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대한 두 번째 묵상>
제목: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준 선물
일자: 2023년 3월 19일 주일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찬송가 144장)
날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 고통 당하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 (찬송가 303장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사도 바울)
이런 찬양과 성경말씀은 모두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노래하고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어떤 점에서 우리를 위한 것일까요?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준 것일까요? 우리는 그 죽음을 통해서 어떤 유익을 얻었나요? 우리는 왜 예수님의 죽으심을 그렇게 찬양하고 귀하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내가 죽을 죽음을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날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왜 죽을 사람입니까? 사람은 태어나면 모두 죽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다고 나의 죽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면 아마 죽음에도 종류가 있어서 두번째 사망은 지옥의 형벌을 의미하는데, 바로 그 죽음을 면하게 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대속은 결국 ‘지옥형벌’이라는 죽음을 대신 담당하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복음서 기자들과 사도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지옥형벌을 연결하여 소개합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의 글에는 왜 지옥이라는 말이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까? 도리어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나 선한 일을 위하여 다시 지음을 받았다(엡 2:10)는 식으로 말합니까?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으로 설명합니까? 가장 확실한 것은 그 죽음이 죄 사함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 사함의 복음은 예수님이 전하신 메시지의 중심이기도 하며,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명하신 주제이며, 그에 따라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마다 그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으라고 선포했습니다.
죄 사함을 받으면 구원을 받으며, 그 구원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섬긴다는 말이며, 또한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함께 거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할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처음부터 계획하신 새로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그 일은 세상을 복되게 관리하고 다스리는 일이며, 세상을 위하여 빛을 비추고 선도하는 제사장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새롭게 지으심을 입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며 또한 다시 태어난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전에 어두움과 욕심 가운데 살던 삶에 비교하면 이제는 광명을 찾은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죽은 것과 같았다면 이제는 살아 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삶이며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나누는 기쁨 가득한 삶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오는 세상에서 누리게 하시는 삶이므로 영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삶은 영생을 맛보는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영생을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요 17:3). 그러므로 영생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것인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따르면서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영생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을 배우는 구도의 길에서 받아 누리는 복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준 유익이 무엇인지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죄 사함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 사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됩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귀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이며,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은 새로운 피조물로 사는 삶이며 새로운 종류의 삶이므로 영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는 새로운 세상이므로 하나님 나라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죽은 후에 들어갈 어떤 세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새롭게 살아가는 삶이며, 변화된 새 마음으로 사람들과 화평하게 지내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은 언제나 뜻있고 보람차고 기쁨 가득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죄 사함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 그런 권능이나 자격이 있습니까?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바로 그 증거라고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언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시라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는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메시아에게 그런 권세가 있다고 다니엘서 7장에는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으며 땅의 성도들에게 나라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실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담대하게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 사함이 무엇을 가져오는지는 성경의 백성들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복된 삶입니다. 나중에 요한은 그것을 영생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들이 부르는 찬송가는 영생을 바르게 해석하여 노래하기를,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을 죽은 후에 천국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삶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이 가져온 것은 결국 사후 천국에 대한 보증입니다. 그것은 성경이 들려주는 기쁜 소식과는 다른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시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죄 사함에 대한 보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메시아시라면 그분의 이름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분이 그것을 명하시면서 사셨고 제자들에게도 죄 사함의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으라고 할 뿐 아니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는다고 말합니다.(엡 1:7) 여기서 말하는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맺을 때 보증이 된 황소의 피를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실 때 소를 잡아 그 피로써 언약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피의 언약은 새로운 백성으로 살 수 있는 신분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언약식에서 피는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내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피의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태어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며, 그들은 열방에 빛을 비출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빛나는 덕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 삶이 어떤 종류의 삶인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을 받은 백성들은 그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새 언약의 백성이 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맡아 관리하고 다스릴 왕 같은 대리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처음 인류를 지으실 때 기대하시고 위임하신 명령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부르실 때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입니다. 그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품으신 꿈이며 제자들이 이어받은 임무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사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피로 씻음을 받았고 새 언약에 동참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주님의 사명인 이 세상을 돌보고 가꾸고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고 빛을 비추는 사람으로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동시에 특권이니까요.
이것이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의 길입니다. 사순절에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할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에게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의 죽음과 부활이 가져온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확증합니까? 그의 피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으며 우리는 그의 피로 말미암아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는 동안에 우리의 길은 더욱 선명해지고 우리의 삶은 기쁨과 보람으로 더욱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끝>.
설교안 원문:
https://blog.naver.com/newhopechurch1/223046442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