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회 새해모임 2016년1월25일(월) 서울수유리
기록의 소중함 - 긴 세월이 흘러 간 후에야
경매가 34만 원으로 거래된 산서
‘山岳’의 위대한 재 탄생 / 한국산악운동사에 불멸의 기록
1960년 6월 6일, 현충일이었던 그 날, 나는 경북학생산악연맹 총회에서
‘대표상임위원’이라는 직함의 큰 일을 떠 맡았다.
연맹의 대표상임위원은 회원수 2천여 명의 연맹체 운영의 실무 총책임자 자리다.
총회가 끝나고 새로 선임된 임원들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충일이라 모두가 술 마시기를 자제하자면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가야산에서 열린 한국초유의 등산학교를 끝내고
각 학교별 여름행사도 끝냈을 무렵,
새로 입주한 산악연맹회관에서 회지발간에 관한 나의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 했다.
대부분의 임원들이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어느 후배는
“형님 그 일을 어떻게 해 내겠다는 겁니까?
그리고 돈은 또 어디에 있습니까?” 라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던 기억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아마도 내가 지나치게 ‘방대한 구상’을 내 놓았던 것 같았고 듣는
쪽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제시 받았던 것으로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절, 나중에 고양이를 그리게 되는 한이 있어도 계획
단계에서는 호랑이 그림을 생각하는 것이 내 습성이라 최악의 경우
등사본으로라도 하겠다는 배수의 진을 쳤다.
하영수 부회장님께 발간계획을 올렸다. 하부회장님께서는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잘만 만들어 보게” 하시면서
“젊은 시절에 뜻 있는 일을 ‘돈 없다’는 이유만으로 하지 못한다면
평생을 두고 한(恨)이 될 텐데,
부회장인 내가 지금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내 힘 닿는 데 까지
힘껏 도와 주겠네” 하시고는 용기를 북돋우어 주시었다.
그 말씀은 5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귀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날, 대구역전에다 새로 잘 지은 하영수 부회장님의 회사
‘한일미유’의 사옥을 나오면서 내 가슴은 뜨겁게 달아 올랐고
내 발걸음은 펄펄 뛰었다.
이 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원고를 청탁하러 서울대 대학원 원장직을 맡고 계시던
이숭녕 교수님을 찾아 대학 관사를 들렀을 때 이 교수님은
뜨거운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이로 인해 교수님과는 끈끈한 인연이 이루어 졌다.
이 후 대한산악연맹을 창립하면서 교수님은 대구지역
산사람들의 적극적인 추대를 받아 초대 회장직을 맡게 되셨다.
노산 이은상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었던 것도 이 책 원고
청탁 때문이었고 그 인연으로 훗날 노산 선생님과는 함께
산행도 할 수 있었으니 참으로 소중한 인연이며 행복한 기억이다.
학생간부들의 의견을 모아 제호를 몇 개 만들어
한솔 이효상 회장님께 말씀을 올렸더니
“사람들은 매사를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 같아,
자네들도 마찬가지네.
지금 자네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산악운동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제호도 그렇게 ‘산악운동’으로
하면 되지 않겠나, 운동까지 붙이면 너무 긴가?
그럼 ‘산악’으로 하는 것도 좋겠구먼” 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시던 회장님의 그 ‘유엔총회 얼굴’이 지금도 뚜렷이 떠 오른다.
회장님은 자신의 얼굴에 만국의 색깔이 다 담겨져 있다며
“나야 말로 유엔 사무총장의 최고 적임자”라는 농담의 말씀을
자주 하셨다.
매사는 쉽고 단순하게 생각하셨고 시나 문장도 쉽고 간결하게 쓰셨다.
표지 그림과 책 내면의 삽화는 배석규 선생님이
그려셨고 편집에는 창립원년의 기술상임위원을 맡아
초창기 한국산악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김기문 선생님의
노고가 가장 많았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 이후 40년 세월이 흐른 뒤 이 책을 바탕삼아 월간 山 지면에
‘한국등산사 초록’을 연재할 수가 있었다.
월간 山에 연재 된 내용(대구 광주 부산 전주 제주편)은 한 권의
책으로 묶여져 ‘1960년대 한국의 산악운동’이라는 단행본
(60대산회 엮음, 조선일보 발간)이 되었다.
‘60대산회’는 이 책을 펴낸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9월 15일
‘제5회 대한민국산악대상’을 수상했다.
회지 ‘山岳’이 없었더라면 월간 山의 연재물 제의는 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1960년대 한국의 산악운동’이라는 참으로
귀중한 역사책이 나오기도 어려웠을 것으로 믿어진다.
‘山岳’ 창간호는 참으로 소중하게 보관되어야 할 책인데,
이제는 구하기가 힘든 희귀본이 되었다.
지난 10월 대구에서 열린 한국산서회의 제14회 산악도서전시회를
앞두고 한국산서회 호경필 부회장이 대구전시회에
바로 이 책 ‘山岳’이 전시될 수 있도록 해 주면 좋겠다는 의뢰를 했다.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마음으로 대구의 후배 몇 사람에게
이 책의 출품을 부탁했는데, 모두가 어렵다는 것이다.
본인이 이 책을 소장하고 있다면 문제가 없을 것인데,
불행(?)스럽게도 본인이 갖고 있던 책을 한 후배가
“빌려 달라”기에 ‘대여’ 해주었는데, 돌아 오지 않고 있다.
이 책을 빌려 간 후배의 이야기가 ‘애교스러워’ 더 이상 회수할
생각을 포기한 상태다.
“형님!! 학교 다니실 때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야’ 라고
하신 적 있잖아요” 하는데는 더 이상 할 말을 놓치고 말았다.
대구산악연맹의 팔공산악제 시상식에 참석하고
성기환 전임회장과 김태효 자문위원과 함께 깊은 밤,
행사장 가까운 술집에서 자정을 넘기면서 지난 날들을 반추했다.
그 자리에서 김태효 자문위원이 “형님!!「山岳」바로 그 책이
얼마 전, 어느 인테넷 경매장에서 34만원에 거래가 된 사실을
모르고 계셨군요” 했다.
그 말 속에는 앞으로 ‘山岳’을 소장하고 있는 대구의 산꾼들은
쉽게 이 책을 노출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감추어져 있었다.
폐지를 수집하는 사람들도 눈여겨 보지 않을 가벼운 책 한 권, 불쏘시개로도
쓸모가 없을 작은 책 한 권이 이토록 위대한 ‘문화’로 승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그 날 밤의 술자리는 큰 감동이었고 축복이었다.
첫댓글 위의 문장은 한국산서회 제26호와
대구광역시산악연맹 회보 '팔공산'
13호에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