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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해설
제8장 기독론
제1절 생명나무 복귀로 본 아담과 예수
에덴동산에서 완성을 바라보고 성장하던 아담에게 있어서의 가장 큰 소망은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그룹들과 화염검으로써 그가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길을 막아버렸다(창 3/24). 그러므로 이 동산에서 쫓겨나 생명나무를 잃어버린 아담으로 시작된 인류역사는 에덴동산을 회복하여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길을 복귀하려는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고 있다.
알파로 시작된 인류 죄악역사가 오메가로 종결될 때의 모든 사람들의 희망은 죄악의 피로 물들인 옷을 빨아입고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기록된 말씀은 (계 22/14) 바로 구원섭리의 목적은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이 생명나무를 복귀하려는데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계시록에 기록된 생명나무가 복귀된 에덴동산의 재림예수를 표징한다면 타락전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창 2/9)는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 타락전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나 복귀된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는 같은 동산의 같은 나무를 의미할 것임으로 타락전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도 예수님을 표징한다고 보지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타락전 에덴동산에 예수께서 계셨을 수는 없는 것임으로 후 아담된 예수님을 표징하는 이 생명나무는 곧 첫아담을 표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에 기록된 생명나무는 완성기준을 향하여 자라고 있는 첫아담을 표징하는 것이며 계시록 22장에 기록된 생명나무는 복귀된 에덴 동산에 완성한 아담격으로 오실 예수님을 표징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후아담이라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고전 15/45, 롬 5/14).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말씀으로 창조된 아담이 다 자라서 완성되면 생명나무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으니 이것이 바로 말씀을 완성하여 하나님만이 거하실 수 있는 성전이요 도성인신자(道成人身者)다.
그러므로 생명나무라는 것이 실제로 에덴동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치 예수님을 포도나무, 참감람나무, 장인이 버린 돌 등으로 비유한 것처럼 완성될 아담을 가상하여 생명나무로 표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룹들과 화염검을 두어 그들이 생명나무에로 나아갈 길을 막았다」함은 아담이 생명나무가 될 수 있는 그 완성기준을 바라보며 성장하여 나아가던 도중에서 타락되었음으로 생명나무로서의 완성을 보지못하고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당하고 말았다는 뜻이다.
이렇듯이 타락으로 인하여 생명나무로서의 아담을 창조하시려는 말씀의 목적은 이루어지지 아니하였음으로 말씀(로고스)은 말씀대로 남아져 하나님과 같이 계시게 되었고(요 1/1~) 타락한 아담은 생명나무를 이루지 못하고 말씀을 잃어버린 비원리존재로서 사탄 주관권내에 머물게 되었다.
그런고로 타락된 인간의 최대의 희망은 「소망을 이루면 생명나무가 된다」(잠 13/12)는 잠언의 말씀과 같이 잃어버렸던 에덴을 다시 회복하여 생명나무를 복귀함으로 이 생명나무에로 다시 나아가 그와 하나됨으로 각자도 생명나무가 되려는 것이다.
하나님과 같이 계시던 이 말씀이 아담 이후 4천년에 말씀 완성자로 수육하여 오신 분이 곧 예수님이심으로 예수님은 후아담이요 따라서 생명나무다. 예수께서 「하늘 아버지의 완전함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마 5/48)고 말씀하신 것은 완성한 아담격자로 오신 예수 자신과 하나됨으로 자신과 같이 완전해지라는 뜻이다.
만일 예수께서 죽으시지 않고 영육 아울러 속죄의 사명을 다하셨더라면 우리도 영육 아울러 그에게 접붙임으로써(롬 11/24) 영육 아울러 복귀되어 창조목적을 달성한 생명나무들이 될 것이었는데 십자가로 인하여 부활한 예수님과 영적으로만 접붙이게 되었음으로 영적 생명나무로서만 복귀된 것이다.
이 영적 복귀의 역사는 바로 예수 승천후 오순절로부터 시작되었다. 오순절에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120명의 신도들 앞에 불같은 혀가 갈라지면서 그들은 성신을 충만히 받게되었음으로(행 2/3~) 비로소 부활하시어 영적 생명나무가 되신 예수님에게 나아가 영적 구원만을 받게된 것이다. 이 불같은 혀가 갈라졌다함은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던 화염검이 갈라져 그 길이 다시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길은 영적으로만 열려지게되어 영적 구원의 혜택만을 받을 수 있게되었음으로 성도들에게 남아진 유일한 희망은 영육 합하여 다시 생명나무에로 나아가 원죄까지도 벗어버리려는 것이니 이 생명나무가 바로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리고 온 인류가 유구한 역사를 두고 찾아 내려오던 생명나무 즉 계시록에 명시된 생명나무인 것이다.
제2절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의의
에덴동산 가운데는 두 나무와 두 사람이 있었는데 두 나무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요(창 2/9) 두 사람은 아담과 해와였다. 그런데 그 중에서 생명나무가 완성될 아담을 비유하는 것이라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완성될 해와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해와가 완성되어 하나님을 중심한 아담과 사랑을 맺었더라면 선의 열매를 결실하였을 것이었는데 천사를 중심하고 이런 관계가 성립되어 악의 열매를 결실하였음으로 선과 악은 해와를 중심한 하나의 사랑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와같이 해와는 선하게 될 수도 있고 악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하였고 해와를 중심한 사랑은 선의 열매도 맺을 수 있고 악의 열매도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선악과라고 한 것이다.
선과 악이 하나에서 출발하였음으로 선신의 역사와 악신의 역사도 동일한 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신의 역사를 전부 사신의 것으로 생각한 원인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과 악이 하나에서 출발하여 우좌로 갈라지듯이 선신의 역사와 사신의 역사도 같은 모양으로 시작되지만 각각 대립된 두 방향을 취하여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결과를 보면 선신과 악신의 역사를 곧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행적을 사신의 것으로 돌려버리려는 바리새교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라고(마 12/33) 권고하셨으니 이 교훈은 이러한 원리를 설명하는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타락론에서 상술한 바이지만 우리가 전적으로 죄악으로만 생각하기 쉬운 모든 행위도 하늘편으로 돌리면 선이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욕망, 시기 등등의 행위를 우리는 악으로만 생각하지만 이것도 진정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선이 된다는 것이다. 바울이 선을 위한 욕망과 시기가 컸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선의 터를 지상에 넓히고 간 것이다.
이와 같이 타락인간들의 모든 행동이 악의 결과를 초래하게되는 것은 그 목적이 사탄의 뜻을 이루는 방향을 취하였기 때문이므로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향으로 돌려놓으면 모두가 선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고로 이상세계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탄세계에서 되어지는 모든 것을 그대로 하늘편으로 방향만을 돌려놓은 세계다. 이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중축지점으로 오시는 분이 다시 오시는 주님이시다.
제3절 로고스의 이성성상으로 본 아담과 예수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있으니 말씀이 하나님과 같이 계시매······」(요 1/1~)라고 기록된 원문을 보면 같이 계시다는 말씀은 「pros ton theon」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부단한 교통으로 공존한다는 뜻이다.
원리적으로 논하면 로고스는 하나님의 대상존재로서 하나님과 수수의 관계적 위치를 취하고 있다는 뜻이다. 로고스의 주체인 하나님이 이성성상이므로 그의 대상인 로고스도 이성성상이 아닐 수 없다. 로고스가 이성성상이 아니라면 로고스로 창조된 피조물이 이성성상으로 되었을 리는 없는 것이다.
로고스가 전체적으로 실체화하여 하나의 개성체로서 수육하여 로고스 완성자로 나타난 존재가 예수님이요(요 1/14) 따라서 생명나무이며(묵 22/14) 동시에 완성된 아담이다.
창조원리에서 이미 밝혀진 바이지만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는 마음과 몸과의 관계로서 비유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그의 대상실체로 창조된 것이 인간인 것같이 마음의 형상을 닮아 그의 대상실체로 창조된 것이 몸이다. 즉 무형의 마음의 실체로서 창조된 것이 몸인 것같이 무형이 하나님의 실체로서 창조된 것이 사람이다.
골상학(骨相學)은 바로 이것을 증명하는 바이지만 얼굴 뿐만 아니라 사지백체의 골격과 내장까지도 내적인간의 표현이다. 이와같이 사람도 그 전체는 하나님을 닮았으므로 인간이 만일 타락되지 않았더라면 마음이 몸에 나타나듯이 하나님은 사람에게 나타날 것이요 마음과 몸을 뗄 수 없는 것같이 하나님과 사람도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이 명하는 대로 몸이 동할 때 마음이 기쁜 것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이 준행할 때 하나님은 기쁜 것이다. 몸이 마음의 명령을 거부할 때 마음이 서러운 것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부할 때 하나님이 서러워하신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하여 마음의 명령대로 몸으로 실천케하려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전 3/16)고 하셨고 주는 우리 안에 있고 우리는 주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다(요 14/24).
인간시조가 만일 타락되지 않고 이와같이 하나님이 완전히 임재하실 수 있는 성전이 되었더라면 우리들도 예수님과 같이 신성을 가진 존재가 될 것이었다. 이렇듯이 인간은 말할 수 없이 귀한 하나님의 실체로 창조된 것이었으나 지금까지 창조의 원리를 몰랐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의 가치성을 이해치 못하였다. 인간은 가치없는 인간으로 영락해버린 것이다.
로고스 완성자이시며 완성한 아담격으로 오신 예수님은 무형의 하나님의 실체대상으로 실체세계에 나타나신 분이심으로 타락된 우리와는 운니(雲泥)의 차(差)가 있다. 그러나 창조원리로 보아 만일 인간이 타락되지 않고 완성되었더라면 우리는 예수님과 본질상 다른 것이 없다.
예수님은 완성된 인간으로서 오직 한분의 하나님의 몸으로 죄와 상관없이 나타나신 분이요 우리는 타락의 혈통을 받아 사망권내에 처하게 된 죄인이라는 점에서 다른 것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몸을 쓰고 인간세계로 오신 예수님은 어디까지든지 인간이었다. 예수께서 만일 우리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의 동복동생조차 그를 몰라보았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한 중보가 계시매 그는 사람이니 곧 그리스도라」(딤전 2/5)고 하신 말씀도 있거니와 「한 사람의(예수) 순종하심으로 뭇 사람이 의인이 되었느니라」(롬 5/19~)고도 말씀하셨고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의 부활도 생겼도다」(고전 15/21)라고하신 등등의 기록으로 보더라도 예수님은 사람이라는 것이 성서에도 강조되어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 자신도 자신을 인자라고 자칭하지 않았던가.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요 15/5)라고 하셨으니 포도나무와 그 가지가 서로 다를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타락의 침범을 당치않은 본성성전임으로 성전의 머리가 되었고 우리는 복귀된 성전임으로 분성전이다. 예수님은 참감람나무요 우리는 돌감람나무니(롬 11/17) 그에게 접붙임으로써 우리도 참감람나무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를 친구라하셨고(요 15/14)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같을 줄을 아는 것은 ······」(요일 3/2)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지상에 오셨을 때에도 우리와 다름없는 사람이었지만 지금 낙원에서도 그의 제자들과 똑같은 사람이다. 다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권세를 잡고 계시는 생령체로서 그의 찬란한 빛을 발하고 계시며 제자들은 그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생령체로 있는 것뿐이다.
인간은 본래 타락하지 않고 완성되었으면 예수님과 같이 생령체가 될 것이었음으로 앞으로 완성한 에덴 복귀의 시대가 오면 제자들도 생령체를 이루어 전부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부활론 참조) 다만 예수님은 처음 익은 열매될 것뿐이요 제자들은 다음 익은 열매가 될 것이다(고전 15/23).
첫 아담으로 인하여 타락된 인간은 영육 아울러 완전히 복귀시키기 위하여 후 아담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이 뜻을 완수하지 못하고 승천하셨음으로 지상에서 이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아직도 하늘에서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롬 8/34).
만일 예수께서 하나님 자신이라면 하나님 자신이 누구에게 기도할 것이며 하나님 자신이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을 이유는 어디 있으며 하나님 자신이 사탄에게 몰려 십자가에 죽으실 이유는 어디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예수님은 어디까지나 이성성상의 로고스 수육의 완성존재인 것이다.
그러면 이성성상의 로고스가 남성주체된 예수님으로만 현현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성주체된 예수님 앞에 여성의 대상존재가 있어야할 것이니 그것이 곧 성신이다.
제4절 탕감복귀원리로 본 예수와 성신과 중생의 의의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축복(창 1/28)대로 원리완성기준까지 성장하여 죄없는 자녀를 번식하였더라면 인류는 참 부모의 사랑에서 출생된 참 자녀들로서 태어나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실현되었을 것인데 인간시조가 타락되었음으로 전 인류는 타락된 부모의 사랑에서 출생되어 타락세계를 이루어 놓은 것이다.
타락한 부모가 타락한 인류를 낳았으니 이것을 복귀하려면 탕감복귀원리 (후편 서론 참조)에 의하여 참 부모가 전인류를 다시 낳아주지 않으면 아니된다. 여기에 중생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피조세계의 창조과정을 보아도 첫날 짓고 둘째날 셋째날······ 이렇게 점차적이었고 첫날 지음도 하나의 빛을 창조하심으로 출발하였다.
인간창조도 그렇다. 아담 한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하나의 몸에서 해와를 창조하셨다. 인간을 창조하심도 하나의 아담을 창조하는데서부터 시작되었으니 재창조 역사인 복귀섭리도 하나의 아담을 복귀하는데서 출발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즉 전인류를 동시에 복귀하지 않으시고 한 사람 아담을 다시 찾으심으로써 구원의 복귀섭리를 하시자는 것이다.
이러한 섭리에 의하여 복귀된 아담으로 오신 분이 후 아담 예수님이심으로(고전 15/45,) 예수님은 인간조상으로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존하신 아버지(사 9/6)라 하셨고 타락한 인간과 부자의 관계를 맺으러 오신다(말 4/6~)고 하셨으며 다시 오실 때에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신다(마 16/27)고 하셨다.
복귀된 아담 즉 참 아버지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면 복귀된 해와 즉 참 어머니로 오신 분이 계셔야 이 참 부모가 타락된 전 인류를 다시 낳아(중생) 주실 것이 아닌가. 이 참 어머니로 오신 분이 성신이다. 남성주체된 예수님에 여성의 대상존재로 오신 분이 성신이라 함은 이미 위에서 상술한 바와 같다.
그러므로 성신은 해와의 신성이시오 따라서 어머니 신성이시다. 많은 사람들이 성신은 여성신이라는 계시를 받고 있지만 이러한 원리적 근거는 알지 못하고 있다. 해와가 죄의 뿌리가 되었음으로 탕감복귀원리에 의하여 해와의 신성으로 오신 성신은 인류의 죄를 씻는 역사를 해야 되며 성신은 여성신이므로 감동의 신이요 또 신부의 신이므로 성신을 받지 않으며 예수님 앞에 신부로 설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남성이므로 하늘(양)에서 역사하시며 성신은 여성이시므로 땅(음)에서 역사하셔야된다. 생존과 번식과 작용의 힘은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의 작용이 성립되는 데서만 시작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구원의 힘도 예수(주체)는 성신(대상)과 수수관계를 맺음으로써 비로소 중생의 힘을 발생하는 것이다. 즉 번식은 사랑에서 시작되는데 성신의 감동에 의하여 예수님을 믿게되면 영적 참아버지된 예수님과 영적 참 어머니된 성신과의 수수관계에 의하여 맺어지는 영적 참 부모의 사랑에 의한 새 생명이 주입되면 새로운 영적 자아를 중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이란 이와같이 참 부모가 타락된 우리를 다시 낳아주는 역사를 말함이다.
제5절 삼위일체론
창조원리에 의하여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상술되었으며 본장 제2절부터 제4절까지에서 아담과 예수님과의 관계도 해명되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가 원리완성기준까지 성장되어 하나님의 이성성상에 대한 완전한 대상분립실체가 되었더라면 그들이 바로 하나님을 중심한 삼위일체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주체로 한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로서 삼위일체를 이루었을 것이며 따라서 인간창조는 로고스 이성성상의 수육현현에 의한 삼위일체 이상을 실현하시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타락으로 인하여 아담 해와로서 이루지 못한 이 삼위일체 이상을 후아담 후해와로 오신 예수님과 성신으로서 이루신 것이다.
타락된 인간은 복귀섭리에 의하여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로 나아가 그와 하나되면 각자도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로서 복귀될 것이니 이 두 나무가 하나님이 허락하는 창조원리적 이상상대로 세워지게 되면 하나님을 중심한 삼위일체 이상을 실현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복귀섭리가 완성된 시대에 있어서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성혼 곧 아담 해와가 타락치않고 이루었어야할 것과 같은 성례를 하게되면 각자는 모두 하나님을 중심한 삼위일체 이상을 이루므로 온 인류는 한 혈통으로된 한 형제와 한 자매가 될 것이니 이것이 곧 창조이상을 복귀한 세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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