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바다, 섬
송언수
통영은 바다의 땅이다. 경남 고성과는 가느다란 원문고개가 잇고 있다. 그 외의 지역은 전부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경남의 땅 끝 마을이 통영이다. 처음 통영으로 이사 왔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도 바다였다. 고향인 인천의 바다와는 사뭇 다른 통영의 바다는 굽이굽이 돌아가는 해안선을 따라 서로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이웃한 섬 거제의 산이 따라오고,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아른거리는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푸른 바다는 낮이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저녁에도 달빛 윤슬이 반짝였다.
저마다 바다의 로망을 안고 찾아오는 이들을 반기는 곳, 섬으로 들어가는 날은 한껏 기분이 날아올랐다. 바다에 떠 있는 섬을 고립으로 보는 이가 있다. 출입이 자유롭지 않으니 그럴 것이다. 날씨에 따라 배가 뜨지 않으면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는 곳이다. ‘외로운 섬’, ‘외딴 섬’은 그런 의미로 부르는 말이다. 반대로, 섬을 자유로 보는 이가 있다. 섬에 들어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이들은 육지의 번잡스러움에 지친 이들일 것이다. 섬에 갇힌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이 오히려 모든 족쇄로부터, 모든 업무로부터, 모든 책임과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들게 한다. 어떤 시각으로 보든, 섬은 일상이 아닌 일탈의 시간이다.
시인 백석은 통영을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 했다. 가까운 곳에 섬이 있으니 언제든 바다로 갈 수 있는 곳이 통영이다. 여객선 터미널에 가면 통영의 섬으로 떠나는 배들이 많다. 언제든 누구든 섬에 갈 수 있는 곳, 통영이다. 그럼에도 통영사람이 섬에 가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늘 가까이 있으니, 더 멀어지는 곳 또한 섬이다. 언제든 갈 수 있으니 미루는 일이 다반사고, 옆에 있으니 무심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섬에 가는 일은 만사 다 제쳐둘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일이다.
내가 가 본 통영의 섬을 꼽아본다. 한산도 욕지도 사량도 대매물도 소매물도 추도 두미도 국도 연화도 우도 연대도 만지도 학림도 비진도 소지도 수우도 지도 오곡도 장사도 죽도 좌도 용호도 추봉도. 꽤 많은 섬을 가봤다. 섬에 가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가급적 빠지지 않고 어떻게든 함께 했었다. 아직 못 가본 섬이 많으나, 또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한산도는 통영에서 가장 큰 섬이다. 우리나라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한산대첩으로 왜의 승기를 꺾었다. 전라좌수사로 여수에 계시던 장군은 호남을 지키기 위해서는 왜의 길목을 막아야 한다며 한산도에 진영을 설치했다. 삼도의 수군을 아울러 통솔해야 했으니, 조정에서는 그전에 없던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직제를 새로이 만들었다. 한산진영에 있던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 직을 겸했다. 통영 한산도가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인 이유다. 3년 8개월 동안 한산도에서 수군 먹일 농사를 짓고, 수루와 창고를 짓고 소금을 굽고 낚시를 하고 활을 쏘며 훈련을 장려하던 장군은 무고하게 역모죄로 잡혀갔고, 정유재란으로 한산진영은 불에 타 사라졌다. 이후 1604년에 통영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새롭게 설치하고도 1739년에서야 조경 통제사가 한산도를 찾아 유허비를 세우고 제승당이라 불렀다.
1970년대 제승당 성역화 작업으로 지금의 제승당을 세우고 충무사와 수루, 한산정을 세웠다. 지금은 두 개의 선사가 한 시간에 두 번씩 두 대의 배를 운항한다. 시간 선택의 폭이 넓고 거리도 짧아 통영의 섬 중에서 접근성이 제일 좋다. 제승당 입구부터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인 적송이 반긴다. 다른 섬의 소나무들이 재선충으로 고사하는 것과 달리, 한산도의 소나무는 아직 생생하다.
한산면 좌도는 이른 봄이면 매화가 지천이다. 동좌마을에 백 년을 넘긴 고매가 있고 서좌마을에 매화 밭이 있어 봄이면 상춘객이 찾는 섬이다. 햇살 좋은 이른 봄에 매화꽃 아래 앉아 나지막한 섬의 지붕을 바라보는 여유를 누를 수 있다. 한산면 죽도는 정월대보름이면 남해안별신굿 동제를 지내는 곳이다. 바다에 기대어 사는 어촌마을은 용왕신에게 늘 안녕을 빈다. 마을 각 집에서 마른 생선과 나물·과일로 차려낸 제상으로 제를 지낸다. 남해안별신굿 대모의 굿판은 하루로 끝나지 않는다. 이틀에 걸친 마을 굿은 무형유산으로 통영 사람은 물론 외지 사람들까지 불러 모은다.
용호도는 용초마을과 호두마을이 섬 양쪽에 있고 그 가운데에 학교가 있었다. 학교 앞은 모래사장이라 학교 앞에 놓인 그네를 타면 바다 위를 나는 느낌이 들었다. 장진영 박해일 주연의 영화 <국화꽃 향기>를 찍었던 곳이다.
추도와 두미도에선 겨울이면 물메기를 말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물메기 배를 갈라 아가미로는 젓갈을 담그고, 살은 널어 말린다. 추도에선 머리 양쪽을 잡아 펼쳐 말리는데, 두미도에선 거꾸로 세워 살 가운데에 막대를 꽂아 말린다. 말린 메기에 뚫린 구멍으로 추도 메기인지 두미도 메기인지 알 수 있다. 메기는 살이 무른 생선이다. 생물 그대로 탕을 끓여도 시원하지만, 말리면 훨씬 맛있어진다. 말린 생선으로 만드는 조림 중, 마른 메기 조림은 별미다.
욕지도와 연대도는 선사시대 유적이 있는 섬이다. 섬 곳곳에 아직 패총이 널려 있다. 욕지도는 고등어 파시가 열리던, 근대 어업전진기지가 있던 곳이다. 자부랑개에 가면 그 당시 번영을 실감할 수 있다. 경남 최초의 유치원이 통영에서 배타고 한 시간 넘게 들어가야 하는 저 먼 섬, 욕지도 자부랑개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사량도는 상도와 하도로 나뉘어져 있다. 조선시대, 상도엔 사량진이 있었고, 하도 칠현산엔 봉수대가 있었다. 상도의 옥녀봉은 전국의 산악회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그만큼 경관이 뛰어나고 산을 타는 맛이 있는 곳이다. 하도 칠현산에서 바라보는 상도의 모습 또한 장관이다. 사량도 가까이 있는 수우도는 설운장군 설화가 있는 섬이다. 아가미가 있어서 바다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던 설운장군은 왜적을 무찌르기도 하였다. 작은 사당이 있고 마을 사람들이 동제를 지낸다.
그 많은 섬 중에 딱 한 곳만 다시 갈 수 있다면 나는 소지도에 가고 싶다. 예전에 세 가구가 살았다는데, 지금은 빈 섬이다. 뱀이 많아 주로 겨울에 사람들이 들어간다. 뾰족하게 높은 산이 있고 배에서 내려 그 산 아래까지 가는 길이 황량한 듯 멋진 곳. 바람이 거세게 불어 나무도 풀도 거의 누워 자라는 곳. 기암절벽 같은 바위가 많은 곳. 참 매력 있는 곳이다. 섬마다 나름의 멋이 있다. 섬마다 나름의 풍경이 있다. 섬마다 나름의 삶이 있다.
언제든 찾아가 만날 수 있는데,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시간 내어 찾아갈 마음먹기가 어렵다. 차일피일 미루다 한 해가 훌쩍 가버리기도 한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제일 소중한 사람이다. 자주 만나 어울려야 하는데, 가까이 있어 더 무심해지기도 한다.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멋을 지닌 사람도, 바다의 섬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나는 어떤 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