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는 원시반본하는 시대라. 혈통줄이 바로 잡히는 태니 환부역조(煥父易祖)하는 자와 환골(換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대순전경 6장 124절)
생명이란 과연 무엇인가?
생명은 창조되는 것인가 아니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인가?
하느님과 생명과의 관계는 과연 무엇일까?
생명이 나오는 원래의 자리는 어디일까?
이와 같은 끊임없는 생명에 대한 질문들은 인류가 이 땅에 살게 된 이후로 계속되어 왔습니다.
왜 이토록 생명의 창조와 성장 그리고 소멸에 대한 한없는 동경과 탐구열기는 식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름아닌 원초적인 생명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것입니다.
우리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또한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십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낳아주신 분들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리들을 직접 낳아주신 분은 아니지만 그분들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우리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또한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을 것이고, 그분들은 우리에게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나라는 생명의 근원이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고조할아버지 고조할머니로 올라가고 계속해서 5대, 6대, 7대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질적으로 얼굴을 뵙고 우리의 조상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범위는 정도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이후로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 이상은 아버지 어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우리의 조상임을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내가 있기까지는 수많은 조상들이 있었지만 살아계신 조상만 나와 관계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살기가 바쁘고 핵가족화 되어 가는 오늘의 현실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가족의 범위는 그리 넓지 않습니다.
편리함이 판치는 세상에서 한 집에 사는 가족을 넘어서 친족의 범위를 확대해서 생각하기를 싫어합니다.
단지 명절이 돌아오거나 관혼상제를 맞이하여야만 잠시나마 먼 조상을 생각하게 되고 기리게 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저 세상으로 갈 때가 되면 자연적으로 죽음을 생각하고 자신보다 먼저 이 세상에 와서 살다간 조상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처절한 삶의 고통속에 쓰라린 인생의 비애를 느낀 사람들도 자신의 삶이 있게 한 근원에 대해 고민하게 마련입니다.
잘되면 제탓 못되면 조상탓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잘되면 조상을 찾지 않고 무언가 인생에 쓰라린 고비가 있어야만 조상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너나 가릴 것 없는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속에서도 생명에 대한 가없는 외신경과 경이감 속에서 그 의문을 풀기위한 공부를 깊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나를 있게 한 생명의 근원인 조상에 대한 궤적을 찾아 보게 됩니다.
이와같이 조상을 찾는 경위와 계기는 다르지만 나를 낳아준 원초적인 생명에 대한 그리움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이는 선천적인 요인일까요?
아니면 후천적인 요인일까요?
아니면 선천과 후천적인 요인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일까요?
증산상제님은 이에 대한 해답으로서 '생명에는 원래 반시반본하는 속성이 있다'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생명이 맨 처음 나온 곳에 대한 향수가 우리들 마음 깊은 곳에 잉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은 항상 근본 생명자리를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이 지배하는 평상시에는 이러한 것을 잊고 살지만 어떠한 계기에 의해 무의식이 살아나면 인생의 의미를 반추해 보고 삶의 근본을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생명이 나고 들어가는 생명의고향을 간절히 그리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료출처:강증산의 참사랑을 펴는 태을도인의 길(上)
첫댓글 생명의 고향을 찾아서, 태을로의 원시반본, 알기 쉽게 깨우쳐 주시는 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히 쟐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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