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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유산답사2025 스크랩 무수동 유회당,기궁재와 여경암,거업재
돌 까마귀 추천 0 조회 157 14.06.16 20: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호 

유회당(부)기궁재 (有懷堂(附)奇窮齋)

주   소: 대전 중구 무수동 94번지

지정일: 1989.03.18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권이진(1668∼1734)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건물과 그에 소속된 재실로 보문산 남쪽 기슭 아늑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권이진(현종 9~영조10),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정(子定), 호는 유회당(有懷堂)·수만헌(收漫軒). 공주 출신.

예조좌랑 득기(得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윤(右尹) 시(?), 아버지는 현감 유(惟), 어머니는 산림(山林) 송시열(宋時烈)의 딸이다. 윤증(尹拯)의 문인이다. 1693년(숙종19)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율봉역(栗峰驛)·김천역(金泉驛)의 찰방을 거쳐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그 뒤 1706년에는 정언(正言)을 역임했다.1695년 함평현령(咸平縣令)·전라도도사, 정언·홍문관수찬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 때 김춘택(金春澤)의 전횡을 방관한 죄로 파직되었다. 이어서 1698년 설서, 이듬해 지평을 거쳐 1701년에 사서가 되었고, 부수찬을 거쳐 1710년 동래부사를 역임했다. 당론으로 인해 벼슬길이 순탄하지 못했으나, 1721년(경종 1) 좌의정 이광좌(李光佐)의 천거로 승지에 올랐으며, 이듬해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28년(영조 4)에는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수습한 공으로 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이해 호조판서가 되어 궁중에서 민간의 전답을 매입하지 말 것과 공물을 정액 이상으로 거두지 말 것 등을 건의할 만큼 성격이 곧고 강직하였다. 1731년 공조판서가 되어 산릉제조(山陵提調)를 겸임하면서 천릉(遷陵 : 능을 옮김)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 뒤 1733년에는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해, 국경을 넘어와 위원군(渭原郡)에 숨어 살던 청나라 사람들의 체포를 건의하는 장계를 올렸다. 글씨에도 능했으며, 사람됨이 무실(務實) 강직했다. 저서로는 『유회당집』이 있다. 시호는 공민(恭敏)이다.

 

유회당은 앞면 4칸·옆면 2칸 건물로 활수담이라는 작은 연못 뒤쪽에 있다. 앞면과 양쪽 면에 난간이 돌려진 툇마루가 있고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고 싶다는 뜻을 지닌 ‘유회(有懷)’는 중국 명나라 때 학자인 전목제의 ‘명발불매 유회이인(明發不寐 有懷二人)’이라는 시에서 따온 말이다.

제사를 지내는 재실인 기궁재는 ㄱ자형 건물로서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안방·건넌방·부엌 등이 있으며, 1920년대에 다시 지었다.
이곳에는 유회당 권이진 선생이 아버지 권유(權惟)의 묘를 지키기 위해 지은 시묘소인 삼근정사와 선생의 문집이 보관되어 있는 장판각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유회당판각 (有懷堂板刻)이 보관되어 있는 장판각

이 책판은 유회당 권이진(1668∼1734) 선생의 문집을 새기기 위해 만든 판목이다.
이 문집에는 시와 소(疏:상소글) 등이 실려있으며, 유회당 선생이 관직에 있던 1700∼1734년 사이의 많은 사료가 실려 있다.
권이진 선생의 증손자인 권상서가 순조 초에 판각한 것이며, 재질은 배나무와 소나무이다. 총 246판에 많은 사료가 실려있으며, 여러 외교자료와 『연행일기』그리고 성리학에 관련된 자료들은 당시의 학문과 국제정세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유회당 옆에서 바라본 사당

삼근정사 

기궁재 

자연석을 그대로 살린 유회당의 툇마루 

권유 묘소에서 내려다본 유회당과 무수동/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가 경관을 망쳐 놓았다.  

권유 묘소 

 

여경암 오르는길에서 내려다본 무수동 전경, 중앙의 산은 유등천 건너편의 침산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호

여경암(부)거업재산신당 (餘慶菴(附)居業齋山神堂)

여경암은 조선 영조(재위 1724∼1776) 때 문신 권이진(1668∼1734)이 교육장소로 쓰기 위하여 숙종 41년(1715)에 지었다. 여경암을 중심으로 앞쪽에 서당건물로 사용했던 거업재, 뒤쪽에 산신당이 자리잡고 있다.
여경암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사마온공이 자제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강당인 ‘여경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인데, 좌우 뒤쪽으로 2칸씩 덧붙여 ㄷ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거업재는 앞면 6칸·옆면 1칸 규모로, 一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오른쪽 2칸은 마루를 꾸며 여름철 서당으로, 가운데 2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어 겨울철 서당으로 사용하였으며 나머지 2칸은 부엌이다.

산신당은 고종 19년(1882)에 지은 건물로, 앞면·옆면이 1칸 규모이다. 단촐하게 지은 건물로 안쪽에는 불단을 만들어 산신탱화를 걸어 놓았다.

 

여경암 

거업재 

산신당 

 

 

원래의 출입문이었던 대문밖에 2014년에 새로 지은 화장실이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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