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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빌닷에 대한 욥의 답변Ⅱ, 중재자를 구함(욥기 9:21~35)
* 본문요약
욥은 친구들 앞에서 자신이 흠이 없는 순전한 자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 있는 끔찍한 질병은
자기가 보기에도 자기에게 죄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욥을 답답하게 합니다.
욥은 불평을 버리고 슬픈 얼굴을 바꾸어 밝은 빛을 띠려 애를 써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고백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결국 그를 죄인이라 규정하시리라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가 회개를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결국 죄인으로 규정하신다면
누가 하나님께 그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가 자신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라도 해준다면 좋겠는데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며 탄식합니다.
찬 양 : 344장(새 545)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340장(새 542) 구주 예수 의지함이
* 본문해설
1. 살아 있음에 대한 탄식(21~26절)
21) “내가 비록 순전하다(흠이 없다) 말을 하고는 있지만, 나도 나를 잘 모르겠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생명을 천히 여긴다는 것(사는 것이 정말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싫다는 것)뿐이네.
22) 모든 것이 다 똑같은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순전한(흠이 없는) 자나 악한 자나 다 한 가지로 멸망시키고 있지 않은가?
23) 갑자기 재난이 닥쳐와서 죽게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죄 없는 자마저 재앙을 받는 것을 보시고 비웃으실 것이네.
24) 세상이 악한 권세자의 손에 넘어가도
주님께서 재판관의 눈을 가려서 제대로 판결을 하지 못하게 하신다네.
그렇지 않다면(이것이 그가 한 일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한 일이란 말인가?
25) 내 인생이 (내 생명이) 경주자(달리기 선수)보다 더 빨리 지나가니,
내가 수를 다하지 못하고 죽는구나.(혹은, 내가 무슨 좋은 일을 볼 수 있겠나?)
26) (내 생명이) 지나가는 것이 갈대배와 같이 빠르고,
먹이를 덮치려고 내려오는 독수리처럼 빠르구나.”
- 나도 나를 잘 모르겠네, ~ 사는 것이 싫은 것뿐이네(21절) :
욥은 아직도 자신이 이토록 끔찍한 고통을 당해야 할 만큼
죄를 지은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닥친 이 현실은 자기가 생각해도 죄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죄가 없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끔찍한 형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점점 자신이 죄가 없다는 말에 자신이 없어집니다.
그러니 사는 것이 싫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모든 것이 다 똑같은 것 아닌가(22절) :
특별한 죄가 없는 자신에게도 이러한 고통을 주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의인이나 악인이나 별 차이 없이
모두에게 심판을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것으로,
친구들에게 말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 항의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 수를 다하지 못하고 죽는구나(25절) :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를 다하지 못하고 죽는 것을 큰 불행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욥은 지금 자신이 큰 불행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 갈대배(26절) :
갈대로 엮어 만든 이집트의 배로, 당시의 배 중에서 가장 빠른 배입니다.
- 독수리(26절) :
독수리는 공중에 떠 있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시속 200km의 속도로 내려와 공격합니다.
욥은 자신의 인생이 갈대배나 독수리처럼 빨리 지나가고 있다고 한탄합니다.
2.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판결을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27~31절)
27) “가령 내가 이제 온갖 원망과 불평을 잊어버리고
슬픈 얼굴빛을 바꾸어서 애써 웃으며 명랑하게 보이려 한다고 할지라도
28) 오히려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내가 겪는 이 고통이 두렵기만 하오니,
몰려오는 괴로움에 더욱 움츠러들기만 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실 줄을 내가 아나이다.
29) 어차피 내가 주께로부터 죄인이라는 판결을 받게 될 것이라면,
왜 이처럼 내가 헛된 수고를 해야 하나이까?
30)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
31) 주께서 나를 다시 시궁창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인들 나를 좋아하겠나이까?”
- 내가 이제 온갖 원망과 불평을 잊어버리고~(27~31절) :
원망과 불평을 버리고 슬픈 얼굴을 바꾸어
밝은 얼굴빛을 하려고 애를 써도 그게 잘되지 않습니다.
욥이 지금 겪고 있는 일은 하나님께서 그를
이미 죄인으로 선언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욥은 자신이 전심을 다 해 회개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집니다.
- 내가 눈 녹을 물로 몸을 씻고~ 다시 시궁창에 빠지게 하시리니(30~31절) :
욥이 회개를 해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향한 진노를 풀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할까?
욥은 지금 자기가 끔찍한 병에 걸렸다는 것보다도,
결국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야 마는 자가 될 것이 더 두렵습니다.
3. 하나님과 욥 사이의 중재자를 구함(32~35절)
32) “만일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사람이시기만 하다면,
내가 그에게 대답하고, 그와 함께 법정에 들어가서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으련만,
(설명 :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답답하다는 말)
33) 우리 둘 사이를 중재할 자가 없고, 하나님과 나 사이를 판결해 줄 자가 없구나.
34) 제발 주께서 나를 치시는 그 막대기로 내게서 거두시고,
하나님의 그 위엄(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나를 더 놀라게 하지 않으신다면 좋으련만,
35) 그리하시면 내가 아무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어디 그런 일이 나에게 있겠는가?
(혹은,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줄 나도 이미 알고 있네).”
- 우리 둘 사이를 중재할 자가 있다면 ~(33~35절) :
욥이 애타게 부르짖고 찾고 있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재가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재자가 되셔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십니다.
* 묵상 point
1. 점점 자신 없어하는 욥 : 내가 정말 순전한(흠이 없는) 자가 맞는가?
1) 자기가 자기를 보아도 죄인처럼 보이는 현실을 한탄하는 욥(27~28절)
엘리바스가 욥에게 욥의 육신 자체가 재앙 덩어리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욥은 격분하며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순전함을 외칠 수 있었습니다.
빌닷이 세 가지 비유까지 들어가면서 욥을 형편없는 저속한 죄인으로 몰아갈 때에도
자신은 이런 벌을 받을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점점 자신에게 죄가 없다는 말을 할 자신이 없어집니다.
자기가 봐도 자신의 지금 상태는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심판을 내리실 때의 모습을 갖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써 밝은 모습을 하며 웃으며 명랑하게 보이려 해도
그가 매일 겪는 엄청난 고통과 흉물스러운 그의 모습에 움츠러들기만 합니다.
2) 욥의 고민 ➠ 내가 정말 죄가 없는 사람이 맞나(34~35절)
히스기야가 이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보름 후에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욥의 병은 그만큼 중한 병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독한 종기가 발바닥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온몸에 퍼졌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몇 달째 죽지는 않고 그 고통만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온몸에 구더기와 흙먼지가 뒤덮였다는 것은 이제 그에게 더 이상 고민거리도 아닙니다.
욥의 고민은 자신이 정말 죄가 없는 사람이 맞느냐 하는 것입니다.
3) 내가 정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이면 어떻게 하나 ➠ 욥의 두려움
욥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런 재앙을 받을 정도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욥은
하나님께서는 애당초 악인에게만 심판을 내리시실 생각이 없으셨고,
의인도 악인과 함께 심판하시는 것이 본래 하나님의 뜻이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죄가 없는 자기에게 이런 벌을 내리실 이유가 무엇이냐고
혼자 탄식하며 중얼거리다가도
자신에게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심판을 받을 만한 죄가 있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엘리바스나 빌닷의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틀림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 재앙보다 더 두려운 것 : 내가 정말 심판 받을 죄인이면 어쩌나!
1) 점점 심해지는 병증 ➠ 이 모습이 정녕 나의 죄를 나타내는 것이란 말인가(30~31절)
시간이 지날수록 병증은 더 깊어만 가고, 통증은 더욱 심해져만 갑니다.
병증이 심해져 갈수록, 통증이 심해질수록
욥의 고민은 언제 자신의 병이 나을까에 있지 않습니다.
욥의 고민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최종적으로 심판을 내리실지도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죽음보다도 더한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2) 병증으로 보아 욥이 생각해도 분명히 죄로 인한 재앙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설령 욥이 앓고 있는 병증이 죄의 결과로 인한 것일지라도
욥이 간절히 회개의 기도를 할 때마다 조금이라도 병의 차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병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욥의 회개의 기도를 전혀 듣고 있지 않으시는 증거라고
욥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욥은 아마도 자기도 알지 못하는 엄청난 죄가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엄청난 죄라도 있는 것인가?”
➠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욥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욥이 걸린 것과 같은 죽을병도 아니고,
부도가 나고 회사가 망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못한 것도,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도 두려워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너는 죄인이다”하는 판결을 듣는 것,
이것이 두려워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려움에서 영적 긴장감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욥의 두려움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 묵상 :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얻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죄인이라 판결하시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욥의 두려움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3. 만일 하나님과 나 사이를 중재할 자가 있다면 나는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을 텐데
1) 욥은 하나님께서 속 시원히 욥의 죄를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32절)
그렇다면 이보다 더한 질병이라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과 욥이 함께 재판정에 들어서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그 재판정에서 하나님께서 욥의 죄를 고발합니다.
그러면 욥은 하나님께서 고발하시는 죄에 대해 자기 변론을 합니다.
2) 그러나 누가 나를 위해 하나님께 중재를 해줄 것인가(33~35절)
그러나 이것은 상상에 불과하다고 욥은 생각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재판정으로 소환할 수 있습니까?
또 하나님을 소환한다고 해도 감히 뉘 안전이라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말대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그 법정에서 하나님께서 욥의 죄를 논하시면
누가 그 말씀에 ‘아니라’고 반박을 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 하나님과 욥 사이에서 중재하는 자가 있으면 좋겠는데
욥은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만일 중재할 자가 있다면 나는 아무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을 텐데(35절)
그러다 욥은 “만일 자신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할 중재자가 있다면
자신은 아무런 두려움을 가지지 않고 말할 수 있을 텐데” 하고 말합니다.
중재자가 하나님의 뜻을 욥에게 알리고, 욥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전달한다면
하나님과 욥 사이에 생긴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가 하나님과 욥 사이를 중재할 수 있단 말입니까?
➠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중재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사람 중에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중재할 자는 없습니다.
모세 시대에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중재하기는 했으나
그 역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 안에서 그가 사는 동안 잠시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친히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재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우리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욥이 걱정하는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 묵상 :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예수님,
이 모든 일로 친히 하나님과 우리의 중재자가 되어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 기도제목
1. 세상의 그 어떤 두려움보다도
주께 심판 받는 것이
가장 두려운 것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2.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재자가 되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3. 이 복음을 힘써 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