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옥저와 동예
(1)군장국가 단계
①함경도 및 강원도 북부의 동해안에 위치한 옥저와 동예는 변방에 치우쳐 있어 선진 문화의 수용이 늦었으며, 일찍부터 고구려의 압력을 받아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다.
②각 읍락에는 읍군,삼로라는 군장이 있어 자기 부족을 다스렸으나 큰 정치세력을 형성하지 못하였다.
(2)옥저
①경제: 옥저는 어물과 소금 등 해산물이 풍부하였고 토지가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되었다. 그러나 고구려에 소금, 어물 등을 공납으로 바쳤다.
②민며느리제: 장래에 혼인할 것을 약속하면 여자가 어렸을 때 남자 집에 가서 성장한 후에 남자가 예물을 치르고 혼인을 하는 일종의 매매혼인 민며느리제가 있었다.
③골장제(세골장, 가족 공동묘): 가족이 죽으면 시체를 가매장하였다가 나중에 그 뼈를 추려서 가족 공동의 무덤인 커다란 목곽에 안치하였다. 또 목곽 입구에 는 죽은 자의 양식으로 쌀을 담은 항아리를 매달아 놓기도 하였다.
④옥저는 고구려와 같이 부여족의 한 갈래로 언어는 같았으나 풍속이 달랐다.
(3)동예
①경제: 동예 역시 토지가 비옥하고 해산물이 풍부하여 농경, 어로 등 경제 활동이 윤택하였다. 특히, 명주와 삼베를 짜는 등 방직 기술이 발달하였다.
②특산물: 특산물로는 단궁이라는 활과 과하마(조랑말), 반어피(바다 표범의 가죽) 등이 유명하였다.
③제천 행사: 동예에서는 매년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행사를 열었다.
④씨족사회의 유풍:
㉠족외혼: 결혼에 있어서 다른 씨족과 결혼하는 것을 엄격하게 지켰다.
㉡책화: 각 부족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다. 만약 다른 부족의 생 활권을 침범하면 책화라 하여 노비와 소,말로 변상하게 하였다.
⑤최근 강원도 동해시와 강릉시를 중심으로 철 ( 凸 ) 자 모양과 여 ( 呂 ) 자 모양의 집터가 계속 발굴되어 동예의 문화가 고고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
※ 옥저․동예 비교
공 통 점 | 차이점 |
내 용 | 내 용 | 옥저 | 동 예 |
∙왕없고 부족장이 다스림 ∙고구려에 복속, 조공납부 ∙연맹왕국과 고대국가 발전 X ∙해안가에 위치(특산물 풍부, 풍요한 삶) ∙부여씨족 일파 ∙부족장: 후․ 읍군, 거수, 삼로 ∙언어는 고구려와 동일하나 풍속은 달랐다. | 제천행사 | X | 무천 |
풍속 | 민며느리제(예부제) 골장제(가족공동묘) | 족외혼, 책화 호랑이 신을 섬김 |
특산물 | 어물, 소금 등 해산물 | 단궁, 과하마, 반어피 |
멸망 | 고구려 태조왕때(2C) | 고구려 광개토대왕때 |
위치 | 함흥평야 지역 | 강원도 북부지역 |
씨족 전통 유습
1)연맹
◆고구려 : 데릴사위제 ◆동예 : 족외혼책화 ◆삼한 : 두레
2) 고대(신라) : 화랑도․화백회의 CF) 골품제는 신라 발전기에 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