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코스 : 산정호수 – 일동 유황 온천 단지
파란 우물의 나라 산정호수는 국민 관광지답게 이른 아침에도 주차장에 차량이 가득 차 주차조차 할 수 없었다. 명성산 억새 축재의 여운이 아직 남았기 때문일까? 등산객과 호수를 찾아온 많은 사람 틈바구니에서 경기 둘레길 16코스를 걸어간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명성산의 들머리에 와서 명성산을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명성산을 바라보면서 달랜다. 가파른 산세에 바위가 어우러져 힘차게 솟구쳤다. 강렬한 힘을 느낀다.
명성산 주변에는 후삼국 궁예의 설화가 곳곳에 서려 있다. 왕건의 군사 쫓아오는 것을 살펴보았다는 망무봉, 궁예가 피신한 곳이라는 개적 동굴 등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궁예가 망국의 슬픔을 통곡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 하여 울음산이라 하였고 명성산이란 명칭은 울음산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패주골은 궁예가 전투에서 패한 고을이라 붙은 이름이고, 궁예와 그의 군사들이 한탄하며 도망쳐서 군탄리가 되었다는 전승들이 있는 것을 보면 백성은 그의 죽음과 패배를 애달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서는 궁예가 왕건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미복 차림으로 도망치던 중에 배가 고파 보리 이삭을 훔쳐먹다 백성들에게 맞아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민간의 전승에서는 궁예가 오히려 왕건을 상대로 상당 기간 항전을 벌이다 죽었고 왕건이 즉위하였을 때 친 궁예 세력들이 불복한 사례를 볼 때 승자를 위한 기록이란 생각을 지을 수 없다.
명성산과 궁예의 얽힌 설화를 더듬으며 78번 지방도로에 진입하여 걸어간다. 비록 자동차와 함께 나란히 걸어가는 길이지만 좌, 우가 산으로 막혀있고 가로수 등으로 도심의 도로와는 느낌이 다르다.
도로 옆에 있는 개울가 펜션을 지나 78번 도로에서 387번 도로에 진입하면서 차도 가장자리의 보도가 없어지어 다소 조심을 하며 걸어간다. 탱크 저지선을 지나니 오른쪽에는 관음산이 우뚝 솟아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바람이 솔솔 불어 가슴을 적시어 오르막의 도로에서 땀이 배지 않고 아스팔트의 보도가 없는 길이 계속되어 신중하게 걸어갈 때 또다시 탱크 저지선이 설치되어 있다. 휴전선과 멀지 않은 지역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오르막길이 다하면 내리막으로 이어짐은 자연의 필연임을 말할 필요가 없지만 걷기 좋은 내리막길에서 사향산이 왼쪽에서 또다시 우리를 맡는다. 오른쪽에서 관음산이 왼쪽에서는 사향산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가는 기분은 창공을 날아간다.
재앙도 겹쳐 오고 행복도 거듭 온다는 말이 있는데 관음산을 바라보면 흥겨워하던 발걸음이 사향산을 만나면서 즐거움은 배가 되었는데 이제는 다소 멀리 안개에 싸여 있지만, 그 늠름한 기세로 장쾌하게 뻗어간 산줄기에서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저 봉우리, 직감적으로 국망봉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저 봉우리는 30대 중반 등산에 발을 늘여 놓으면서 왔던 산이고, 저 산줄기는 국망봉을 찾아올 때 승용차에서 바라보고 넋을 잃고 바라보고 광덕재에서 오뚜기 고개까지 종주할 때 하나하나 넘었던 백운산, 국망봉, 강씨봉, 도마치봉, 민둥산, 개이빨산 오뚜기 고개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의 산줄기가 아니겠는가?
30대의 처음 보고 가슴을 출렁이게 하였던 격정이 60대가 되어 다시 접하고 똑같은 흥분과 감격의 감흥이 일고 있으니 산은 내 인생의 동반자라 할 것이다. 앞에는 한북정맥, 좌, 우에는 사향산, 관음산, 뒤에는 명성산이 우뚝 솟은 곳에 푹 빠져 진행하다 가는 방향을 잃고 되돌아오는 광경을 연출하는 것은 옥에 티가 아니라 애교이다.
387번 지방도로를 걸어가다 둘레길은 마을 길로 진입하라는 표지목을 세워 놓았고 친절하게도 낭유대교 3.8km를 알리는 표지목까지 세워 놓았는데 이를 보고도 무심코 지나쳐 뒤늦게 되돌아온 것이다.
개울물이 흐르는 들판도 아니고 산도 아닌 비탈진 곳에 여러 채의 민박집이 있는 것을 보면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그치지 않는 곳일 것이다. 도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우리의 도농 복합지역이 아닐까?
전화벨이 울린다. 박찬일 사장의 후미와 호흡을 맞춰 천천히 진행을 요구한다. 잠시 쉴 곳을 물색 중이었기에 개울가에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었다. 오늘 걷기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4명이다. 박찬일 사장님, 김헌영 총무는 역전의 용사로서 백두대간을 종주한 풍부한 경력의 소유자이지만 이번 경기 둘레길 걷기를 통해 알게 된 산거북이라는 닉네임을 지닌 배순호 씨는 아직은 초년병이지만 집념을 가지고 걷기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오늘은 독감 예방 접종으로 인하여 몸살을 앓고 있으면서도 완주하겠다는 집념으로 참여하였다. 한번 한다면 반드시 하는 것, 그것이 장부가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사람들은 꼭 하여야 할 때 하지 않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반드시 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나의 삶도 그러하였다. 산을 좋아하는 열정으로 학문에 전력하였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인데 학문은 등한시하고 취미 생활인 등산, 문화유산 답사에는 목숨을 걸고 하는 사람처럼 덤벼들었으니 인생의 폭삭 망함이 아니고 무엇이랴!
생각해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자초한 것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괴롭고 슬퍼지면 하늘을 바라다본다. 그리고 오늘을 성찰하며 내일을 그려본다. 붉어지는 눈시울을 감추며 걸어간다.
노곡 2교를 건너 387도로의 다시 진입하여 걸어갈 때 좌 : 이동. 우 : 일동의 갈림길에서 일동으로 가는 도로에 진입한다. 이곳에서 유황온천 단지까지 5.4km이다. 관음교를 지나며 보도로 걸을 수 있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남유교를 지나면서 또다시 보도가 없는 도로를 걸어 남유대교를 건너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물을 재배하는 농경지의 세계로 진입한다.
오늘의 농촌 현장을 볼 수 있는 농로를 걸어간다. 대규모 비닐하우스가 있고 인삼밭도 있다. 개울도 있고 콩밭 등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작물들이 자라고 있는 밭을 바라보면서 걸어간다.
논, 밭을 지나니 이 모든 농작물을 관장하는 사람들이 사는 사직 4리에 이르렀다. 양암 경로당 옆의 작은 공터에서 점심을 먹고 수입리에 이르니 선사시대의 고장답게 지석묘가 있었다.
”수입리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 탁자식 고인돌로 마귀 할머니가 머리와 두 손으로 돌을 옮겨 만들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마을 사람들은 괸돌, 또는 아양 바위 부르고 있다. 덮개돌에는 무엇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추측되는 일구멍이 있어 민간신앙과 연관된 장소로 여겨진다.”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관음산과 사향산으로 대표되는 주위가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의 먹거리를 제공하는 허허 벌판길을 벗어나 자동차 도로인 수입로에 이르러 잠시 진행하다 수임 2교를 건너 수임천을 우측에 두고 비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화대 2리 일동 유황온천 단지에 이른다.
● 일 시 : 2022년 11월12일 토요일 흐림
● 동 행 : 박찬일 사장님. 김헌영 총무님. 산거북이님
● 동 선
- 09시49분 : 산정호수
- 12시10분 : 남유대교
- 13시30분 : 수입리 지석묘
- 14시25분 : 일동 유황 온천 단지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 12.7km
- 소요시간 : 4시간3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