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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 심판대 앞에 가도 괜찮습니까? / 2023년 4월 23일 주일 오후 예배
본문 / 마태복음 4:12-17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 깊은 슬픔과 괴로움과 탄식이 나옵니다. 심판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벽에 기도할 때 그런 생각이 들면 하나님, 다 천국가야 되잖아요. 한 사람도 지옥에 가면 안 되잖아요. 울면서 기도가 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 중에는 우리가 사랑한다고 하는 가족, 부모와 자식과 형제와 자매 혈육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은 다 구원을 받았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성도들은 하나님도 섬기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신 하나님과 재물을, 하나님과 세상을 즉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그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함께 섬기는 자들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을 섬겨도 하나님과 세상과 재물과 자신 자신을 함께 섬기는 것이라면 그것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는 믿음처럼 보이지만 말입니다.
저는 얼마 전 새벽에 기도를 하면서 정말 두려웠습니다. 지금 내가 가는 이 믿음의 길이 맞는지 말입니다. 지금 이대로 심판대 앞에 가도 괜찮은지 말입니다. 하나님이 내 믿음을 인정하고 받아주실지 말입니다.
하나님께 물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믿음이 잘 못되었으면 지금 깨닫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심판대 앞에 가기 전에 이 세상에 있을 때 회개하고 고쳐야 할 것 아닙니까?
성경을 보면 정말 이 세상에서는 진짜처럼 보였는데 심판대 앞에서 가짜로 드러난 일들이 많은 것입니다. 자신도 가짜일 것이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진짜라고 확신한 겁니다. 다른 사람들도 저 사람은 진짜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런데도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은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여러분은 두렵지 않습니까? 제가 아는 것 중에 하나는 가짜는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갑니다. 자신에게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나오지 않을 때에는 즉 십자가의 순종이 안 나오면 나 가짜가 아닌지 의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어 보며 십자가 앞에서 부끄러워하고 애통하며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짜들은 밑도 끝도 없이 확신에 차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교회의 성도들에게 처음으로 던진 하나님의 말씀은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가서 회개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확신하는 자들에게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하는 심판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임박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 성도들이 천국에 합당한 자들이었으면 회개하라고 하셨겠습니까? 입술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고 헌금을 드리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척했지만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무화과나무였습니다. 예수님은 열매로 그 나무를 판단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열매가 없는 나무는 찍어 불에 던지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매를 찾을 수 없었던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고 그 나무는 뿌리까지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하신 것은 지금 살아있는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사자처럼 왕 노릇을 하며 살았어도 죽으면 아무 것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길을 가는지 돌아보고, 확인하고, 회개하고, 천국을 선택하고, 심판을 준비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지금 우리 인생 앞으로 오직 믿음 하나만이 가치로 인정을 받는 그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심판대 앞에서 서면 세상에 있을 때 그렇게 환장했던 돈과 재물도 부자도 얼굴이 예쁘고 잘 생긴 것도 머리가 좋은 것도 인기도 운동과 노래 잘하는 것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영광과 가치와 힘들은 다 소용 없게 될 것입니다. 배설물만도 못한 것입니다.
그날이 오고 있는 겁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데 두렵고 떨리는 날이 온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도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날을 만나겠지만 정말 두렵고 떨리는 날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서는 날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앞에는 두 개문과 길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정말 천차만별이고 천양지차이지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인생들을 바라보면 모든 인간들은 두 종류의 길로 심판대 앞으로 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넓은 길이고 다른 하나는 좁은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넓은 문은 길이 넓어서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은 길이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은 멸망으로 즉 영원한 고통만 있는 지옥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찾는 이가 적은 좁은 길은 영원한 기쁨만이 있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말씀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3장에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천국은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 들어갈 자들이 많다는 것은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은 넓은 길로 가면서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합니까?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고 죄와 세상과 싸워가며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순종하는 좁은 길을 가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육신이 편안하고 만족한 대로 믿으면서 즉 하나님과 재물을,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기는 넓을 길로 가면서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정말 인생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영원한 저주로 끝나는 겁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심판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사들도 심판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잠시 살다가는 세상의 일에 대하여는 골몰하고 욕심을 부리고 두려워하고 심각해도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병든 거지로 살아도 천국만은 반드시 가야한다는 갈급함도 없고 지옥은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한다는 두려움도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알기는 하지만 이것이 마음과 영으로 믿어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심판이라는 두렵고 떨리는 미래의 현실이 희미한 지식으로만 있기 때문에 마음 한 구석으로는 두려워하면서도 그 육체의 정욕과 세상의 탐심으로 자신의 자아를 숭배하는 현재의 현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넓은 멸망의 길에서 돌이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나도 언젠가는 마음만 먹으면 돌이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스스로 믿음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침체와 깊은 잠에 빠진 수많은 성도들이 설마설마 하다가 심판대 앞에서 잠을 깨는 것입니다. 일어나라고 흔들어 깨울 때 그 수많은 시간과 기회를 다 놓치고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곳에서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이런 성도들이 얼마나 많겠느냐는 겁니다.
정말 한 번 잠에 빠지면 일어나는 게 쉬운 게 아닙니다. 심판대에 가까이 갈수록 잠은 더 깊어집니다. 극적으로 심판대 앞에 가기 전에 일어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더 깊은 잠에 빠져 일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일어나야 되는데 하면서도 이미 잠이 그 영혼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잠 하면 제가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습니다. 몇 번 말했습니다. 군대에서 말입니다. 군인이 가장 원하는 게 잠자는 것입니다. 휴가 나오면 일단 원 없이 잠을 잤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쩌면 제 앞에서 잠을 자다가 영창대기하라고 문책을 받은 동료를 보고 저도 잠을 자느냐 말입니다.
겨울에 동계훈련을 나가 한 동료와 함께 둘이서 전화를 받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추운 날 저녁에 밖으로 나가고 둘만 남은 겁니다. 대대 상사가 오늘 밤은 아주 중요한 날이니 대대장과 지휘관들의 전화를 잘 받아야 한다고 자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갔습니다. 잘 줄을 알고 그랬는지 말입니다.
저는 먼저 자고 다른 동료가 근무를 서고 있었습니다. 자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깨어보니 욕이 막 들리고 분위기가 험악한 겁니다. 전화를 해도 해도 안 받으니 달려온 겁니다. 자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근무를 서게 되었습니다. 너는 자지 말라고 또 당부를 하는 겁니다.
저는 안 자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습니다. 전화기만 쳐다보며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이름을 부르며 욕을 하고 들어오는 겁니다. 대대 상사가 또 온 겁니다. 아니, 나는 분명히 둔 눈을 부릅뜨고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저 사람이 왜 저러나 했는데 눈을 부릅뜨고 전화기만 쳐다본 것은 꿈이었던 겁니다.
어쩐지 전화기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도 전화가 한 통도 안 오는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잠이 그렇게 견딜 수 없는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저도 모르게 잔겁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영창대기라고 하니까 그 순간에 잠이 확 달아나는 겁니다. 영창은 장교도 사람대접을 못 받는 곳입니다. 들어가서 자라고 하는데 그 견딜 수 없었던 잠이 어쩌면 어디로 싹 달아났는지 영창에 갈 생각을 하니 잠이 안 오는 겁니다.
도대체 견딜 수 없었던 그 잠이 어디로 갔을까요? 제가 잠을 잘 만큼 자서 사라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영적인 잠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이 주는 거짓 평안이, 그 육신의 평안이 마음을 서서히 지배할 때 성도들은 영적으로 졸기 시작하고 잠에 빠집니다.
누가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기억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노아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외쳤을까요? 너희들 회개하고 심판을 준비하지 않으면 다 지옥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잠을 자고 있었던 겁니다.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온 것처럼 원하는 만큼 살 줄 알았던 겁니다. 세상의 영광과 즐거움과 재미와 쾌락으로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숭배하는 깊은 잠을 자고 있었던 겁니다.
이 시대의 성도들도 그렇습니다. 심판! 심판! 천국과 지옥 아무리 말해봐야 자신을 돌아보고 깨닫고 회개하고 좁은 길로 돌이키는 사람들을 별로 없는 겁니다.
대부분은 그러니라 하는 겁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처럼 기름도 떨어지고 등불도 꺼진 것입니다. 정말 심판이 내일 온다면야 그러면 그때는 좀 어떻게 할까? 언제 올지도 모르는 심판을 왜 지금부터 미리 준비해야 되느냐는 겁니다. 지금은 나를 위해, 내 육신을 위해, 이 세상을 사는 것이 더 의미 있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에 잠이 확 달아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십자가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심판이 온다는 그 말씀 앞에 정신이 번쩍 드는 사람 말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정말 사람처럼 불쌍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지금 이 세상의 평안에, 그 육신의 평안에 빠져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지옥의 불구덩이를 향해 가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자신이 가는 길을 확인하고 넓은 길에서 어떻게든 돌이킬 생각은 하지 않고 말입니다.
오늘도 나는 잠을 자고 먹고 놀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았으니 내일도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자고 먹고 마시고 놀고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끝나는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겁니다. 심판을 준비하지 않고 구원을 받지 못한 채 심판대로 가면 이 세상에 있을 때 내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자고 일하고 놀고 tv보고 했던 것들을 영원히 하지 못합니다.
영원히 마시지 못하고, 영원히 먹지 못하고, 영원한 자지도 눕지도 못하고, 영원히 말하지 못하고, 일하고 거두는 것도 없고, 오직 영원히 어둡고 캄캄한 그 불 못에서 말로는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믿어지십니까?
나 혹시 그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영원은 그만두고 일주일만 마시지 못하고, 일주일만 먹지 못하고, 일주일만 자지도 눕지도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고통이 상상이 됩니까? 아마 먹고 마시는 것은 일주일은 참는다고 해도 눕지도 자지도 못하면 미쳐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지옥은 미칠 수도 없는 곳입니다.
얼마 전에 분당에서 다리의 인도교가 무너져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것도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그 분은 그 길을 걸어서 아침저녁으로 오래 동안 출퇴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돌다리가 무너져 죽을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마태복은 7장 21절에서 심판을 받은 그 사람들도 절대로 의심하지 않았을 겁니다. 선지자로 존경을 받았고, 귀신을 쫓아냈고,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천국을 못 가겠느냐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불법을 행했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목사와 성도들이 설마설마 하며 스스로 안심하고 잠을 자고 있을까요? 나는 아니겠지 하며 말입니다. 우리교회에 몇 사람이나 구원을 받았는지 기도한다고 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해주실지 안 하실지 저는 모릅니다. 제 소원은 한 사람도 지옥에 가지 않고 다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저에게 구원을 못 받았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할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밥을 먹고 살아서 무엇 하겠는가? 제 목숨을 하나님께 맡기고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매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십자가를 붙들고 회개하고 제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겁니다. 죽더라도 구원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이 구원을 받을 때라고 하셨습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은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아닙니다. 때와 기한은 하나님이 정해놓으셨습니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나는 이대로 심판대 앞에 가고 괜찮은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내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설마설마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기를 너무 원하시는 분입니다. 아들까지 주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내 영혼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심판이 가까이 왔다는 그 말씀 앞에 정신이 번쩍 차리고 잠을 깨우고 회개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내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고 자신을 스스로 깨우고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시는 주님을 위해서 일어나야 합니다. 열심을 내십시오. 믿음으로 죄와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심판을 준비하며 깨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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