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사들이 오청원 선생의 부채를 좋아하는데 부채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암연이일장(暗然而日章)'이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여러분은 아마도 오청원의 뛰어난 업적에 감탄하여 오청원 선생이 왜 이 다섯 글자를 부채에 썼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암연이일장'은 중용에 나오는 말로 '군자의 도(君子之道)는 처음은 암연하지만 해가 떠올라 빛이 나고, 소인의 도(小人之道)는 처음은 겉으로 빛나지만 그 속으로는 공허하여 겉으로는 무실하여 나날이 쇠퇴한다'는 의미이다. 오청원 선생은 말년에 21세기 바둑을 상상하며 바둑은 '중화(中和)'의 길이라며 '중용(中庸)'을 추앙했고, '暗然而日章'을 부채에 새겨 세상에 그의 인생 철학과 바둑관을 분명히 전했다.
신진서가 암담이일장의 군자의 도를 보여줬다. 일찌감치 예봉을 드러내고 정상에 서서 경배를 받은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슬럼프를 겪었고, 어렵게 오르고 쫓기던 도중에 상대에게 여러 번 야유를 받고, 운명의 신에 의해 범한 마우스미스로 눈물을 흘렸다. 또한 이유 없는 중상모략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기사의 품격과 기개를 지켰고, 어쩔 수 없이 반격할 때도 비굴하지 않은 어조를 유지한 것은 가히 군자의 도라고 할 수 있다. 순수하게 경기의 공적과 이익의 관점에서 볼 때 신진서의 가장 큰 약점은 아마도 책임감이 너무 강한 것일 것이다.
그는 (1인자로서) 분명히 승리해야 하고, 우승해야하고, 심지어 기록을 깨야 하는 책임감(부담감)뿐만 아니라 기사 이미지를 유지하고 바둑계에 모범을 보이는 책임감까지 짊어지고 있다. 이러한 책임감은 때때로 경기에서 무거운 짐이 되어 그가 결승전에서 무아의 투명한 경지에 진입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모든 책임감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오직 승부에만 집중하도록 하는데 방해가 된다. 물론 이번 농심배의 전설적인 활약은 오늘날 신진서가 이러한 책임을 완전히 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책임을 포기해야만 부담 없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때 가족들이 병원 일선에서 일했고, 나는 무한에서 봉쇄를 당해 무력감을 느껴 바둑계에 재난기부를 제안했다. 뜻밖에도 신속하게 한국으로부터 기부 요청받았고, 한국 기사 최초로 무한 재난 지역 기부를 제안한 사람은 당시 스무 살도 안 된 신진서였다. 후에 이창호와 최정까지 1인당 1000만원씩 무한의 재난기부에 나섰다(동시에 중국 바둑계에서도 많은 지지를 보냈지만 '도덕적납치-비현실적인 기준으로 타인을 강압하는 것'를 거부한다'는 논란도 일었다).
2008년 원촨 대지진 때 이세돌과 조한승이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전 전에 상금 전액을 기부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그 대회 8강전에서 나는 조한승에게 반집을 졌는데 그들과 함께 선행을 함께 하고 싶었다. 이런 순간과 사건에서 우리는 같은 산업공동체에 였고, 더 젊은 종사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느꼈다. 프로기사라는 직업은 원래 사회경제적 생활에 필요한 어떠한 용품도 생산하지 않지만 오히려 많은 물질적 인센티브와 사회적 관심을 받았다. 만약 기사들이 인간의 정신과 사고의 한계를 탐구하지 않고 사회에 환원할 줄도 모르고 무절제하게 요구할 줄만 알고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패배자가 될 줄만 안다면 이 직업이 존재하는 합법성의 근간은 아주 빠르게 흔들릴 것이다.
신진서 같은 기사가 있어서 다행이다. 기예는 물론이고 바둑과 AI에 대한 이해, 바둑에 대한 태도, 바둑의 인품, 업계에 대한 인식과 책임감, 기도의 계승 등 신진서는 모두 바둑계의 모범이 될 만하며, 24세도 안된 그는 이미 점차 '군자의 길, 암담이일장'이 무엇인지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