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은퇴가 꿈이지만 정년퇴직은 하고싶어 - 유인규
대학 졸업과 함께 입사하고 나서 딱 3년이 지나가던 겨울이었다. 조기은퇴를 결심한 것은.
일주일 중에서 최소 5일은 생계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은 (내 소중이가 흰수염고래가 되더라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확정된 미래가 너무 슬펐다.
처음부터 일이 아주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IT고객사의 각 현장에 배치된 입사동기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업무를 했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장애를 처리하는 당시 테크니션의 가장 큰 무기는 구글이었다. 검색만으로도 유용한 기술적 정보들을 꽤 찾을 수 있었고, 찾아낸 정보만으로도 장애상황의 문제들을 잘 해결했다. 구글이 없던 시절 선배들은 도대체 어떻게 일했던 걸까 하는 의견에 너나 할 것없이 모두 동의했다. 매니저는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믿을만한 장수 마냥 날 데리고 다녔다. 짧은 시간에 팀에서는 에이스급 대우를 받았고 뭐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주위의 기대치가 높아졌다. 높아진 기대치를 맞추기 위해 자발적으로 근무시간이 늘어났다. 그래도 주말을 반납하고 시스템 업그레이드 작업을 하는 것도 한밤중이나 이른 새벽에 장애 전화를 받고 조치를 위해 불려 나가는 것도 모두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내 가치를 올리는 중이고 이 부서는 나 없이 안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긴 노동시간도 견딜 만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를 유지하기에는 지속적인 헌신이 필요했다.
결국 3년쯤 지났을쯤 탈이 났고 허무감이 찾아왔고 매너리즘과 함께 무기력해졌다. 그땐 번아웃이라는 말이 없었다.
조기은퇴를 목표로 잡았다. 그땐 파이어족이라는 말도 없었다.
노동은 현실이고 은퇴는 꿈이다.
발을 딛고 서있는 현실에서 올려다본 꿈은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까마득했다. 현실은 투수가 투구를 하려고 서있는 야구 경기장의 투수 마운드 같았다. 한번 올라가면 하루에 100개의 공을 던져야 하는 마운드.
발 디딘 마운드를 박차고 올라 꿈을 잡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누가 로켓으로 쏘아 보내지 않는 한은. 아니면 최소한 새처럼 스스로 날아오를 수 있지 않고서는.
차곡차곡 마운드를 높여야 했다.
텐인텐이라는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가계부도 올리고 재무계획도 올리고 소소한 일상도 공유하던 LG에 다니는 직원이 운영한다는 다음카페였다. 맞벌이부부 10년에 10억 만들기. 조기은퇴를 위해서는 역시 돈이 필요했다. 재무계획표를 만들었다. 은퇴시점으로 45세를 목표로 잡았다. 목표를 달성한 미래를 눈 앞에 그렸다.
그래 일단 45세까지는 일하자. 그리고 그 다음에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돈을 더 많이 주는 회사로 옮겼다. 가계부를 작성했다. 지출을 관리하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삶의 가치에서 일의 의미는 여전히 중요한 요소였지만 그보다는 매년 계획한 숫자가 만들어지는 엑셀표의 기록이 중요한 기준점이자 체크포인트가 되었다.
일하는 시간은 덜 흥미로운 시간이 되었고 목표를 위해 달리는 지루한 날들이 이어졌다.
마운드에 아무리 마사토 흙을 가져다 부어도 마운드 높이가 높아지지 않았다.
(예전 비디오렌탈샵 테이블에 있던 스포츠카 모양을 한 비디오테이프 되감기 기계가 테이프를 처음으로 되감듯)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일이 예전의 일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일은 자아실현, 삶의 가치, 사회적 관계성과 같은 의미로부터 멀어졌다. 일은 덜 심각해지고 가벼워졌다.
일고 삶의 조화인 워크앤라이프밸런스, 받는 만큼 일하기, 조용한 퇴사와 같은 단어들이 일에 대한 사람들의 달라진 생각을 대변했다. 또한 달라진 분위기 속에서 자기착취와 가짜노동도 경계했다. 내가 마침 느꼈던 생각들이 유행하는 단어가 되었고, 내가 딱 말하고 싶었던 그 말이 문장으로 만들어졌다.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라는 책이 격하게 회사원들의 공감을 얻었고, '실어증입니다 일하기 싫어증' 같은 책을 사람들은 소비했다. 받는 만큼 일하고 쉰다는 일에 대해 당돌하게 바뀐 태도를 세상이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 같았다. 솔직하게. 금기 없이.
52시간 근무제도는 화룡점정이었다. 20년전 토요일 휴일제도보다 실제적으로 체감하는 여파가 훨씬 컸다. 마운드는 높아지지 않았는데 야구경기장 자체가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목표한 시간이 다가왔지만, 계획은 계획인 뿐이었다. 꿈은 여전히 저 위 까마득하게 매달려 있었다. 인정하기는 자존심이 상하고 뭔가 위안을 주는 설명이 필요했다.
아 은퇴하고 뭐할 건데. 버킷 리스트를 작성했다. 열 개를 훌쩍 넘어 스무 개에 가까운.
어디 보자. 한 두개 빼고 나머지는 다 회사 다니면서 주말에도 충분히 할 수 있겠네. 여가를 위해 굳이 은퇴가 필요한 이유를 털어냈다.
회사는 나름 고마운 곳이지. 심심하지 말라고 일도 줘 한달에 한번 수고했다고 월급도 줘 인사부에서 한번 걸러낸 사람도 양질의 동료로 줘. 회사는 전쟁이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다. 회사원이 젤 속 편하다. 스스로 회사를 경제적 안식처로 격상했다.
자아 찾기는 결정론적 관점의 산물이다. 자아는 시간 들여서 찾는 거 아니다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일하면서. 철학적 사유도 한통속일 뿐이었다.
비겁한 타협이었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인 정신승리식 타협이었다.
시간은 빠른 속도로 계속 흘러갔고 더 이상 높아지지 않는 마운드에 비해 야구장 자체는 조금씩 더 융기했다. 어라, 이정도면 한번 뛰어올라 볼만 하겠는데.
예전에 가까운 선배 누나가 나는 지금 당장 사고 쳐서 출산해도 노산이라고 했었는데, 내가 지금 당장 퇴사해도 조기은퇴는커녕 명예퇴직이란 말이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다.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무엇을 할까, 자의 반 타의 반 등 떠밀려서 그렇더라도 행복한 상상이 여기저기서 (봄날의 비비추마냥) 고개를 든다. 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줄줄이 쏟아진다. 그렇지만 맘이 아주 편하지는 않다.
예전에는 노동이 현실이고 여가가 꿈이었는데 떨어지는 노동의 모래시계 끝자락에 오니 아이러니하게도 여가가 현실이고 노동이 꿈으로 변하는 것 같다.
아니야, 정신차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자율출퇴근제다 재택근무다 이만큼이나 회사가 좋아졌는데 끝까지 계속 다닐만한 것 아닌가.
자아가 분열된 것도 아닌데, 상반된 두개의 꿈을 꾼다.
헷갈리고 있는 나를 (바리스타 과정에서 만난 은퇴해서 남성쿠킹사교클럽을 운영하는 머리가 하얀) 형이 말린다. 그냥 나가라고 할 때까지 계속 회사 다녀.
아니 저 할 거 많다니까요. 자기는 그렇게 고상하게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면서.
예상퇴직금이 얼마나 될까. 아 퇴직금 조회 시스템을 자꾸 열어보면 인사부에서 부서장에게 연락이 간다고 하던데. 옆자리 선배가 퇴직을 하기 3개월전부터는 야근을 줄기차게 해야 한다는 팁 아닌 팁을 준다. 퇴직금 계산에 유리하다나 뭐래나.
"좋은 프로그램 돌면 나 회사 그만둘 수도 있어." 아내에게 살짝 언질을 줬다.
"알겠는데 퇴사하더라도 건강보험은 어떻게 할지 해결하고 퇴사해. 계획을 딱 내놔. 시급제 요양보호사를 하든. 아는 친구 회사에 들어가든. 그 전까지는 안돼."
쉽지 않네.
(쓰기의과정) 일, 직업, 노동으로 한 편의 에세이 쓰기 ---------------------------------------
(스토리라인)
- 막연한 꿈 > 장벽 인식 > 현실과 타협 > 솔직해지자 > 결과는 자아분열 > 내 아믐 나도몰라 > 그래 결심했어 > 마주한 또 다른 현실
(생각의블록)
- 일이 예전의 일이 아닌 시대
- 뭐라도 될 것 같았다
- 본전생각. 두려움. 달콤한 휴일. 움츠려들다. 정신승리.
- 어떠한 제약도 없다면 무엇을 할까
- 넉넉하게 준비하는 일에는 끝이 없다
- 호연지기를 굳이 키우지 않아도 많은 것이 사소해 보인다
- 좋아서 뭔가를 배우고 나면 싫어지는 마법
첫댓글 한 분야에서 정년까지 근무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접 근무하신 경험을 풀어내시면서도 일과 노동에 대한 사유가 있어서 글에서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가계부 작성하시고, 계획적으로 알차게 살아오신 것이 눈에 보여서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퇴직을 앞두고 여러 생각들이 많으실텐데 글에서도 고민들이 느껴집니다. 은퇴이후에도 좋아하는 일 찾아서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응원합니다.
요즘은 이직이 경쟁력이라고 하긴 하지만 3번 이직 후 놀고 있는 우리 딸을 보면 짠하기도 합니다.
힘내세요.
글 중에 외래어와 ( )를 자주 쓰는 것은 몰입을 방해 합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