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 史的宗敎 요한三章一-十五節 石橋 蓮洞 大峴 貞洞 宮井 阿峴 淸夕
人皆畏刑 喜賞. 刑有斬刑, 絞刑, 獄刑等 皆可畏 而有尤者 何也? 卽史刑 千秋之後 有革誅. 一是卽永是 一非卽永非, 罪難可贖也 故畏之. 故人皆讀史 以崇之, 善惡皆爲師.
主言重生之道 先擧歷史 以證之. 人不識祖先之史 可羞. 故主責尼哥提摩曰 爾爲先生不識先史乎? 重生非新道卽 爾祖上 雅各摩西已刱之事 何也? 雅各在家 欺父欺兄 有莫大之罪, 而至伯利而宿, 山高谷甚不聞人迹 心生恐怖. 乃呼天祈禱 神乃以梯子示之 神上下其梯 謂之曰, 爾知有罪乎? 雅各有罪自服, 神乃許以前道亨通. 雅各乃約獻十一條, 是第一次重生也. 後至續過 亦畏에서 終夜祈禱. 神乃改名許福 是乃第二重生也.
其後摩西 擧銅蛇 以救病死者. 無論誰某 仰銅蛇者 得救重生. 主曰 先史如是明瞭 爾不知之乎?
今朝鮮 古來宗敎國也. 檀君刱五事敎, 五事皆由神而定. 其後三國 百濟有얼아하, 新羅有麻立干, 皆祭官也. 句麗之天帝之子 亦祭司長也. 其後孫 讀用先祖之宗敎, 佛敎一千四百餘年, 儒敎五百年. 有何結果乎? 讀此先史爲微 而不可施行懲義吹䕙. 然則今以何敎 示後孫乎? 非重生不可, 遺義史也, 遺奧史也.
主曰 律法一点一畫 不變云. 寡婦之二分 何足爲史? 主猶重之曰 天下傳道者 必言此寡婦之小行. 以諾無他歷史 而猶有口行之句 是生命史也. 吾雖不成功 不落心, 如摩望專 而不能入 不落心也.
084. 역사적 종교 / 요한복음 3:1-15. 석교, 연동, 대현, 정동, 궁정, 아현, 삼청교회 주일저녁
사람은 다 형벌을 두려워하고 상(賞)은 기뻐합니다. 형벌에는 목을 베는 참형(斬刑), 목을 매 죽이는 교형(絞刑), 감옥형 등이 있는데, 모두 두려워할 만하나 이보다 더한 것은 무엇입니까? 곧 역사의 형벌이니 천년이 지나간 뒤에도 철저히 죽임이 있습니다. 한 번 옳으면 영원히 옳고 한 번 아니면 영원히 아니니, 속량하기 어려운 죄이므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다 역사를 읽고 역사를 높이는 것이니, 선악이 다 스승이 됩니다.
예수께서 중생의 방법을 말씀하실 때 지나간 역사를 들어 증거 하셨습니다. 사람이 선조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가히 수치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더욱이 니고데모를 책망하여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생이 되어 선대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가?” 중생은 새로운 진리가 아닌즉 그 조상 야곱과 모세가 시작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야곱이 집에서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인 막대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벧엘에 이르러서 자는데, 산 높고 골 깊어 인적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마음에 공포가 생겼습니다. 이에 하늘에 소리쳐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이에 사다리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여주시며 그 사다리 위에서 말씀하십니다, “네 죄를 아는가?” 야곱은 죄를 자복하였고, 하나님은 앞길의 형통을 허락해주십니다. 야곱은 이에 십일조 드릴 것을 약속하니, 이것이 제1차 중생이었습니다. 후에 계속 지나가는데 에서가 역시 무서워서 밤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고치고 축복을 허락하시니 이것이 제2의 중생이었습니다.
그 후에 모세는 구리 뱀을 들어서 병들어 죽는 자들을 구원하였습니다. 누구를 물론하고 구리 뱀을 쳐다보는 자는 구원을 얻어 중생하였습니다. 주께서 이와 같이 역사를 먼저 분명하게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것을 아는가?”
지금 조선은 고래로 종교의 나라였습니다. 단군(檀君)은 오사교(五事敎)를 시작하였으니, 다섯 가지 일인 오사(五事)는 모두 신으로 말미암아 정하였습니다. 그 후 삼국시대의 백제(百濟)에는 얼아하가 있었고, 신라(新羅)에서는 마립간(麻立干)이 있었으니 모두가 제관(祭官)이었습니다. 구려(句麗)의 천제(天帝)의 아들 역시 제사장이었습니다. 그 후손들이 선조의 종교를 읽어왔으니, 불교(佛敎)가1,400여년이요, 유교(儒敎))는 500년입니다. 무슨 결과가 있습니까? 고대역사[先史]를 조금 읽으면 징벌과 정의를 바르게 일깨워 정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즉 지금 무슨 종교를 후손들에게 보여주겠습니까? 중생(重生)이 아니면 불가하니, 의(義)의 역사를 남깁니까, 깊은 뜻의 역사를 남기나요.
예수께서 율법의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과부의 두 렙돈은 역사에 족히 무슨 보탬이 되나요? 주께서 오히려 중요히 하셔서,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반드시 이 과부의 작은 행함도 전파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역사는 간직하기를 허락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이 구절의 실행을 가지게 된 것은 이것이 생명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록 성공하지 못할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는 오로지 바라다만 보고서 들어가지 못해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