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폐하셨다(基督廢死)
고린도전서 15:53, 디모데후서 1:10
홍제원교회
靈魂不死卽基督根本敎義也. 信主者當先信有神, 次信有靈付也. 人之靈受于神故也. 捨神不能信有靈, 捨神不能信有神也. 靈何不死? 出于神故也. 神永生故靈亦永生也. 靈雖不死惟罪能殺之, 主曰殺身而不能殺靈者不必畏之, 殺身而使靈投獄者畏之 太十章二八. 云. 此何語也? 有罪則靈死故也. 靈與神絶而犯神之則, 從此靈無自由, 投在獄中. 基督爲此降世, 能廢死亡也. 딈後一章十. 靈魂不滅, 希臘哲學者用語而聖書亦引用, 以明基督之意也. 聖書無此語, 然經內說明無非靈魂不滅, 比他哲學尤有深切之訓者勿犯罪也. 犯罪靈死也, 以西結十八章四. 保羅又曰, 罪之價死亡也. 羅六章二十三. 砲劒不能殺之者, 惟罪殺之, 帝王將軍不能殺之者, 惟魔殺之, 酒一盃能殺亞力山大王, 一姪女能殺參孫者何也? 惟罪能殺靈之驗也. 故基督敎所傳者, 非靈魂不滅也, 卽廢死亡也. 以主血能贖罪也. 主曰我復活生命, 信我者不死生, 而信者永遠不死云. 요한十一章二五. 故哲學所傳之靈魂不滅, 彼宗敎所傳之罪互相不同也. 故外人雖腐敗, 內人永遠不滅而惟罪能殺, 故敵罪也. 爲信者而不爲偶者何也? 此皆爲神所不願故禁之, 昔者關羽爲矢所傷. 使醫手術, 醫刻骨有生生聲而猶爲不動者卽靈也, 吾朝鮮李家煥先生, 臨刑談笑而死, 卽靈之所爲也. 靈有罪則見罰輒動如風葦, 見物生心, 近輒汚人者, 靈已動而不安者也. 有一僧說法, 有病手術似乎絶命故家人哭之, 余其時自若有生氣, 手術之苦不能覺也. 自古衆靈以罪而死, 基督爲此而降, 以血救之廢死亡矣. 吾等信條在此靈生, 如枝聯樹, 聯則生絶則死, 故禮拜祈禱時時不廢也. 靈生與肉生之相不同. 僉位念之哉!
영혼이 죽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교의 근본이 되는 교의(敎義)입니다. 주님을 믿는 자는 마땅히 먼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다음으로 영혼에 대하여 믿어야 합니다.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버려두고 영혼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영혼은 왜 죽지 않습니까?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영생하기 때문에 영도 역시 영생합니다. 영혼이 비록 죽지 않는다고 하지만 오직 죄는 그것을 죽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마태복음 10:28) 일렀습니다.
이는 무슨 말입니까? 죄가 있으면 영혼도 죽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어서 하나님을 침범하게 되면, 영혼은 자유가 없게 되며 지옥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이를 위하여 세상에 오셔서 능히 사망을 폐하시게 된 것입니다(디모데 후서 1:10).
영혼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희랍철학자의 용어입니다. <성경>에도 이것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의 뜻을 밝혔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 속에는 영혼불멸을 말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다른 철학과 비교하여 더욱 깊고 절실한 훈계는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에스겔 18:4)로 말했습니다. 바울은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로마서 6:23) 말했습니다.
대포나 칼이 죽이지 못하는 것을 죄가 죽이고, 제왕이나 장군도 죽일 수 없는 것을 마귀가 죽입니다. 술 한 잔으로 알렉산더대왕을 능히 죽였고, 한 여인이 삼손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죄가 능히 영혼을 죽인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에서 전하는 바는 영혼불멸(靈魂不滅)이 아니고, 사망을 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로속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는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하여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요한복음 11:25)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철학에서 전하는 바의 영혼불멸은 종교에서 전하는 바의 죄와 서로 같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외면적인 인간 곧 육체는 비록 부패하더라도 내면적인 인간 곧 영혼은 영원불멸하되 죄가 있으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대적은 죄입니다. 믿는 자가 우상을 만들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는 하나님이 원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금하는 것입니다.
옛날 관운장[關羽]이 화살을 맞은 상처를 의사를 시켜 수술을 하게 하였는데, 의사가 뼈를 긁어내는 소리가 생생하게 났는데도 오히려 동요하지 않았다고 하는 데 그것이 곧 영혼입니다. 우리 조선에 이가환(李家煥) 선생이 사형을 받을 때 웃으면서 죽었다고 하는 데, 그것은 곧 영혼이 그렇게 하게 한 것입니다. 영혼에 죄가 있으면 벌을 당하는 것을 볼 때 마치 바람 앞의 갈대처럼 흔들리게 됩니다. 물건을 보고 욕심이 생기고, 그 물건에 가까이 하면 금새 더러워지는 것은 영혼이 이미 움직여서 불안한 것입니다.
어떤 중이 설법(說法)을 한 후, 그 때 수술을 받았는데 마치 죽을 것만 같아서 집안 식구들이 울었습니다. 예로부터 많은 영혼은 죄 때문에 죽습니다. 그리스도는 이를 위하여 강림하셔서 피로써 구원하고 사망을 폐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신조는 여기에 있어야 영혼이 살게 됩니다. 마치 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살고 떨어져 있으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와 기도를 한때도 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혼의 삶과 육체의 삶은 서로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