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주름
부산 신도고등학교 2학년
박은주
어머니는 나이가 들면 거울 보는 것이 무서워진다 했다. 그런 어머니에 비해 당신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틈만 나면 거울을 꺼내 들여다보며 함박웃음을 지으시곤 했다.
할머니는 늙는 것이 무섭지 않으세요? 하고 물었더니 당신은 니 에미 봐라, 곱던 얼굴 다 삭는다고 벌써부터 울상인데 내는 와 안 무섭겠노, 하신다. 그러면서도 거울을 볼 때마다 연신 웃으시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거울만 보면 웃으세요, 하니까 내 앞으로 돌아앉으시더니 내 손을 가만히 당신 얼굴 위에 올려 놓곤 말하신다. 손가락 끝마다 깊은 주름이 만져졌다.
요, 요 있는 주름 보이나? 이게 느그 첫째이모 낳고 나서 생긴 주름이다. 갸가 거꾸로 서가지고 마 식겁했다 아이가. 그 고생을 하고 나니까 눈 밑에 주름이 하나 생겼대. 첫 아 낳고 벌써 늙는구나 싶어갖고 그때는 마 가슴이 철렁하드라. 근데 가만 보니까는 요 주름이라는기 그냥 생기는 게 아니데? 둘째이모 낳으니까 생기고, 느그 할아버지 차 사고났을 때 생기고, 요 밑에 요거는 언제드라, 맞다, 느그 엄마 시내 갔다가 잃어버렸을 때 난기다. 하여간에 그래, 보니께 무슨 일이 날 때마다 하나하나 늘어나는기라. 아, 이게 내 죽을 때 까지는 계속 늘어나겠다 싶었쟤. 근데 하나도 안 아숩더라. 이거 다 느그가 만든기고, 느그 추억 아이가. 주름살 사이마다 세월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생각하믄, 아예 좀 더 늘어났으문 싶드라.
보래이, 이기 니가 베란다에서 떨어졌을 때 생긴 거 아이가. 하면서 입가를 가리키시는 당신은 얼굴에 한 가득, 어떻게 저럴 수 있는 싶을 만큼 꼭 하회탈 같은 얼굴로 웃으셨다. 그러면 얼굴 가득 자글자글한 주름들도 같이 따라 웃는 것이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래이. 니 동생 우유 타 줘야 하는데 머하고 앉았노. 가가 젖병 좀 가져 온나, 문득 시계를 본 당신이 기함을 하자 나도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양반은 못 되는지 때맞춰 건넛방에서 동생이 소방차 사이렌처럼 울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젖병을 물리자 제가 언제 울었냐는 듯 방긋방긋 웃으며 젖꼭지를 빠는 동생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제 곧 백일을 맞는 동생의 살갗은 희고, 부드럽고, 주름 하나 없이 깨끗했는데 웃을 때만 눈 아랫살이 스르르 접히며 주름이 생겼다. 아, 저건 태어난 추억이구나. 동생을 따라 웃자 내 눈가에도 주름이 생겼다.
이렇게 세월이 내 얼굴 위에 하나씩 하나씩 쌓이다가, 너무 오랜 세월을 쌓아 더 가질 수 없게 되면 그 때는 내가 산의 세월이 되거나, 강과 바다의 세월이 되어 주름으로 흐르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꼬부장 할머니가 되어 얼굴 한 가득 주름을 담아도 별로 투덜거릴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동생에게 젖을 먹이는 당신을 보면서, 나도 황혼으로 접어드는 나이가 되면 지나간 세월들이 나를 따라서 웃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차상>
식탁
조선대학교여자고등학교 3학년
박미소
밥솥 울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미소야, 일어나서 밥 먹어라.”
한참 잠에 흠뻑 젖어있는 나를 엄마가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거실에서 사기로 된 그릇들이 엄마의 손에 의해 부딪히는 소리가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다. 음식을 담은 그릇을 식탁에 내려놓는 소리. 유난히도 날카롭게 들린다. 무거운 발소리와 아빠의 굵직한 목소리가 믹서기에 혼합이 된 듯 섞여 들린다.
“미소, 저 자식 아직도 안 일어났어?”
“그만둬요, 많이 피곤 할 텐데”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내 아빠가 식탁 속에 들어있는 의자를 꺼내 앉는 소리가 난다.
문틈 사이로 구수한 꽃게탕 냄새가 들어와 내 코를 자극 시킨다. ‘킁킁’ 몸이 일어켜지지 않는다. 젓가락을 집는 소리와 우걱우걱 음식을 씹는 소리, 꽃게를 씹어먹고, 꽃게 속에 들어있는 물을 빨아 먹는 소리. 그리고 아빠와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 엄마가 화해했나?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아빠랑 못살겠다고 짐을 가지고 집을 나갔는데 …….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감아 버렸다.
나는 음식을 코로 마셔 버리는 듯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온 몸에 퍼지는 음식의 향. 이불을 발로 차고 이불 속에 녹아있던 몸을 일으켜 세워 몇 발걸음만 앞을 가면 바로 식탁이다. 몸이 부르르 떨린다. 아빠와 엄마는 즐겁게 웃으며 말을 하고 있다. 나는 기분이 좋다.
알람이 울린다. 꿈이었다. 역시나 꿈이었다. 집 안은 고요하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락이 끊겨버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의 사정으로 수신이 정지 되었습니다’
전화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예쁜 여자. 엄마는 정지 시켰다. 이제 엄마와는 연락 될 방법이 없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식탁 위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다리를 꼬고 책을 읽고 있을 것만 같다. 꿈이 아닌 것만 같다. 아직까지 아빠와 엄마가 다정하게 웃었던 목소리가 귀에 아른거린다. 나는 내 귀를 한번 세게 쳤다. 귀가 울린다. 몸을 일으켜 세워 방에 붙여져 있는 가족사진을 보았다. 엄마는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 사각 틀 속에 밝게 웃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나도 방긋 웃음을 지어 보인다. 핸드폰을 집어 들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 소리만 귀 안을 채운다. 나는 문을 열고 나왔다. 식탁에 그릇들이 올려 져 있고 그 위에는 신문지가 깔려있다. 신문지를 들어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그릇에 가득 담겨있다. 그 옆에는 작은 종이가 있다.
‘아빠 오늘 바빠서 집에 못올 것 같다’
나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배가 고팠다. 손으로 그릇에 담긴 고사리를 맛보았다. 조금 많이 짯다. 나는 밥을 퍼와 식탁에 앉아 우걱우걱 허기진 배를 채웠다. 내 몸을 싣고 내 다리로 의지하고 지탱하고 있는 의자.
언젠간 다시 우리 가족이 이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같이 밥을 먹을 날이 올 것이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 눈을 뜰 수 없게 했다. 너무 눈이 부셔 눈물이 나온다. 이 눈물이 눈이 부셔 나오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나에게 아빠 엄마가 가까이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 줄 것만 같다.
<차상>
식탁
광주설월여자고등학교 3학년
노연정
유리창을 본다. 유리창 바깥에는 비가 오고 있다. 굵은 빗자국들이 유리창에 떨어진다. 빗방울 때문에 밖이 보이지 않는다. 비가 내 마음에 떨어지는 것 같다. 유리창은 이 쓸쓸한 방안에서 밖을 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것이다. 유리창에 보여진 세상은 어둡다. 비가 와서 그런지 어둠이 금세 찾아왔다. 어둠속에서 길을 걷는 사람은 몇 되지 않다. 나는 식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새아빠는 오늘도 웃고 있다. 나를 바라볼 때 마다 웃고 있다. 나는 저 미소가 싫다. 나의 아빠 얼굴이 생각나게 한다. 내가 태어난 지 한 달째 되던 날, 아빠가 나를 안고서 함박웃음을 지었던 사진 그대로 이다. 나는 새아빠와의 밥상 앞에서 벙어리가 된다. 새아빠는 혼자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시지만, 나는 간소한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시더니 요새는 그래도 웃는다. 나는 바보 같은 새아빠가 그만 웃었으면 좋겠다.
고요한 집. 학교를 갔다 돌아오니 집안이 고요하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간다. 액자 속엔 엄마와 내가 있다. 엄마와 아빠의 결혼사진이 있었던 자리는 새아빠와 엄마의 사진으로 바뀌어 있다. 이 방에 들어온 지도 오래된 것 같다. 엄마의 냄새가 아직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문 밖으로 나온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하루살이가 형광등에 붙어있다. 운수 없게도 비가 와서 하루를 우울하게 보내야 하는 하루살이의 하루의 삶이 안쓰럽다. 밝은 햇빛 아래에서 일광욕이나 하고 죽었다면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나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위안을 찾기 위해 형광등에 앉은 하루살이를 말없이 쳐다본다.
식탁에 올려져 있는 미역국을 가스레인지에 올린다. 미역들이 춤을 추며 움직인다. 연푸른 빛이 나는 국물은 보글보글 물방울을 내기 시작한다. 미역국을 서서히 젓는다. 밑에 깔려있던 갈색 소고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잠시 후,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그릇에 미역국을 담는다. 길다란 미역이 그릇에 간신히 붙어 있다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나는 국자를 미역국에 담가 놓고 휴지로 떨어진 미역 한 줄기를 감싸서 화장실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린다. 다시 주방으로 오는 길에 무심코 달력을 본다. 오늘의 날짜엔 ‘Happy Birth day to me.’ 라고 쓰여 있다. 새아빠의 생일이다.
새아빠는 안방에 있고, 나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나는 다시 한번 달력을 본다. 그냥 달력을 피해 내 방으로 들어간다. 밖에서 새아빠가 문을 똑똑- 두드린다. 나는 문을 열지 않는다. 그냥 문만 바라보고 있다. 달력을 바라보았듯이. 내 책상에 붙여있는 사진을 본다. 아빠, 엄마, 나. 행복해 보인다. 사진 속의 나는 어리다. 날짜를 보니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다. 진달래꽃이 피어있는 길에서 두 손을 턱에 괴어 꽃모양을 만든 나는 엄마, 아빠 사이에 끼어있다. 새아빠는 문을 향해 말한다.
“반찬 해놨으니깐 꼭 든든히 먹고 열심히 공부해.”
새아빠는 회사에 간다. 나는 문을 열어 식탁으로 간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좋아하는 고등허, 멸치, 닭볶음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피는 밥을 식탁에 놓고 앉는다. 내가 젓가락으로 멸치를 집으려는 그 때, 할머니가 낮에 주신 빨간 보자기로 쌓여있는 반찬통이 보인다.
‘아가, 언제까지 여기 살꺼여. 니가 새아빠랑 둘이 살믄 안되제. 엄마도 하늘나라로 가고. 잘 생각해서 연락주그래이.“
할머니는 뛰쳐나오려는 울음을 손수건으로 막으며 나에게 말하셨다. 할머니의 반찬통에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깻잎이 있다. 새아빠와 나와 유일하게 붙어 있던 식탁. 나는 새벽업무를 나가신 아빠의 애원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펼쳐져 있는 새아빠가 해놓고 간 반찬들은 어서 자기를 먹어주라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나는 새아빠가 해놓고 간 반찬의 뚜껑을 닫는다. 그리고 할머니의 깻잎을 들어 밥을 감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