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馬肉不飮酒傷人(식마육불음주상인)
‘말고기를 먹고(食肉馬) 술을 마시지(不飮酒) 않으면 몸을 상한다(傷人)’
라는 뜻의 이 말은 얼핏 들어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데
‘다른 사람을 너그러움으로 대하면 그 보답이 뜻하지 않은 때 온다’
는 내용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중 진본기편(秦本紀篇)에 소개되어 있다.
때는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세기). 진(秦)나라의 왕 목공(穆公)은
후덕(厚德)하고 도량(度量)이 넓은 사람이었다.
어느 때 진나라의 기산(岐山) 밑에 사는
가난한 백성 삼백여 명이 목공의 말을 잡아먹다가 붙잡혔다.
관리들이 목공에게 이들을 처벌해야한다고 말하자 목공은 그들의 몰골이 처참함을 보고
‘군자(君子)가 가축 때문에 사람을 해쳐서는 안된다.
내가 듣기에 말고기를 먹고 나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사람 몸이 상한다고 하였다’
라고 말하며 오히려 그들에게 술을 주라고 명(命)하고 모두 풀어주었다.
그 후 이웃 진(晉)나라 왕 혜공(惠公)이 군사를 이끌고 목공의 진(秦)나라에 쳐들어왔다.
두 나라는 한원(韓原)에서 격전을 벌이다가 상대방 왕을 서로 포위하게 되었는데
진(晉) 혜공은 부하들이 도망가는 바람에 잡히게 되었고,
진(秦) 목공도 그만 적군에 잡히었다. 목공이 위기에 처해있던 바로 그 순간,
느닷없이 산비탈에서 머리를 풀어 헤치고 몸에 옷을 반밖에 걸치지 못한
수백 명의 무리가 소리를 지르고 칼을 휘두르며 포위망을 뚫고 달려와
목공을 구출하였고 결국 진 혜공을 사로잡은 목공의 진(秦)나라가 승리하게 되었다.
목공이 그를 구해준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원한다면 벼슬을 주겠노라고 말하자
그들은 이를 거절하며 ‘저희는 이미 은덕(恩德)을 받은 지 오래되었사오니
또 무엇을 바라오리까’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너희들에게 상을 내린 적이 없는데 무슨 은덕을 내게서 받았다는 말이냐?’
라고 목공이 말하자
그들은 ‘오래전 저희가 너무나 배가 고파 임금님의 말을 훔쳐서 잡아먹다가 잡
혀서 죽게 되었는데 임금께서 오히려 저희에게 술을 베푸시고 풀어주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옵니다’라고 머리 숙여 절하였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주고 도와준 사람들을 귀인(貴人)이라고 부른다. 말을 훔쳐 잡아먹고 처벌을 받게된 사람들을 살려준 진 목공은 그들에게 귀인이었고
적군에 잡힌 그를 구해준 그 사람들이 목공에게는 귀인이었다.
나 자신을 생각해보니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 형제,
선생님과 친구들, 대학에서 가르치고 함께 연구하고,
때로는 내게서 야단도 맞았던 대학원생과 연구원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함께 일했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귀인이었고 주위에 귀인이 아닌 사람이 없음을 보며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한편 ‘그렇다면 나는 다른 그 누군가에게 귀인이 되어본 적이 있는가?
나를 귀인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부엌일에 바쁜 처(妻)에게 짐짓 ‘당신 인생에서 가장 생각나는 귀인은 누구야?’
라고 물으니 ‘그야 당연히 당신이지’하고 대답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이 뻔한 질문을 집에서 한번 서로 해보시기를 바란다. 행여나
‘귀인은 없고 웬수만 있어요’라는 애교스러운 회답을 듣더라도 너무 실망하지는 마시라.
귀인을 찾기 보다 내가 먼저 그에게 귀인이 되어주면 되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