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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대국어 갑골문자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아비
黃누를 황
누리다, 누리, 누런, 누린내
黃의 갑골문
黃의 금문 黃의 전문
黃의 갑골문 자형(1), (2)는 大[①]와 田[②]의 합자이며, (3), (4)는 大와 囗[③ 圍(에울 위)]의 합자이며, (5)는 寅인 黃으로 통용된 것입니다.
금문 및 전문은 정면을 향하고 서 있는 사람의 모양인 大의 머리 부분에 특별한 장식을 한 모양[④]과 田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大의 갑골문
大의 금문 大의 주문 大의 전문
[大의 갑골문 자형 ⓐ는 팔이 머리끝부분에 붙어 있지만 아주 드문 자형이며, 별도의 어기를 가진 것이 아니라 기록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黃의 갑골문 자형의 大 부분[①]과 독자적으로 사용된 大를 비교해 보았을 때, 양팔에 해당되는 부분이 독자적인 大는 몸통에 붙어 있는 반면 黃의 大는 머리 끝부분에 붙어 있습니다.
이는 양팔을 활개 치는 모양을 나타낸 것입니다. 양팔을 위로 올린 모양으로 할 경우 木과 동일한 형태가 되기에 머리 끝 부분에 붙인 것입니다. 따라서 금문의 ④부분도 양팔을 머리 위로 올려 손을 맞잡은 것이며, 또 전문에서는 아래로 향하고 있는 양팔이 八과 같이 몸통에서 떨어져 있는데, 이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있다는 표현으로 ‘활개 치다’라는 동작을 더욱 분명하게 합니다. 갑골문과 금문, 전문에 보이는 田은 여기서는 ‘터전’으로 ‘삶의 터전’을 의미합니다. ③의 큰 사각형도 囗[圍]로 田과 같은 뜻으로 ‘구역’으로 ‘삶의 구역’을 나타냅니다.
‘삶의 터전에서 크게 활개 치다’에 해당되는 배달말로는 ‘누리다(/생활 속에서 마음껏 즐기거나 맛보다)’가 있습니다. 黃의 파생 글자들은 모두 이 ‘누리다’의 소릿값 및 의미의 확장에 따릅니다.
黃 자에 대한 기존의 자원(字源)으로는 사람이 허리에 찬 옥의 모양으로 관리들이 허리에 차던 옥빛이 노란색이었던 것에서 ‘노랗다’의 뜻을 나타낸다거나, 누런 황토밭의 모양 등이 있지만 분명한 근거를 가진 것은 아니며, 다른 확장 의미들에 대해서는 전혀 맞지 않는 작위적인 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黃은 현대중국어에서는 ‘노란색’의 의미로만 사용되며, ‘黄碟[huángdié](음란 디스크)’의 예에서처럼 속되거나 퇴폐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그들의 어감(語感)에 의하여 새로 생겨난 의미이며, 본래의 의미와는 무관합니다.
黃色(황색), 黃金(황금), 黃土(황토), 黃砂(황사) 등에서 黃이 ‘누리다’에서 유사한 소릿값을 가지는 ‘누르다(/황금이나 놋쇠의 빛깔과 같이 다소 밝고 탁하다), 노르다(/달걀노른자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로 쓰였습니다.
天玄而地黃. 『周易』
하늘은 가마득하니 따(/땅)에 누리라.
상기 주역(周易) 문장의 黃은 기존의 모든 풀이에서 ‘노랗다’는 색명으로 새기고 있습니다. 주역이란 세상 만물의 변화의 원리에 대한 내용을 기술한 책이며, 담고 있는 내용의 심오함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책에 기존의 풀이대로 ‘하늘은 검고 땅은 노랗다’와 같은 식의 마치 초급 문법책에서나 기술될 법한 ‘텍스트’가 등장할 리는 만무합니다.
상기 문장의 玄(검을 현)은 배달말의 ‘감다/깜다’의 소릿값을 나타내는 글자로 여기서는 ‘가마득하다/까마득하다(/거리가 매우 멀어 보이는 것이나 들리는 것이 희미하다)’의 뜻을 나타내며, 마찬가지로 黃은 ‘누르다’에서 ‘누리다(/생활 속에서 마음껏 즐기거나 맛보다)’의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玄과 黃 모두 색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天覆於上而其色玄 地載於下而 其色黃也. 『十翼·文言傳』
하늘은 위에서 덮고 있으니 그 색이 감고, 땅은 아래에 실려 있으니 그 색이 노랗다는 것이다.
상기의 십익(十翼)의 내용은 주역의 ‘天玄而地黃’을 알기 쉽도록 풀이한 내용인데, 黃을 ‘노란색’이라는 색명으로 새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십익(十翼)은 공자가 주역의 내용을 풀이한 책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배달말을 분명하게 구사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저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후대에 공자의 신격화를 위한 방편으로 ‘십익은 공자가 저술했다’는 식의 왜곡이 발생한 것이며, 십익의 실제 ‘저자’, 혹은 ‘저자들’은 한나라 이후의 사람으로 추정합니다.
ᄒᆞ눌헤야 까마득하니 따헤 누리다.
이 태초(太初)의 말씀이 뿜어내는 어감(語感)에 숨이 막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런 배움도 없이 소탈하게 늙은 시골 할아버지의 입에서도 불쑥 나올 것도 같고, 또 한편으로는 천하통일(天下統一)의 위업(偉業)을 달성하고, 한 켠 물러나 앉은, 태왕(太王)이 무럭무럭 자라는 세손(世孫)에게 인자한 표정으로 들려줄 것도 같은 말씀입니다. 지고지순(至高至純)의 말씀이며, 배달어의 지극(至極)한 모습입니다.
배달사람 외에 또 누가 이 말씀의 깊이와 맛을 직해(直解)할 수 있겠는가? 배달말이 아니고서야 어떤 언어로 저 말의 맛을 나타내겠는가?
이 말씀을, ‘하늘은 검고, 땅은 노랗다’라고 하니, 어설퍼도 한참 어설픈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기에 적어도 2천년 가까이 전 세계 문자를 아는 사람의 과반수이상이 외고, 또 외워 왔으니, 문자가 생겨난 이래 최대의 해프닝이라 할 것입니다. 배달 할아버지의 얼이 숨 쉬는 말씀을 한족(漢族)이 더럽힌 것이며, 이것이 바로 시황제(始皇帝)가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명(命)한 이유입니다.
한문(漢文-한나라 이후)의 역사란 해프닝의 역사입니다. 또 사서삼경(四書三經)은 물론이고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이르기까지 이런 풀이상의 해프닝은 쌓이고 쌓여 있습니다.
해프닝이긴 하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해프닝입니다. 이 해프닝에는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해지는 ‘중원공정(中原工程)’이라는 한족(漢族)의 음모(陰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중원공정은 성공적으로 마감했으며, 그 다음으로 현재 이어지고 있는 작업이 ‘동북공정(東北工程)’입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갑골문자의 존재 자체가 제게 희미하던 때입니다.
낯선 땅, 어느 골방에서 죽자 살자 공부만 하고 있었습니다. 짙게 드리워진 커튼,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분간도 없이 앉은뱅이책상 앞에서 책을 보다가 그대로 잠들다가를 반복하던 세월, 뜻이 있어 한 공부가 아니며, 전 그렇게 세상을 흘려버리고 싶었고,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그 어느 하루, 반은 꿈이고 반은 생시인 상태에서 하얀 옷을 입은 옹골찬 어르신 한분이 다녀간 적이 있었습니다. 무어라 한 말씀, 남기셨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 말씀 없이 인자한 표정 한 번에 훌연 떠나가셨습니다.
이 黃(누를 황) 자를 깨우칠 무렵, 그 어르신은 다름 아니라, 우리 할아버지, 단군할아버지라는 것 문득 깨달았습니다.
黃帝
누리의 임금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는 삼황(三皇)에 이은 오제(五帝)의 첫 번째 제왕으로 황룡이 나타나 토덕(土德)의 상서로운 징조가 있다고 하여 黃 자가 붙여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黃帝에서 黃이 실제 나타내는 바는 ‘누르다’에서 소릿값을 가차한 ‘누리(/세상)’이며, 黃帝는 ‘누리의 제왕’, 즉 온 세상의 최고 왕이란 의미입니다.
도교(道敎)의 시조(始祖)로 추앙받고 있는 황제헌원은 목조건물·수레·배·활·화살·문자를 만들어냈고, 동전(銅錢)의 사용법을 도입했으며, 그의 아내는 비단을 발명해서 여인들에게 누에를 치고 비단실을 뽑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황제(黃帝)의 명칭을 받아들여 춘추전국(春秋戰國) 이라는 대혼란기를 통일한 진(秦)나라의 군주는 자신의 칭호를 ‘황제(皇帝)’라 하여, 시황제(始皇帝)라고 일컬어집니다. 도량형(度量衡)을 통일하고, 문자의 체계를 재구축하는 등, 진시황은 황제 헌원을 벤치마킹한 것입니다.
黃口 황구
누린 주둥이
사전적(辭典的)으로는 ‘노란 입’으로 해석하며, 풀이는 어린 새의 주둥이가 아직 노란 것에서 ‘어린아이’나 ‘애송이’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새의 부리는 거의 다 노란색입니다. 닭의 경우만 하더라도 병아리에서 닭으로 되어 갈수록 부리의 색은 더욱 짙은 노란색이 되며, 오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새끼 때만 노란색이었다가 자라면서 부리의 색이 변하는 새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옥편에 黃 자에 ‘어린아이, 유아(幼兒)’의 뜻이 있다고 수록되어 있습니다. 또 ‘늙은이’의 뜻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예로 ‘黃耈[황구 ; 耈(늙은이 구)]’는 나이가 썩 많은 늙은이의 뜻입니다. 이 서로 격에 맞지 않는 정반대의 정의들은 배달말에서의 관용적인 격식을 다른 언어인 중국어로 의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입니다.
黃 자에 ‘어린이나 늙은이’의 뜻이 직접 있는 것이 아니라, 어감과 어조를 나타내는 비유어로 사용된 것입니다. 배달말의 소리에서 ‘노란색/누런색’은 냄새를 의미하는 ‘누린내’와 군어(群語) 관계에 있습니다. ‘젖비린내 나는 어린애’라는 관용의 표현이 있듯이, 黃口(황구)는 ‘누린내 나는 입’의 의미인 것입니다. 또 순우리말 고유의 어감에 어리거나 유치한 사람에 대한 비유로 ‘코 묻은’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누런 주둥이(/콧물이 말라 입 주위가 누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요즈음엔 그런 아이들이 거의 없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저학년의 가슴팍에는 손수건을 달고 다녔습니다. ‘코흘리개’ 아이들의 코 묻은 입술을 닦아주기 위해서입니다. 黃耈(황구)는 ‘노랑내 나는 늙은이’, 즉 나이든 사람의 몸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로 늙은이를 콕 집어 비유해 낸 것입니다.
‘누린 주둥이’, ‘노랑내/누린내 나는 늙은이’라고 한국 사람에게 말한다면 그 의미가 바로 黃口(황구), 黃耈(황구)라는 것을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黃 자에 ‘누린내’라는 의미는 현대중국어 사전에도 자전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갑골문자를 처음 만든 사람(배달인)과 자전을 처음 편찬한 사람(중국인)의 언어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즉 갑골문자를 처음 만든 사람들의 입말에서는 ‘누린내 나는 주둥이, 노랑내 나는 늙은이’라는 식의 비유적인 표현이 존재 했지만, 중국인의 입말에서는 존재하지 않기에 풀이하는 과정에서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한 의역(意譯)이 직역화(直譯化)되어 사전에 의역된 뜻이 독립된 ‘정의’로 등재되어 있는 해프닝이 ‘한자(漢字)’입니다.
黃廬 황려
누리 집
황려[黃廬 ; 廬(초막 려)] 의 사전적 정의는 ‘오두막집, 땅 밑, 저승’ 등입니다. 여 단어에서 黃(누를 황)이 가지는 의미는 자전적으로 딱히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어에서 ‘누역’은 산 속에 임시로 지어 놓은 움막 같은 집의 평안북도 사투리입니다. 또 ‘누비질’은 두 겹의 천에 바느질을 특별한 양식이나 격식 없이 깁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상의 예에서처럼 한국어 ‘누/누비’에서는 ‘마구잡이’와 비슷한 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래에 들어서 만들어진 신조어(新造語) 중에 ‘누리꾼, 누리집’이라고 있습니다. 누리꾼에서 ‘누리’는 세상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자유자재/제약이나 제한이 없는’의 어기도 함의하고 있으며, 누리집은 누리꾼의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비록 근래에 들어서 만들어진 신조어이긴 하지만, 누군가의 억지스런 주장이나 유행어가 아닌 배달말 본연의 어감(語感)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스며 나온 말입니다. 黃廬(황려)에서 黃(누를 황 ; 누리)이 가지는 어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橫 가로 횡
누인 구조물, 누비다, 가로
黃·橫의 금문 橫의 전문
橫의 금문은 黃과 통용되며, 전문 자형은 구조물을 의미하는 木과, 黃의 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黃의 ‘누리다’에서 ‘눕다, 누이다’로 쓰여, 누인 구조물에서 ‘가로’의 뜻을 나타내며, ‘누비다(/이리저리 거리낌 없이 다니다)’의 뜻도 나타냅니다.
橫의 독(讀) [횡]은 배달말의 ‘휑휑하다, 횡횡하다’ 등에 따른 것입니다. 橫의 가장 유효한 훈독(訓讀)은 [누빌 횡]입니다.
횡(橫) [같은 말] 가로(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방향).
횡 (1) 바람이 갑자기 빠르게 부는 소리.
(2) 작은 것이 바람을 일으키며 빠르게 날아가거나 떠나가 버리는 소리.
(3) 기계나 바퀴 따위가 빠르게 돌아가는 소리. 또는 그 모양.
횡횡 (1) 작은 것이 바람을 일으키며 잇따라 빠르게 날아가거나 떠나가 버리는 소리.
(2) 기계나 바퀴 따위가 잇따라 빠르게 돌아가는 소리. 또는 그 모양.
휑휑 [북한어] 무엇을 매우 빠르게 내두르거나 내돌리는 모양.
橫暴(횡포), 專橫(전횡) 등에서 橫이 ‘누비다’의 뜻이며, 橫說竪說(횡설수설), 橫斷(횡단), 橫隊(횡대), 橫線(횡선) 등에서는 橫이 ‘가로’의 뜻입니다. 縱橫(종횡)은 ‘세로와 가로’의 뜻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남북(南北)을 縱, 동서(東西)를 橫’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배달민족 고유의 방위 관념은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하는 것인데, 이런 시각에서 바로선 것을 세로로, 옆으로 누인 것을 가로로 잡은 비유적인 개념입니다.
橫厄(횡액), 橫財(횡재), 橫夭(횡요), 橫死(횡사) 등에서 橫은 현재의 사전적 정의로는 ‘뜻 밖에’의 뜻으로 풀이되지만, 실제로는 ‘휑휑하다’의 뜻입니다.
必達於禮樂之原 以致五至 而行三無 以橫於天下 四方有敗 必先知之 此之謂民之父母矣. 『禮記』
반드시 예악의 근원에 통달하아 오지(五至)를 이끌어내고 삼무(三無)를 행하여, 천하에 누비게(/가로 지르게) 한다. 사방에 패속(敗俗)이 있다면 반드시 먼저 알게 하는 것이다. 이를 백성의 부모라고 이르는 것이겠다.
상기 문장의 橫은 기존의 풀이에서 ‘꽉 차다’는 식으로 새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는 배달말의 ‘누비다(/거리낌 없이, 막힘없이 통하게 하다)’의 뜻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太祖尋至, 胡拔都著厚鎧三重, 襲紅褐衣, 乘黑牝馬, 橫陣待之. 『太祖實錄 總序 69』
태조가 조금 후에 이르렀는데, 호발도(胡拔都)는 두꺼운 갑옷을 세 겹에 붉은 갈옷을 껴입었으며, 흑색 암말에 타서는 진을 가로막고 기다린 것이다.
상기 문장의 橫은 ‘가로’에서 ‘가로막다’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비슷한 용례에 橫領(횡령), 橫斂(횡렴)에서는 ‘가로채다’의 뜻입니다. ‘가로막다’와 ‘가로채다’에서 ‘가로’는 縱(세로 종)의 從이 ‘좇다’로 ‘順從(순종), 從事(종사)’의 개념인 것에 반하여, ‘가르다(/쪼개거나 나누어 따로따로 되게 하다/옳고 그름을 따져서 구분하다’로 쓰인 것입니다.
㶇 나루 횡/뗏목 횡
물가의 누인 나무, 나루, 뗏목
㶇의 전문
㶇의 전문 자형은 水와 木과 黃의 합자이며, 黃이 ‘누이다’로 쓰여, 물가의 누인 나무에서 ‘나루, 뗏목’ 등의 뜻을 나타냅니다.
璜 패옥 황
누리
璜의 갑골문 璜의 금문 璜의 전문
璜은 갑골문에서 黃과 통용되며, 금문 및 전문 자형은 黃과 玉의 합자입니다. 앞서 黃에 대한 기존의 자원(字源)에서 허리에 차는 패옥의 색깔이 노란 것에서 ‘노랗다’의 의미가 나왔다고 했지만, 실제 이 璜은 색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형태에 따른 옥의 한 분류입니다.
‘누리’는 평안도 방언(方言)에서 ‘유리’의 뜻으로 사용되는데, 이를 통하여 ‘패옥(佩玉)’의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磺 쇳돌 광/유황 황
누리 쩍, 쇳돌, 누런 쩍, 황
磺의 전문
磺의 전문 자형은 石과 黃의 합자입니다. 石은 ‘쩍’ 소릿값을 나타내는데, 여기서는 ‘쇠, 돌, 나무, 진흙 따위가 삭거나 터지거나 찍힐 때에 일어나는 얇은 껍질 조각. 광석을 제련한 후에 남은 찌꺼기’을 나타내며, ‘누리’는 ‘가리(/쌓은 더미)’의 뜻으로도 쓰입니다. ‘누리 쩍’에서 ‘쇳돌’의 뜻을 나타냅니다. 현재는 鑛(쇳돌 광)[전문 자형 없음]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며, 磺은 유황의 뜻으로 주로 사용됩니다.
또 ‘누런[黃] 쩍[石]’이라는 것에서 ‘유황’의 뜻도 나타냅니다.
觵 뿔잔 굉
누리잔
觵의 전문
觵의 전문 자형은 뿔잔을 의미하는 角과 黃의 합자이며, 黃이 ‘누리(/유리)’의 뜻을 나타내어, ‘유리로 된 잔’, 즉 ‘누리잔’의 뜻을 나타냅니다.
潢 웅덩이 황
누런 물, 웅덩이
潢의 갑골문
潢의 전문
潢의 갑골문 및 전문 자형은 水와 黃의 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黃의 ‘누르다’에서 ‘누런 물’로 흙탕물인 ‘웅덩이’의 느낌을 나타내는 글자입니다.
簧 생황 황
죽관을 누르다, 피리
簧의 전문
簧의 전문 자형은 竹과 黃의 합자이며, 黃의 ‘누르다(/물체의 전체 면이나 부분에 대하여 힘이나 무게를 가하다)’로 쓰여, 죽관에 나 있는 구멍을 손가락으로 ‘눌러’ 연주한다는 것에서 ‘피리’의 뜻을 나타냅니다.
彉 당길 확
활을 누르다, 밀다
彉의 전문
彉의 전문 자형은 弓과 黃의 합자이며, 黃이 ‘누르다(/물체의 전체 면이나 부분에 대하여 힘이나 무게를 가하다)’로 쓰여, ‘활을 누르다’에서 ‘밀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설문(說文)에는 ‘滿弩也[쇠뇌를 채우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쇠뇌’는 미리 당겨진 활줄을 몸통의 홈에 걸어놓은 상태에서 화살을 ‘밀어 넣고’, 방아쇠를 당겨 마치 총처럼 쏘는 활을 말합니다. 근데 설문(說文)의 ‘滿[찰 만]’은 이 쇠뇌가 화살탄창을 가진 것을 의미하며, 이 탄창 부분에 화살을 ‘밀어 넣는’ 동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나라의 유물에서 이와 같은 구조의 쇠뇌가 발견됩니다.
蟥 말거머리 황/풍뎅이 황
누런 벌레, 말거머리, 풍뎅이
蟥의 전문
蟥의 전문 자형은 벌레의 뜻을 나타내는 虫과, 黃의 합자이며, 黃의 ‘누르다’에서 ‘누런 벌레’로 ‘말거머리, 풍뎅이’의 뜻을 나타냅니다.
廣 넓을 광
누비는 자리, 너르다
廣의 금문 廣의 전문
廣의 금문 및 전문 자형은 广과 黃의 합자입니다. 广은 ‘덮다, 걸치다’의 뜻을 나타내며, 여기서는 席(자리 석)의 축약이며, 黃의 ‘누리다, 누비다’와 더하여, ‘누비는 자리’에서 ‘너르다(/공간이 두루 다 넓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廣告(광고), 廣場(광장), 廣域(광역), 廣魚(광어) 등에서 廣이 ‘너르다, 넓다’의 뜻입니다.
壙 뫼구덩이 광
흙 널, 구덩이, 너른 땅, 들판
壙의 전문
壙의 전문 자형은 土와 廣의 합자이며, 廣의 ‘너르다’가 ‘널(/시체를 넣는 관이나 곽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축약되어, ‘흙으로 만든 널’에서 ‘구덩이’의 뜻을 나타내며, 또 ‘너른 땅’에서 ‘들판’의 뜻도 나타냅니다.
壙穴(광혈 ; 시체가 놓이는 무덤의 구덩이 부분을 이르는 말), 壙誌(광지 ; 죽은 사람의 이름, 신분, 행적 따위를 기록한 글), 土壙墓(토광묘 ;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직접 넣거나 목관이나 목곽에 시체를 넣고 그 위에 흙을 쌓아 올린 무덤. 널무덤) 등에서 壙이 ‘구덩이’의 뜻입니다.
我爲汝父, 歛不得視衣衿, 殯不得撫其棺, 窆又必不得臨其壙. 以千乘之主而反不如匹夫之愛子. 『太宗實錄 18年 3月 3日』
나는 너의 아비이지만, 염(歛)에서 의금(衣衾)을 볼 수 없고, 빈(殯)에서 그 관을 어루만질 수 없고, 하관을 함에도 또한 필시 그 구덩이에 임할 수 없을 것이니, 천승(千乘)의 군주(君主)로서 도리어 필부(匹夫)가 자식을 아끼는 것만 못하구나.
상기 문장의 壙이 ‘구덩이’의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덤’은 내부에 주검이 들어 있어야 하며, 현재 사전적 정의에서 墓誌(묘지)는 ‘무덤 앞에 세워진 誌石(지석)을 말하며, 壙誌(광지)는 무덤의 내부 공간에 있는 誌石(지석)을 말합니다.
전체 문맥상 ‘염(斂[斂])’과 ‘빈(殯)’은 완료된 상태이고, ‘폄(窆)’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民之歸仁也 猶水之就下 獸之走壙也. 『孟子』
백성들이란 게 인(仁)에 돌아감이야, 마치 물이란 것이 아래로 나아가듯 짐승이란 것이 들판을 달림과 같다.
상기 문장의 壙은 ‘너른[廣] 땅[土]’으로 ‘들판’의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獷 사나울 광
들판의 개, 들개, 구덩이 개, 족제비
獷의 전문
獷의 전문 자형은 犬과 廣의 합자입니다. 廣이 壙의 축약으로 ‘들판’으로 쓰여, ‘들개’의 뜻과 壙이 ‘구덩이’로 쓰여, ‘구덩이 속에 사는 개’라 하여, ‘족제비’의 뜻도 나타냅니다.
曠 빌 광
널브러지다, 널리 퍼지는 볕, 훤하다
曠의 전문
曠의 전문 자형은 ‘퍼지다’의 뜻인 暉(빛 휘)의 축약인 日과, 廣의 합자이며, 廣의 ‘너르다’에서 ‘널리 퍼지다’로 ‘너부러지다(/힘없이 너부죽이 바닥에 까부라져 늘어지다), 널브러지다(/너저분하게 흐트러지거나 흩어지다/너저분하게 흐트러지거나 흩어지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日이 光(빛 광)의 축약으로 쓰이고, 廣의 ‘너르다[/늘다/늘어나다]’와 합하여, ‘널어난 빛’에서 ‘훤하다(/조금 흐릿하게 밝다)’의 뜻도 나타냅니다.
曠土(광토 ; 황폐하고 거친 넓은 땅)에서 曠이 ‘널브러지다’로 ‘흩어지다’의 뜻입니다. 曠古(광고)는 현재의 사전적 정의에서 ‘이전에는 그와 비슷한 일이 없음. 전례가 없음. 만고에 없음’ 등으로 풀이하여, ‘未曾有(미증유)’와 같은 뜻으로 새기고 있지만, 전혀 맞지 않으며, 실제로는 ‘널브러지다’로 ‘(/있었을 수도 있지만) 흩어지고 없다’의 어기(語氣)를 담고 있습니다.
曠夫(광부)는 ‘홀아비. 아내에게 충실하지 못한 남편’의 두 가지 뜻을 나타내는데, 모두 잘못된 풀이이며, 실제는 ‘너부러진/널브러진 지아비’로 ‘(/마음이나 사이가)흩어져 버렸음’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현대국어에서 속된 표현의 ‘나자빠지다’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匪兕匪虎 率彼曠野 哀我征夫 朝夕不暇 『詩經·小雅』
들소도 아니요 호랑이도 아닌데, 솔방 저 들에 너부러지네. 슬픈 우리 원정 온 사네들, 아침 저녁 겨를도 없다네.
상기 시경에 사용된 ‘曠野’를 ‘공허한 들판’으로 풀이하지만, 그러면 앞의 ‘들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니다’의 구절과 맥이 맞지 않게 됩니다. 曠이 나타내는 바는 ‘들소’와 ‘호랑이’처럼 들판에 ‘너부러져 다니다’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너부러지다보니 아침저녁의 겨를도 없다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 曠安宅而弗居, 舍正路而不由, 哀哉! 『孟子·離婁』
인은 사람의 안택(安宅)이요, 의는 사람의 정로(正路)이다. 안택을 널브러트리고 살지 않으며, 정로를 버리고서는 따르지 않으니 슬프도다!
상기 맹자의 구문에 사용된 曠을 일반적으로 ‘비우다’로 풀이합니다. 이는 주희(朱熹)의 집주에 ‘曠, 空也[광(曠)은 빈 것이다]’라고 한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는 ‘널브러지다(/너저분하게 흐트러지거나 흩어지다)’로 사용된 것입니다.
曠日持久(광일지구)는 ‘헛되이 세월을 보내며 날짜만 끎’의 뜻으로 사전적으로 정의되어 曠을 ‘헛되다’의 뜻으로 새기고 있지만, 실제의 뜻은 ‘널브러지다(/흐트러지거나 흩어지다)를 나타냅니다.
曠古(광고)는 ‘전례가 없음, 만고에 없음’ 등의 뜻으로 풀이되지만, 실제 ‘曠古’의 뜻은 ‘널브러진 예로부터’의 뜻이며, ‘曠古未有’, ‘曠古所無’ 등의 구문이 자주 사용됨에 따라 축약된 성어(成語)입니다.
親耕籍田. 蓋古者天子·諸侯 皆親耕籍田 有三推九推之別焉, 以其供粢盛重民食, 不可輕也. 方今郊祀上帝, 旣行曠典. 『世祖實錄 3年 3月 15日』
친경적전(親耕籍田). 대저 옛날의 천자(天子), 제후(諸侯)는 모두 친히 적전(籍田)을 갈았는데, 삼추(三推)·구추(九推)의 구별이 있었던 것이겠고, 그것으로써 자성(粢盛)을 공급하고, 백성의 음식을 중히 여겼기에 가벼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이제 상제(上帝)에 들제사[郊祀]를 지냈으므로 이미 널브러진 법전(法典)을 행하였습니다.
상기 문장의 ‘曠典’은 ‘널브러진 법전(法典)’으로, 여기서의 ‘널브러지다’는 그 동안 고래로부터 행해져 오던 ‘典[여기서는 규범]’이 ‘흐지부지’되었음을 의미합니다.
纊 솜 광
널린/너부러진 실, 솜
纊의 전문
纊의 전문 자형은 糸와 廣의 합자입니다. 廣이 ‘널리다(/펼쳐 놓다/흩어져 놓다), 너부러지다’로 쓰여 널린/너부러진 실이라는 것에서 ‘솜’의 뜻을 나타냅니다.
線纊(선광 ; 실과 솜을 아울러 이르는 말), 屬纊(속광 ; 사람이 죽어갈 무렵에 고운 솜을 코나 입에 대어 호흡의 기운을 검사했던 데서, 임종을 달리 이르는 말) 등에서 纊이 ‘솜’의 뜻입니다.
懬 너그러울 광
너른 마음, 너그럽다
懬의 전문
懬의 전문 자형은 廣과 心의 합자이며, 廣의 ‘너르다’에서 너른 마음으로 ‘너그럽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懬에는 사전적으로는 ‘황폐하다, 홀아비’ 등의 뜻도 있는데, 이는 ‘늘크레하다(/늘크데하다 ; 패기와 정열이 없고 느른하며 맥이 없다), 늙수그레하다’로 쓰인 것입니다.
櫎 장막 황/차양 황
널려 놓은 구조물, 챙
櫎의 전문
櫎의 전문 자형은 구조물을 의미하는 木과, 廣의 합자이며, 廣의 ‘너르다’에서 널어놓은 구조물로 ‘챙(/햇볕을 가리거나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처마 끝이나 창문 바깥쪽에 덧붙이는 물건)’의 뜻을 나타냅니다.
穬 까끄라기 광
널브러지는 나락, 겉보리
穬의 전문
穬의 전문 자형은 禾와 廣의 합자이며, 廣이 ‘널브러지다’로 쓰여, 밥을 지었을 때 점도가 떨어져 ‘널브러지는 보리’로 ‘겉보리(/곡식입자의 내외영이 성숙 후에도 떨어지지 않는 보리)’의 뜻을 나타냅니다.
穬麥(광맥 ; 볏과의 한해살이풀 또는 두해살이풀)에서 穬이 ‘겉보리’의 뜻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