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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학생의 길
제6장 선생님의 학창시절
제1절 선생님의 어린시절
1) 선생님의 탄생
선생님은 1920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때 한국의 정세는 비참했습니다. 그때는 일제강점기로서 제일 비참한 시대였습니다. 선생님의 일생은 역사적으로 대변천의 세월이었습니다. 환난시대에 태어나서 환난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라를 보면 일본에 예속되어 있었던 환난의 시대였습니다.
1920년은 기미년 만세사건 이후였고, 또 그때는 몇 년 동안 흉년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뱃속에 있을 때, 선생님 어머니는 송기를 깎아 먹기도 하고 지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 같은데 태어날 때는 제일 환난 가운데에 몰아넣었습니다. 이러한 것이 다 역사입니다. 선생님이 탕감법을 알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다 이해하지, 안 그러면 그것 다 거짓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141-30)
2) 믿음 속에서 성장하심
선생님은 북한에 있는 한 지방의 착실한 유교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0여 세 때 전 가족이 기독교로 개종하였습니다. 개종과 더불어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새로운 신앙에 애착을 갖고 이전에 그 누구를 사랑한 것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선생님은 16세 때에 비상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부활절 아침 오랜 시간의 눈물어린 기도 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생님에게 나타나셔서 많은 계시와 교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심오하고도 놀라운 것들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고통받고 있는 인류 때문에 하나님께서 슬퍼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지상에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특별한 역할을 해 달라고 요구하셨습니다.
(134- 144)
3) 어린시절의 자연탐구
1. 자연에서 배우다
선생님이 어렸을 때 자란 마을은 시골이기에 계절이 바뀔 때마다 철새들이 찾아들고 계절마다 다른 꽃이 가득 피어나는 환경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때는 한국 어디를 가도 계절이 분명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의 서울은 하루종일 걸어가도 자연과는 만날 수 없고, 모두가 인위적인 경관뿐인 삭막한 도회지가 되어 있어 슬픔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러한 도회지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은 정서가 메마르고,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느낄 기회가 없어 난폭하거나 개인주의 성격을 만들기 쉽습니다.
자연과의 만남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자연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진실한 사랑이 어떤 것이며, 행복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깨달았습니다.
학교교육보다 더욱 근본적인 것을 배울 수가 있는 것이 자연의 세계였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아름다운 새가 날아온 것을 발견하면 그 새를 쫓아다니면서 어떻게 둥지를 틀고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를 관찰했습니다.
어떤 때는 새둥지를 찾는 데 1주일이 걸리기도 했고, 새가 알을 낳고 새끼를 까는 것을 보기 위해 열흘이 넘게 걸리기도 했습니다. 어미를 닮은 귀엽고 예쁜 새끼를 보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신비와 사랑을 깊이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1986.1.3)
옛날 시골에서 살았을 때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소 꼴먹이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싫었는데 깨닫고 나서는 소를 참 사랑하게 됐습니다. 소는 오후가 되면 시간이 된 걸 뻔히 압니다.
그런데 나는 장난치고 계속 놀았습니다. 놀던 것을 끝내고 싶지 않고 그냥 집에 가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놀다 보니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래 놓으니 소는 벌판에 매여서 ‘나를 모시러 올 주인이 어디 갔나?’ 하고 기다리는 겁니다.
나 같으면 성을 내고 밀고 차고 할 텐데 아무 말도 안 하고 그저 쳐다보는 겁니다. 그럴 때 ‘참군자, 군자양반이다! 고맙다!’속으로 그랬습니다. 그럴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먹여서 탕감복귀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그때부터 어둡도록 먹여 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소가 배가 팽팽한데도 주인이 먹이니까 자꾸 먹는 겁니다. 밤을 새우더라도 먹습니다. 위가 많으니까 그렇습니다. 저금통장이 많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소에 대해 배운 것이 많습니다.
소는 따가운 오뉴월 땡볕에 앉아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먼 산을 바라보고 명상하는 대 왕님입니다. 그래서 세계 사람들이 호랑이 고기는 싫어해도 쇠고기는 좋아한다고 봅니다. 개고기도 싫어하고, 고양이 고기도 싫어합니다.
칫솔도 소 뼈다귀로 만듭니다. 어디 꽁지 하나 버릴 것이 없고, 뼈다귀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똥도 비료로 씁니다. 그래서 ‘소가 좋긴 좋구만!’ 하는 겁니다. 그거 필요한 것입니다.
(109-40)
2. 자연을 통해서 정서적 인격배양
옛날 선생님 집에는 큰 밤나무가 있었습니다. 한 200년 된 밤나무인데 아주 아름답습니다. 원숭이띠라서 그런지 나무에 잘 올라다녔습니다. 뚱뚱한 사람이 나무를 잘 올라다녔다는 겁니다.
나뭇가지가 휘어져 떨어지게 되면 다른 가지에 닿을 것을 생각하고는 뛰어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다니면서 조그만 나무 지팡이를 하나 만들어 톡톡 밤송이를 따면 참 재미있습니다.
어떤 것은 밤송이가 짝 벌어져 있습니다. 이걸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따는 겁니다. 잘못하면 밤알이 떨어집니다. 그 밤알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따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것은 시골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리고 큰 아카시아나무가 있는데 거기에는 까치 둥지가 몇 개 있어서 사철 언제나 까치가 지저귑니다. 큰 나무에는 틀림없이 까치 둥지가 몇 개 있습니다. 까치는 길조라고 합니다.
까치가 ‘깍깍깍’하면 무슨 소식이 온다고 하는데 우리 집의 문에 들어서면 매일, 아침에도 ‘깍깍’ 밤에도 ‘깍깍’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치 둥지가 있는 나무에 순식간에 올라가는 겁니다. 자꾸 올라다니니까 나중에는 후닥딱 올라가는 겁니다. 이 까치의 생태를 보면 참 재미가 있습니다.
까치의 둥지를 보면 벌써 금년에는 바람이 어디에서 어디로 불겠구나 하는 것을 압니다. 동풍이 불겠다 하면 방향을 딱 달리해서 들락날락하면서 구멍을 딱 내놓고 나뭇가지를 끌어다가 둥지를 칩니다.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 걸작품을 만들어 놓습니다. 이것은 나뭇가지로 엮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비도 새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참 신기할 정도로 비가 오면 한 곳으로 흐르라고 끄트머리를 한 곳 으로 대 가지고 비가 집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끄트머리를 될 수 있는 대로 그렇게 모아 놨더라는 것입니다. 비가 내리면 이 빗물이 그쪽으로 떨어지게 하는 겁니다. 이걸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 참 대단한 솜씨입니다.
우리 인간들도 그런 집을 지으려면 아마 몇 년은 배워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나뭇가지를 입으로 물어다가 쑥쑥쑥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둥지를 틀고 얼마가 되면 알을 까게 되는지 압니다.
까치의 알을 보면 파르스름한 줄이 엉켜 있습니다. 알랑알랑한 줄이 있어서 아주 예쁩니다. 알의 크기는 계란의 한 4분의 1정도 됩니다. 알을 낳기 전에는 나무에 아무리 올라가도 울지 않습니다.
그러나 알을 낳고는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알을 낳을 때 올라가면 이 까치가 동네방네 야단을 칩니다. 그러면 동네 주변에 있던 까치 떼가 와서 그걸 시위하는 겁니다. 그런 것이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 취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새들의 생태에 대해서 훤합니다.
그렇게 한번 올라가면 한 알 낳고, 그 다음에 올라가면 두 알 세 알이 있고, 많이 날 때는 열두 알, 열세 알까지 낳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왔다가도 피해를 안 주고, 익숙해지니까 쓱 올라가면 ‘또 왔구나’하고 인사를 합니다. 깍깍거리며 인사를 하는 겁니다. 둥지 근처에 가도 다른 해코지를 않고 그냥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든지 하면 안 올라갑니다. 그러면 내가 어디에 쓱 나가게 되면 어디에 있다가 그러는지 ‘깍깍깍깍깍’하고 신호합니다. 왜 안 오나 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더라 이겁니다. 그거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까치가 새끼를 까면 어떻게 하느냐? 그 나무 더미가 있는 데다 둥지를 만들어 가두어 놓고는 먹이를 물어다가 먹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가 자기 새끼를 사랑하는 걸 보면 우리 인간이 자식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배울 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 새끼가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는데도 내버려 두지 않고 그냥 먹이를 물어다 먹입니다.
이걸 내가 한 마리 한 마리 놔 주는 겁니다. ‘오늘은 내가 너에게 제일 좋은 일을 한다.’하면서 다리에다 고무줄을 길게 매서 날리는 것입니다. 짓궂게 그랬습니다. 그래 놓으면 이 까치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이 새끼가 화르르륵 날면 어느새 어미가 와서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새끼가 날아가다 고무줄을 매 놨으니 별 수 없습니다. 이런 놀음을 몇 번 하다가 불쌍해서 그냥 날려 보내 주면 어미가 새끼를 안내해서 보이지 않는 숲속의 큰 노간주나무에 옮겨 놓습니다. 그런 저런 세계를 보게 되면 다 사랑의 정서를 중심 삼고 움직인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입니다.
어미하면 암놈, 아비하면 수놈인데 그 새가 새끼를 잃어버리면 그 새의 심정은 인간세계의 부모 심정과 마찬가지입니다. 도리어 요즘 세상의 인간이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정서가 어디서 나왔겠느냐 이겁니다. 어미라면 모든 새끼를 사랑할 줄 압니다. 그것을 어디에서 그렇게 배운 것입니까? 새끼를 보호하는 걸 보면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하나님의 사정을 알고, 역사의 사정을 알고, 세계의 모든 사정을 통하고, 미래 인간의 사정은 이럴 것이다 하는 것을 예상하고 그것을 그려 가는 것입니다. 그런 면이 다르지 그 외 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학식이 높다고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돈이 많다고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정서적인 인격이 얼마만큼 크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141- 33)
3. 선생님의 자연에 대한 호기심
선생님은 다방면에 소질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운동을 하나 뭘 하나 소질이 많습니다. 그 대신 성격이 고약하여 한번 손에 붙들면 머리가 깨지든 목이 뽑아지든 끝까지 해보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동네에서 아무도 못 올라갔던 제일 높은 나무도 올라가고야 말았습니다. 밤잠을 안 자고, 밤인데도 거기를 올라가는 겁니다.
어떤 때는 올라가다 떨어지면서 가지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도 했습니다. 또 근처에 못이 있으면 그 못에는 무슨 고기가 있는가 하고 전부 다 잡아보는 것입니다. 큰 놈을 잡겠다고 하면 일년 열두 달이라도 낚시질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성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무엇을 붙들었다 하면 죽지 않으면 그 일은 해결이 납니다. 또 눈만 오면 잠을 안 자고 족제비 사냥을 나가는 겁니다. 그저 배고픈 줄도 모르고 몇백 리 길을 돌아다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가 상당히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지독한 사람입니다.
10대가 되면서부터 어머니 아버지를 딱 쥐고 컨트롤했습니다. 그만했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잘못했다가는 걸려 들어가는데 그 뿌레기에 어머니 아버지가 항복 안 하고는 안 된다 이겁니다. 양보 안 합니다. 뼈가 부러져도 양보는 안 합니다. 죽어도 양보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양봉도 많이 했지만, 아카시아꿀이 참 맛있습니다. 이 아카시아꽃에 벌이 앉아 가지고는 머리를 처박고 들이먹을 때는 앞뒷발로 버티고 꽁무니는 아래에다 받치고 들이 빨아대는 겁니다.
그럴 때 핀 셋으로 꽁무니를 잡아당기면 꽁무니가 떨어지더라도 안 놓습니다. 몸뚱이가 떨어지도록 당기는 녀석도 지독하지만, 그 맛을 알고 못 놓는 놈이 더 지독하다는 것입니다. 그걸 보고 ‘이거 나도 배웠다. 나도 요렇게 해야 되겠다.’ 했습니다.
개구리라는 개구리, 새라는 새는 내가 안 잡아 본 게 없습니다. 내가 처음 보는 새가 있으면 안 잡으면 안 됩니다. 모르면 잠을 못 잡니다. 새들이 물 먹는 곳이 있습니다.
새가 물 먹는 곳을 알아서 거기에 나뭇가지만 딱 하나 놓으면 틀림없이, 백발백중 잡습니다. 새는 땅에 앉는 것보다도, 돌멩이에 앉는 것보다도 나뭇가지에 잘 앉습니다. 그걸 알아서 물 위에다 가지를 하나 따서 내려앉을 곳에 놓으면 틀림없이 앉는 겁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잡는 겁니다.
말총으로 올무를 하나 만들어 놓으면 세 번만 왔다갔다하면 딱 모가지가 걸립니다. 내가 이런 말을 왜 하느냐? 여러분이 청춘시절에 할 것 다하고, 가 꿀 것 다 가꾸고, 놀 것 다 놀고, 재미있는 것 다 보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 하다가는 떨어지기 일쑤고 못 가기가 일쑤라는 말입니다. (51-270, 136-132, 186-303)
4. 자연에 대한 새로운 자세
선생님은 어렸을 때 아름다운 새를 보면 그 새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새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어디에 둥지를 짓고 새끼를 까는지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것을 며칠이 걸리더라도 샅샅이 뒤져 기어이 알아내고야 말았습니다. 또한 풀도 수백 종류를 채집하여 어떤 것이 독초고 어떤 것이 약초인가, 또 그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하여 열심히 연구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자연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지으셨을까 하고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토리나무나 여러 가지 풀잎을 보며 이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고 생각하노라면 이 모든 것이 신비스럽기가 한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돌 하나라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선생님은 뱀도 수없이 많이 잡아 보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사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내용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지배할 수 있는 것입 니다. 우리가 자연이 갖는 그 본연의 가치만 알아도 말할 수 없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자연이 나를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모릅니다.
자연을 볼 줄 모르는 것입니다. 자연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을 알면 바람 소리도 훌륭한 음악으로 들립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우리의 몸과 제일 가까운 것이 자연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탄식하는 자연의 소원을 풀어 주어야 됩니다. 산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높은 것을 추앙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 석가, 예수님은 모두 산을 사랑한 분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명승지에 가면, 그것이 하늘의 운세를 중심하고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하는 입장에서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늘의 운세와 연결되게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초창기에는 산으로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한 나라의 산과 땅과 물을 보면 그 나라의 민족성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물은 어디에 가서 마셔도 옥수(玉水)입니다. 우리는 자연에 대한 복귀를 먼저 이루어 놓아야 합니다.
우리는외국에 나가기 전에 우리나라 자연을 깊이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자기가 태어난 땅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자기의 몸도 사랑할 줄압니다. 또 자기의 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자기의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늘도 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나이애가라 폭포보다도 자기가 태어난 이 땅을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자연이 하나님의 섭리노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위로했던가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14-101)
4) 선생님의 소학교시절
학교에 가면 전부 일본말을 배워야 했습니다. 가타카나 히라가나를 공부하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그걸 하루 저녁에 다 외워 버렸습니다. 학교에 가 보니까 3학년, 4학년, 5학년 애들이 일본 말을 하는데 선생님은 못 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들어서 갔기 때문에 키가 컸습니다. 그런데도 일본 말을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그때 그 거북함이란 느끼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그래서 벼락같이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의 모든 책을 보름 만에 다 외워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귀가 트이더라 이겁니다. (171- 258)
선생님이 공부할 때는 벼락같이 공부했습니다. 몇 년 동안에 하는 것을 순식간에 해치웠습니다. 선생님 고향은 북한입니다. 평안북도 정주읍에서 한 8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농촌이었습니다. 호롱불을 켜 놓고 공부하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두 시, 세 시, 밤을 새워 공부하면 어머니 아버지는 ‘야! 잠자라. 몸이 너무 약해지면 안 된다.’ 이랬습니다. 늘 그랬습니다.
그때 내가 제일 친구로 가까이 했던 것이 밤벌레들입니다. 여름철엔 밤벌레를 친구로 했습니다. 시골 밤은 참 고요합니다. 벌레들이 고요한 달밤에 우는 소리는 아주 신비롭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들로 돌아 다니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100-161)
선생님은 소학교에 다닐 때부터 교장선생님의 행동을 보고 ‘나는 이렇게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훈련을 끊이지 않고 했습니다. (25-124)
소학교 졸업식 때 답사시간이 있습니다. 그런 때에는 누군가가 졸업생을 대표해서 답사를 하게 마련입니다. 그때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단상에 올라가 호소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경찰 서장, 군수, 교장선생님 등 지방 유지들이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자리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단상으로 올라 갔습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면서, 소년시대의 교육에 대한 비판과 지금까지의 학교 선생님에 대한 관(觀)을 말했는데, 그것이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소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이 그런 말을 할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때부터 딱지가 붙여졌습니다. (15-182)
선생님은 머리가 나쁘지 않습니다. 소학교 6학년 때 책 280페이지를 하루 저녁에 외운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머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정신만 집중하는 날에는 한번 보면 압니다. (6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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