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저무는 가을로 가는 길에는
시야가 넓어 보는것이 많아서 빈자리가 크다,
보이는 들은 비워 가는데
보는 마음은 아직일러 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을이 깊어 있는곳은 쓸쓸함이
묻어있다
인생도 낙옆질 무렵이면 생각이 더 많아지기에
외로움이 화선지위에 떨어진 먹물처럼
번져간다.
복흥 면소재지에는 저녁불이 켜져 가는데
연기가 피어나는 집이 없다.
옛시골에는 집집마다 연기 오르는 시간이
청소년 집에 들어갈 시간인데 불은 간간히
켜져 가는시간 복흥은 고요하기만 하다.
대흥사 도량에도 어스름 어둠이 내리면
가로등 불빛이 때를 놓치지 않고 순간을 포착하여
온다.
지금이 낮도아니고 밤도아닌 저녁시간이다
산등선 넘어에는 태양빛이 남아서 능선이
흐르는 곡선의 구분으로 빛과 어둠을 나누어
주는데 법당앞 파초 잎새에 가로등 불빛이 머물고 있다.
가을이 깊어 가는 저녁 무렵은 살짝이 춥다.
빛이 남아서 잠들지 못하는 채소들도 푸르게
텃밭에서 찬이슬을 기다린다.
종종색으로 가득한 세상 가을 어둠이 내리면
제모습을 아끼며 드러냄을 숨기고 만다.
고요한 산사여
종소리 멈추면
불경소리 울고
뀌뚜라미 노래
귓가에 머물고
밤이슬 맞으며
도량을 걸었지
인생은 황색 신호등 불빛이라.
경계에 끼어 붉은 신호등도 아니라
멈추지도 못하고.
녹색 신호등도 아니라 갈수도 없지만
붉은 신호등과 녹색 신호등이 아니 되는것이
되는것이 황색 신호등이다.
경계에서 살자 .
밤과. 낮이 아닌 저녁으로 살아가는 삶을
생각 해보자,
존재감이 없어도 역할은 황색 신호등으로
사는것도 좋을것같다.
경계에 서지 않으면 화합은 불가능 하다는것은
자명한 사실인가 싶다.
해보아라 말대로 되지 않는다는것을 안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그것이알고싶다면 실천이 답이다.
인문은 경계에 서는것이다.
부처님의 연기법도 경계의 철학이다.
생각이 많으면 많을수록 무심이 빛을 발한다.
그래서 언어도단 심행처멸이라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지음자에게는 말이 말이 아니요
탈도 탈이 아니다.
선사들은 무심을 물으면 유심으로
답하고 유심에 집착하면 무심으로
답하여 경계에 머물게 한다.
경계에 있는 자들의 생존은 즐겁다.
변화가 무변이라 삶은 활발발하게 된다.
부처님의 자등명이며,법등명이다.
까페나 식당의 써비스가 셀프는 알면서
인생이 셀프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의 발길은 오늘도 누구를 찾아
나서야 하기에 짚신을 많이 준비 하셔야
할 것같다.
첫댓글 자등명, 법등명, 진공묘유 등 심오한 불법을 설파해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