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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이동해 산티아고 시내를 구경하고 숙박하는 일정이다. 이곳 아타카마에서 산티아고를 가기 위해서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구리광산이 있는 칼라마라는 곳을 지나야 한다. 우리는 비행기로 이동하기에 칼라마 공항까지 버스로 이동해 산티아고 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까지 갈 수도 있지만 24시간 정도 걸리고 차비도 거의 20만원 정도 한다고 한다. 대부분 환갑을 넘긴 우리 일행들의 체력과 시간 그리고 경제사정을 감안할 때 버스 이동보다 항공 이동을 선택할 것이다.
새벽 5시 아침도 못 먹고 호텔에서 싸 준 도시락을 든 채 칼라마 공항으로 가기 위해 전세버스에 오른다. 컴컴한 어둠을 뚫고 잘 닦여진 2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어제 일몰을 보기 위해 왔던 전망대 앞을 지난다. 이후에도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황량한 사막도로를 달리는데 생명체라곤 보이지 않는다.
▶ 멀리 칼라마 시내가 보인다
여명이 비치기 시작하자 멀리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가 보인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구리광산이 있다는 칼리마인가 보다. 칼라마는 본래 볼리비아의 땅이었지만 페루와 연합해 1879년부터 5년 동안 칠레와 전쟁을 하였으나 전쟁에서 패하게 되는 바람에 칠레에게 빼앗겨 볼리비아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 되면서 남미에서 빈국으로 전락을 하게 된다. 안토파가스타 지역은 엄청난 자원이 매장되어 있으며 우유니 사막과 이어진 아타카마 사막 및 화산들의 관광자원과 황금어장이자 볼리비아의 유일한 항구지대였는데 볼리비아는 이렇게 많은 자원들을 혼자 개발할 여력이 없자 1874년부터 칠레인 및 기업들에게 비과세 혜택을 부과하며 개발을 장려했는데 불과 2년 뒤인 1876년 군사 쿠데타로 돈이 궁해지자 칠레인들에게 세금을 물리자 전쟁이 일어났고 칠레에게 패했다. 이로서 볼리비아는 꿀 같은 안토파가스타 해안 및 사막지역을 잃어버린다. 볼리비아는 자원은 됐으니 항구 하나만이라도 달라는 구걸을 했으나 칠레는 매몰차게 거절해 지금도 칠레와 볼리비아의 국민정서는 매우 좋지 않다. 전쟁이 발발하게 된 배경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볼리비아의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전쟁을 계속하는 바람에 태평양 연안을 상실하게 되고 그 이후로도 볼리비아는 브라질과 파라과이와의 전쟁에서 지는 바람에 또 영토를 상실하게 된다. 여행을 하면서 그곳의 최소한의 역사 정도는 알고 보는 것이 그곳을 여행하는 사람의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보면서 타산지석을 삼을 수도 있으니. 역사는 되풀이 되는데 우리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 칼라마 공항
버스는 칼리마 외곽에서 좌회전해 공항으로 향한다. 여명을 뚫고 1시간 40분 만에 칼라마 외곽에 있는 공항에 도착한다. 칼라마 공항은 매우 작은 시골 공항으로 항공 편수가 작은 것인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공항 계류장에 계류된 비행기는 하나도 없다. 버스에서 캐리어를 내려 공항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도 별로 보이지 않고 항공사 카운터에는 아직 직원도 보이지 않는다. 7시가 좀 넘자 카운터가 열리고 수속을 마친 우리는 탑승 게이트로 갔는데 커피 판매점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아 매점에서 커피를 사 호텔에서 싸 준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 산티아고행 비행기
▶ 산티아고행 비행기에서 본 설산
▶ 산티아고행 비행기에서 본 산티아고 근교
9시가 좀 넘어 비행기는 칼리마 공항을 이륙한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것은 온통 만년설을 이고 있는 설산인 안데스 산맥이고 가끔은 호수도 보이는 게 우유니고원 호수 투어를 재현하는 느낌이다. 산티아고가 가까워지자 푸른 들판과 마을이 나타나고 비행기는 높은 산을 크게 회전하여 산티아고 공항에 착륙한다. 칼라마 공항을 이륙한지 2시간 걸린 것 같다.
▶ 산티아고 공항
공항에 도착해 캐리어를 찾아 공항 밖으로 나와 승합차 두 대에 분승해 호텔로 향한다. 남북으로 4,300km로 세계에서 간장 긴 나라. 그 중심에 산티아고가 위치하고 있다. 산티아고는 예수의 제자인 야곱의 에스파니아어 표현으로 워낙 많은 지명이 있어 공식적으로는 "산티아고 데 칠레"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1540년 태평양에 첫 당도한 서구인으로 알려진 발디비아가 건설하였으나 크게 발전하지 못하다가 1818년 칠레가 독립하면서 공화국 수도로 지정된 이후 국가의 부가 이곳으로 집중되었다.
▶ 산티아고 시내 주요 지도
호텔에 도착하자 인솔자가 산티아고 주요 관광지의 지도를 카톡으로 보내준다. 난 호텔 로비에서 city map을 한 장 챙긴다. 호텔에 짐을 푼 우리 동갑내기 부부 3쌍은 인솔자가 추천한 중앙시장으로 점심을 먹으러 간다. 지도를 보니 다행히 호텔이 시내 중심부에 있어 호텔에서 나와 큰 길을 건너면 아르마스 광장으로 가는 Plaza de Armas 거리가 있고 그 길을 쭉 따라가면 중앙시장이다.
▶ 에스타도 거리
▶ 거리공연을 하고 있는 원주민
호텔을 나오니 큰 길에는 지하철 칠레대학 역이 보이고 건널목을 건너 에스타도(Estado)거리로 들어선다. 가로수가 심겨진 넓은 보행자 거리인 이 거리 좌우엔 은행, 음식점, 전자제품 상점, 옷가게 등이 즐비하고 도로엔 거리 공연을 하는 곳도 많아 매장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로 인하여 활기차 보인다. 이 거리를즐기며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까지 걸어간다.
▶ 아르마스 광장
▶ 산티아고 대성당(좌측)과 시청사(정면)
▶ 중앙우체국(흰색)과 국립역사박물관(노란색)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는 숲과 노천광장으로 이루어져서 아담하다. 많은 나무들로 녹음이 우거지고 그 아래의 벤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여유롭게 휴식을 즐기고 있어 여유로운 칠레의 모습이 느껴진다. 광장 주변으로 대성당, 중앙 우체국, 시청사 등 도시의 주요 건물들이 모여 있어 산티아고의 중심이 이곳임을 느끼게 해 준다.
▶ 페드로 데 발디비아 동상
다른 중남미 국가들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산티아고의 중심광장은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이다. 광장 한쪽에는 산티아고의 설립자로 알려진 페드로 데 발디비아(Pedro de Valdivia)의 큰 기마상이 자리 잡고 있다. 잉카제국을 정복한 피사로(Francisco Pizarro)의 부하였던 페드로는 1541년 산티아고를 세웠다. 그러나 이 땅은 원래 마푸체(Mapuche)족의 땅이었다. 막강한 잉카제국에 맞서 자신들의 영토와 문화를 유지해 왔던 마푸체 족은 결국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정복 당한다.
▶ 원주민인 마푸체 족 석상
광장의 다른 한쪽에는 페드로의 기마상와 대조적으로 마푸체 인의 인물 석상이 있다. 칠레 조각가 엔리케 비얄로보스Enrique Villalobos)에 의해 제작된 이 인물상은 잘리고 깨진 모습이 마치 마푸체 족의 운명을 보는 것만 같다. 단단한 동으로 돼 있는 페드로와 부서지기 쉬운 돌로 만들어진 마푸제 족의 대비가 매우 상징적이다.
▶ 거리의 화가들
광장을 중심으로 보행자만이 이용하고 즐길 수 있는 환상의 도로가 연결된다. 광장에는 아름다운 보도가 깔려 있으며, 길 양쪽과 가운데엔 가로수가 심어져 있고 분수와 벤치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리고 거리의 예술가 들은 자기의 작품이나, 유명화가의 작품을 모사하여 팔고 있다. 광장 한구석에는 거대한 동판으로 만든 산티아고 시의 지도가 바닥에 박혀 있다.
▶ 아르마스 광장을 지키는 기마경찰
국립역사박물관 앞에는 남녀의 기마경찰이 기품 있게 광장주변을 순시하고, 데모대들도 요란하지 않게 구호를 외치면서 데모를 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1인 혹은 2인의 이야기 꾼이 쇼를 곁들어 만담을 하는 광경도 볼 수 있고, 대성당 앞 쪽에서는 예술가들이 그림을 한가롭게 그리는 모습도 있다.
▶ 산티아고 대성당
▶ 산티아고 대성당 은 램프(?)
아르마스 광장 옆에 있는 대성당(Metropolitan Cathedral)은 처음 이 도시를 건설한 발디비아가 우선 도시의 중심에 성당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에 1558년 건립하였다고 한다. 스페인 군이 남미 지역을 점령하고 처음으로 시작한 일은 도시의 중앙에 성당을 짓는 것이다. 모든 침략은 그리스도교의 전도를 명분으로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에, 점령지의 심장에 십자가를 드높이 세우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산티아고의 중심에 있는 이 대성당은 1558년에 세워졌으며 그 규모가 칠레에서 가장 크다. 성당 안에는 300년이 넘은 은 램프가 보관되어 있는데 당시 남미에서 약탈한 은을 이용하여 20kg의 초대형 램프를 만든 것이다. 이런 만들어 바친 자들은 지금 천당에서 잘 있는지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타인의 물건을 빼앗아 자신의 신에게 바친 공물을 보는 그네들의 신은 좋아했을까?
▶ 산티아고 대성당 내부
대성당은 이름에 걸맞게 출입구에서 미사 봉헌대에 이르는 긴 중앙에 의자가 줄을 맞춰 놓였고 성당 중앙 천정을 받든 아치형 기둥이 중앙의 양쪽에 일렬로 도열해 있다. 아치형 천정에는 성화를 그려져 있으며 대성당의 양측면 코너에도 기도처와 작은 예배실이 있고 벽면과 큰 기둥에도 성화들이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 성당은 피노체트 군사 독재 시절 민주화 시민그룹의 근거지가 되었고, 따라서 이 앞에서 군사 독재에 항의하는 종교적인 집회가 자주 열렸다고 한다.
▶ 대성당에서 중앙시장으로
▶ 산티아고 중앙시장
▶ 산티아고 중앙시장 수산물 가게
아르마스 광장에서 북쪽으로 세 블록을 더 걸으니 산티아고 중앙시장이 나온다. 칠레 전 지역의 특산물이 모인다는 산티아고 중앙시장은 상당히 유명한 관광지다. 플랑크톤이 풍부한 훔볼트 해류를 따라 형성되는 어장은 칠레가 세계 그 어디와 비교해도 지지 않을 만큼 풍부한 어업국가로 발전시켜 해산물이 풍부하고,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로 인하여 과일 또한 아주 저렴하고 풍부하다. 갖가지 생선들과 조개, 게, 문어, 새우, 성게 등이 얼음 위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대부분의 생선이 3~4Kg은 너끈히 나갈 정도로 큰데 상점마다 커다란 저울을 매달아놓고 바쁘게 손을 놀리며 무게를 다는 모습이 이채롭다. 시장 한쪽으로는 채소와 과일을 파는 가게들도 자리하고 있지만 어시장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다.
▶ 산티아고 중앙시장 내 식당
▶ 조개탕(해물탕)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식당마다 호객 행위로 바쁘다. 여행객임을 단 번에 알아차렸는지 소매를 끌고 자기네 식당 앞으로 유인한다. 아무리 호객 행위를 한다 하더라도 기왕 돈 주고 사 먹을 건데 맛 집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들을 뿌리치고 몇 군데 식당을 둘러보는데 손님이 많은 식당 안쪽에서 우리 일행 중 몇 분이 식사를 하면서 우릴 부른다. 이곳에서 우리 3부부도 자리를 잡고 앉아 해물탕과 맥주를 주문한다. 에피타이저와 함께 나온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키자 더위가 좀 가시는 것 같다. 메인 요리인 해물탕은 해물탕이라기보다는 조개탕으로 커다란 뚝배기에 여러 가지 조갯살이 가득 차 있어서 우리 식 표현으로 시원한 맛이 난다. 그런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아직 볼리비아의 저물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칠레의 물가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 베가 시장
배를 채운 우리 3부부는 내일부터 시작되는 파타고니아 여행이 시작되면 그곳에서는 살 수 없는 한국 라면 등 사러 산티아고의 코리아타운으로 간다. 인솔자가 준 지도를 펼쳐들고 걷는다. 중앙시장에서 보행자 도로를 따라 마뽀초 강을 건너니 작은 규모의 꽃시장과 과일시장이 나오고 좀 더 가니 베가시장(Mercado Vega)이라는 야채와 과일, 육류를 대량으로 파는 도매시장이 나온다. 그런데 지도에는 방향 표시가 없어 여기서부터 헷갈린다. 시장 상가에 있는 사람들에게 코리아타운을 물어도 고개만 저을 뿐. 베가시장 뒷길을 걸으며 햇볕은 따갑고 땀은 줄줄 흐르는데 지도를 볼 줄 몰라 나만 의지하고 따라오는 일행들에게 미안하면서도 괜히 짜증이 날 무렵 거리의 이정표를 보니 Patronato란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 코리아타운
▶ 코리아타운내 아씨마켓
Patronato 거리에 코리아타운이 있고 코리아타운 내 아씨마켓이 있다는 인솔자의 말이 생각나 그 길로 접어드니 한국인이 운영하는 옷가게와 식당, 슈퍼 등이 많이 보인다. 얼마나 반가운지 일행들과 함께 아씨마켓으로 달려간다. 마켓에서 2주 동안 못 먹었던 라면과 소주 등을 사고 코리아타운을 둘러 본 후 피곤해하는 일행들과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온다.
▶ 산 마르틴 동상
샤워를 끝낸 후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내가 다시는 못 와 볼 산티아고인데 호텔에서 빈둥거리는 것이 아쉬워 혼자 호텔을 빠져나와 시내 구경에 나선다. 호텔 앞 큰길을 따라 모네다 궁전으로 향하는데 거리 중앙에 커다란 기마상이 보인다. 가까이 가 보니 남미 독립의 영웅 중 한 사람인 산 마르틴 동상이다. 말고삐를 움켜잡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이 영웅은 사회 전반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로 민주주의 회복 수 십년 만에 최악의 혼란이 거듭되는 오늘날 칠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 헌법광장과 모네다 궁전
교차로를 건너니 푸른 잔디가 깔린 광장이 나타나는데 지도를 보니 헌법광장(Plaza de la Constitución)이다. 헌법광장을 중심으로 칠레의 사법부, 중앙은행, 재무부, 감사원 등 중앙 행정부서 건물들이 에워싸고 있다. 헌법광장에는 관광객들이 뒤로 보이는 모네다 궁전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고 광장 한 켠에 아옌데 대통령의 동상이 칠레의 하늘을 바라보며 칠레의 아픈 역사를 회상하는 듯하다.
▶ 로타리에 있는 칠레 대형 국기
광장 로타리 한가운데엔 굉장히 큰 칠레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이 칠레 국기는 2010년 9월18일 독립 200주년을 기념해서 시민광장(Plaza de la Ciudadanía)에 설치된 200주년 국기(Bandera Bicentenario)로 깃봉의 높이가 61m이고, 국기의 크기는 가로 27m, 세로 18m인 대형 국기다.
칠레 국기는 국기 아래쪽에는 빨강색 가로 줄무늬, 국기 위쪽에는 하얀색 가로 줄무늬가 그려져 있으며 깃대 왼쪽 상단에는 파란색 정사각형이 그려져 있고 정사각형 안에는 하얀색 별이 그려져 있는데 스페인어로는 외로운 별이라는 뜻을 가진 라 에스트레야 솔리타리아(La Estrella Solitaria)라고 부른단다. 빨강색은 독립을 위해 선조들이 흘린 피를, 파랑색은 하늘과 태평양을, 하얀색은 하얀 눈에 덮인 안데스 산맥을, 별은 명예와 진보의 길잡이를 의미한다고 한다.
▶ 모네다 궁전(대통령 궁)
광장 너머 칠레 국기들이 휘날리고 있는 국기 게양대 뒤편으로 콜로니얼 풍의 하얀색 건물이 모네다 궁전으로 칠레의 대통령이 집무하는 궁이다. 모네다(moneda)는 돈(money)을 의미하는 스페인어로 1805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원래 조폐국으로 사용되다 1846년부터 대통령 관저로 이용되기 시작했으며 현재의 모네다 궁전 근처로는 많은 경비병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다.
▶ 모네다 궁전 앞 살바르도 데 아옌데 대통령 동상
칠레의 대통령 궁은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70년, 남아메리카에서 최초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의 사회주의 정권이 세워졌지만 1973년 미국의 후원을 받아 이에 반발한 군부의 쿠데타로 인해 아옌데는 이곳 모네다 궁전에서 최후를 맞게 된다. 쿠데타의 수장이었던 피노체트는 승승장구했고 마지막 보루였던 모네다 궁전이 화염에 휩싸이자 그 안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옌데는 “항복을 할 바에야 죽음을 택하겠다!”고 하며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자살한다. 이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의 독재 정권이 17년 동안 이어졌고 그 기간은 어두운 억압과 압제의 기억과 함께 칠레의 아픈 역사로 남아 있다. 정권 연장이 아무리 정치가들의 욕심이지만 그 욕심이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번영에 앞선다면 사욕에 불과하고 그 과보는 온전히 국가와 국민들이 받는다는 걸 좀 알았으면 좋겠다.
▶ 헌법광장과 모네다 궁전을 지키는 근위 기마병
이틀에 한 번씩 소규모 악단의 음악과 함께 절도 있는 동작의 근위병들이 행진을 하며 경계 임무를 인수하는 근위병 교대식이 오전 10시부터 약 30분간 펼쳐진다고 하는데 지금 시간이 오후 3시 반으로 근위병 교대식을 볼 수 없어 아쉽지만 헌법광장에서 헌법광장과 모네다 궁을 지키고 있는 근위기마병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 마누엘 불네스 장군 기마상
큰길 중앙 숲을 건너가다 보니 역시 기마상이 있는데 이 기마상의 주인공은 마누엘 불네스(Manuel Bulnes) 장군으로 1839년 페루-볼리비아 연방군을 융가이(Yungay) 전투에서 물리쳐 칠레 북부를 차지하고 있던 페루-볼리비아 연방의 해체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칠레의 장군이다.
▶ 갈림길 분수를 장식한 세 여인상과 동갑내기 부인들
▶ 늦은 시간이라 아우마다 거리가 한산하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후 동갑내기 부부들과 모네다 궁을 거쳐 아우마다 거리로 간다. 누에바 요크 거리의 Y자 모양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산티아고의 대표적인 보행자 전용도로인 아우마다 거리로 접어든다. 칠레 인구 약 1700만 명 중 600만 명 정도가 산티아고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런 산티아고에서 아우마다 거리는 가장 활기차고 붐비는 거리 같다. 아무마다 거리 입구엔 분수 중앙에 세 여인상이 Y자 형 갈림길을 안내하고 있고 아우마다 거리로 들어서면 도로 양옆의 번듯한 건물에는 세련된 상점들이 들어서 있고 그 앞에는 온갖 종류의 상품들을 팔고 있는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다. 많은 시민들이 쉬고 있는 벤치들과 카페도 거리의 구성원으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 아르마스 광장 야경
▶ 스프레이를 뿌려가며 그림 퍼포먼스를 하는 화가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걷다보니 어느덧 아르마스 광장에 다다른다. 어둠이 깔렸지만 환하게 조명을 밝히고 있는 아르마스 광장. 광장의 나무들은 가로등의 조명을 받아 더욱 진한 녹색 잎으로 변신해 있고 대성당은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다. 대성당 앞에선 화가가 스프레이를 뿌려가며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데 그의 예술적이며 재미있는 쇼맨십에 한참을 구경한다. 광장 벤치에 앉아 야경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 산 크리스토발 언덕에서 본 야경<퍼 옴>
아르마스광장을 나와 낮에 못 가 본 산 크리스토발 언덕Cerro San Cristóbal)으로 향한다. 밤길을 걸어 산 크리스토발 언덕에 도착하니 이미 문이 닫혀 있다. 이 언덕은 높이 약 324m에 이르는 작은 언덕처럼 보이는 산으로 언덕을 오르는 등반 코스와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지만 케이블카로 정상에 쉽게 오를 수 있으며 정상부 전망대에 오르면 웅장한 고봉들이 둘러싸고 있는 산티아고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언덕 정상에는 흰색으로 조각된 14m 높이의 성모 마리아상이 서 있다고 하는데 아쉽다.
호텔로 돌아와 일행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오후에 갔던 코리아타운 옆에 있던 산이 산타루시아 언덕이라고 한다. 덥기도 하고 일행들도 피곤해 해 그곳을 보지 못하고 돌아온 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