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밤/이호우(李鎬雨, 1912 ~ 1970)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 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보니
돌아올 기약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淨化)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趙雄傳)에 잠 들던 그날 밤도
할버진 율(律)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이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 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해설> 경북 청도(淸道) 출생. 1930년 “문장(文章)”지에 시조 ‘달밤’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단 1회로 이병기 선생에 의하여 추천 완료된 시인의 작품이다.
혼탁한 갈등과 억압의 세계를 벗어난 평화로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 준다. 낙동강에 배를 띄우고 평화로웠던 어린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달빛'처럼 아름답고 사랑으로 가득찬 세상을 기대하고 있다. 일제 하의 여러 시들에서 볼 수 있는 어두운 이미지의 '밤'과는 달리 이 시조는 머물고 싶은 밝은 이미지의 밤인 것이다.
제1연은 달밤에 배를 타고 나가는 상황을 제시했다. 제2연은 배를 저어가면서 보이는 강변의 정경을 표현한 것이다. 종장의 '돌아 돌아 뵙니다'라는 구절을 통해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제3연은 아득히 보이는 초가집들을 매개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평화롭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제4연에는 시인의 간절한 염원이 나타나 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라는 종장의 표현에는 달빛으로 온 세상이 정화된 달밤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간절히 소망하는 시인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현대시 목록, 인터넷)
* 이호우는 한때 시조시인들의 자성(自省)을 촉구하는 평론을 발표해 한국 시조시단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1940년 이병기의 추천을 받아 시조 《달밤》이 《문장》에 발표되어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발표한 《개화》 《휴화산》 《바위》 등은 감상적인 서정시 세계를 넘어서 객관적 관조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노래하고 영탄하던 종래의 시조와는 달리 평범한 제재를 평이하게 노래했으며 후기에는 인간의 욕정을 승화시켜 편안함을 추구하는 시조를 썼다.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