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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장 오직 성영의 충만을 받으라
엡5장18의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영의 충만을
받으라 했는데 <오직 성영의 충만을 받으라>가 오늘 말씀의 제목이 되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
영님의 충만을 받지 않으면 헛것입니다. 교회를 열심히 왔다 갔다 헌금 열심히 드리고 목사님 말씀
순종하면 복 받는다 하니까 목사님 말씀 순종 다 잘한다 하더라도 믿는다는 것은 헛것입니다. 우리
의 믿음은 절대로 성영님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영님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곧 예수
님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하
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믿는 신앙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알아야 하고 말씀을 아는
일은 오직 성영님의 도우심으로만 됩니다. 그래서 성영님의 충만을 받으라 말한 것입니다. 오늘
성영님의 충만을 받는 것에 대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제자들에게 분부하시며 말씀하시길 요14:15-21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여 성영을 너희에게 보내 영원히 너희와 함께 거하실 것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
지 않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성영을 보내어 나를 나타내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오셔서 성영을 받으라고 하셨고 부활 후 세상에서 40일 동안 계시다가 승천하시기 직전
에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는 몇 날이 못 되
어 성영으로 침례를 받으리라고 분부하여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모여 기도하며 약속하신
성영님을 기다렸는데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 열흘 후 오순절 날이 이르렀을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성영님이 오셨고 제자들이 그 성영님으로 충만함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으로 나가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요14:17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20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에 그에게 나
를 나타내리라 23에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성영님
으로 제자들에게 오셔서 거처로 삼으시고 말씀대로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 자신을 친히 나타내셨습
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 오직 예수님의 영이신 성영님의 충만한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성영
님으로 충만함의 상태가 된 제자들은 이제 더는 겁쟁이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
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제삼 일에 부활하신 것을 담대히 전한 것입니다. 그들로 인해 온 세상
에 복음이 퍼져 나가게 되었고 복음 전하는 곳마다 예수님의 능력이 그들을 통해 나타나 죽은 자가
살아나고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 자가 고침 받고 눌린 자가 자유함을 얻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성영님의 역사는 온 땅에 충만히 운행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에게 "성영의 충만함을 받으라" 명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참으로 믿기 원하는 사람은 성영님의
충만함을 받으려고 자기를 말씀에 굴복시키고 순종하는 훈련을 기꺼이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나 성영님의 충만으로 나아가야 그 신앙이 성공입니다. 행2:39에 "성영 충만의 약속은 유대인
들로부터 시작하여 먼 데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했습
니다. 이같이 믿는 자에게 성영 충만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약속이 있음에도 성영님의 충만함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나약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이 믿는다고는 해도 성영님의 충만함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기 훈련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내외적으
로 충만함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장벽이 있더라도 성영님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할 권리와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영님의 충만'이란, '차고 넘치는 대로 나아간다'라는 것이며, 성영님으로 온전히 지배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영 충만'하면 곧 나는 없고 성영님의 지배를 받아 능력으로 채움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영의 충만을 받으라 이지 않습
니까? 사람이 술에 취해 사는 것은 그 술에 지배받고 있다는 것으로서 결국 방탕이지 그것은 믿음
의 일이 아니니 멸망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영님으로 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술은 그 사람을 지배하여 멸망으로 들어가게 하지만, 성영님으로 지배받는 것은 영생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그러므로 술 취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성영님의 충만을 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내 하고 싶은 대로, 내 본성대로 하는 지혜 없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고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성영님으로 충만을 받으라는 겁니다. 성영님
으로 충만을 받으면 이제 성영님께서 온전히 주장하고 이끌어 가십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에 나도 함께 죽었음을 알고 그 믿음이 되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사는
능력을 갖추는 그것이 곧 성영님으로 충만을 받는 것임을 말합니다. 말씀으로 살기를 원하는 뜻을
가지고 사모하여 말씀을 늘 가까이하고 말씀을 취하면 그 말씀이 자기 정신이 되고 사는 능력이 되
고 자신을 지배하고 경영해 가는 것입니다. 성영님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시려고 오셨음을 요16:
14에 말씀 하셨고, 롬8:9에 성영님은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영님의 충만함을
받는 것은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며, 예수님 안에 사는 것이며, 예수님의 삶을 나도 산다는 말입니
다.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으로 사는 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직 성영님의 충만함을 받아라'는
것은 오직 예수님으로 충만한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그다음 성영님의 충만을 받으라는 것 중의 하나는 죄를 이기는 자가 돼야 함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 해도 죄를 짓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롬7:22-24에 고백하기를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같이 우리의
부패 된 본성에 져서 자꾸 죄를 짓고 마는 약함이 있음을 탄식했습니다. 갈5:17에 육체의 소욕은
성영을 거스리고 성영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육체의 소욕은 성영님을 거스리고 성영님의 소욕
은 육체를 거스리는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육체의 소욕을 이기려면 성영님의 능력
을 입어야만 합니다.
성영님의 능력을 입지 않으면 우리 노력으로는 죄를 이길 수가 없기에 신앙생활이 힘들 수밖에 없
습니다. 무기력해질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영님의 충만을 받아야 죄의 소욕을 이기는
겁니다. 롬8:13,14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
곧, 자기 안에 오신 성영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성영님의 사람
만이 영혼을 사랑할 능력이 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 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갖게 되어서, 구
원받게 하는데 희생이 따르더라도 마음을 쏟게 되어 있습니다.
행10:38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영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뜻을 이루시기 위한 사역을 성영님으로 행하셨습니다. 성영님으로 일하셨고
기뻐하는 것도 성영님으로 기뻐하셨고 감사도 기도도, 성영님으로 하셨다고 했습니다. 또한, 눅24:
49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이라도 약속하신 성영님, 즉 위로부터 능력을 입
히울 때까지는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분부하셨습니다. 복음의 일은 영적인 것이니 영이신 성영님의
충만함을 입지 않고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자기를 성영님께 맡기고 성영님을 기
꺼이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성영님으로 충만함을 받는 믿음이 된다면, 삶 속에 놀라운 평화와 기
쁨과 만족함이 흘러넘치고 성공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기 위
한 목적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성영님으로 충만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성영님으로 충만할 때
하늘 영광이 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성영을 받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제자들이 마가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쓸
때 오순절 날 성영이 강하게 임하여서 그들이 권능을 받아 복음 사역에 엄청난 이적을 행했다고 하
며 그처럼 우리들도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성영 충만 받아야 하고 성영을 받으려면 그같
이 기도에 힘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영 충만하게 해달라고 매달려 몸부림하며
기도들을 하는 겁니다. 물론 기도도 해야 하지만,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제자들이 성영님
으로 충만 받을 수 있었던 그 과정을 반드시 살펴보고 그 길을 배워야 하고 함께 따라가야 합니다.
오순절 성영님의 강림 사건만 보고 성영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도무지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 귀신의 가르침과도 같습니다.
제자들이 성영님의 충만을 받을 수 있었다면 먼저 그 충만을 받을 수 있었던 자격, 그릇으로 준비
된 과정부터 보고 배우는 것이 돼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동고동락 하며 삼 년 반을 같이
지냈고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며 너희는 내게 배우라 하시고 제자로서 갖춰야 할 예수님
의 일을 다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지만, 예수님께서 이제 성영님이 오시면 그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고, 그때는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행할 것이라고 하시며
성영님이 오시면 충만히 받을 수 있는 자들로 가르쳐 훈련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신나고 행복한 마
음으로 배우고 묻고 함께 먹고 자고 생활을 같이했습니다. 예수님께 배우고 듣고 보고 행하며 철저
히 제자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바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제자들의 길을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
고 배우고 묻고 깨달으면서 나아가야 함을 보인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성영님의 충만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불 받았다, 뭐했다 하는 것은 다 사단의 것들입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보고 있던 데요" "그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즉시 나서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너무나 멋진 정확한 답변(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칭찬하시며 아버지가 알게 하신 그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
백 위에다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셨습니다(마16장). 그리고 마26:31-35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
리시기 전날에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하시자 베드로가 또 즉시 나서서
"다른 사람이 다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로 예수님 안 버릴 것입니다"라고 자신의 찬 말을 서슴지 않
자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
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또 답하기를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
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했습니다. 절대 주님 부인하지 않겠다고 하자 제자들 모두 똑
같이 베드로처럼 자신만만한 대답을 하고 나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 현실에 직면하자 어떻게 했습니까? 군병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오니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고 베드로는 예수님이 대제사장 앞에 끌려와 고초와 모욕을 당할
때 멀찍이 있다가 그 결국을 보려고 예수님 가까이 가서 그 하속들과 함께 앉았더니 그중에 하나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아보자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며 "네가 뭔 말을 하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하고, 또 나아가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라고 맹세하고 부인했다고 했고, 또 나아가 "저
주하며 맹세하며 부인했다"고 했습니다(마26장) 그리고 곧 닭이 울더라고 했습니다. 그때야 베드로
가 "네가 오늘밤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한 것
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철저히 자아가 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자기가 예수님을 저주
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를 맹세할 수가 있었는지, 비굴하고 악한 자기의 모습, 자신의 연약성
자기 신뢰가 얼마나 어리석고 무서운 것인지 철저히 자신에게서 보게 되었고 그래서 깨져야 했던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야 예수님 죽는 데까지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자기의 의지는 수치요, 예수
님의 그 전지성과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 눈빛으로 연민의 정을 쏟으신 그 사랑 앞에 밖으로
뛰쳐나가 통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깨우쳐 줍니까? 바로 성영님이 붙잡아 주지 않는, 성영님의 내주하심이
없으면 자기 의지는 나약하고 무력해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인간 자기 사랑이
라는 것, 인간 자기 의지라는 것은 죄를 가졌기에 죄를 가진 인간 자기 사랑, 자기 의지로는 죄 없
으신 예수님을 사랑할 수도 없고, 의지를 세울 수도 없는 것임을 여실히 보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실지로 영적으로 들어가면 예수님과는 원수 관계이기 때문에 절대로 인간으로는 예수님을 사랑할
수도 없고 따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 관계로 들어가서는 예수님을 부인했고 저주했
고 맹세로 저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인간의 처지를 알고 인간으로 믿는다 하면 망할 것
밖에 없는 것이니, 오직 성영님으로 예수님을 믿기를 소원하고 성영님의 믿음이 되기를 원해야 하
고 성영님의 충만으로 나가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자기를 철저히 경험하고 자아가 깨진 베드로를 찾아오셨
습니다(요21:15-17). 그리고 물으시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
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
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
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즉 혈과 육으로 난 사람아! 라는 말입니다. 혈과 육으로는 마음은 원이로되
나를 사랑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네가 알았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입니다. 베드로는 정말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베드로가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인간으로는 사랑할 수 없는 분이라는 것,
자기로는 사랑할 수 없는 분이라는 것,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를 처절히 경
험케 하시고, 인간으로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죽는 데까지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인간 사
랑으로는 무너지는 것을 경험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네가 알았느냐고 하시는, 베드로가
자기 경험으로 알게 된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 베드로에게 영
적 사랑으로 회복케 하시려고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혈육보다는,
혈육으로 맺은 이 모든 사람들보다는 참으로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즉 진짜 죽는 데까지 나를
사랑하여 따르겠느냐는 물음이셨지만, 이 물음의 의도는 네가 죽는 데까지 나를 사랑하여 따르는
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연거푸 세 번째 물으시는 것에
"베드로가 근심하여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깨어
진 자아,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아가 된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을 예수님이 다 아시면서
왜 계속 물으시는지 근심이 됐습니다. 이렇게 세 번을 물으신 것은 우선은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룬 뜻이 되었고, 내 양을 먹이라 하신 것으로, 이제 예수님의 남은 일을 하라는 사명을 말씀하셨
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 것같이 네가 나를 사랑하니 그 사랑으로 곧 내 양을 먹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세 번 부인했던 것은, 인간의 영,혼,육이 하나님과 철저히 원수가 되어 있다는 것을 그래
서 육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 베드로에게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자신을 철저히 보았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성영님이 오시면 충만함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었
습니다. 성영님이 그들 속에 임하여 오실 수 있는 준비된 그릇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기도만 하면 다 성영님으로 충만해진다고 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자신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무지요, 아주 오만이요, 교만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의
실체를 보지 않으면, 보지 못하면 자아가 깨어지지 않으면, 예수님과 함께 죽음에 넣지 않으면 성
영님의 충만으로 나갈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면서 예수님을 따라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순종하여 사는 훈련을 통하지 않고는 성영님의 사람은 될 수 없습니다.
정말 성영님으로 충만한 능력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영님의 충만을 받을 만한 합당한 대가,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하는 훈련의 대가를 지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예
수님과 함께 가는 그 길을 위해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어야 하는 것, 이
제는 모르는 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행2:38에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영을 선물로 받으리니 했습니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에 대하
여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그러므로 자기 본성이 죄요 사망에 처하여 지옥에 떨어질 존재임을 알아
죄를 처리하신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이 돼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나의 죄를 친히 몸
에 지시고 머리에는 가시관 쓰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손과 발에 못 박히고 옆구리는 창에 찔려 피
흘리시고, 나의 죄 때문이며 내 죄를 대신 지셨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게 죄의 책임을 묻지 않으신다는 그 은혜를 믿고, 예수님을 오직 나의 생명, 나의 능력, 나의 기
쁨, 나의 행복, 나의 생의 목적으로 삼고 죄에서 돌이키고 세상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하는 것은 죄를 버리고 세상에
서 나오는 것입니다. 피로 죄를 씻어 의롭다고 하셨음에도 죄인의 죄를 여전히 짓는다면 성영님이
함께하실 수가 없습니다. 세상 것에 대한 욕심, 이기심, 교만, 탐욕 등 죄라고 하는 것들을 다 버
려야 합니다. 죄들과 인연을 끊어야 합니다. 창4:7에.....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
스릴지니라 말씀하셨지 죄에 지배받고 죄에 끌려다니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영님은 거룩한 영
이시고 성결의 영이시니 죄가 있는 곳엔 계실 수가 없습니다. 더러운 곳에는 언제나 파리나 쥐들이
모이는 것처럼, 여전히 죄의 더러움에 있으면 더러운 것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죄인의 옛 생활
을 버리고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을 떳떳하게 드러내는 사람을 성영님께서도 믿음
을 도우시는 것입니다. 체면 불고하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쑥스
럽게 여기는 사람은, 성영님이 함께하실 수도 없고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요14장에 예수께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간직하여) 지
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무엇
인가? 예수님의 말씀 하신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그런 자 속에 예수님께서 성영님으로 오셔서 함께
동거하며 모든 일을 같이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을 모르고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행5:32에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
을 누가 순종합니까? 순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자가 순종하는 것
이요,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예수님의 하신 일을 이어받아야 했으므로 성영님으로 충만을 받게 하시려고 가르침을
받은 대로 준수하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성영님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에 관해 관심과 훈련을 외면하면서 그냥 성영 충만하
게 해달라고 온 힘을 다해 기도해놓고 밖에 나가서는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고 옛 습관에 젖어있
다면, 그것은 성영 충만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귀의 참소와 삼킬 대상이 되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성영님으로 충만한 믿음이 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의지에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예수님
의 사람이기를 원하면 온 마음을 예수님께 두고 예수님의 피 값으로 저를 사셨으니 이제 저는 오직
예수님의 소유로 살기 원하니 나로 믿음의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라 기도하면서 자기의 의
지를 맡기고 성영님이 이끄시는 그 훈련을 잘 받아가야 합니다. 잠8:17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
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셨고 약4:8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
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했습니다. 요14:23에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하리라고 했습니다. 예
수님의 말씀을 따라 지키는 것은 곧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요,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사람들이 다 이 조건에 걸려 있기 때문에 성영님의 충만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
다. 자기가 시퍼렇게 살아서 믿는다 하고 있기 때문에 성영님의 충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위해서 가정도, 친구도, 세상 즐거움도, 재산, 모든 명예를 다 희생하고
충성은 하는데, 그 일의 중심이 자기가 되어서, 자기를 죽음에 내주지 못하고 자기가 살아서 하는
일이라서 성영님의 충만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어도 사랑, 희락,
화평, 온유,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절제의 이 같은 성영님의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님의 진액인 말씀으로 영의 양식이 되지 않으니 성영님으로 맺는 열매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육의
자아를 날마다 자기 십자가에 못 박고 성영님의 인도함을 받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성영님으로 충
만하기를 목말라 해야 합니다.
요7:37-39에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
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영을 가
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의 처지를 알고 영혼의 목마름으로 갈증을 느껴 아주 목
말라하는 자에게 성영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영님을 받지 않아도 잘 믿을 수 있다고 잘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성영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영님의 지배를 받기를 소원
하고 갈망하며 성영님을 좇아 행해 나갈 때 비로소 충만한 자가 되는 것임을 알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맺으면서 여러분에게 다시 또 당부하기는 여러분 술 취하지 말고 즉, 세상에 취하지 말고
오직 성영님의 충만을 받으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이 땅에서나 영원한 나라에 가서나 사는 길입
니다. 오직 성영님의 충만을 받으십시오. 우리에게 성영님이 오신 것에 대하여 아버지께 말할 수
없는 큰 감사로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제 17 장 오직 성영의 충만을 받으라.p317-p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