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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랑과은혜의쉼터 7 원문보기 글쓴이: 사랑과은혜의쉼터
예화 100개 모음
존경받는 목사상
이기선 목사는 일제시대에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혀서 고생했다. 한번은 경찰국장이 자기 방으로 불렀다. 경찰국장이 일어나서 이 목사를 맞았다. "이 목사님, 연세도 많으신 분을 이렇게 고생을 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좋은 의자에 앉혀드리고 차도 한 잔 대접했다. 그리고 경찰국장이 편지 하나를 내 놓았다. 그 편지는 미국서 공부하여 공학박사가 된 큰 아들 정근이 보낸 편지였다. 이 목사는 편지를 뜯어보고 아무 표정도 없이 다시 책상 위에 척 놓았다. 내용은 다른 목사들은 다 신사참배를 하고 편안히 사는데 아버님만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면서 고생하실 것이 무엇이냐면서 겉으로는 신사참배를 하고 속마음으로만 안 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아드님 편지를 받으니 생각이 어떠하십니까?" 경찰국장이 물었다. 이 목사는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 지식으로 말하면 나는 지식이 많지 않지만 아들은 세계가 알아주는 공학박사이니 지식적으로 보면 내 선생격 입니다. 그러므로 사제의 관계로만 본다면 그 청을 들어주는 것이 옳을 것이고, 또 혈육의 관계인 부자간의 입장에서만 생각한대도 그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적으로 말하면 이 사람은 평신도이고 나는 이 사람을 지도하는 목사입니다. 그러므로 이 신사참배 문제는 신앙에 관한 문제이므로 평교인인 아들이 아버지가 고생하는 것이 하도 딱해 보여서 철없이 한 말이니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경찰국장은 "이 목사님은 과연 위대한 분입니다. 목사가 되려면 저런 목사가 되어야 해!" 하며 중얼거렸다고 한다. 일본 경찰국장은 그 분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비록 믿음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아도 믿음의 정절을 지키며 일신의 평안을 위하여 타협하지 않을 때 뭇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신자들은 속사람을 아름답게 단장하여 불신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할 것이다.
지도자의 양심
박대선 목사님이 연세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실 때 그 아들이 합격 점수에 약간 미달되어 연세대학에 낙방하였다. 그때 교수회에서 점수 차이도 큰 것이 아니고 총장의 아들이니 입학시키자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총장께 보고를 드렸더니 두말없이 총장 사직서를 내놓았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내 아들을 떨어진 대로 놔두든지 내 사직서를 받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완강히 말씀하셨다. 결국 입학을 못시키고 그 아들은 경희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연세대학교 캠퍼스 안에 총장 공관에서 살면서 경희대학교를 졸업하였다는 것이다. 그 후 박대선 총장은 더욱 존경을 받고 감리교 감독까지 역임하셨다.
목회의 성공 비결-자기 관리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연장을 항상 잘 수리해 두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것은 "쇠가 무딘데도 그 끝을 갈아 두지 않으면 힘이 그만큼 더 들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의 도끼가 끝이 무디면 에너지가 더 많이 소비되거나 그의 일이 엉망으로 되기 마련이다.
미술계의 대가인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연장의 중요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자기 붓은 자기 손으로 만들었다.
목회자의 연장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연장을 잘 정돈하고 날을 세워 놓는 목회자가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의 성공은 목회자의 자기 관리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타락한 지도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할이 중요한 직책일수록 아무나 덥석 맡을 수 없었다. 이런 까닭에 예로부터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 王의 권력은 神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었다.
이것이 바로 왕권신수설이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신을 대리하여 왕을 지도하고 안내하던 자들은 누구인가. 우리의 성경 역사서의 페이지 속에 표표히 모습을 드러내는 '제사장'과 '선지자'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모을 세우려 하심(엡4:12)으로 하나님이 직접 맡겨주신 사명자의 직분, 이 얼마나 귀하고 책임 있는 자리인가. 아무리 세상이 험할지라도 목자는 그래도 존경받는다. 존중 아닌 존경을... 왜 존경받는 자가 되는가? 바로 저들을 위해 목숨을 내 놓기 때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4:11) 그렇다 우리의 진실한 목자(성직자)는 (하나 이하의)목숨으로 둘 이상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아주 적은 숫자이기를 바라지만 이 땅에 타락한 목자(성직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은 우리의 가슴을 멍지게 한다. 그러나 이 타락한 자의 음모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경건의 모습은 있으나 결코 경건치 못한 자들. 경건의 겉모습에 가리워져 있는 삯꾼. 단언하건데 이들은 결코 목자가 아니다. 예수를 죽일 음모를 계획하던 대제사장 '가야바'의 (뺀질한)풍채가 떠오르지 않는가. 이들을 정죄하는데 성경은 주저하지 않는다.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요10:12) 이 삯꾼은 하나의 목숨을 가지고 수 없이 많은 생명들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Hamlet)에 묘사된 잘못된 자들이 하필이면 목자(성직자)가 아니던가.
'몇몇 간악한 목사들처럼 행치 마오. 가파른 가시밭길을 통해 하늘에 이를 수 있는 길을 나에게 가르쳐 주오. 교만하고 경솔한 탕자와 같은 그가 쾌락의 길을 약속하여도 그의 충고에 귀 기울이지 마오.'
비밀 요정의 단골 손님들, 사회 지도층 인사
다음은 97.12.12 일자 국민일보의 기사이다.
"수개월 동안 피눈물을 흘리며 가출한 딸을 찾아다녔는데 가출 학생들을 타일러 돌려보냈어야 할 신분 높은 사람들이 미성년자의 술시중을 받으며 데리고 놀았다니 어떻게 된 세상입니까" 서울 강남경찰서 기자실에는 7개월만에 강남의 비밀 요정에서 가출한 딸을 찾은 金모씨(38. 여)가 딸 崔모양(15)과 친구 李모양(15)을 데리고 와서 가슴을 치며 이들의 윤락 생활을 털어놨다. 崔양은 가출한 뒤 강남구 신사동 친구 자취방에서 머물다 무허가 직업소개소를 통해 金모씨(37. 여)가 운영하는 신사동 H음식점에서 일하게 됐다. 낮에는 삼계탕 등을 파는 일반 음식점이지만 밤에는 지하 1층과 2층에서 질펀한 술판이 벌어지는 비밀 요정이었다. 崔양은 이 음식점을 찾는 손님들은 검사와 변호사, 박사 등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며 1층에서 밥을 먹은 뒤 지하 1층이나 2층에 마련된 밀실에서 접대부들과 술을 마시고 여관에 가서 성관계를 가졌다고 폭로했다. 崔양은 "불황이라고는 하지만 이 음식점은 밤늦게까지 손님들로 붐볐으며 새벽 2시에 찾아와 5시까지 술을 마시는 단골손님의 시중을 들다 '2차'를 간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가출한 뒤 무허가 직업소개소를 통해 보증금 5백만 원에 월세 50만 원 짜리 방을 얻었던 崔양은 이 돈을 갚기 위해 몸이 아파도 주인의 강요에 못 이겨 1주일에 서너 차례 손님들을 따라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국 崔양은 지긋지긋한 생활을 견디지 못해 한 달 여 만인 지난달 말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가족에게 돌아갔다. 딸의 윤락 생활을 들은 崔양의 삼촌과 어머니가 손님을 가장해 이 음식점을 찾았을 때도 주인은 "손님이 가득 차 자리가 없다. 애들이 예쁘니까 손님들이 많다" 는 자랑까지 늘어놓을 정로도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주인 金모씨는 경찰에 윤락행위방지법 위반 혐의로 연행된 뒤에도 전혀 뉘우침 없이 '요직'에 있는 단골들에게 전화를 걸며 위력을 과시하다 결국 구속됐다.
사랑 받고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려면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서랍 속에 간직해 두고 가끔 꺼내어 보았던 아홉 가지 원칙.
1)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라.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당신이 그 사람에게 별로 관 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2) 남이 당신과 함께 있다는 데에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을 온화한 인물이 되라.
마치 신고 있는 낡은 신발이나 쓰고있는 오래된 모자와 같이.
3) 아무것에도 마음 상하지 않을 포근한 성질이 몸에 배게 하라.
4) 자신을 너무 자랑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는 무엇이나 다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하라.
5) 당신을 사귀게 되면 무엇인가 얻는 바가 있을 것 같게 폭넓 은 인간이 되도록 마음을 쓰라.
6) 당신이 받은 바 있는, 혹은 지금 받고 있는 모든 오해를 풀 수 있도록 진지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마라.
7) 정말로 그렇게 될 수 있을 때까지 사람들을 좋아하도록 하라.
8) 성공한 사람에게는 축하의 말을, 그리고 실망하고 있는 사 람에게는 위로의 말을 할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9) 남에게 정신적인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마음속으로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헌신하는 지도자
미국의 '아이젠 하워' 대통령이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글을 썼는데, 그는 '참된 지도자는 먼저 자신을 부인하고 헌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로버트 슐러' 목사도 '지도자로서 성공하려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요소가 필요한데, 첫 번째는 비이기심(unselfishness)이요, 둘째는 진심으로 남을 돕는 것(to help in deep level)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남보다 더 희생적인 태도를 가지고 헌신할 때 성공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어두운 방에 들어가면서 그 어두움을 탓하기 전에 먼저 촛불을 켜야 한다는 것이다.
메가케로스의 뿔
옛날 지구에는 메가케로스(Megaceros)라는 학명을 가진 사슴이 살았다. 그런데 이 사슴은 뿔이 얼마나 크던지 그 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멸종되었다고 한다. 자기 뿔의 무게에 눌려 번식하지 못하고 자연 도태 된 것이다. 감투가 무거우면 누가 죽이지 않아도 자멸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신선한 정책을 들고 나와 대결을 벌이지 않고 비리를 들추고 흠집을 긁어내어 어떻게든 상처를 입히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역사의 위대한 지도자는 자기 뿔을 뽐내던 메가케로스적 지도자가 아니라 솔직히 자기의 실패도 토로하던 인간미 넘치던 인품의 소유자였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의 드골과 퐁피두라는 두 지도자가 있다. 대조적 인물이다. 전자가 메가케로스적 지도자였다면 퐁피두는 인간미 넘치는 지도자였다.
그는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 작은 연단이 없으면 나도 지극히 평범한 프랑스 국민이라"고 했다. 프랑스인은 드골을 존경하면서도 퐁피두에게 더 많은 애정을 갖는다. 왜 그런가? 그의 인간미 넘치는 인품 때문이다.
프랑스인은 퐁피두에게 '거목 같은 사나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 실력의 폭과 넓이 때문이었다. 사실 퐁피두만큼 실력 있는 대통령도 드물었다. 그는 정치, 경제는 물론 문화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프랑스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었고, 추상미술에는 전문가적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연두 기자 회견을 할 때는 퐁피두가 과연 정치인일까 할 정도로 시와 고전과 유머를 자유자재로 섞어서 쓰므로 기자들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대통령은 귄위가 있어야 한다. 화려한 뿔을 유지하려면 의당 그 뿌리가 깊어야 한다. 한국말에서 뿔과 뿌리의 어근을 같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메가케로스는 그 뿔 때문에 가위가 눌려 죽었다.
심각해지는 공해 문제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필수품이나 사치품은 점점 더 자연 원료보다는 화학적으로 합성된 원료를 사용한 것들이기 때문에 앞으로 공해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공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해를 막기 위해 온갖 기술을 다 동원하더라도 세계 전체의 공해를 줄이기는 거의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마치 방안의 공기를 정화하기 위하여 정화기를 가동한다면, 그것을 가동하는데 필요한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서 더 큰 대기오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구 전체의 오염과 피해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대기층에는 더 많은 먼지와 일산화탄소가 쌓이고, 그것이 햇빛을 차단하든지 지구의 발열을 차단해서 지구 전체에 겨울이 오게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지구의 온도를 높여 북극의 빙산을 녹이든지 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예측이다.
바다에는 온갖 화학 물질들이 들어가 지구가 가지고 있는 산소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는 플랑크톤(Phyto-Plankton)을 대대적으로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발틱해의 해수에 함유되어 있는 산소 량이 1900년대에는 1리터 당 2.5cc 였던 것이 1970년도에는 0.1cc로 줄어졌다고 프랑스의 해양학자 쿠스토가 보고하였다. 그후 20여 년 동안 상태는 더 나빠졌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대부분의 선진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하수 처리는, 도시의 하수는 우선 깨끗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궁극적으로는 강과 호수를 더 고칠 수 없는 상태로 오염시킬 것이고 바다를 오염시키리라는 것이 미국의 환경학자 코머니의 견해다. 미국의 에리 호수는 표면의 물만 깨끗하지 그 밑바닥은 하나의 거대한 시궁창이라는 것이다.
환경문제에서 바라본 쓰레기
서울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의 반은 음식 쓰레기다. 이것은 풍요의 자랑이 아니라 기아에서 허덕이는 인구가 존재하는 한 죄악이다. 우리 전체 생활 쓰레기의 27-28%가 음식물 쓰레기다.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8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97년 현재 북한에선 수많은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으며(이미 약 50만명의 사망자 발생), 국제구호기구들은 인도나 아프리카보다도 더 심각한 수준으로 북한의 식량난을 파악하여 북한을 세계 최 일급의 지원 대상 국가로 선정하였다. 한쪽에서는 굶어 죽어 가고 있는데, 한 쪽에서는 먹고 남은 쓰레기 처리에 고심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벌 하실까 두렵다.
포장 폐기물은 연간 4백 40여만 톤으로 전체 쓰레기의 15% 정도가 된다. 몸에 해로운 담배만 해도 열 갑들이 포장을 위해 45억 원, 골판지로 46억 원, 합쳐서 91억 원이 든다고 한다.
이러한 쓰레기는 아직 적당한 처리 대책이 없기 때문에 막대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우리 나라는 주로 쓰레기를 파묻는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난지도 등 매립장에 버려진 쓰레기들은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 나라는 땅이 좁아 쓰레기 묻을 땅이 없을뿐더러, 쓰레기들이 썩으면서 나오는 침출 액에서 중금속 등 독성 물질들이 스며 나와 토양과 지하수와 하천을 오염시키고 해충이 들끓고 쥐 같은 생물체들이 서식하여 병균을 옮기며, 냄새가 나기 때문에 그 주변 전제가 불결하게 된다.
대도시에서는 재활용 대책 이전에 소각장 건설이 추진중이다. 소각장에서 플라스틱이나 폴리우레탄 같은 물질을 태울 때는 각종 유기 염소 화합물이나 다이옥신과 같은 유독성 물질이 나오기 때문에 대기 오염이 극심하다. 또한 소각장은 종이, 플라스틱이 줄어들게 되면 발열량이 떨어져 기름을 부어가며 온갖 잡동사니를 태우는 시설이 되기 쉽다. 95년 목동 소각장에서는 안전 기준치의 10배나 되는 맹독성 다이옥신이 검출되었다. 또한 쓰레기 소각의 문제는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까지도 모두 태우게 되기 때문에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단점이 있다.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되면서 처음에는 쓰레기 양을 줄이는데 성공적(31%)이었으나, 유해성 쓰레기(폐형광 등)와 대형 쓰레기, 재활 용품의 처리가 문제로 남아있다. 특히 애써 모은 재활 용품의 70%가 중간 집하장에 쌓여 있거나 일반 쓰레기와 섞여 매립된다. 현재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김포 매립지는 하루 2천 톤씩의 침출 수를 쏟아 내는데, 3차 처리에도 질소 오염도 기준치를 14배나 웃돌고 있다.
이 질소는 바다에 흘러 들어가면 부영양화와 적조현상을 일으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쓰레기를 안 만드는 것이다. 생활을 단순화시키고, 재활용하며, 물건을 고쳐서 쓰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다. 또한 일회 용품 때문에 쓰레기가 많이 늘어났는데 예를 들어 종이컵, 나무젓가락, 종이 기저귀 등은 한번 쓰고 버림으로써 그 원료가 되는 나무 자원이 낭비된다. 이러한 물건이 이용되는 것은 편리성 때문인데 편리함의 결과는 자원 낭비와 공해 문제를 낳게 됨을 생각하고 절제하여야 한다.
수박 한 통의 껍질이 얼마나 물을 오염시키는가?
행락객이 먹고 버린 수박 한 통의 껍질이 수질에 미치는 영향은 피서객 2명이 하루종일 물가에서 취사, 빨래 용변, 목욕 등을 하면서 수질을 오염시키는 것과 거의 같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환경연구원이 피서철에 유원지 등에서 많이 소비되는 수박 포도 참외 등에 대한 BOD(생화학적 산소요구량)를 측정한 결과 6.37kg 수박 한 통 껍질은 82.4g의 BOD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박 한 통 껍질의 BOD농도는 3만5천80ppm으로 맥주 한 병이 배출하는 BOD농도 7만1천ppm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는 행락객 2명이 1급수 냇가에서 하루 내내 지내면서 취사 행위 등으로 수질을 오염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또 3백30g의 포도 한 송이 껍질은 29g(22만3천ppm), 6백20gdml 참외 한 개는 5g(4만4천ppm)의 BOD를 각각 배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 한 명이 하루 배출하는 BOD는 40g(35만ppm)가량이다.
국립환경연구원은 '수질오염을 줄이기 위해서는 피서철에 취사 행위를 금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먹고 남은 과일 껍질을 반드시 봉투에 담아 되 가져가는 행락 문화 정착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
오늘날 우리들에게 핵은 두 가지 얼굴을 보여준다. 핵은 지구의 환경과 인류의 궁극적이고 항상적으로 위협하는 핵무기로서 먼저 개발되었고 이어 1956년 영국에서 개발된 것이 원자력발전이다. 그런데도 최근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슴없이 원자력발전을 들어 '공해 없는 깨끗한 에너지'라고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1978년 4월에 고리 원자력 발전소를 시작으로 현재 12기가 가동되고 있으며, 2010년이면 추가로 16기가 건설, 가동될 예정이다.
원자력발전은 화력발전과 원리는 비슷하나, 연료로 석탄이나 석유 대신 우라늄이라는 핵연료를 태우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발전 과정에서 방사선이 배출되고, 사용 후 핵연료도 불가피하게 생성된다. 사용 후 핵연료는 높은 방사능 수치를 띠는데 항상 발열(發熱)을 하고 있어 안전하게 폐기 처분하기 어렵다. 특히 방사성 물질 중 플루토늄은 지구상에서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로 그 위험성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만도 2만4천년이 걸린다고 한다. 90 이후로 안면도, 울진 등지에서 일어난 핵 폐기장 건설에 따른 지역 주민과 정부의 갈등도 이 때문이다.
현재 에너지 체계로는 원전이 큰 에너지원(源)임은 사실이지만 그 뒷처리 문제가 세계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골칫거리여서 '화장실 없는 맨션'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원자력발전이 안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을 살펴보면, 첫째로 원자력발전은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주민들을 방사능 위협에 처하게 한다. 이 같은 위험성은 선진국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나라에서도 노동자와 지역주 민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둘째로 원자력발전은 안전성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핵 추진자들은 원전의 사고 가능성이 사람이 운석에 맞을 확률에 불과하다지만 체르노빌, 드리마일 사고에서 보듯이 사고는 예측할 수 없으며 그 피해도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원전 기술을 선진국에 의존하고 있어 그 위험도가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원전은 막대한 열을 식히기 위해서 바닷물을 이용하는데 데워진 바닷물(온배수)은 주변 바다 온도를 올려 어민들의 생업에 지장을 준다.
이미 핵 선진국에서는 원자력이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건설을 포기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고 있다. 얼마 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나라는 2020년이면 일본, 러시아, 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 에너지 소비국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라도 원전과 같은 대형 에너지 공급 체계에서 벗어나 지역별 특성에 맞는 소단위 발전 체계인 태양력, 풍력, 조력발전 등을 개발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 개발과 더불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하는 풍토를 조성해 가야 할 것이다.
환경
지구 환경의 위기는 매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1800년대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매우 빠르게 진행되어 온 환경의 위기는 이미 수많은 생물들을 멸종시키고 있다. 자료에 의하면 하루에 30종씩, 1년에 1만종의 생물이 지구에서 더 이상 생존하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와 같은 속도라면 앞으로 20년 이내에 지구는 전체 생물 중의 1/5을 잃어 버릴 것이라고 한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구 마을이 눈앞에 다가온 현실 앞에서 환경 선교의 목표는 창조 질서의 회복 및 보전이다. 땅을 비롯한 자연 생태계를 원상 회복하고 보전하는 것이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임을 알고 이를 위하여 활동해야 한다.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기 위하여
환경오염으로 세계의 유명한 문화재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관광객이 타고 오는 자동차에 의한 대기오염으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식되었고 그리스의 아름다운 조각품들도 산성비로 녹아 내린다.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고옥마다 곱게 입혀진 단청이 아황산가스로 시커멓게 변색되어 88올림픽을 앞두고 부랴부랴 다시 색을 입혀야 했다고 한다. 문화재뿐이 아니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로 시작되는 애국가의 2절이 바뀌어야 될지도 모른다. 남산의 소나무가 산성비로 점차 자취를 감추어서 다음 세대들은 남산에서 소나무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산성비로 나무가 피해를 입기도 하지만 산성비는 토양을 산성화시켜 흙 속의 영양 물질을 빼앗아 가고 흙 속의 독성 물질을 녹여 내는데 이미 남산의 토양은 정상치의 10배나 되는 산성도를 나타낸다고 한다. 다음 세대는 헐벗은 남산을 바라보며 어떤 애국가를 부르게 될까?
우리 나라에서 매년 2.2평방 킬로미터의 숲이 사라지고 있다. 이 정도의 숲이면 1만 명에게 숨쉴 수 있는 맑고 깨끗한 산소를 공급해 줄 수 있다. 숲은 산소만 공급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염 물질도 걸러 준다. 골프장과 스키장을 짓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면서 자연을 즐기겠다고 사람들이 국민 전체의 숨통을 죄고 있다. 자연을 즐기기 위해, 사람의 욕구에 의해, 적당히 손질하고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 자연은 사람과 함께 지구 위에 살아가는 우리의 벗이고 어머니이다. 인구는 늘어가는데 우리는 매년 1만 명이 숨쉴 수 있는 공기를 베어가고 있습니다. 숲은 우리의 생명줄이다.
우리가 밝고 다니는 흙 1g에는 1천만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그 중 곰팡이는 1만에서 10만 마리, 흙 냄새를 나게 하는 방선균은 10만에서 100만 마리 가까이나 된다. 흙 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역할은 각각 달라 서로 돕고 사는데 그 중에는 병균을 이기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도, 농장물의 성장을 돕는 것도, 동식물의 사체나 배설물을 썩게 하는 것도 있다. 만약 흙 속에 미생물이 살고 있지 않다면 흙은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축구 경기장 만한 땅에는 약 200만 마리의 지렁이가 산다. 지렁이는 아주 먹보여서 하루에 자기 몸무게만큼의 유기질 쓰레기를 먹고 공기가 잘 통하고 식물이 좋아하는 영양 많은 흙을 내놓는다. 만약 우리 나라에서 하루에 나오는 쓰레기를 묻을 땅을 마련해 그곳에 지렁이를 키우면 우리 나라에서 나오는 모든 유기질 쓰레기를 지렁이가 먹고 쓰레기를 좋은 흙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환경 보전은 자연과 자연 속에서 사는 생물에 대한 이해와 애정으로부터 시작된다.
난이 잔디처럼 피어 아름답던 난지도는 서울 시민이 쓰고 버린 쓰레기 더미에 묻혀 쓰레기 산으로 변해 버렸고 그나마 92년을 끝으로 더 이상 쓰레기를 매립할 수 없어 문을 닫았다. 이제 김포에 수도권 쓰레기 매립을 시작했지만 쓰레기를 줄이지 않는 한 언젠가는 쓰레기 산만 남기고 또 다른 곳으로 매립지를 찾아야 한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 가스의 사용이 규제되면서 스티로폴의 대용품을 찾는 노력이 활발하다. 가전제품의 포장재로 값싼 일회 용기로 쓰이는 스티로폴은 플라스틱에 프레온 가스를 불어넣어 만든 것이다. 그런데 오존층의 파괴 물질로 프레온 가스가 지목되면서 프레온 가스의 사용이 규제되자 스티로폴의 생산과 사용도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래서 각 나라에서는 값싼 스티로폴의 대용품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캐나다에선 스티로폴 대신 팝콘을 포장재로 사용하는데, 팝콘은 상품을 보호하는 데도 효과적이고 나중에는 가축 먹이로 사용돼 쓰레기로 남지 않아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쓰레기터에서 더욱 잘 자라는 식물은 도깨비바늘, 가막살이, 돼지풀, 개망초 같은 식물들은 쓰레기터에 무리지어 피어 있다. 질소와 빛을 편식하는 쓰레기 잡초 군락은 병균이나 모기의 서식처가 되고 돼지풀 같은 것은 꽃가루 알레르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쓰레기 잡초 군락은 우리 나라 어디서나 발견된다. 들과 산은 말할 것도 없고 국립공원 안에서도 쓰레기 잡초 군락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쓰레기 잡초 군락이 발견되는 곳은 쓰레기통이라는 말과도 같다.
'페기물 예치금제'는 많은 쓰레기를 발생하는 상품을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업체에게 쓰레기 수거 비용을 사전에 받아서 수거해 오면 되돌려 주는 제도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91년 9월부터 실시하고 있는데 종이팩, 알루미늄 깡통 등 용기류와 가전제품, 1회용 기저귀나 종이컵 같은 1회 용품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런데 환경처는 애초 29개로 정한 해당 품목을 25개로 줄이고 예치금의 액수도 내리는 등 산업계의 반발로 처음부터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 업계도 수거에 힘을 기울이지 않아 약국에 쌓인 약병이 제대로 수거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국민에게 쓰레기를 줄이라고 하려면 정부가 먼저 나서서 업계를 감시하고 분리 체계를 제대로 잡아 나가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만 국민의 수고가 참다운 결실을 맺는 게 아닐까?
우리 나라에서 한 해에 사용되는 1회용 기저귀가 얼마나 될까? 91년 한 해 동안 사용된 일회용 기저귀는 5억 개로 600억 원어치나 팔렸다고 한다. 더구나 해마다 1회용 기저귀의 쓰임이 늘고 있다고 한다. 1회용 기저귀는 한 번 사용하고 버려지면 500년 동안이나 분해되지 않지만, 500번 이상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면 기저귀는 일 년이면 분해된다. 기저귀를 사용하는 아기의 건강과 그 애가 살아갈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1회용 기저귀의 사용을 줄여 보면 어떨까?
우리 나라에서 한 해에 쓰이는 나무젓가락은 66억 개이다. 우리 나라 국민 한 사람이 일년에 165개의 나무젓가락을 쓰는 셈이다. 한 번 쓰고 버릴 젓가락을 위해서 베어지는 대나무 숲 때문에 중국에선 산사태가 나고 대나무 잎을 먹고사는 팬더 곰이 멸종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한 사람이 하루에 200g씩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면 일 년에 약 2,900억 원이 절약된다. 쓰레기 분리 수거로 2,500억 원어치의 자원이 다시 쓰이고 쓰레기 처리비 400억 원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으로 따져 보지 않은 이익은 이보다 더욱 크다. 쓰레기가 줄어들면 환경은 깨끗해지고 쓰레기에서 새어나온 오물로 지하수나 강물이 더럽혀지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또 쓰레기 매립 장으로 쓰이는 땅도 그만큼 줄어드니 그 땅에선 곡식이 자라고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게 된다.
외식 산업이 번창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고 주부들이 바빠지면서 외식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식이 잦아지면 자연히 음식 쓰레기도 많이 남게 된다. 다른 손님이 먹던 음식을 상에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우리 나라 식탁에서 나오는 쓰레기가 한 해에 8조 원어치나 된다고 한다. 우리 나라 한 해 국가 예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우리는 1인당 20만 원어치의 음식 쓰레기를 식탁에서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금액에는 식탁에서 쓰이는 나무젓가락과 1회용 휴지 그리고 1회용 식기를 합친 금액이다. 우리는 한 해 한 가정에서 내는 세금과 맞먹는 돈을 식탁에서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는 꼴이다. 음식점에서 쓰이는 1회용 용기를 바꾸고 음식 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가급적 외식을 줄인다면 음식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아직도 지구상의 13억의 인구가 굶주리고 있다.
자연 조미료 만드는 법
멸치의 내장과 머리를 떼어낸 뒤 바싹 말린다.
말린 다시마는 석쇠에 올려 앞뒤로 살짝 굽는다.
절구에 넣고 방망이로 고운 가루가 될 때까지 자 빻아 병에 넣어 밀봉한다.
냉장고에 넣어 두고 음식물에 조금씩 넣어 맛을 내면 훌륭한 조미료가 된다.
우리 나라에서 한 사람이 하루에 버리는 생활 쓰레기의 양은 평균 2.2kg으로 세계 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미국 1.3kg, 일본 1.0kg, 독일 0.9kg과 비교해 볼 때 평균 두 배 이상이나 많은 것이다. 우리 나라 생활 쓰레기 양은 90년 전국에서 연간 3,200만t, 하루에도 8t을 넘어 4t 트럭으로 2만 대 분량이나 되는데, 이는 89년에 비해 7.7%, 전보다는 50%이상이 늘어났다.
특히 일회 용품은 사용하기 편하고 쓰고 난 뒤 버리면 그만이라는 간편함 때문에 생활 필수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용량을 보면 연간 종이컵 126억 개, 우유팩 54억 개, 컵라면 1억 개, 종이기저귀 5억 개나 된다. 이들 일회용 제품은 대부분 플라스틱이나 비닐, 스티로폴 등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자연에서 분해되는데 300년에서 500년이 넘게 걸리며 또 해로운 성분들이 녹아 나와 땅을 오염시킨다. 뿐만 아니라 자원 낭비도 부채질하여 막대한 경제적 손실도 자져 오고 있다.
유기농법은 건강을 보장한다.
암은 유전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그 말은 정학하게 옳다고 할 수 없다. 현대에 와서 급작스럽게 암이 성행하고 있는 원인은 공해와 인공 화학 식품이라고 규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 가족의 식생활이 같기 때문에 같은 질병을 계승하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역학적인 견지에서 건강을 파괴시키는 인공 화학 물질은 지구가 창조된 이래, 존재하지 않았던 자연계의 이물이며 최근 20년간에 인공 화학 물질은 무려 10만종 이상이 새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중에는 맹독성 2,3,7,8,D(다이옥신)가 있다고 한다. 특히 제초제, 식품첨가물 합성 세제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유해 물질을 우리가 하루 평균 70-1백 종 이상을 10g정도 섭취하고 있다는 것은 경이적 사실이다.
인공 화학 물질은 생명의 근원인 유전자를 저해하는 성질이 있으며 발암성과 최기형성 그리고 급성, 만성의 독성을 일으킨다. 식품첨가물 중에는 유전자에게 장해를 주는 것이 62종이 있으며 세계에서 최강의 맹독성이 있다고 하는 다이옥신은 농약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농약과 첨가물에 사용되는 보존료, 방부제 속에는 역시 유전자 장해 물질이 있다고 한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의 '랄푸 다하티'교수의 조사로는 남자 대학생 1백 22명의 정액을 검사한 바 쌍두 또는 기형정자가 30%에 달했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의 정액에서 농약(DDT, BHC), 제초제, 식품첨가물(인산염, 방부제)이 각각 검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질병과 기형 현상은 농약과 첨가물의 영향이 적어도 50-80%는 될 것이다'고 다하티 교수는 말하였다.
합성 화학 물질인 중금속은 체내의 비타민군, 아미노산, 지방산, 단백질 등을 파괴하여 영양의 불균형을 일으켜서 병에 걸리기 쉬운 약체를 만들게 된다. 특히 몇 가지 더 중요한 신경장애를 비롯해 간장장해, 재분비계와 면역계, 효소등의 장해를 일으킨다는 임상보고도 있다.
농약과 제초제, 성장 촉진제의 의한 기형아의 증가는 물론 제초제에 포함된 '다이옥신'이 그 원인이라고 인정하게 된 것은 베트남 고엽작전이 있었던 10년 후의 일이다.
이와 같이 만성독성이나 특수독성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은 과학적 이론과 농약, 식품첨가물에 오염된 식품과 공해 물질의 범람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질병이 격증하고 있으며 암과 같은 병은 인체 속에서 아무런 징후를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나고 있음을 볼 때 현대인은 몸 안에 암 덩이를 안고 활동하면서도 전혀 암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 차라리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 농업이야말로 건강을 보장하는 유일의 길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현대 문명이라는 과학은 발달할수록 그 해독이 증가하리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농담이라도...
어느 목사가 비록 농담 삼아 한 말이겠지만 이렇게 말하더란다. "믿음, 소망, 사랑, 돈 이 네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돈이니라" 그러면서 돈에만 눈이 벌개져서 부업하고 장사해서 돈을 벌더니, 교회는 교회대로 안되고 집안이 파탄이 되더란다. 참으로 불행스러운 말이다.
불평의 말
감옥에서 오랜 동안 수감 생활하던 사람이 있었다. 불행하게도 이 사람은 불평과 남을 탓하는 것이 체질화되어 한순간도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이 사람이 오랜 수형 생활을 끝내고 출옥하게 되었을 때, 수도원에 찾아가 수도원장에게 "나를 받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수도원장은 이 사람에게 "좋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침묵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단, 5년 후에 한 마디만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5년이 흘렀다. 이 사람의 첫마디는 "잠자리가 나쁘다"는 것이었다. 다시 5년이 흘렀다. 두 번째 말은 "음식이 나빠서 못 먹겠다"는 것이었다. 또 5년이 흘렀는데 그때는 "더 못살겠다"고 했다. 15년 동안의 세 마디는 모두 불평뿐이었다. 수도원장은 이 사람을 쫓아내며 말했다. "그대가 여기 있는 동안 불평뿐이었으니 나가주기 바랍니다."
아첨하는 말의 대가와 진실한 말의 대가는?
고대 페르시아의 코스로스 황제는 한동안 중병을 앓다가 회복되어 다시 집무실로 나왔다. 그 동안 병상에서 생각한 바가 있던 황제는 평소 정사를 논하던 고문관들을 불러 말했다.
"나에 대한 여러분의 거짓 없는 의견을 듣고 싶소. 대가는 지불하리다."
그러자 고문관들은 한 사람씩 나서서 황제에 대한 갖은 미사여구의 아첨을 다했다. 그러나 엘림이라는 사람은 달랐다.
"폐하, 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오?"
"진실은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좋소. 그대에겐 대가를 지불하지 않겠소. 아무튼 바른말을 해주시오."
엘림은 그제서야 입을 열어 황제의 약점과 실정을 낱낱이 들추었다. 그리고는 궁전의 무사 안일을 과감히 떨치고 나서서 일함으로써 백성의 신뢰를 회복할 것을 건의하였다.
황제는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약속한 대로 고문관들에게 각각 보석을 대가로 지불하였다. 그러나 엘림에게는 수상직을 맡아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고문관들이 황제를 찾아왔다. 그들 중 대표가 말하였다.
"폐하께서 저희에게 주신 보석을 판 상인을 붙들어 교수형에 처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보석은 모두 가짜였습니다."
그러자 황제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대들 말도 가짜이지 않았느냐."
지혜로운 사람의 말
함께 말할 만한 사람인데도
그와 함께 말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 된다.
함께 말할 수 없는 사람인데
그와 함께 말하는 것은
말을 잃는 것이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도 잃지 않고
말도 잃지 않는다.
-논어-
침묵의 신비
어떤 수도사에게 여인이 찾아와 "남편과의 다툼 때문에 살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수도사는 물이 담긴 병을 하나 주면서 "남편과 다투기 직전 이 물 한 모금을 입안에 물고 삼키지 말라"고 말했다. 여인은 남편이 시비를 걸때마다 그렇게 했다. 그러자 가정이 조용해지고 부부가 화목하게 됐다. 후에 여인이 수도사를 찾아 '신기한 물'이라고 감탄하자 수도사가 말했다. "그 물은 평범한 물입니다. 다만 침묵이 신비로울 뿐입니다."
차라리 침묵했더라면...
어떤 젊은이가 한 밤중에 산길을 지나가다 강도를 만났다. 강도는 다짜고짜 있는 돈을 다 내놓고 가라고 윽박질렀다. 그 젊은이는 돈을 빼앗아가지 않으려고 끝까지 반항하면서 싸웠지만 중과부적이었다. 혼자의 힘으로 여러 명의 떼강도를 당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도들이 쓰러져 있는 젊은이의 몸을 뒤적거려 찾은 돈은 고작 1,000원 짜리 한 장이었다. 강도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투덜대는 말투로 물었다.
"이것봐! 젊은이, 이까짓 천 원 짜리 한 장이 뭐가 아까워서 그렇게 피를 흘려 가면서 맞상대하여 싸웠나?"
그러자 젊은이가 눈을 부릅뜨고 분에 못 이겨 입술을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쳤다.
"바보 같은 소리 작작해라 이 날도둑놈아, 그까짓 천 원이 문제냐? 내 구두 밑창에 깔려 있는 백 만원 짜리 수표를 빼앗길까 봐서 그런 것이야, 이 밥통들아?!......"
침묵이 금이라고 한다.
방정맞은 분풀이 한마디가
목숨과 돈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말았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던 예수께
유대인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입을 연 침묵이었다.
그들의 소리는 입 속에서 나온 소리에 불과했다.
마음에서 나오는 부르짖음이 아니었다.
소리는 울리는 꽹가리와 같다.
예수님의 마음에 와닿게하는 것은 소리가 아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신앙의 고백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습니다" 라는 이 한마디인 것이다.
침묵의 힘
미국이 파나마운하를 만들고 있을 때 건설 총책임자는 '지리적 여건과 기후가 나빠 운하는 완공될 수 없다'는 부정적 여론과 맞서야 했다. 그는 온갖 비난과 모략 속에서도 침묵을 지키며 성실히 일을 했다. "왜 그런 모함을 받고도 침묵합니까?" 주위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며 물을 때마다 "때가 되면 하지"라고 대답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그는 웃으며 말했다. "운하가 완공된 후."
침묵은 유능한 두뇌의 봉인(封印)이다. 비밀이 없는 가슴은 공개된 편지와 같다. 근원이 깊은 곳에는 비밀도 깊이 숨겨져 있다. 침묵은 훌륭한 자제(自制)에서 나온다. 그리고 여기서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 참된 승리다. 사람은 자기가 할 일을 말할 필요가 없고, 이미 말한 것은 두 번 다시 말 할 필요가 없다.
저는 한눈에 당신에게 반하였습니다
한 쌍의 남녀가 오랜 기간 편지로 교제하다 이제는 서로 만나서 자기를 소개하고 진실하게 서로를 사귀기로 하고 한 가지도 거짓이 없기로 약속하였다. 만약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곧 헤어지기로 하였다. 둘은 서로 마음이 통하여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신부는 신랑이 애꾸눈인 것을 발견하였다. 한쪽 눈은 눈처럼 생긴 의안이기에 그 동안 잘 몰랐었다. 신부는 대단히 화가 나서 헤어지자고 하였다. 그러나 신랑은 자기가 애꾸눈인 것을 이미 고백하였다고 하였고 신부는 그 사실이 생각나지 않았다. 신랑은 자기가 처음에 신부를 만나고 그 다음날 편지로 자기의 애꾸눈임을 고백하였다고 하였다. 신부는 집에 가서 편지를 보니 편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저는 한눈에 당신에게 반하였습니다."
필요한 거짓말
어떤 경우에 거짓말을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
탈무드(유대인의 경전)에서는 두 가지 경우에는 거짓말을 하라고 말하고 있다.
먼저, 이미 누군가가 사 버린 물건에 대해서 의견을 구하여 왔을 때에는 설령 그것이 나빠도 훌륭하다고 거짓말을 하라.
다음에 친구가 결혼했을 때에는 반드시 부인이 대단한 미인이며,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거짓 말을 하라.
지혜로운 시어머니
어느 시골에 시집 온 며느리가, 세대 차이 때문인지 모르지만, 매사에 시어머니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거역하곤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얼마나 소문을 잘 퍼뜨리는지, 동네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만 있으면 며느리 칭찬을 늘어지게 했다. 며느리 때문에 속이 상해서 나온 날에도 그 며느리 칭찬을 했다. 그러자 동네에서는 그 며느리가 효부로 소문이 자자해졌다. 그러니 그 소문을 들은 며느리가 처음 한동안 얼마나 민망했겠는가? 결국 그 며느리는 소문대로 좋은 며느리가 되었다.
말해야 할 때 침묵하고
침묵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은
지성의 두 개의 수치이다.
-사디-
말의 3대문
데이란 사람이 쓴 '세 황금 문'이란 글에 보면, 인간이 언어생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충고의 말이 나오고 있다.
말하기 전에 세 황금 문을 지나게 하라.
다 좁은 문들이다.
첫째 문은
"그것이 참말이냐?"
그리고 둘째 문은
"그것이 필요한 말이냐?"
네 마음속에서 참된 대답을 하라.
마지막이고도 가장 좁은 문은
"그것이 친절한 말이냐?"
그 세 문을 지나왔거든
그 말의 결과가 어찌 될 것인가 염려 말고 크게 외쳐라.
옛날 우리네 선조들은 말 때문에 많은 고통과 고난을 겪어서인지,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하면서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것을 현명한 것으로 알아왔다. 간혹 반드시 말을 하여야 할 경우에는 신중히 생각한 다음에 입을 벌리라는 뜻에서 '일언전십사(一言前十思), 즉 '한 마디의 말을 하기 전에 열 번 생각하라.'고 충고하였다.
말문을 여는 지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말다툼을 했다. 할머니는 몹시 화가 나서 남편과는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할아버지는 어느새 말다툼에 대해서 까맣게 잊어 버렸으나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모른 척하며 여전히 침묵 시위를 계속했다. 답답해진 건 할아버지였다. 입을 열도록 해야겠는데 방도가 없었다.
결국 벽장과 서랍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옷장 밖으로 옷이 내팽개쳐지고 경대에서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쏟아져 방안에 뒹굴기 시작했다. 이 일이 얼마간 진행되자 할머니는 더 참을 수가 없게 되었다.
"도대체 뭘 찾고 계시우?" 할머니가 퉁명스럽게 내뱉았다.
그제야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이제야 찾았구만."
그러자 할머니가 매우 궁금하다는 듯이 한마디하고 나섰다.
"뭘 찾았다는 말이오?"
이때 할아버지가 환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 목소리를 말이오!"
적극적인 언어의 영향력
미국의 로버트 슐러 목사가 미국의 캔사스에 있는 어느 유명한 성공자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그 집의 대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져 있었다.
"이 문을 통과한 이상 당신은 무조건 적극적인 말만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침묵을 지켜라. 만일 미국에 있는 가정이 이 교훈을 따른다면 가정 생활은 윤택해지고, 이혼율이 감소되고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망의 말과 격려하는 말의 차이
시골의 작은 천주 교회 주일 미사에서 신부를 돕고 있던 한 소년이 실수를 하여 제단의 성찬으로 사용할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다. 신부는 순간 소년의 뺨을 치면서 "어서 물러가고 다시는 제단 앞으로 오지마!" 이 소년은 장성하여 공산주의의 대 지도자인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대통령이 되었다. 그 말대로 다시는 교회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큰 도시 천주 교회당에서 미사를 돕던 한 소년이 역시 성찬으로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다. 신부는 곧 이해와 동정이 어린 사랑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음, 네가 앞으로 신부가 되겠구나." 이 소년은 자라나서 유명한 대주교 훌톤 쉰(Archbishop Fulton Sheen)이 된 것이다. 티토 소년은 그 말대로 제단 앞에서 물러나 하나님을 비웃는 공산주의의 지도자가 되었고, 쉰 소년은 그 말대로 귀한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이다. 내 입의 말은 좋든 나쁘든 무언인가 이루고 있다.
해내고 말테야
한 세일즈맨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장씨인 그는 세일즈맨이 되고 나서도 이런 일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동료들이나 자기 가족, 친구들을 만나기만 하면 똑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난 세일즈맨 체질이 아냐. 적성에 안 맞는다구."
그렇다고 뚜렷한 직장이 나선 것도 아니어서 마지못해 출퇴근을 하긴 했으나 현장에 나가서 판매는 하지 않았다. 고객을 방문한 적도 없었다. 그렇게 반 년 이 흘렀다.
어느 날 그의 가정에 불행이 닥쳐왔다. 하나 뿐인 아들이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사고 차량이 뺑소니를 치는 바람에 막중한 입원비가 손을 벌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당황했다. 다급한 상황에서 손을 벌릴 데라고는 형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설상가상으로 그의 형은 부도가 터진 직후였다. 사면초가였다.
평소에 저축은커녕 나날이 때우기에도 급급했던 그는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문득 동료 세일즈맨인 미스 조가 떠올랐다. 24세의 미스 조는 세일즈에 귀신이라고 소문이 날 정도로 성공한 처지였고, 매월 상당액을 저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최저 1백만 원, 어떤 달에는 2백만 원의 수입을 올린다는 처녀였다.
장씨는 회사로 나갔다. 미스 조를 만나 아들의 교통사고를 얘기하고 어떻게 차용할 수 없겠는지 간곡히 사정했다. 미스 조의 반응은 차가웠다.
"지난 6개월간 아무 실적도 없었다면서요?"
"그건 사실이지. 난 도대체 이 일이 적성에 맞질 않아서 말야..."
"뭘 믿고 선생님 같은 무능한 분에게 그 많은 돈을 빌려주죠?"
".......?"
"둘 중 하나를 선택하세요. 적성에 맞는 일이 뭔진 모르지만 그 일을 찾아 하시든가, 아니면 지금 있는 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할 자세로 전환 하시든가..."
"......"
"장선생님, 처녀인 제가 일하는 걸 보세요. 저도 처음엔 이 일이 창피하고 싫었어요. 그러나 내 앞에 닥쳐 있는 일을 하지 못하면 무슨 일인들 할 수 있겠어요? 나도 하면 된다고 열흘 동안이나 나 자신을 채찍질했죠. 늘 혼자서 중얼거렸어요. 나라고 못할 게 뭐야. 나도 할거야. 남들보다 잘 해내고 말테야. 열흘 동안이나 스스로 격려하고 명령하고 다짐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잘하고 있어요. 장선생님께 조건을 걸겠어요. 적성이 따로 없어요. 장선생님도 지금 이 시각부터 열흘 동안 중얼거리세요. 나도 할 수 있다. 미소 조가 하는 일을 내가 왜 못해? 적성? 그런 건 필요없어 해내고 말테야. 지금 하는 일에 성공 못하면 다른 일에도 성공 못해. 반드시 잘하고 말거야.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 누구와 얘기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다짐하세요. 차 안에서도, 길에서도, 사무실에서도 계속 다짐하세요. 소리 내서도 하고, 속으로도 하시라구요. 그 약속을 하신다면 돈을 빌려 드리겠어요."
장씨는 어이가 없었지만 사정이 사정인지라 약속을 했다.
"그럽시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담보 가치가 있을까요?"
"충분히 있어요. 열흘 후부터는 장선생님이 능력있는 세일즈맨이 될 테니까요. 약속을 지키시기만 하면요."
장씨는 그녀와의 약속을 지켰다. 미스 조는 열흘 후에 장씨가 약속을 이행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판매에 성공하여 눈부신 실적을 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긴 말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을 '유언'(遺言)이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자녀들에게 주로 재산 분배에 관한 유언을 남겼다. "큰아들 너는 논 몇 마지기를 갖고, 작은아들 너는 밭 얼마를 가지고..."
철인 소크라테스는 '우리는 이제 떠나야 할 때가 왔다. 나는 죽으로 가고 여러분은 살러간다. 누가 행복할 것인가? 그것은 오직 신만이 알 것이다.' 라고 철인답게 독배(毒杯)를 마시고 죽었다.
공산주의 이론을 만들어 낸 칼 마르크스는 죽음을 앞두고 그의 하녀가, "제게 마지막 말을 남겨 주시면 기록해 두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시끄러워, 나가" 하면서 소리치며 죽었다.
장군 나폴레옹은 "나는 불행하게 살았다"라고 중얼거리며 죽었고, 대만의 장개석 총통은 "영웅이란 용감하게 실패하는 자이다..."라고 무언가 한을 남기면서 죽었고, 문호 괴테는 "창문을 열어다오..." 하면서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탄생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순간에 "다 이루었다..."라고 자신있게 말씀하시며 그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셨다.
험담
"도둑질하는 것하고 남을 험담하는 것과는 어느 편이 죄가 더 큰가?"
하는 문제가 있다. 우리 교회의 목사는 어느 날의 설교에서,
"험담하는 편이 죄가 더 크다."
라고 말했다.
가령 애지중지해 온 목걸이를 도둑맞았다 치더라도 기껏, 비싼 것인데 참 아깝다."
라던가,
"기념으로 그이가 준 건데 너무 서운하다."
라고 하는 정도의 괴로움에 그칠 것이다. 도둑을 맞았기 때문에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남에게서 험담을 듣고 죽어 버린 노인이나 소년소녀의 이야기는 가끔 듣는다.
"우리집 노인은 먹보예요. 그런 나이로도 밥을 세 공기나 먹어치우지 뭐예요."
하고 뒷전에서 말한 며느리의 험담이 가슴에 사무쳐 그 뒤 일체 음식을 거절하고 죽은 이야기.
"미스 R은 B씨와 수상쩍은 사이다."
라는 소문이 퍼져 죽음으로써 항의한 이야기.
또 정신박약아의 3할은 임산부가 3개월 이내에 강한 쇼크를 받은 경우에 생기게 된다는 말도 들었다. 어느 부인은 시누이로부터 남편의 총각 시절의 여자 관계를 들었고, 또 현재도 따로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심술궂은 중상이었다. 행복에 겨운 올케에 대한 질투에서 나온 말이었다. 임신한 지 얼마 안된 이 여자는 시누이의 이야기에 큰 쇼크를 받았으며, 그 뒤 태어난 아이는 정신박약아였다.
무서운 이야기이다.
우리들이 무심코 입에 올리는 험담이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태어나는 아이를 정신박약아로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악의 힘이다. 도둑질과 같은 단순한 죄와는 다르다. 보다 침침한 검은 죄이다. 남을 나쁘게 말하는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적의, 질투, 증오, 우월감, 경박, 그밖에 갖가지 마음들이 험담이나 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세상에 남의 험담을 해본 일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들은 누구나 죄 많은 인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 죄의식으로 마음을 아파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죄이다."
-삼포능자-
두루뭉수리 화법
옛날 어느 곳에 세상을 호박 굴리듯이 둥글둥글 살아가는 노인이 있었다. 이 노인은 백수(白壽)를 살도록 누구와 크게 말다툼 한번 한 적이 없었다. 남의 말에 절대로 반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을의 젊은이들이 하루는 내기를 걸었다. 노인의 입에서 반박의 말을 나오게 하는 사람에게 술을 산다는 내기였다.
첫 번째 젊은이가 노인을 찾아가서 허풍을 떨었다.
"영감님, 간밤에 남산이 무너졌대요."
노인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대꾸했다.
"남산이 무너졌다구? 음, 그도 그럴거야. 수천 년 동안 풍우에 시달리며 늙었으니 제아무리 산이라고 한들 안 넘어갈 수가 있겠는가."
이 말을 듣고 두 번째 젊은이가 따지고 들었다.
"세상에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무리 풍우에 시달리며 늙었다고 해도 어떻게 산이 무너질 수가 있겠습니까?"
"듣고 보니 자네 말도 옳네. 산이란 위가 좁고 밑이 넓을 뿐 아니라 단단한 바윗돌이 많이 박혀 있으니까 무너지지는 않겠네."
잠시 후에 세 번째 젊은이가 달려와서 말했다.
"영감님, 참으로 신기한 일도 다 있지요!"
"무슨 일인데 그런가?"
"소가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습니다. 세상에 그런 신기한 일도 다 있습니까?"
"신기할 것도 없네. 소란 놈은 본시 성질이 어리석고 미련한 놈이라서 비록 쥐구멍이라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고 들어갈 수도 있지."
이 말에 네 번째 젊은이가 나섰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소가 아무리 어리석고 미련한 놈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 좁은 쥐구멍으로 들어갑니까?"
노인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자네 말도 일리가 있겠네. 소란 놈은 뿔이 있는 짐승이니까 들어가려고 해도 쥐구멍에 뿔이 걸려서 못 들어 갈거야."
이때 모여 있던 젊은이들이 일제히 노인을 공박했다.
"영감님의 말씀은 하나도 중심이 없어요. 이 말을 하면 이 말이 맞다 하고 저 말을 하면 저 말이 맞다 하니, 대체 어느 말이 맞다는 것입니까?"
노인은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 이 사람들.... 내가 이런 식으로 살아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 말 많은 세상에서 이 나이까지 아무 탈없이 살아왔겠는가? 그리고 부질없는 말싸움에서 이긴들 무슨 이득이 있단 말인가!"
우입서혈(牛入鼠穴)이란 성어가 있다. 소가 쥐구멍에 들어간다는 말로써 불가능한 일, 또는 무엇이 사리나 이치에 전혀 어긋날 때에 곧잘 사용된다.
위의 이야기는 우입서혈이란 성어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인데, 잘 새겨 읽으면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묘하게도 짓궂은 질문만을 골라서 하는 사람이 있다.
칭찬의 말 한 마디가
평생 77권의 저서를 내고 백만 불 이상의 저작 수입을 올린 영문학 사상 불멸의 거장 H.G. 웰즈의 경우를 보자. 그는 런던의 조그만 상점에서 일했다. 새벽 5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하루 14씩 온갖 잡일에 혹사당하는 근로 청소년이었다.
2년 동안이나 말없이 참고 견디던 그는 어느 날 주인에게 말도 없이 상점을 떠났다. 그리고는 죽어 버리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호소하고, 모교 교장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썼다. 힘든일에 대하여, 보잘것없는 수입에 대하여, 앞날의 불안감에 대하여.
편지를 받은 교장선생님은 웰즈에게 답장을 썼다. 중노동이나 잡역부는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너의 편지를 읽어보니 너야말로 훌륭한 문장력을 지닌 숨은 인재다. 넌 글쓰는 일에 종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에 이어 학교 선생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그 교장선생님의 칭찬이 그를 위대한 영문학자로 만든 것이다.
긍정적, 창조적 언어를 구사하라
부정과 파괴의 대칭 개념인 긍정적, 창조적 언어 구사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저 습관적으로 "예"이면 된다.
언어가 부정적이면 되는 일이 없다. 말로 할 수 없는 사람이 행동으로는 더 더욱 옮길 까닭이 없다.
파괴적 언어는 사람의 인격과 마음, 국가의 안전과 발전, 사회와 가정 모든 것을 퇴보하게 한다. 있는 것을 없게 만들고, 되려는 것을 안 되게 만들고,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한다. 사회의 파괴적 분위기는 파괴적인 구호, 즉 언어의 힘에 의한 것임을 우리는 알이야 한다.
말은 이와 같이 놀라운 힘을 갖고 있다. 건설하고자 외치는 곳에 건설의 망치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 된다고 말하는 곳에서는 무슨 일인가가 이루어진다. 창조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창조적인 사람이 된다.
과장된 말은 인플레 같고, 약속을 못 지킨 말은 부도 수표 같고, 의식적인 거짓말은 위조지폐 같다고 한다. 인플레가 심하고 부도수표가 횡행하고 거기다가 위조지폐가 판치는 사회가 어떻게 붕괴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거짓말과 허황된 과장과 남을 헐뜯는 말이 홍수를 이룬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진실 되게 말하는 것, 겸손하게 말하는 것, 긍정적이고 창조적으로 말하는 것은 개인의 발전만을 도모하자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발전하고 화합하고 신뢰하는 사회의 건설을 위한 것이다.
언어에 관한 금언들
人生에서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
말은 한 사람의 입으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미상-
진실한 말을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않다.
-노자-
평생 善을 行해도 한마디 말의 잘못으로 이를 깨뜨린다.
-공자-
새가 장차 죽으려 함에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함에
그 말이 착하다.
-論語-
현명한 자는 긴 귀와 짧은 혀를 가지고 있다.
(The wise man has long ears, and d short tongue)
-英國-
유대인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하나는 '지혜'이고, 또 하나는 '신념'이다.
지구상에 유대인들 보다 더 큰 시련을 겪어 온 민족은 어디에도 없다.
수 천년 동안 고난의 역사를 지녀 왔고, 학살과 위기의 세월을 보내 온 민족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난세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는 필수였고, 어떤 절망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신념이 있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유대 민족의 지혜와 신념을 앞서가는 나라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물론, 이들의 신념은 '믿음처럼 보이는 신념'이 아니라 여호와 경외를 근본으로 한 신념으로 믿음에서 발휘되는 신념을 말한다.
세계를 감동시켰던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독일군은 유대인들의 생명을 파리 목숨 만큼으로도 여기지 않았다. 그 영화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독일군이 키우던 닭이 누군가에 의해 도난을 당했다.
이에 독일군은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유대인들을 세워 놓고 첫 번째 서 있는 유대인을 본보기로 사살해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닭 훔친 놈을 몰라?" "빨리 불어" "닭을 들고 다니는데 아무도 몰랐다니!" "자기 목숨들부터 구해. 어서 불어" "그래도 아무도 모르는군"
독일군이 또 한 명을 사살하려고 총을 겨눌 때였다. 한 어린 소년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왔다. 소년의 몸은 공포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고개를 숙인채 공포의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너로구나, 네가 한 짓이야" "아닙니다."
"그러면 범인을 알고 있지?"
"네" 소년은 범인의 얼굴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지?" 그 때였다. 공포에 떨며 울고 있던 소년은 손가락을 힘차게 가리키며 외쳤다.
"Him" "바로 저 사람입니다"
그 소년은 바로 앞에 총살당해 쓰러져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그가 바로 닭을 훔쳐간 도둑이라고 외쳤던 것이다.
한 소년의 지혜가 자기의 목숨뿐만 아니라 많은 유대인을 살려낸 것이 되었다.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잠4:6)
위기를 모면한 재치
아인슈타인 박사가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여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자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강연을 부탁해 왔다. 박사는 바쁜 와중에도 뿌리치지 않고 이 대학 저 대학을 다니며 강연을 했다.
30회 이상의 강연을 한 어느 날, 전속 운전사가 박사에게 장난스럽게 이런 말을 했다.
"박사님, 저도 상대성 원리에 대한 강연을 30번이나 들었기 때문에 이제는 모두 암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박사님은 연일 강연하시느라 피로하실 텐데 다음 번에는 제가 박사님의 양복을 입고 강연하면 어떨까요?"
그러자 박사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순순히 그 말에 응했다. 다음 대학에 도착하기 전에 둘은 옷을 바꿔 입었다. 이때부터 박사가 운전을 하고 뒷좌석에는 운전사가 앉았다.
가짜 아인슈타인 박사의 강연은 훌륭했다. 말 한 마디, 표정의 움직임까지도 진짜 박사와 흡사했다. 성공적으로 강연을 마친 가짜 박사는 많은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학식이 높은 것 같은 교수 한 분이 질문을 한 것이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은 사람은 가짜보다 진짜 박사 쪽이었다. 운전사 복장을 하고 있으니 나서서 질문에 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단상의 가짜 박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아주 간단한 질문이군요. 그 정도는 제 운전사도 답할 수 있습니다. "
그러더니 진짜 박사를 향해 소리쳤다.
"어~ 여보게. 이 분의 질문에 대해 어서 설명해 드리게나."
그 말에 진짜 박사는 의아해 하는 청중의 눈길 속에서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질문에 대한 설명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경험이라는 지혜
어떤 사람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여러 날 헤매었다. 그러다가 저 쪽에서 어떤 사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숲을 빠져나갈 수 있으리란 생각에 그의 가슴은 기뻐 뛰었다. 서로 가까워지자 그는 그 사람에게 물었다. "여보세요, 이 숲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저는 여러 날 여기서 방황했지만 나가는 길을 찾지 못했답니다. "
그러자 다른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저도 길을 잃었거든요. 그러나 이것만은 말할 수 있지요. 제가 왔던 길로는 가지 마세요. 그것이 숲을 빠져나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거든요. 이제 나가는 길을 함께 찾아보십시다." 이처럼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눌 때 그만큼 효과적인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제비의 지혜
어느 날 칸트는 제비의 지혜를 보고 겁에 질린 일이 있었다 한다. 그 해는 몹시도 날이 가물어서 제비들이 벌레를 잡기가 무척 어려웠는데, 어느 날 칸트네집 처마에 집을 짓고 살던 어미 제비가 새끼 가운데 몇 마리를 둥지 바깥으로 떨어뜨려 죽이는 것을 보았다 한다. 제비 부부가 아무리 열심히 벌레를 잡아와도 그 새끼들을 다 살릴 수는 없고, 그래서 새끼들을 다 굶겨 죽이기보다는 몇 마리만 죽게 함으로 나머지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더 낫기 때문에 그렇게 했음이 분명하다. 이것을 본 칸트는 어떻게 이성이 없는 제비가 그런 지혜로운 깃을 할 수가 있었는가를 생각했을 때, 그것은 조물주가 그런 본능을 제비에게 넣어 주었음이 분명하다고 느낀 것 같다.
지혜 있는 충신(忠臣)
옛날 괵나라 임금이 국경 밖으로 쫓겨났다. 마부는 자신의 직무대로 임금을 태우고 함께 황야를 헤맸다. 임금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자 마부가 그제서야 미리 감추어 두었던 음식을 내놓았다.
"어찌 알고 음식을 준비했느냐?"
"임금의 포악함을 보고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일찍이 알았지요."
"그대는 어찌 진작 일러주지 않았느냐?"
"제가 일러주었더라면 지금 이렇게 살아서 음식을 올려 드릴 수 있겠습니까?"
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경공이 안자에게 '신하의 도리'를 물었다.
"임금이 환난을 만나 죽게 되었을 때 따라 죽지 아니하며, 임금이 국외로 추방당할 때도 전송조차 하지 않는 자가 훌륭한 신하이지요."
이 대답에 경공은 불쾌했다.
"땅을 떼어 봉해주고 그 아까운 자리를 마련해 벼슬을 주었는데 그런 논리가 어디 있소?"
안자는 설명했다.
"미리 간언을 해서 듣는 임금이라면 죽을 환난이 어디 있겠으며, 일을 선하게 꾸며 덕으로 정치를 하도록 임무를 다했다면 쫓겨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신하가 제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따라 죽고, 의리랍시고 따라 나선다면 이는 임금을 자신의 사욕에 맞추어 섬긴 것뿐이지요."
安子春秋(안자춘추)의 일화이다. 세상에는 忠臣(충신)과 良臣(양신)이 있다. 충신이 난세에 목숨을 걸고 나서는 勇(용)에 가까운 유형이라면, 양신은 치세에 덕과 예지를 바탕으로 선을 유도하는 智(지)에 가깝다 할 수 있다.
한 가닥의 실
커다란 굴뚝이 완성되고, 사람들이 그걸 짓기 위해 설치한 작업대를 제거하고 있다. 오직 한 사람만이 밧줄을 타고 내려오기로 하고 굴뚝 위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만 사람들이 밧줄을 꼭대기에 남겨 놓지 않고 다 내려가 버렸다.
큰일이었다. 뛰어내리는 길밖에 없었다. 굴뚝에 혼자 남은 그는, 절망하여 굴뚝 꼭대기에서 이리저리 두려워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지만 밧줄은 굴뚝 꼭대기까지 던져 올릴 수는 없었다.
그때 그의 아내가 외쳤다. "당신 양말을 벗어서 실을 풀어 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숨죽이고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것을 길게 이어서 아래로 내려보내세요." 실이 거의 내려오자 그의 아내는 거기에다 가늘고 질긴 삼실을 묶었다. "이제 끌어올리세요."
삼실이 그의 손에까지 올라갔다. 이번에는 삼실에 밧줄을 묶었다. 그가 밧줄을 손에 넣었다. 밧줄을 튼튼하게 꼭대기에 묶은 그는 긴장 속에서 무사히 밧줄을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울면서 아내를 안았다.
보잘 것 없는 한 생각의 지혜와 한 가닥의 실이 생명을 구한 것이다.
원 밖의 사고
옛날 어느 임금님에게 신실한 신하 3명이 있었다.
하루는 임금님이 그가 가장 사랑하는 신하 세 사람을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자네들의 충성을 내가 아니, 너희에게 큰 상을 내리겠노라" 말씀하시면서, "너희들은 내일 새벽부터 말을 타고 하루종일 달리면서 표시하는 땅을 다 너희에게 줄 것이니라"고 했다.
다음날 세 신하 중 두 신하는 가장 빠른 말을 타고 날이 새기 무섭게 달렸다. 그러나 한 신하는 평소와 같이 자기 맡은 일을 충실히 하였다.
주위의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말로 하루 종일 달려도 몇 고을밖에 표시할 수 없는데 자넨 왜 그렇게 꾸물거리고 있나?" 신하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날 저녁이 되었다. 두 신하는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한 신하는 죽고, 한 신하는 몇 고을을 표시하고 돌아왔다.
임금님은 몇 고을 표시한 신하에게 약속대로 그 고을들을 상으로 주고, 마지막 신하에게 물었다. "자네는 몇 고을이나 표시했는가?"
마지막 신하가 대답했다. "전하, 지금 표시하겠습니다." 하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앞에 조그마한 원을 그렸다. 그리고 나서 임금님에게 청하였다.
"전하, 이 원 밖에 있는 모든 것을 주십시오..."
원이라고 하면 우리는 원 안의 면적, 지름 등등을 생각한다. 그러나 원 밖의 무한히 넓은 세계가 있음을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신하의 생각을 일컬어 '원 밖의 사고'라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꿩 벼슬
홍주(洪州)에 사는 이진규(李鎭奎)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이 50이 넘도록 벼슬 한자리 못 얻어 살림을 다 팔아서라도 기어이 벼슬을 하고 말리라 결심하였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심 정승의 집을 자주 드나들면서 온갖 뇌물을 다 갖다 바쳤다.
어느 날 꿩 두 마리를 사 가지고 가서 또 부탁을 했다.
"어떻게 빨리 좀 서둘러 주십시오."
"글세, 그게 그리 쉽나. 좀더 기다려 보게."
"벼슬만 딴다면 있는 재물을 다 팔아 올리겠습니다요."
"다 팔면 얼마나 될까?"
"아무리 못 되어도 만 냥쯤은 되겠지요."
"그렇지만 말대로 한다고 어떻게 믿나?"
"약속을 어기면 꿩의 아들이 되겠습니다."
"꿩의 아들이 된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만일 대감께서 약속을 어기시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렇다면 나도 꿩의 아들이 되지." 하루 이틀 벼슬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두 달이 넘도록 이렇다 할 소식이 없자, 화를 내며 달려들었다.
"이젠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겠습니다. 저의 부모나 돌려주십시오."
"부모라니?"
"그 꿩 말입니다. 대감의 부모도 되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듣자 대감은 아무 말도 못하고 부리나케 벼슬 한 자리를 주고는, "예끼 이 사람, 무슨 성미가 그리도 급한가?"
지혜는 무엇을 구할 것인가, 무엇을 피할 것인가에 관한 지식이다.
-M.T. 시세로-
재치, 생활의 윤활유
한동안 배꼽티 논쟁이 있었던 일이 기억난다. 진보적 시각에서는 이를 놓고 한국 여성들의 도전 정신이 깃들어 있다느니, 한국 여권의 신장 운운한다. 즉 여성들에게 씌워진 굴레를 떨쳐 버리는 몸짓이란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국민 정서에는 꼴불견임에 틀림없다. 어찌 여권 신장이 배꼽을 드러내는 것으로 증명되랴 싶은 생각에 서글퍼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꼴불견을 지하철 안에서, 버스 안에서 심지어 공공 장소에서까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그 볼썽사나운 꼴을 지혜롭게 충고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나이 지긋한 중년 한 분이 다가가 촌노 행세를 했다고 한다. "아가씨, 배꼽이 나왔네. 배꼽 나온 줄도 모르고 있네." 그러면서 옷을 잡아당기는데 옷이 내려올 리가 없다. 다시 하는 말이 "글세 요새 같은 세상에 동생 옷을 입고 다니는 착한 사람도 있네" 그랬더니 옆에 친구가 키득키득 웃으며 자리를 떴고 그 아가씨도 민망했던지 일어나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딸꾹질을 멈추게 한 거지
옷을 단정하게 입은 한 신사가 심한 딸꾹질을 하면서 급한 발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었다.
"왜 그럴까?"
"아침에 밥을 잘 못 먹었나?"
그 사람은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런데 난데없이 길가에 앉아 있던 거지가 깡통을 집어던지고 신사에게 달려들었다.
"이놈! 네 놈의 지난번 내 깡통에서 돈을 훔쳐 달아난 놈이지?"
"아, 아니. 이 놈이 미쳤나? 내가 언제 네놈의 돈을 훔쳐 달아났단 말이냐?"
신사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면서 그렇게 말했다. 주위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봉변을 당하고 있는 신사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잔말 말고 어서 내놔 내 돈 내놔!"
거지는 더욱 큰 소리로 외치며 덤벼들 태세였다.
"허, 참. 기가 막혀... 그래 내가 언제 당신의 깡통에서 돈을 훔쳐 달아났단..."
신사가 딸꾹질을 멈추고 거침없이 말을 이어가자 거지가 넙죽 절을 하며 말했다.
"선생님, 드디어 딸꾹질이 멈추셨군요. 자, 한 푼만 도와주십시오.. 헤헤."
왕비가 된 떡 장사
옛날 옛날 한 옛날의 이야기이다. 젊은 임금님이 왕비를 뽑게 되었다. 많은 후보들에게 임금님은 숙제를 주었다. "각자에게 쌀 한 말씩을 줄 것이니 석 달 동안 이 쌀로 먹고 지내다가 살아서 돌아오는 사람을 왕비로 맞이하겠다"고 했다. 어떤 처녀는 한 달도 못 먹고 쌀이 떨어졌다. 어떤 처녀는 한 말의 쌀을 90등분하여 시래기를 넣어 죽을 만들어 먹다가 영양실조에 걸려 눕고 말았다. 한 처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임금님이 이 쌀을 준 것은 필시 무슨 곡절이 숨어 있을 것이다. 이 쌀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지..." 그 처녀는 쌀 한 말로 떡을 만들어 열심히 팔았다. 돈을 벌면 다시 쌀을 사서 떡을 해서 팔면서 자신의 배고픔도 자연히 해결할 수 있었다. 3개월이 다 되었을 때 이 처녀는 쌀이 열 배나 불어나고 얼굴을 더욱 예뻐지게 되었다. 이 처녀를 만난 임금님은 "과연 그대는 지혜롭고 부지런한 여인이오. 그대는 왕비가 되어 이 나라 살림을 보필 할 수 있는" 하면서 왕비로 맞이했다고 한다.
두 아이의 논쟁
공자가 산책하다가 두 아이가 논쟁하는 것을 보았다.
"왜들 그러느냐?"
공자임을 확인한 한 아이가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해가 처음 뜰 때 사람에게 가깝고, 중천에 떴을 때는 멀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받아서 다른 아이가 말했다.
"저는 해가 뜰 때 사람에게서 멀리 있고, 중천에 떴을 때 가깝다고 했습니다."
앞의 아이가 다시 말했다.
"해가 막 뜰 때는 솥뚜껑만큼 큰데, 낮이 되면 접시만합니다. 멀리 있는 것은 작고, 가깝게 있는 것이 크지 않겠습니까?"
다른 아이가 말했다.
"아침에 해가 뜰 때는 몸이 으스스 춥습니다. 그런데 낮이 되면 뜨겁습니다. 가까우면 덮고 멀리 있으면 추운 것이 아닙니까?"
"....."
공자는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도무지 판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두 아이가 동시에 비웃었다.
"누가 당신을 지혜롭다고 했습니까?"
과학적 탐구와 논쟁을 반영한 우화인데, 지식의 세계는 끝이 없다는 엄숙한 우의를 담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공자는 세계 '4대 성인(四大聖人)'중의 한 사람이며, 동양에서 으뜸가는 대 철학자이다. 그런 공자도 모르는 것이 있고, 실수도 한다.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죽순 먹고 대자리 삶기
어떤 사람이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갔다. 끼니때가 되어 식당에 들어갔는데, 옆 사람이 먹는 요리가 매우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나도 저것을 주시오."
그는 맛있게 먹고 나서 식당 주인에게 물었다.
"내가 방금 먹은 음식은 무엇으로 만든 것이오?"
식당 주인이 말했다.
"대나무 순을 삶은 것이오."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그 맛을 잊지 못했다. 그래서 집에 있는 대자리를 삶았다.
"흐흐, 이제 다 익었겠지?"
그는 군침을 삼키며 솥뚜껑을 열었다.
익지 않은 대자리를 보고 실망하여 이렇게 투덜거렸다.
"그 나라 사람이 거짓말을 했어. 거짓말로 나를 속이다니, 괘씸한 사람 같으니라구."
단편적인 지식이나 경험을 가지고 그것이 전부라고 믿는 사람을 풍자한 우화이다.
세상에는 의외로 우화 속의 주인공과 같은 사람이 많다. 아무것도 아닌 지식을 마구 뻐기고, 어쩌다 한 번 만난 유명 인사가 친절하게 대했다고 해서 최상의 찬사를 던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사례를 들자면 수없이 많다.
경(輕)한 사람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매사에 가볍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듣거나 보면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쉽게 그것을 믿는다. 그러다가 낭패를 당하면 남을 원망한다. 장님 개천 나무라듯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 바 있는가!
죽은 사람을 살리는 약
노나라에 공손작(公孫綽)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사람들에게
"나는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고 하는지라,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나는 반신불수가 된 사람을 고친 일이 있다. 그러므로 그 반신불수를 낫게 한 약을 배로 쓰면 죽은 사람이 살아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일에는 작은 것은 바로잡아도 큰 것은 바로잡지 못하고, 반은 바로잡아도 전부는 바로잡지 못하는 것이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