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사마귀 왕국은 없다
<세밀화로 보는 사마귀 한 살이> 글‧그림 권혁도
2020.9. 향기 이영란
어렸을 때에는 피부에 난 튀어오른 자국을 가진 아이들이 많았다. 손등이나 팔, 혹은 손가락 마디에 팥알만한 크기의 단단한 것이 붙어 있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사마귀라 불렀다. 나는 그것이 사마귀에 물리면 생기는 상처자국인 줄 알았는데, 사마귀 이야기를 쓰면서 찾아보니, ‘살’과 입자나 덩어리를 뜻하는 접미사 ‘마귀’가 붙어서 ‘ㄹ’이 탈락되어 사마귀가 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불교에서 목숨을 빼앗고 혼을 파괴한다는 악마 ‘사마’(死魔)와 ‘귀신 귀’(鬼)를 붙여 사마귀가 됐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사마귀를 여러 곤충의 목숨을 빼앗는 악마로 본 것인데, 그 무엇도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여지껏 사마귀 자국이 곤충 사마귀의 머리와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어쨌든! 잘 보이는 곤충은 아니지만, 메뚜기나 여치처럼 한 여름에는 초록색으로, 벼가 누렇게 익은 가을에는 또 누런색을 띠고 나뭇잎과 나뭇가지와 아주 비슷하게 사는 사마귀는 몸의 크기나 생태가 그렇게 호의를 느끼게 하는 곤충은 아니다. 사납고 맹렬해 보이는 머리, 톱니바퀴가 달린 길쭉한 앞다리와 곤충 서너마리 정도는 너끈하게 삼키고도 남은 뱃구리 같은 외형과 무자비하게 매미나 벌, 메뚜기, 나비, 청개구리 등의 다른 곤충을 사냥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강자가 약자를 인정사정없이 대하는 장면에서 올라오는 거부감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사마귀는 사마귀의 생을 살아갈 뿐이다. 초원의 왕 사자가 그 왕좌를 유지하는데 따라붙는 질시처럼 ‘풀숲의 왕’으로 불리우는 사마귀에게 따라붙는 오해도 마땅한 일일까? 사마귀로서는 과장된 내용에다 자꾸 더 부풀어진 이야기에 무척 억울할 것 같은데, 이 책은 사마귀들이 자신들의 오해를 푸는데 꼭 읽어주십사하고 내걸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덩치가 수컷보다 1.5배 정도는 큰 암컷과 수컷이 만나 짝짓기를 한다. 사마귀 암컷은 짝짓기를 하다가 수컷을 잡아먹기도 한다. 암컷의 이런 행동을 사냥의 본능이라 하기도 하고 건강한 알을 낳기 위해서 더 많은 영양분을 얻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가을이 되면 짝짓기를 마친 암컷의 배가 점점 불러오고, 큰 배를 안고 알 낳을 곳을 찾아다니다가 바위 밑이나 풀줄기, 또는 나뭇가지에 거품을 만들며 그 속에 알을 낳는다. 하얀 거품이 굳으면 아주 튼튼하고 따뜻한 알집이 된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먹잇감이었던 곤충들은 보이지 않고, 배고픈 사마귀는 풀숲을 돌아다니며 두세 개의 알집을 만들어 놓고 기운이 다해 죽는다. 죽은 사마귀는 개미들에게 겨울을 날 소중한 양식이 된다.
아무리 추워도 사마귀 알집은 얼지 않는다. 거품이 굳어서 생긴 작은 공기주머니들 덕분이다. 무서운 것은 추위가 아니라 천적들이다. 사마귀수시렁이나 사마귀꼬리좀벌 같은 곤충이 사마귀 알집에다가 알을 낳는 것이다. 알집이 무사히 겨울을 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조팝나무꽃이 피는 늦은 봄이 되어서야 애벌레들이 알집에서 쏟아져 나온다. 150~200여마리의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부지런히 풀줄기나 나뭇가지를 타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1센티미터도 안 되는 어린 사마귀는 거미나 개미, 개구리, 베짱이나 도마뱀에게는 맛있는 먹잇감이다. 완전한 성충이 될 때까지 살아남는 사마귀의 확률은 서너 마리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작은 풀꽃과 새싹들 사이로 어린 메뚜기들이 뛰어다니는 봄이 와도 사마귀 알집은 죽은 듯이 그대로 있는데, 알집 안에서는 애벌레가 깨어날 준비로 한창이다. 다른 곤충을 먹고사는 육식곤충인 사마귀는 먹이가 풍성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곤충들이 살아남기 위해 빨리 허물을 벗고 덩치를 불려가는 것처럼, 사마귀도 5월부터 7월 경까지 모두 일곱 번의 허물을 벗으면서 더 빨리 더 크게 자라기 위해 애를 쓴다. 다 자란 왕사마귀는 98mm 정도인데, 이제 대부분의 곤충들은 사마귀의 눈을 피해 다니게 된다.
사마귀는 머리를 마음대로 돌릴 수 있기 때문에 사방에 있는 먹잇감을 잘 살필 수 있고,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넙죽 엎드려서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또 알려진 것과는 달리 굉장히 겁이 많아서 힘센 적을 만나면 풀잎에 납작하게 붙어서 숨거나 땅에 툭 떨어져서 다리를 뻗고 죽은 척하기도 한다.
사마귀의 생태를 읽고 나서는 200여 마리에서 서너 마리 정도의 생존율을 보이는 사마귀가 과연 곤충의 제왕이라 부를 수 있을지 그 상처뿐인 영광의 자리에 사마귀가 수긍할지 의문이다.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며 그런 자리는 관심도 없다며 오늘 하루의 무사한 생존을 위해 앞다리의 톱니바퀴를 청소하며 사냥에 나서지 않을까 생각된다.
2학기 학교생활 적응이 만만치 않았다. 키가 불쑥 커진 재원이는 화가 많아지고 아침부터 투덜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자기가 해야 할 역할분담이 왜 이렇게 많냐고, 마스크가 축축해서 못 쓰겠다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잔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짜증나 죽겠다고. 지훈이는 일기를 써 오지 않은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는 학교에서 일기를 썼다. 그리고는 자기보다 훨씬 못 쓴 태훈이에게 준 칭찬표시에 시비를 걸며 그렇게 쓴 일기에 칭찬을 주냐고 따졌다. 자기도 집에서 쓸 땐 단 한 줄만 쓰겠다고 비아냥거렸다. 또, 점심시간에 자기가 원하는 노래를 유투브로 틀어주지 않는다고 내내 삐쳐 있었다. 나는 그 삐친 정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책상 위에 너저분하게 널린 칠교놀이세트’를 정리하자고 했더니, 아주 싸가지 없는 말을 했다.(그 말을 옮기지 않는 이유는 그 다음의 말 때문에 그 말이 기억나지 않아서이다.) 너의 그 예의 없는 말을 아빠에게 전해야겠다고 했더니, ‘얼른 하세요. 안 하기만 해 보세요’라는 버릇없는 말을 했다.(어린 것이 ‘감히’ 말이다.) 나는 펄펄 화난 속을 다스려야 했고, 팽~하고 머리끝까지 올라간 화를 끌어내려야 했다.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도록 여지를 주는 선생이라는 것과 또 그런 일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은 화를 더욱더 팽팽하게 유지시켰다.
나는 결국 지훈이에게 대판 훈계를 했다. 지금 글을 쓰는 지금도 다시 그 분노가 머리를 감아돈다. 그 일은 열흘 전 쯤에 있었던 일이고, 실은 내 몸 속에 녹아 분해된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상처를 굳이 오래 보관하는 몹쓸 습관은 잘 버려지지 않는다. 훈계로 일을 마무리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배운 비폭력대화법으로 나와 아이의 감정을 나타냄으로써 감정의 찌꺼기가 없이 일단락 지은 일들이다. 물론 앞으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할 것이다.
세밀화로 보는 사마귀 한 살이.hwp
5명의 아이이다. 지훈이와 재원이는 그 중 가장 똘똘한 아이들이다. 에너지가 많고 살아있는 감정을 글에 담아낼 줄 아는 아이들이다. 타협을 해야하고 이해되지 않는 일이지만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할 것이고,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지만, 5명의 에너지를 감당하는 일에 이렇게 힘겨워하는 내 모습에 대한 한심함이 더 컸다. 어쩌면 사는 일이란 내가 아닌 타인과 늘 타협하고 노력하는 시간으로 채워지는 것일 것이다.
아이들은 늘 선생님을 따르고, 책을 읽으려고 하고, 생각을 글로 옮기기를 좋아하고, 학교구성원들은 늘 소통해서 의사결정을 하려하고, 배려하고, 예산을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데 동의하고........ 이럴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그것은 사마귀 입장에서 태어난 애벌레들이 모두 성충으로 온전하게 자라고, 늘 먹잇감이 풍족하고, 알집이 아무런 습격을 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겨울을 나서 풀숲이 사마귀 왕국으로 되기를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열도 나지 않는 감기 때문에 주말내내 끙끙 앓아누워 있었다. 그것은 사마귀 왕국이 될 수 없다는 주제파악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