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에 내가 부산에 살던 시절 실제로 있었던 상황을 재구성 해 봤습니다
버스 이야기
당시 저는 미혼이였고 부산 감만동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해운대 근방
모 자동차 부품 하청 업체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황당한 일어 생기던 그날, 배가 너무 고파서 얼른 자취방 가서 라면 끓여
먹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88번 버스를 탔습니다.
'차야 어서가라!' 하며
먹을 라면 종류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88번 뒤에 오던 50번 버스는 감만동을 거쳐서 서면 쪽으로 가는 노선이었습니다.
노선이 같았기에 두 버스는 평소에도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50번 88번 두 버스의 앞지르기 레이싱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버스는
최대한 출력을 높혀 선두를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레이싱을 벌이던 중 신호등 앞에서
나란히 서게 되었습니다.
88번 버스와 50번 버스는 거의 동시에 문을 열고
"상식을 지키자! 반칙 하지 말자!" "내가 잘 했고 니가 못 했다"
서로의 정당성을 주장 하면서 서서히 언성을 높히더니 결국 피 튀기는 말 싸움에 돌입
하였습니다. 그러나 말 빨에서 밀린 우리의 88번 아저씨는 급한 성격을 참지 못하고
50번 버스로 올라가서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나는 속으로 ' 아저씨 화이팅!'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하며 응원 했는데,
'에공'.....
신호가 바뀌자 50번 버스가 88번 기사 아저씨를 태우고 출발 해 버린 것이였습니다.
헐!!..
그순간 88번 버스 승객들은 돌발사태에 멍해졌습니다.
대로 한가운데 세워진 버스 안에서 기사 아저씨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는데....
한 7.8분이 지났을까!
88번 기사 아저씨가 유엔묘지 커버길을 돌아 열심히 뛰어 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얼굴 벌개가지고 운전석에 앉자말자 뒤를 돌아보며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를 연발 하며]
땀 삐질 삐질 흘리던 88번 아저씨 너무 측은해 보였습니다.
88번 버스는 패배한 것이였습니다
다시 버스는 출발 했습니다
피 튀기던 말 싸움을 할 때만 해도
'사나이 타는 이 한 목숨 정의를 위해 라면 기꺼이 바칠 수 있다'
용맹스러운 전사 같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너무 측은 해서 마음이 아팟습니다.
.
잠시후, 싸이랜을 울리며 경찰차가 88번 옆에 바싹 따라 붙어서 우렁찬 목소리로
"88번 서요!"
"88번 갓길로 데세요!" 하자
88번 아저씨는 경찰관의 지시에 순순히 따랐습니다.
순간 나는 이렇게 생각 했습니다.
50번 버스 기사에게 깨지고 또 교통위반까지 해서
경찰에게 딱지 떼이고 완전히 자포자기 한 심정이겠다......
"50번차 키 주세요!"
경찰의 이 한마디에 버스 승객들은 모두 일어나서 기립 박수를 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88번 아저씨는 50번에 올라타서 차 키를 빼앗아 온 것입니다
역전패를 당한 50번 기사 아저씨도 입에 거품을 문 채 씩-씩- 거리며
경찰관 뒤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는 시내 버스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88번 아저씨의 신념인
'시내 버스 노선의 정의를 위해서는 사나이 타는 이 한목숨 바친다! '
대반전의 전설을 보고야 말았던 것이였습니다.
집에 도착한 나는 라면 먹으면서 그 장면이 자꾸 떠올라서
참을려고 하면 50번 기사 아저씨 콧김을 뿜어내며 씩-씩- 거리는
모습이 떠올라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습니다
23년 전이니까 참 오래된 이야기 입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