 빙 둘러서서 춤을 추고 있어요. 바람이 연주자고요. 휘익휘익 장단을 맞춰주고 있었거든요. 조르미도 온 몸으로 장단을 맞추며 나무들의 춤을 구경했어요. 나무랑 춤 추던 어머니가 말했어요.
"아가, 이리 와. 엄마랑 춤 춰 볼래?"
조르미는 체육시간에 배운 포크 댄스밖에 못 추지만 어머니 손에 이끌려 재미있게 돌았어요. 나무 사이로 빙빙 돌았어요.
"어머니, 나무가 춤추는 걸 처음 보았어요."
그 말에 춤추던 나무들이 한꺼번에 후루루룩 웃음을 터트렸어요. 마치 새소리를 닮았어요.
"후루루룩, 우리는 늘 춤추며 사는 걸."
그 말에 연주하던 바람도 거들었어요.
"우리도 늘 연주하고 사는 것 알아?"
이젠 빙빙 돌던 나무들이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어요.
"하긴, 사람들은 저네들만 춤추고 산다고 생각할 테지. 뭐."
"맞아, 숲 속에 사는 사람들이나 우리랑 춤추는 걸 알지. 뭘 알겠어?"
"맞아, 잘 난 체만 하지."
조르미도 나무들이 한 자리에 붙박혀 사는 기둥쯤으로 생각했으니 부끄러웠어요.
그때, 어머니가 조르미 손을 흔들며 물었어요
"어때? 엄마랑 춤 추는 기분!"
그 말에 조르미가 오래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어요.
"이렇게 춤추고 살면 조르미 안 보고 싶어요?"
그 말에 어머니 얼굴이 쓸쓸해졌어요.
"마술에 걸린 사람들은 보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 하는 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단다."
그러면서 더 깊숙한 숲길로 들어갔어요. 어머니 손을 잡고 들어가니 나무들이 모두 조르미 모습을 하고 있어요.
"내가 너 보고 싶을 때마다 새긴 너 모습 나무 조각이야."
약간 기울어진 나무 조각으로 새겨둔 조르미 모습이었어요. 학부모 학교 방문의 날 어머니가 안 오시기 때문에 학교 가기 싫다며 인상 쓰던 그 조르미 모습! 아직도 우산을 받쳐 들고 있는 나무 조각도 있어요.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뛰어가던 그 조르미 모습! 앞치마 두른 나무 조각도 있어요. 앞치마를 두르고 밥하고 설거지하는 조르미 모습! 완전히 허리를 반으로 구부린 나무 조각도 있어요. 잠자미랑 신발끈을 늦추느라 구부린 조르미 모습까지.
"야, 내 나무들이야."
조르미가 감탄을 하자 어머니가 조르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어요.
"아가, 미안하다. 나도 숲에서 나가 살고 싶지만 너를 낳자마자...... ."
어머니가 말을 끊고 얼버무리자 조르미가 얼른 거들었어요.
"지도 알아요. 할머니가 그랬어요. 저를 낳다가 정신을 잃었다고. 그래서 나무 관에 담겨 땅 속에서 잠자고 있다고."
조르미가 너무 잘 안다며 설명을 해댔어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다가 말했어요.
"맞다. 몸은 죽음이라는 마술에 걸려 잠자고 있지만 마음은 늘 너 곁에 있어. 이 숲 속에 온통 조르미 너 모습을 나무로 조각 해놓은 것 보면 알겠지?"
조르미는 엄마 말에 눈이 뜨거워졌어요.
"나랑 같이 살면 안 돼요?"
"마술 때문에 숲을 나갈 수 없구나. 여기서 나무에 너를 새기며 내 기도를 불어넣는 일만 이 너를 지켜주거든."
조르미는 코도 멍멍해졌어요.
4. 바다로 갈 잠자미
"야, 조르미! 우나. 니?"
잠자미가 옆에 와 조르미 어깨를 흔들어 대었어요.
"칫, 울긴. 왜. 내가 울보 애기로 보여?"
조르미가 둘러대었어요. 그 바람에 조르미가 쓰고 있던 쓰리 디 안경도 사라져 버렸어요.
'칫, 거짓말 하면 피노키오는 코가 길어진다고 하더니, 그깐 거짓말했다고 안경을 벗겨 가 버렸네.'
조르미가 툴툴대었어요.
"조르미야, 난 니 카드 안 읽어봤데이. 히히!"
그렇게 말하는 잠자미 얼굴을 보니 조르미 카드 속 내용을 읽어본 게 분명해요. 그래서 잠자미 귀를 잡아당겨 속닥거렸어요.
"우리 어머니가 하늘에 있든, 땅에 묻혔든 소문내면 너랑 안 놀아."
조르미가 벼르자 잠자미도 조르미 귀에 대고 속삭였어요.
“우리 밖에 나가 놀래?”
“그게, 뭐 비밀이라고?“
조르미는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꺼내고 실내화를 갈아 신으면서도 궁시렁거렸어요. 둘은 학교 운동장 구석으로 갔어요. 겨울 햇볕이 포근해서 좋아요. 잠자미는 둘레를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없자 말했어요.
"실은 우리 아부지도 바다에 묻혔제."
그러면서 천안함(2010년 북한이 바다에 빠트린 남한의 배) 사고 때 아빠를 잃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야, 그러고 보니 너가 그리던 그 배,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던 천안함 맞지? 바다에서 잠자던 천안함!"
잠자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비밀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아버지를 태워갔던 천안함은 건져 올렸는데 아버지는 아직도 바다에서 잠잔다는 이야기며, 천안함을 그리는 건 잠자미가 커서 해군이 되어 아버지를 꼭 찾으러 갈 거라는 것, 그때 타고 갈 배를 지금부터 설계하는 거라는 것도 전부 다 말해 주었어요.
“너는 꼭 해군이 될 거야. 너네 아버지, 바다에 살고 계신다고 생각해라. 고래를 타고 아주 깊은 바다 속을 탐험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도 멋져.”
조르미는 바다로 갈 잠자미가 멋져 보였어요. 조르미도 엄마가 화가였는데 조르미를 낳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 조르미도 커서 화가가 될 거라는 이야기까지 했어요. 조르미 눈에 고인 눈물을 보면서 잠자미도 눈을 섬벅거리며 말했어요.
“너도 엄니가 숲에서 멋진 그림 그리고 계신다고 생각해. 엄청 보고 싶은 게 문제이긴 하지만...... .”
둘이는 마주보고 눈을 섬벅거리며 웃었어요.
"야, 우리 손뼉치기 할래?"
조르미 말에 잠자미도 두 손바닥을 활짝 펴 들었어요.
"탁탁, 탁탁탁!"
조르미와 잠자미가 다부지게 자라날 각오를 다지는 소리였을까요? 확실한 건, 손뼉 마주 치기 세 번째였어요. 마음이 하나 되는 손뼉치기, 진짜 친해진 느낌!
200자 원고지 46쪽.
2010. 9. 24. 대구아동문학에 게재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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