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방황 앞에서
2021. 02 백란주
봄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듯 눈앞에 보이는 길에만 집중했다. 마지막을 알리는 듯 고사목을 만나는 순간 성취감이 나를 흥분하게 했다. 스무 살 첫 산행에 대한 도전은 여유가 없었다. 스스로 낙오자라는 오명으로 주눅 들었던 나는 길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길 위에서만 존재했던 어설픈 방황이었다.
가을 한라산을 보기 위해 1100고지까지 차를 타고 올랐던 기억이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계곡은 색동옷을 입듯 가을 단풍 옷으로 갈아입었다. 단풍이 고운 것을 느껴버렸다. 낙엽 밟는 소리가 가을의 대변자로만 생각했던 내게 한라산의 단풍은 가을에 대한 그림을 바꿔놓았다. 내려다보는 가을은 신선놀음이었다. 온갖 색감을 풀어놓은 듯 마치 내가 마법사가 된 듯 했다. 한없이 내려다 봤다.
나의 이십대 방황은 수직의 걸음이었다.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거나 가파른 산을 마주하면서 승부사처럼 답을 향해 걸었던 것 같다. 끝마침을 하지 못하면 마치 틀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을 향해 어리석은 객기를 부렸던 시간이었다.
바람이 갈 곳을 잃은 듯 심하게 방황한다. 그들의 방황은 겨울과 봄을 어찌 구분해야 하며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집중하는 듯하다. 가고 있는 겨울 곁에 조금 더 머물지, 오고 있는 봄을 선택할지 온전한 그들의 선택으로 옷깃을 여몄다 풀었다 한다. 겨울바람 같다. 떠나는 이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몇 달을 ‘겨울’이란 수식어로 함께한 정에 대한 의리다. 바람의 지조에 나는 두꺼운 옷을 미리 챙겼다.
다행이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아직 겨울이라는 유통기한 이월은 영하의 온도를 과시하지만 체감온도는 그리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형제봉 활공장 1050m까지 차로 올랐다. 문명의 혜택을 받는다. 펼쳐진 지리산은 수직의 시간에 대한 어리석음을 한눈에 느끼게 했다. 지리산 종주능선으로 나의 시선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이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능선은 함께하는 수평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리산 품안에 내가 안긴 듯한 착각을 부른다. 마치 원의 중심점에 선 기분이다. 고갯짓 달리하니 드러나는 넓은 세상이다. 내가 본 세상이 전부인 듯 착각했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천왕봉까지 오르겠다고 애썼던 나는 지리산을 본 것이 아니라 천왕봉이라는 봉우리 하나에 집착했던 것일 게다. 나의 근시적인 어리석음을 놀리듯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친다. 정신이 들었다. 끊임없이 이어진 연속의 선상에서 살고 있음을 알면서도 순간순간 잊고 지낸다. 본심을 이기는 욕심이 되지 않는 마음씨앗 하나를 심었다.
너머로 또 너머로 산은 그렇게 겹쳐있다. 세상에 높은 산 하나만 존재한다면 궁금해야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엇비슷한 산이 여럿 있으니 우리는 또 산을 오르지 않는가. 자신만의 꿈을 찾아가듯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실체 뒤로 조금은 부드러운 듯, 나약한 듯, 수줍은 듯 숨어있는 너머의 산에 어느새 나는 압도당한다. 골짜기는 대칭하듯 마주하지만 한 꼭짓점으로 만나지 않는다. 한 발짝 비켜나듯 서로를 배려하며 골짜기를 이어간다.
멀리 있는 산은 하늘과 닮아버렸다. 산인지 하늘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본 것이 산인지 하늘인지 보고 있으면서 잠시 헷갈린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맞는지 또한 아리송해진다. 내 아이라고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이 아이는 아이다움의 세상으로 가기 위해 방황하고 있다. 직접 경험하는 것 그것이 아이가 선택하는 미련에 대한 답이었다. 언제든 다시 돌아오면 되는 길 위에 있다.
얼었던 아니 뭉쳤던 흙이 자신의 몫을 찾기 위해 균열이 시작되었다. 위축되었던 자신감이 부풀어 오를 것이다. 욕심으로 남지 않길 바란다. 품었던 습기는 어느 날 그곳에 찾아올 씨앗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어머니의 품이 되어주길 소망한다. 아이들이 배우고 익힌 무엇들이 그들만의 직선으로 이어가지 않길 바란다. 내어주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방황의 시간을 받아들이리라 믿는다.
활공장에서 내려다보는 지상의 세상은 레고장난감 같다. 마당처럼 보이는 논밭이 한 폭의 그림이다. 내 아이들의 어린 시절처럼,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은 언제나 아름답다.
최재천 교수는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그답게 답한다.
“어미 새는 ‘이렇게 날아라’ 혹은 ‘저렇게 날아라’ 하면서 새끼 새에게 간섭하지 않 습니다. 그냥 어미 새가 여기서 저기로 ‘후루룩’하고 날아갑니다. 그걸 보고서 새끼 도 따라 합니다.”
아프리카 침팬지 어미의 교육법도 돌로 쳐서 견과류를 깨 먹는 걸 새끼에게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깨우치게 한다고 했다. 자식교육에서 필요한 것은 ‘아름다운 방황과 따뜻한 방목’이라한다. 아이가 스스로 방황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방목’ 무작정 방목이 아니라 따뜻한 방목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당에 풀어 키운 닭이 더 건강하고 방사한 닭이 낳은 계란이 더 값지며 나무에서 떨어져 본 새끼가 가장 먼저 날게 된다고. 아이가 겪을 시행착오와 고통이 ‘독’이 아니라 ‘약’이라는 것, 그래서 ‘아름다운 방황과 따뜻한 방목’을 거듭 당부했다.
102세 김형석 교수는 ‘아이에겐 딱 이것만 주면 된다.’ 부모가 아이의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 사람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것, 상대방의 자유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유는 곧, 선택입니다. 아이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이걸 해! 저걸 해!’가 아니라 ‘이런 게 있고, 또 저런 게 있어. 너는 어떤 걸 할래?’ 이렇게 선택의 자유를 줘야 합니다.”
근육이 생긴 아이는 자기 선택을 통해 아이 스스로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하며 거기서 온갖 문제를 직접 체험하게 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재철 목사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외적인 스펙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봅니다. 그건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 그리고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은 집안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배양되는 거라고 봅니다. 옥스퍼드 대학을 나오면 좋겠지요. 더구나 고등학교 학비도 학교 측에서 대겠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외적인 스펙들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걸어갈 때는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더 중요할 거라 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강조한 게 있습니다. ‘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해서, 바른길을 가자.’ 일종의 가훈이라고 해도 됩니다. 이게 총론입니다.”
더불어 자식 교육은 ‘직선’이 아니라 ‘원(동그라미)’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 사람이 자식을 직선 위에서 키웁니다. 그런데 직선 위에는 절대 행복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직선 위에서는 아무리 앞서가도, 나보다 앞선 사람이 또 있습니다. 그러니 직선 위에서는 어느 지점에서든 항상 낙오하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자식은 직선 위가 아니라 360도 원 위에 세워야 합니다. 거기서 내가 바라는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직선 위에서 가는 길은 누군가 이미 갔던 길입니다. 원 위에서 바깥으로 나가보세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입니다. 그 길 위에서는 내가 항상 1등을 하게 됩니다.”
싱어게인 30호 이승윤가수의 자유롭고 당당한 음악은 아버지 이재철 목사의 바름과 원이라는 여유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백성호의 ‘현문우답’의 내용을 읽으며 나는 많은 생각을 한다.
어느새 작은아이가 대학졸업을 앞두고 있다. 자신이 가야할 길이 아직 정해지지 않음에서 받아들이는 졸업이 조금은 힘들지 모른다. 코로나라는 일상으로 인해 아이의 멋진 졸업방황을 축하해 줄 수가 없다. 어떤 삶이 되었든 아이는 아이의 방황에 대한 마무리를 할 것이라 믿는다. 타인들이 원하는 직선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원의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나는 가끔 아이들의 영원한 페이스메이커로 남고 싶은 욕심을 갖는다.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아이들이 나의 페이스메이커였는지 모른다.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는 것에 익숙했던 나보다 아이들은 훨씬 성숙한 이십대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지리산 능선이 반듯한 직선이 아니어서 적당한 울퉁불퉁함으로 이어갈 수 있는 산 능선이 되듯 아이들의 삶도 그렇게 흘러가길 바란다.
설을 보낸 후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갈 즈음 아이가 말했다.
“다음 생에서는 우리 가족으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왜?”
“친구로 만나요. 제일 친한 친구 네 명으로 만나요. 그래야 누구 한 사람의 희생이 아닌 모두가 함께 하는 만남이 될 것 같아요. 제일 친한 친구로 꼭 만나요!”
새끼손가락으로 약속을 받는 아이에게 나는 다음 생에 꼭 아이의 가장 친구로 만나게 해달라고 형제봉에서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