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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라고 부정한다면 그 존재는 천리근본을 반역하는 행동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천주만물은 전부가 원리적 유에서 시작함으로 유라고 하는 기본점에서만 만원리와 이치의 부합을 볼 수 있으나 무라고 하고 나면 그 근본을 유로 전개하기 곤란한 원리적 결론으로 된다. 그러므로 지금 자아라는 자체는 유무의 한 중심의 존재면서 그의 작용적 목적으로 유를 전적으로 상대물로 하기 위한 행동으로 생활하는 것은 잘 체득하는 바의 사실이다.
ところが、無だと否定したら、その存在は天理の根本に反する行動と言わざるを得ません。 したがって、天宙万物はすべてが原理的有から始まるという「有」という基本点でのみ万原理と理の符合が見られますが、「無」とすればその根本を「有」で展開しにくい原理的結論になる。 したがって、今自我というものは有無の一つの中心の存在であり、その作用的な目的で有を全面的に相対物にするための行動として生活することはよく体得した事実です。
However, if you deny that it is nothing, you have to say that its existence violates the fundamental principles of Tenri. Therefore, all things in the universe can only be seen in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 of "yes" that everything begins with a fundamental existence, but if it is "nothing," it is difficult to develop its foundation as "yes." Therefore, the present self is the center of existence, and it is a well-learned fact that it lives as an action to make something completely relative for its working purpose.
그러므로 나 자신이 유라는 원리적 존재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바로 서게 되는 바이다. 그러므로 무라고 하는 존재는 사실체 유에 세계에서는 자아로부터 표시가 되어 있다. 그 자아가 즉 유무의 근거점으로 하고야 유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したがって、自分自身が有という原理的存在であることは、根本的に真っすぐに立つところであるのです。 したがって、無という存在は事実体に世界では自我から表示されています。 その自我がつまり有無の根拠点にして初めて有無ということができるのです。
Therefore, being the principal being of one's own existence is fundamentally a place to stand upright. Therefore, the existence of nothing is represented in fact by the ego in the world. It is possible to say existence only when the ego is the basis of existence.
그러므로 나는 유에 속하는 동시에 무에도 찾아가는 중간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중간존재로써 되어 있는 나에게 유무의 근본되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자기가 유무 근본의 위치이니 즉 창조적 원리로 보아 하나님과 직접 동일점선에 유하는 존재임을 체득하여야 된다. 자아는 유무의 중화체다. 그러므로 사람을 중심하고 계실 신성은 나와 중화성적 관계로써 유에서 무에 세계에 전개의 노정을 통하게 되어있다.
それで私は有に属すると同時に無も尋ねる中間存在だということを分かるようになる。 この中間存在で出来ている私にとって有無の根本たる神様の存在について疑うのと同じです。 したがって、自分が有無根本の位置だから、つまり創造的原理で見て、神様と直接同一点線に流される存在であることを体得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自我は有無の中和体です。 したがって、人を中心にしていらっしゃる神聖は私と中和性的関係で有から無へ世界展開の路程を通じるようになっている。
So I come to know that I belong to something and at the same time I am an intermediate person who asks nothing. It's the same as doubting the existence of God, which is fundamental to me who is made up of this intermediate being. Therefore, because you are the fundamental position of existence, you should know that you are a person who flows directly into the same dotted line as God by looking at creative principles. The ego is a neutralizer of presence or absence. Therefore, the human-centered sacredness has a neutral relationship with me, and it leads to the path of global expansion from existence to nothing.
우리가 만일 무하다고 하는 곳에 처하여 있어서 인식한다면 나에게 유에 대한 인식은 물론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식할 수 있는 환경과 그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그곳 스스로가 벌써 인식시켜주는 유에서부터만 시작되는 것은 지금,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즉 지금 과학세계에 있어서 모든 원리와 공식을 이용하여 응용 유에에로 전개하게 하는 것도 즉 근본 유가 있는 원리 외가 존재함이 유하다는 원칙위에서만 시작하여 그 목적 달성으로 진급됨을 알 수 있다.
私たちがもし無限の場所にいると認識すればもちろん私に有に対する認識はないでしょう。 したがって私たちは認識できる環境とその位置を持っているというそこ自らがすでに認識させてくれる有からだけ始まることは今, 誰でもよく分かっているでしょう。すなわち今科学世界においてすべての原理と公式を利用して応用有へ展開させることも、すなわち根本有のある原理外が存在することが有であるという原則の上でのみ始めてその目的達成へ進級することが分かる.
If we recognize that we are in an infinite place, of course I will not have a perception. Therefore, everyone will know now that we have a recognizable environment and its location, starting with something that they already recognize.In other words, it can be seen that in the present scientific world, all principles and formulas can be used to develop into application, i.e., only on the principle that there may be something outside of the fundamental principle can one advance to its goal.
그러므로 과학이 발달할 수 있는 것도 전 유적 그 원리적 존재 유가 기본되어 그 기본상에서만 그 목적 표시적 발달된 존재를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무에서 유라는 원리는 본래부터 우리가 세울 수 없다. 무면 무지 유가 되겠는가? 그러니 유물론적 원리도 자연 그 끝인 말로는 미해결로 되는 것이 원리다. 무가 되는 까닭이다. 즉 시작이 무니 끝도 무로 결과한다. 될 수 없는 사실이다.
したがって、科学が発達することができるのも、全有的、その原理的存在が基本となり、その基本上でのみその目的表示的な発達した存在を見ることができるのは事実です。 したがって、無から有という原理は、本来から私たちが立てることができません。 「無ならば無で有になるでしょうか」 だから唯物論的原理も自然の終わりである言葉では未解決になることが原理です。 無になるわけです。 つまり始まりが無で、終わりも無で結果します。 なり得ない事実です。
Therefore it is true that science can develop on the basis of its total and fundamental existence, and only on that basis can we see its purpose-labeling developed existence. Therefore, the principle of being from nothing cannot be established by us. "If it were nothing, would it be nothing?" It is therefore the principle that materialistic principles should also be unsolved in words, which are the end of nature. It becomes nothing. In other words, there is no beginning and no end. It can't be true.
무라고하는 존재를 세우기 위하여 전유 존재를 세워 놓고부터인데 이 선유존재는 곧 주관적으로 보면 자기식, 객관적으로 본다면 다른 사물이든지 벌써 선유한 사실을 결정지어 놓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의 근본은 유에서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無という存在を立てるために専有存在を立ててからですが、この専有存在は主管的に見れば自己流、客観的に見れば他の事物であれすでに専有した事実を決定付けて言うことです。 したがって、すべての根本は「有」から始まったということを認識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After establishing an exclusive existence to establish the existence of nothing, this exclusive existence is to determine the fact that it has already been monopolized, whether it is one's own style or another objectively. Therefore, it must be recognized that all roots began with "Yes".
그러므로 사람은 근본 유라는 존재로부터며 만물의 유도 역시 동일한 것이다. 어떤 작용의 시작은 유의 작용으로부터만 시작된다.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관계 감각성이라고 존재하여 나에게 미치고 있는 그 작용은 근본적 유에 작용이 연장화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런고로 무라는 점유위치는 시각 또는 감각성 외의 존재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아인 유가 감각하는 그 감각적 작용은 즉 유에서부터 파급의 되는 것이다.
ですから、人は根本的な有という存在からであり、万物の有も同じなのです。 ある作用の始まりは有の作用から始まります。 認識できるすべての関係感覚性として存在し、自分に与えているその働きは根本的な有の作用が延長化した存在であることがわかります。 したがって、無とは占有位置は視覚または感覚性以外の存在を指して言うのです。 したがって、我々の自我である儒が感覚する感覚的作用はすなわち有から波及するのです。
Therefore man is from the existence of fundamental beings, and so is the existence of all things. The beginning of an action begins with an action. It exists as all recognizable relational sensibilities, and its function to itself is an extension of the fundamental action. Therefore, nothing refers to any existence other than sight or sensibility. Therefore, the sensory action felt by Confucianism, our ego, spreads from the presence.
그런고로 우리가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권외에 유에 존재하는 그 자체와 곧, 하나님과 우리는 연관적 한 위에 속하여 있는 양심의 기존유의 존재로부터 우리에게 작용되는 감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したがって、我々が視覚で見ることのできる圏外の有に存在するそのもの、すなわち神と我々は関連的な一つの上に属している良心の既存の有の存在から、我々に作用する感覚を知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Therefore, from the very existence of the extraterrestrials which we can see with our eyes, that is, God and we are able to know from the existing existence of conscience which belongs above one related thing, the sense acting upon us.
그러므로 사람 하나는 유무에 중화물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곧 무아라는 위치를 찾아 들어가면 중화체에서 음양분립과 같은 작용을 일으키는 것과 한가지로 무인식에로 내려가면 상대적 절대무에 비례되는 절대유의 힘과 작용에 상봉을 본다하는 것도 알아야 한다」사람이 무아에게 찾아들어가면(즉 감각무와 인식무에로) 서로 떨어져서 상거적 무의 위치에 대비되는 유에 감각과 인식이 경지는 나타난다」 이것은 마음을 갈고 닦는 수양탐중에서도 많이 체험하는 사실이다.
したがって、人ひとりは有無に中和物になっています。 したがって私たちがすぐ無我という位置を探して入れば中和体で陰陽分立のような作用を起こすことと一つとして無人式に下りていくと相対的絶対無に比例する絶対有の力と作用に再会をするということも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人が無我のところに訪ねていけば(すなわち感覚無と認識無我で)お互いに離れて常挙的無の位置に対比される有に感覚と認識が境地は現れる」 これは心を磨く修養探究の中でも多く体験する事実である。
Therefore, each person is neutralized by presence or absence. Therefore, if we find the position of selflessness right away, we should also know that if we go down unmanned as one, we will be reunited with absolute force and action proportional to relative absolute nothing." "When a person visits a selfless place (i.e., without feeling and without recognition), the state of feeling and perception appears in contrast to the usual position of nothing." This is a fact that I often experience in my mind-building quest.
그러므로 사람은 고요하다는 그곳을 찾으면 본심의 작용무대를 딴 무경에로 존재하는 절대유에 감각을 체험하여 새로운 신기한 인식권을 찾는 것이 자연적으로 표시되는 듯이 되나 그 원리는 내 자신들의 이상적 감각성을 취할 수 있으며 그 만족감을 취할 수 있는 근본적 이상 유할 수 있는 근본에 속하여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새로운 쾌감이 나와 기쁨의 표시로 전개시킨 것 밖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それで人は静かだという事実はそこを捜せば本音の作用舞台を離れた武経に存在する絶対油絵感覚を体験して新しい不思議な認識権を捜すことが自然に表示されるようになりますがその原理は私自分たちの理想的感覚性を取ることができてその満足感を取ることができる根本的異常油できる根本に属している存在だから新しい快感が出て喜びの表示に展開させたに過ぎないという事実です.
Therefore, the fact that people are quiet is that if you look for it, you will naturally experience the absolute oil painting feeling in the Sutra and find a new mysterious perception.
그러므로 이런 것을 볼 때에 우리는 유에서 처하여 있으니 있음이라는 유에 절대 감성이 각면에 깊이 심화되어 있는 것과 같은 이유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유로부터 전하여 주는 감력에 대하여 진동감을 느낄 수 없고 또 외력감에 대하여 소모적 반작용을 함으로 외력 유에 감력에 대하여 예민하게 작용 못하는 것이다.
したがって、このようなことを見る時、私たちは有に置かれているという有に絶対感性が各面に深く深まっているのと同じ理由になっているからです。 しかしその有から伝わる感力に対して振動感を感じられず、また外力感に対して消耗的な反作用をするため、外力有に対して感力に対して敏感に作用しないのです。
Therefore, when we look at these things, it is the same reason that absolute sensibility is deeply deepened in each aspect because we are placed in something. However, it does not feel vibrational to the sensitivity transmitted from its presence, and it also exerts a consumptive reaction to the external force, so it does not act sensitively to the external force.
첫댓글 여사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복사를 하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공식적으로 나온거아니라서 수정도 해야되서 우선 막아났었는데 지기님이 원하신다면 알겠습니다 ㅋ
대감사 꾸벅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